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빅 필립 K. 딕 걸작선 11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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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은 SF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그의 작품을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귀에 익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여전히 SF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한때 SF소설은 그저 상상으로 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꾸며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꼭 맞아야할 필요 없고 재미있으면 되는 덜 심각한 소설 쯤으로. 

이제 세상 변하는 속도 자체가 빨라지고, 소설 속에서 예측했던 것들이 눈 앞에서 실현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시대에 살다보니 SF 소설이 내가 예전에 오해하고 있던 그 SF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이다.

필립 K. 딕의 이 소설 <유빅>. 제목의 유빅이 뭘까. 사람 이름? 나라? 행성? 새로운 생명체? 기계? 책의 중반까지 가도록 이 유빅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뭔지 몰라도 기존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어떤 것이라는 짐작뿐.

1992년 6월 5일, 오전 3시 30분 뉴욕 시에 있는 런시터 어소시에이츠의 본사 사무실에 걸린 추적 지도에서 태양계 최고의 텔레파스가 자취를 감췄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1992년이라면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과거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1969년이니까 미래의 어느 시점인 것이다. 런시터 어소시에이츠는 반초능력자 파견회사 이름. 미래시대에는 각각 '텔레파스'와 '프리코그'라는 이름의 초능력자와 예지능력자들이 대거 출현하여 이들의 세력이 아무데나, 아무때나 발휘되는 시대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의 질서가 교란되고 근본까지 흔들릴 위험스런 일도 잦아지자 이들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반 초능력자들의 조직 또는 회사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회사가 일종의 보험사같은 역할로서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일을 수행하게 된다. 또하나 이 소설에서 특이하게 도입된 개념은 반생명체의 존재이다. 즉, 죽기 전 혹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생명체의 모든 기가 빠져나가기 전에 특수 처리함으로써 살아있음과 죽음의 중간상태로 일정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명 활동은 할 수 없고 마치 냉동인간처럼 보존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요청에 의해 불려 나와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반생명상태에 있던 사람이 어떤 요청에 의해 보존 상태에서 풀려나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등장인물중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이고 누가 반샹명상태에 있는 사람인지, 그들도 몰라서 상대에게 넌 이미 죽었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여기서 나아가 시간퇴행까지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독자의 궁금증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더하게 된다.

필립 K. 딕이 이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당시 소련의 천체물리학자 니콜라이 코지레프는 딕을 소련으로 초청하기까지 했고 그가 초청에 응하지 않자 소련 대사관원들이 작가의 집으로 느닷없는 방문을 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1969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작가는 과연 제정신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런 스토리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유빅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책의 말미에 가면 유빅이 뭔지에 대해 정의가 나온다. 읽어도 바로 그 개념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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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7-24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K. 딕 책에서 단 한권 본 게 이건데, 좀 어렵기도 하더군요 나중에 다른 분이 쓴 글을 보니 이 사람이 약물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 그런 게 보이기도 하지요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는 게... 과학소설이어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지만 거기에는 깊이 생각할 만한 게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많이 못 읽어봤지만... 재미있는 것도 있고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hnine 2018-08-07 18:39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이 작가의 유명도에 비해 저도 이 책이 처음 읽어본 작가의 책이었어요. 그래서 작가의 전작으로 인한 선입견도 없고, 작가 경력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돌진(!)해서 읽었는데, 너무나 놀라웠답니다. 작가는 도대체 제정신으로 이런 스토리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쓴 것은 일종의 극찬이지요. 1969년에 어찌 이런 스토리를 상상해낼수 있었을지. 다른 작품 읽고 실망할까봐 오히려 더 읽기가 주저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