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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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코스키라는 작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한재호라는 작가가 <부코스키가 간다>라는 제목의 국내 소설을 발표했을 때였다. 제목이 특이하기에 소개글을 보고서 미국에 실제로 찰스 부코스키라는 이름의 시인이자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건너온 이민 가정의 찰스 부코스키는 한때 문단에서 외면당하기도 했다지만 1994년 세상을 떠나고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발표된 그의 다른 소설 <팩토텀>, <우체국>, <여자들>에서와 같이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역시 헨리 치나스키를 주인공으로 하여 작가의 소년 시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민 가정의 궁핍함, 가족 구성원간 소통과 이해 부족, 친구들의 폭력과 비열함 등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해야했던 그는 일찍 부터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사회, 도덕과 질서보다 악덕과 폭력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의 실상을 보면서 자란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직접 가지 않고 꾸며서 쓴 글을 숙제로 제출했는데 잘 썼다고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헨리. 더구나 가지 않고 썼다는 것을 나중에 선생님이 아시고도 칭찬하신 걸 되돌리지 않고 그냥 집에 가라고 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헨리는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거짓말이고 최소한 거짓말은 내 삶을 더 쉬워지게 한다고.

그래, 사람들이 원했던 건 그거였다. 거짓말. 아름다운 거짓말, 그게 바로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바보였다. 내게는 삶이 더 쉬워지겠지. (115쪽)

그 당시 쉬운게 나중까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책 속의 헨리는 알지 못한다. 나중까지 후회없는 거짓말은 없다는걸.

이 나잇대는 한참 성에 눈 뜰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책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분량이 남자 아이들의 성적인 호기심과 실제 행동에 대한 내용이어서 아무리 어린 시절 이야기라지만 이 정도면 19금 수준 아닌가 생각하며 읽었다. 남자 아이들의 성장기란 99% 성에 눈뜨는 것 하고만 관련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더구나 헨리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몸에 번지는 부스럼이다. 이런 저런 치료를 받아보지만 치료가 불충분하거나 적절하지 못했는지 상태가 더 나빠져가서, 급기야는 학교를 휴학하고 집의 침대에 누워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별 오락 거리도 없이 침대에서 두문불출 해야했던 바로 그 시기에 헨리는 시간 보내는 방법으로 최초의 창작이라는 것을 해보게 된다. 가지도 않은 행사에 갔던 것 처럼 글을 써서 칭찬을 받았던 헨리 아닌가. 바깥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부스럼이 조금 낫기 시작하자 동네 공립 도서관 출입을 시작한다. 모든 책에 흥미를 느낀 건 아니었다. 몇권의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모두 흐릿하고 모호하고 지루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렇지 않은 책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DH 로런스의 소설이다.

피아노 치는 한 남자에 대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가식적으로 보이던지. 그러나 나는 계속 읽어 나갔다. 피아노 치는 남자는 문제가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둡고 기이한 것들이었다. 그 페이지의 대사는 한 인간의 절규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지만, <조, 어디에 있어?>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조, 어디에 뭔가 있긴 한 거야?>에 가까웠다. 팽팽하고 피투성이인 대사를 쓰는 이 로런스. (214쪽)

저 두 문장이 가져오는 결과의 차이를 집어낼 수 있던 헨리. 이후로 헨리는 도서관에 있는 DH 로런스의 책을 다 읽어치웠고 흔히 그렇듯이 그 책들은 곧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이끌었다. 헨리 치나스키가, 즉 찰스 부코스키가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잡초더미 같은 세상을 딛고 헨리가 걸어가는 길. 결말이 쌈박하다.

 

한때 불행했던 시기는 나중에 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가. 그런 시기를 거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작가로서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웠던 시기라는 그 구슬들을 그냥 구슬인 채로 두느냐 목걸이로 엮어내느냐의 차이일 뿐.

책 뒷편의 해설에도 언급했고 나도 궁금했던, 책의 제목이 왜 저 제목인지는 의견이 분분할 뿐 아직도 확실히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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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6-28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 삶의 긴 터널 입구로 들어가 언젠가 다시 터널을 빠녀 나올 것이라는 것.

잠시 어둡고, 조용해지겠지만 그렇게 가다보면 밝고 환한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희망.

요새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올리신 리뷰도 읽다보니 그런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비가 오네요. hnine님.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한 시간 째 음악듣고 노트에 뭘 적고 있습니다. ^^

hnine 2019-06-28 10:27   좋아요 1 | URL
터널 말씀을 하시니 어쩌면 사는 건 말씀하신 그 터널의 연속이 아닐까 싶네요.
언젠가 순천에 가면서 터널 몇개를 지나는지 세어봤더니 30개가 넘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터널을 거쳐서 목적지까지 가긴 갔지요. 그런데 인생의 터널은 그 터널 속을 통과하는 동안은 그게 터널 속인지, 끝이 있긴 있는건지, 믿음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왔어요 ^^)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 여긴 비가 그쳤어요. 무슨 음악 들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벌써 금요일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