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4 - 4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4권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길상의 출옥이 가까와지자 사람들은 막연히 과거 김환의 자리를 길상이 대신할 것을 기대한다. 서희가 500석 지기 땅을 길노인에게 자금으로 내놓았다는 것도 그렇게 기대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시부모 봉양 잘 하는 본처 기성댁을 버젓이 고향에 두고 서울에서 첩살이 하고 있는 아들 두만이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앉자 이평 노인은 뜻밖의 처방을 내놓는다. 가진 전답을 기성댁에게 물려주겠노라고 선포한 것이다. 이에 두만은 불같이 화를 내며 화풀이로 아내 기성댁을 가차없이 폭행한다. 아들 두만의 폭행으로 퉁퉁 부은 며느리의 얼굴을 보며 우는 두만 모친, 그리고 그런 시어머니를 오히려 위로하는 기성댁. 이 내용의 장은 제목이 <어머니와 아들>이었다.

 

'마침내'라고 해야하나 '결국'이라고 해야하나. 전권인 13권에서 조용하와 이혼한 임명희는 동창이자 친구이기도 한 길여옥을 여수로 찾아 간다. 길여옥 역시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며 전도사로 활동하는 상황. 임명희와 길여옥,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 당시 고등교육 혜택을 받은 여성의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두 여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예상해보게 하였다. 결혼과 별개의 길을 걸어,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만족하며 살아가는 길로 이어질 것인가.

 

아들 석이의 두 아이 (성환, 남희)와 큰딸 순연 (귀남네) 가족까지 한집에 데리고 살아야 하는 성환 할머니 집에 어느 날 작은 딸 복연이 방문한다. 대우 받으며 살아야 할 나이에 자식, 손자 뒤치닥거리 하며 사는 것으로 보이는 어미 편을 든답시고 복연은 언니 순연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형부에게 눈치를 준다. 그렇게 복작거리면서도 결국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리 섞인 밥이나마 함께 먹는 장면에서, 가난과 아픔과 갈등을 이고 지고 하루 하루 버텨나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보여 가슴 찡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피붙이라는 것은, 이렇게 병도 주고 약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용하, 조찬하, 제문식, 오가타 이렇게 넷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당시 정세에 대한 지식인들의 생각을 읽게 해주는데 (274쪽), 토지에는 이런 식으로 당시 정세와 사회 변화, 다양한 계층의 사고 방식의 변화, 나아가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등장인물의 긴 대화를 통해 나타내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4부에서 역시 이런 방식이 자주 이용되는 것 같다.

친일귀족 아버지를 둔, 사립학교 교장인 조용하는 임명희의 남편이기도 했고 조찬하의 형이기도 하다. 일본인이지만 세계주의자라 자처하는 오가타는 민족을 떠나 조선의 입장에 서서 사회 활동에 가담하기도 한 사람이다. 일본에는 민족주의라기보다 군국주의와 황도주의 (皇道主義)의 뿌리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말, 전쟁은 큰나라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는 쪽이 있는 쪽에 대해 사생결단하며 생존의 신장책으로 감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이 여기에 속한다는 말은 조용하의 친구이자 오른팔 노릇을 하고 있는 제문식의 당당한 의견이었다.

 

남녀동등주의라는 말이 처음 언급되기도 한다. 조용하가 유인실에게 '당신은 남녀동등주의자냐'고 묻는 대목에서이다. 유인실은 항일의식이 강한 신여성인데 선배언니가 한 말에 자기 의견을 덧붙여 말하는 즉슨 (248) 여자를 소유물로, 단지 아이 낳는 존재로 비하하여 말하는 남자들은 남자로서 자신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여자의 존재야말로 그들 자부심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거라며 남성제일주의, 남녀동등주의는 남성 여성의 구별에서 제기되는 것이기보다 인간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약자니까 나보다 약한자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심리, 즉 주체가 약자라는 전제하에 출발하는 것이라는 말인데 여기서 약자는 남자를 가리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남성 여성 구별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본 유인실의 견해는 작가의 견해이기도 한 것일까.

유인실을 좋아하는 오가타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것에 괴로와하는데 통영에 내려온 인실과 오가타가 오랜만에 둘만 있는 기회에 나눈 대화라는 것이, 인실의 대일본성토였다. 여기서 작가는 또한번 인실의 입을 빌어 작가의 생각을 한껏 풀어놓는다. 장장 2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이 부분을 쓰는데 작가는 얼마나 다양한 방면으로 식견을 모아 쏟아 부어야 했을까.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야나기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목은 두드러진다. 야나기는 알다시피 조선의 미술 연구를 그당시 조선 사람보다 더 열심히 깊이있게 하여 체계화 하는데 공헌했던 사람이다.

유인실이 말하기로 조선에서는 조선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 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이것은 치사하다면서 야나기는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예술은 생명이 내포된 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380쪽).

이어서 조선의 농민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는 주장도 한다.

조선의 농민들은 선비정신의 토양이에요. 또 선비정신의 씨앗이 뿌려진 대지이구요. 양반계급이 학문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하여 무학(無學)이지만 무식(無識)은 아닌 거예요. 그들은 가난하지만 예절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탱한다는 것을 알구요. 조선 백성들이 일본인을 향해 즐겨 쓰는 말 중에 상놈이란 말이 있어요. 그것은 신분을 말함이 아닙니다. 예절을 모른다, 사람의 도리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384쪽)

 

남보다 더 배웠다고 해서 위만 향하여 살 길을 찾으려 하기 보다, 오히려 아래층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역할과 진면목을 확장하여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똑부러진 유인실의 말에 오가타가 변변한 대꾸를 못한 것은 연인 유인실의 마음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이유만은 아니었으리라.

 

토지가 왜 토지이겠는가.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역사이면서,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와 사고방식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그야말로 너른 토지 처럼 펼쳐진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이 소설을 제대로 잘 읽고나 있는지 의심이 드는데 쓰는 사람은 어떠했을까. 일생이 그저 <토지>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 박경리 작가 딸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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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1-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hnine 2019-01-04 04: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도 올해 건강하세요.

페크pek0501 2019-01-0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벌써 14입니까? 대단하십니다.
저는 600쪽이 넘는 책 하나 가지고 언제부터 읽을까 재고 있어요. 그걸 읽으려면 다른 병행하는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요. 좋은 독서, 하고 계십니다. 저도 뒤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ㅋ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hnine 2019-01-07 22:23   좋아요 0 | URL
한권의 쪽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다행이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14권까지 왔는데, 다음 권으로 바로 이어질 정도로 흥미진진 정도는 아니라서 읽다가 중간에 다른 책도 보다가, 그러고 있어요. 되도록 집중해서 쭉 읽는게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되네요.
지금도 다음 권 들어가기 전에 다른 책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

달리는돼지 2019-04-0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멋진 리뷰입니다 감탄했어요

hnine 2019-04-04 21: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