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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家
김서령 지음 / 황소자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그 사람에 대해 알려면 그가 사는 집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찻집에서 세 시간 이야기를 듣느니 살림집에 30분 가보는 편이 훨씬 낫더라고 저자도 책머리에서 말하고 있다. 2003, 2004년에 걸쳐 중앙일보에 '김 서령의 家' 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던 칼럼을 책으로 묶어냈다. 책 소개란을 통해 화면에서 처음 대한 순간부터 빠져 든 책. 막상 구입해서는 책꽂이 한 켠에 꽂아두고, 한번에 읽어치우기 아까운 심정으로 생각날 때마다 이리 넘겨 보고 저리 넘겨 보다가 (이집 구경, 저집 구경 ^ ^) 오늘 새벽에 마침내 마지막 한 자까지 읽기를 마쳤다.
이리도 멋진 책이 있을까. 요즘 방송에서 유행처럼 볼 수 있는 연예인 집 구석구석 보여주기 와는 다르다. 외국 어디 어디 수입품이라는 값비싼 가구와 실내 장식 재료, 새로 단장한 티가 역력한 깔끔함, 무얼 먹고 사는가 냉장고까지 열어서 보여주는 웰빙 먹거리들, 몇 집 그렇게 구경을 하다보면 다 그집이 그집 같다. 방송을 보면서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생각이 든 적 있던가.
이 책에는 스물 두개의 집이 소개되어 있다. 전문 건축가의 손을 빌려 설계된 집도 있고, 주인의 손에 의해 벽돌 하나 하나 올려진 집, 흙으로 집 짓는 법을 손수 배워 지었다는 집, 시골의 버려진 집을 사들여 주인에 의해 새로 꾸며진 집등 다양하지만 어느 집도 그집이 그집같은 집은 없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주인이 모두 다르듯이 집도 모두 다른 모양, 다른 품새,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모두 부잣집도 아니고, 더구나 유행을 좇아 지어진 집들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시인 조은의 사직동 집은 장난감같은 열세평 한옥. 그 열세평 공간이 얼마나 평화롭고 고즈넉하고 정갈하게 꾸며져 있는지 그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주인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 잠이 들기 일쑤라고. 화가 박 태후의 나주 집의 거실 그 큰 유리창은 창이 곧 벽 한면을 이루어 밖으로 보이는 나무숲이 눈안에 꽉 차게 들어와 마치 커다란 프레임의 그림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니 멋지지 않은가? 집을 정사각형의 구조로 짓고 가운데 소나무를 심어 집안의 어디에서도 그 소나무가 보일수 있도록 한 화가 윤명로의 집. 제집 뜰에 나무가 자라는 걸 보고 큰 아이는 인생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 소설가 이 윤기의 널찌막하면서도 단순한 서재도 역시 주인을 닯아 있는 듯 했다. 최근 '엄마 학교'라는 책을 펴내 많이 알려진 환경운동가 서 형숙님의 집도 나온다. 햇살같이 환한 안주인의 웃음을 닮은 집이라며.
'집'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책에서 묻는다. '안식을 주는 주거지인가, 잘만 굴리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투기 상품인가, 어린 날의 추억과 사랑이 깃든 무상의 장소인가, 형제들이 똑같이 군등분배해야할 상속재산인가 (164쪽)' 라고.
결코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집.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정신적인 풍요와 멋이 드러나게끔 주인의 정성과 애정이 구석 구석 스며있는 집. 저자의 탁월한 언어 구사와 어우러진, 아주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