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박찬순 지음 / 강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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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순이라는 이름을 소설가로써 기억하는 사람은 그녀의 나이 일흔 셋이라지만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로 알려지기 이전에 라디오 PD, 외화 번역가로 오랫동안 일해오다가 예순 나이 되어서야 신춘문예에 4전 5기 끝에 당선함으로써 등단한 늦깍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완행열차"는 그녀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작년에 이 소설집을 내고서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의 소리에 초대손님으로 나와 얘기하는 그녀는 유쾌했고 강단있었다. 읽어보아야겠다고 벼른지 일년만에 드디어 그녀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모두 열한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

기차의 출발 실수로 일정이 뒤틀리고 대신 다음에 온 완행열차를 타야했다는 것으로서 예기치 않은 상황 설정을 하였다. 그외에도 이혼을 앞두고 있는 화자의 개인적 상황, 다니고 있는 회사의 위기, 고성이 오가는 싸움, 오디션에 떨어진 여자, 탈레만이라는 음악가, 비올라 다감바라는 악기에 대한 애정 등, 단편 속에 너무 많은 소재들을 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어색하지 않게 끌고 가는 숙련된 문장력은 돋보였으나 이야기의 흥미를 떨어뜨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헤란 신드롬> ★★★

테헤란 신드롬이란, 테헤란과 비즈니스를 할 때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다가도 중간에 이유도 없이 꼬이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뜻을 보니 소설의 소재로 삼기 좋은 용어이고 작가는 그걸 이용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의 내용이 과연 부합했는지는 좀 생각해볼 일이다. 실제로 작가는 2015년에 테헤란 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되었던 바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고 보여지는데 이것이 왜 소설일까, 에세이라고 보는편이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디테일한 묘사 때문이었다. 소설로서 이야기를 읽으려는 독자라면 과하다 느껴질 만큼 꽉꽉 채워져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받은 느낌이 간간히 들었다.

 

<재의 축제> ★★★★

죽은 자의 재가 살아나 축제를 벌이는 괴이쩍은 활기, 죽은 자를 추억하는, 아니 되살리는 한판 재의 축제. 애도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팽개쳤던 그 지질해 보이던 일상의 매 순간순간들이 자기에게 복수를 하는 듯했다. (91쪽)

 

삶이란 일상과 따로 뚝 떨어져서 뭔가 대단한 한 방을 위해 남겨둔 공간이 아님을. 한 사람의 실패와 좌절, 쓰러짐, 그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봐주기, 좋은 음악에 흠뻑 빠져드는 호젓한 시간, 햇볕의 온기에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소록소록 부풀어 오르는 듯 하던 그 찰나, 시내는 그 모든 순간들을 다 날려 보냈다. (92쪽) 

삶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 언제나 있을 것 같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 같은 그 지질한 순간들이 결국 나중에 애도가 이루어질 부분이라는 것을 작가는 어찌 알았을까.

 

<달팽이가 되려한 사나이> ★★★★★

이 소설집에서 최고로 꼽고 싶은 단편은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가의 관심세계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다시 보게된 작품이다. 2040년의 세계가 너무나 현실처럼 읽히는 것은 가능성 있는 상황을 잘 도입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을 소설로 이어나가는 솜씨가 어줍짢은 도입의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충분히 가능하게 여겨질 정도로 치밀했기 때문이다. 스마트 가이드 (SG)라는, 지금의 스마트폰의 업그레이드 버젼에 해당하는 도구에 모든 결정과 판단을 맡기고 자신들의 뇌 사용은 잊고 만 인간들이 달팽이에게서 뭔가 다시 배우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그때.

"원하는 거 없어. 단지 소박한 감각과 기억을 되찾겠다는 거야. 평범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었던." (115쪽)

정말 그때가 되면 그리움이라는 말도 잊혀진 말의 리스트에 들어가게 될까. 가까운 미래를 이렇게 현실감 있게 그린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젠장, 당신들 대체 나의 하늬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122쪽)

나를 위해 이런 말을 던져줄 그 누구도 없는 세상.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푸줏간에 매달린 고기가 되어 나의 지능과 판단을 포기한 댓가로 편하고 틀림없는 인공지능의 결정를 누리는 세상.

 

<북남시집 오케스트라> ★★★

남북한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평도 연주 라는 행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와 지휘자가 주인공이다. 연주 곡목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글의 품격을 더해주고 상황에 대한 비유로서 음악에 대한 내용을 삽입한 것은 좋았지만 덜 구체적이고 덜 전문적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성, 지휘자와 화자의 불안전한 관계, 지휘자의 정체성, 음악의 기승전결등, 단편 속에 너무 많은 긴장 요소와 부대 상황으로 포화되어 있다는 느낌은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북동 230번지> ★★★★

역시 본인의 경험담이다. 독특한 소재라는 것과 능란한 문장들의 연속이 결점을 덮는다. 이 작가는 늘 자기의 어떤 특별한 경험들을 소설화한다. 그것이 소설로서 읽히기 보다 보고서나 경험담으로 읽히는 것이 거슬리던 참인데 이 단편에서는 이런 생각을 후반에서 보기 좋게 뒤집어 놓았다.

"...잠만 쿨쿨 자면......인생 손해지." (174쪽)

"아유, 참, 아버지는 재미있는 라디오라니까. 제발 좀 쉬어가며 웃기세요. 라디오 고장 나요." (175쪽)

소설가 구보 박태원에 대한 오마주는 여기 저기서 나타난다. 성북동 230번지는 박태원이 생전에 작품 인세 대신 받아 살던 집의 주소.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아가보고 조사하면서 화자는 (또는 작가 박찬순은) 박태원과 그의 딸의 대화를 이렇게 상상해보며 이야기 속에 삽입하고 있다. 나같은 보통 수준의 독자들에게는 작가가 너무 고단수를 쓰고 있지 않은가? 집중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레몬을 놓을 자리> ★★

이쯤 읽으니 이 작가의 소설은 재미로 읽는 소설은 아닌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으로 시작했을 것이 거의 분명한 소재인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역시 이야기라기 보다 기록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다. 실제 인물 (정지용, 윤동주, 카지이 모토지로)이 모티프가 된다는 것도 다른 단편들에서와 같다. 카지이 모토지로의 단편 <레몬>을 읽어본 적 있다면 더 잘 이해가 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신천을 허리에 꿰차는 법-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처음 부터 끝까지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가와 구보 박태원이 나누는 상상의 대화는 현실보다 더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기 까지 하고, 구보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며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 또한 주목할 만 하다.

 

<폭죽소리> ★★★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다. 生命本來就是成功,  Life itself is a success. (265쪽)

폭죽. 화려하게 터지고 나서 곧 스러진다. 그래서 허무한데도 우리는 화려하게 불꽃으로 터지는 인생을 꿈꾸고 부러워하며 그렇지 못한 오늘은 실패라고 생각한다.

 

<아그리파를 그리는 시간> ★★★

살아보고자 탈북한 청년 민호의 불안정한 삶이 줄에 매달려 붓질을 하는 화가와 프로펠러가 달린 플라잉 바이크라는 소재와 맞물려 비유되고 있다.

 

<아홉번째 파도> ★★★★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세월호에 임시직 일자리를 얻어 탑승했던 동생을 잃은 형이 자원봉사를 하며 동생의 생전의 모습을 회상하며 부재를 느끼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단편 <아홉번째 파도>는 러시아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의 동명의 그림에서 인용한 제목이다.

그림을 찾아보았다. 

세월호 아이들과 달리 그림 속의 이들은 살아남았을까?

그랬기를.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오래였던 만큼 작가 자신이 겪은 어떤 경험이라도 소설로 쓰고 싶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래서 대부분의 단편들이 작가의 경험으로 시작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소재와 품위있는 문장력은 그 작품의 격을 더하고 있다. 다만 너무나 구체적인 설명과 디테일,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설정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놓은 점 등은 작가의 과욕으로도 보이고 작품의 재미를 감하지 않았나, 아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짚고 넘어가 본다.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은게 작년이었으니 곧 새로운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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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04-1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두 편만 봤는데, 뒤의 것이 더 좋군요.

hnine 2019-04-11 20:27   좋아요 1 | URL
보물선님 댓글 읽고 보니 제가 열한편의 순서를 책에 실린 순서대로 쓰지 않았기에 수정했어요. 덕분입니다 ^^
저에게는 읽기가 그리 수월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절대 시시하진 않아서 열심히 읽었다고 할까요.
달팽이가 되려 한 사나이가 저는 제일 좋던데요.

보물선 2019-04-1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다시 보게 될 듯합니다. 추천작품 읽어볼께요^^ 감사!

hnine 2019-04-11 20:40   좋아요 1 | URL
제가 감사하죠. 보물선님 서재에서 짧지만 강력한 리뷰 보고 읽어야겠다 결심했는걸요.
작가 인터뷰도 시간 되시면 들어보세요. 아주 재미있는 분 같더라고요.

2019-04-1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3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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