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8 - 2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길상, 권필응, 신태성이 모여 독립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러 사람의 모의 장면은 작가가 중간 중간 그 당시 나라 정세, 주변 상황을 독자들에게 정리하여 알려줄 필요가 있을 때 택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이 자리에서 거의 듣고만 있는 길상에 비해 신태성은 제법 주변국들 정세를 꿰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누가 얼마나 알고 있든 논의는 어째 중국와 일본중 조선은 어디에 빌붙어야 더 유리한가가 논의의 목적이고 결론인 것 같아 읽으면서도 한숨 짓게 한다. 우리나라는 늘 이래야하나.

어느 새 길상과 서희 사이에 둘째 아들도 태어나고 아들 둘을 유모가 아닌 제 젖 먹여 키우면서도 서희의 오로지 목적은 평사리 땅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월선은 암으로 죽어가고 김두수는 회령에서 순사부장을 하고 있으며 김훈장은 하얼빈에서 눈을 감는다. 길상은 김훈장의 유품을 거둔다는 목적으로 하얼빈을 찾는데, 하얼빈은 길상이 서희의 구혼을 받기 전 마음을 품고 있던 옥이네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얼빈에서 길상은 송장환 등을 만나 독립운동을 위한 연락을 취하고 정보를 교환하는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면 일본은 사면초가로 몰릴거라고 보는 낙관론자, 전쟁에서 어쨌든 힘을 기른 일본이 만주를 먹어치우리라고 보는 비관론자로 견해가 나뉘는 가운데 길상 자신은 비관적인 편에 동의한다며 자신과 조선의 앞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갈등하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평사리 최참판가 땅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목적으로 용정에서 대상으로 성공을 이루기까지 서희는 때로 친일이라는 평을 듣는 일도 불사하며 고군부투 하는 가운데 길상은 연해주를 발판으로 하는 독립운동을 돕는 일을 계속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평사리로 돌아가는 대신 간도에 눌러 앉아 있어야 되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이다. 독립운동도 그렇지만 서희와 길상 사이의 무너지지 않는 벽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떠나 용정을 찾은 김환은 공노인의 소개 아래 길상을 만나고 연달아 서희를 만난다. 김환이 별당아씨를 데리고 야밤도주를 한 것이 길상과 서희 아주 어려서 일이라서 둘은 김환의 얼굴조차 기억을 못할 만큼 세월이 지난 후이다. 김환이 누군지 제대로 구별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길상은 대번 그에게서 거물의 기운을 느끼고 처음의 적대감을 점차 허물어가더니, 하얼빈에 사람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서희에겐 끝까지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뻘이라고만 소개하는 김환. 하지만 영리한 서희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이미 알았으면서 자기에게 알려주지 않은 길상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하얼빈에 동행한 길상과 김환. 거기서 이들은 우연히 김두수를 발견하는데, 이 소설에서 조준구 외에 대표적인 악인으로 등장하는 김두수는 금녀가 하얼빈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이다. 결국 금녀를 찾아 쫒아온 김두수를 금녀는 총을 쏘아 다리에 부상을 입힌다.

8권의 끝에 이르러 서희는 길상으로부터 김환의 신분과 정체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내고 7-8년간의 용정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여 두 아들을 데리고 평사리로 떠난다. 여기에 동행하지 않는 길상을 보는 서희의 마음은 착잡하다.

결국 집념을 관철시키는 서희의 귀향이 8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읽으면서 더 뭉클했던 부분은 월선이 눈을 감는 대목이다. 죽어가는 월선이 자기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눈을 못 감고 있다는 급전을 몇차례 전해받으면서도 최후 순간까지 월선에게로 발걸음을 향하지 못하고 버티는 용이의 모습, 월선을 보내는 그만의 방식이 눈물 겹다.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관계였음을 아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를 받지만 용이는 그렇지 않다고, 여한이 없이 좋아했노라고 말하는 용이. 그의 받아들임의 방식을 보며 작가의 마음을, 작가의 면모를 읽었다.

 

다음 인용하는 대목은 김환이 길상을 만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하여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쏟아내는 말, 일종의 절망의 포효이다. 이를 본 길상은 김환에게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 소리라고 일침을 준다.

 

누군가 소를 죽여 주어야 소고기를 먹을테고, 누군가 호랑이를 죽여주어야 호환을 면할테고, 누군가 나쁜 놈을 죽여주어야 살인 강도, 역적이 없어질테고, 날이면 날마다 살생은 아니 끊이는데, 죄인은 날로날로 늘어만 가는데, 성현은 무엇을 했느냐! 살생 아니하고 간음 아니하고 도둑질 아니하고 허언 아니하고 모험 아니하고 그 아니하는 성현을 먹고 마시고 입고 잠들게 한것은 하나님 아닌 죄인들의 덕분이다.

소의 세상, 호랑이의 세상, 살인 강도의 세상에서 어찌 성인인들 연명하여 도를 닦았겠느냐? 살아생전에는 죄인들 덕분에 덕을 높일 수 있었고 죽어서는 또 극락 꽃밭에서 소요하는 신세, 그래 대성 (大聖)은 무엇이냐! 대오각성한 자가 대성이라, 무엇을 대오각성하였느냐.

극락 천당 같은 것 일없다! 시름에 젖은 듯 죄인을 만들어내고 지우고 하는 그따위 교활한 조물주의 총아가 되느니보다 지옥이야말로 내 고향이야! 영원한 업화가 꺼지지 않고 불붙은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아암 고향이구말고. (367)

 

 

그러니까 예전에 내가 TV에서 드라마로 토지를 보았을때만해도 작가는 아직 토지의 집필을 완결하지 않았던 때였나보다. 완결편이 20권이니 서희가 평사리 땅을 되찾는 내용은 거의 끝에 가서 나올거라 예상했는데 8권에서 이미 나와버렸으니 앞으로 남은 내용들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

토지를 읽고나서 유명세에 비해 그닥이더라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이제 절반도 안읽고서 드는 내 생각은 어쨌든 모든 작가가 쓸 수 있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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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9-1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를 읽으시는 분들, 대단해요. 저는 처음 쬐금만 읽다가 포기했거든요. 언젠가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요. ㅎ

hnine 2018-09-11 18:0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요. 대화체가 많고 내용을 전혀 모르는바 아니라서 마치 TV드라마 대본 읽는 느낌일 때가 많거든요. 저도 원래 대하소설 잘 못읽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읽고 있답니다. 언젠가 토지가 자목련님을 부를때가 있으면 그때 읽으셔도 되죠. 지금도 다른 책 너무나 많이 읽고 계시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