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박상우의 <작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어떤 마음으로 작가가 되는 길을 걸어야하는지,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로 꽉 차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 책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한참 글쓰기에 관심이 고조되어 있을 때였기도 하고 (이젠 아니다), 꼭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에 새길만한 내용들이 많아서 글쓰기에 관심있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읽기를 권했던 책이다.

 

최근에 이 책이 제목을 바꾸어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이 <소설가>로 바뀌었지만 <작가>나 <소설가>나 그닥 큰 변화로 보이진 않는다.

<작가>를 등단 20년이 되던 2008년에 썼다고 했는데 2018년 등단 30년이 되는 해에 재출간 한 셈이다.

 

평소 다 읽은 책을 계속 가지고 있기보다 미련없이 처분할 때가 더 많은 나이기 때문에 <작가> 이 책도 혹시 더 이상 집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책꽂이를 뒤적여 보니 다행히 아직 책꽂이 뒷줄에 버티고 있었다.

 

줄친 곳이 많지만 그 중 한대목, 저자가 다른 어떤 사람의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인용한 부분을 여기 다시 옮겨본다.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했다.

소설을 위해 포기했던 많은 것들은 때때로 내게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요구했다. 춥고 어두운 터널을, 그 끝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그리며 무작정 걸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끊임없는 아우성. 그것들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오로지 글을 쓰는 시간뿐이었다. 달콤하고 불온한 유혹에서 나를 붙잡아준 것 역시 소설이었다.

두 평 남짓한 골방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나의 정원이었다. 싹을 틔운 글감은 그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때론 애만 태우다 시들고 말라버렸지만 그것조차 내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이제 첫 번째 터널을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마나 긴 터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소감, 진보경/「춥고 어두운 터널에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270쪽)

 

저 대목을 읽던 그때 나는 저렇게 소감을 쓸 자격을 가지게 된 사람이 막연하게 부러웠었다.

10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는 지금은 첫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비용으로 지불한다."

나는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려고 다른 것들은 선택에서 제외시킬만큼 절실하고, 매달리고, 한눈 안 팔 정도가 되었던가. 그러면서 한 가지를 위해 다른 것들을 손에서 놓은 사람이 갖게 된 자격만 부러워하진 않았던가. 저 소감글을 쓴 신춘문예 당선자는 글 쓰는 시간이 고난의 시간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의 시간이었고 자기를 붙잡아 주고 자유를 주고 가르침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저자 박상우가 왜 이 부분을 자기 책에 인용해서 보여주었는지 알 것 같다.

 

 

<작가>를 찾다가 이와 관련 없는 주제이지만 아직 책꽂이에 버티고 있는 다른 책 한권도 꺼내보았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40 <불상>.

글 진홍섭, 사진은 안장헌, 손재식 이라고 되어 있다. 1989년 출간.

내가 이런 책도 사서 읽었구나 하고 들춰보니, 형광펜으로 줄도 치고, 메모도 해가면서 읽었네. 

 

 

 

 

 

 

딱히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이때도 우리 나라 미술 쪽에 관심이 있었나보구나 새삼 나를 재발견하는 기분이 되었다. 무려 30년 전.

지금처럼 관심 분야에 대한 동호회나 모임 같은 것이 활성화 되어 있던 때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것은 그냥 혼자 파고들다 마는, 지금도 여전한 그 성격때문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의 흔적은 이렇게 한참 지난 후에 무슨 지하실 고물 처럼 발견될 뿐이다.

 

생각난 김에 올해 박물관 강좌 과목들 중에서는 고려 불화에 대한 것을 신청할까 생각중이다. 강의하시는 교수님 이름을 보니, 나 대학교 4학년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한국미술사> 강의하셨던 분이다. 그때는 그냥 강사 선생님으로 오셔서 수업해주셨는데 지금은 다른 대학에 교수님이시다.

 

이렇게 모처럼 하고 싶은 게 생기는 날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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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0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비교적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하고 사는 1인인데 내가 옛날에 이런 적이 있었어?
하면서 놀라곤 합니다. 치매 아니길 다행이다 싶더군요.

저도 박상우의 책 작년에 중고샵에 나온 게 있어서
냉큼 샀는데 앞에만 읽고 못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슷한 책을 읽어서 괜히 샀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지망생들에겐 필요한 책일텐데 말입니다.ㅠ

hnine 2019-01-01 16:39   좋아요 0 | URL
<작가>는 저도 다른 분에게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인데 참 좋았거든요. 읽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중고책으로 처분 안하고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 정작 이분 소설은 읽은 기억이 없어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 꽤 되는 것으로 아는데 말입니다.
맞아요. 작가 되기에 대한 비슷한 책들 많이 나와있지요. 그런데 특히 코드가 맞는 책들이 있는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