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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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아침. 듣기 위해 켜놓은 TV를 오며 가며 흘끗 거리면서 나는 아이 우유병을 챙기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TV에서 웬 높은 건물에 비행기가 돌진, 충돌하며 폭파되는 장면이 언뜻 보인다. 동시에 리포터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 가만, 저게 지금 아침 뉴스 아닌가. 같은 장면이 계속 되풀이 되며 나온다.

벌써 5년 전,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있었던 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공포와 아픔, 그 이상의 것들을 몰아다 준 사건이었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잊었다고, 잊혀져 가는 줄 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미 일생을 지배하는 기억의 도장이 되어버린 것을. 도장이 찍힐 때의 아픔은 잊혀졌을지 몰라도, 가슴에 찍힌 상처는 건드릴 때마다 몇배의 아픔으로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처가 건드려질만한 일을 사람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피한다. 자극으로부터 몸을 도사린다. 외부로 향한 문들을 하나씩 닫아간다.

평소 기발한 가지가지 상상을 하는 것이 취미인 아홉살 소년 오스카는 너무나 사랑하던, 친구 같던 아버지를 2001년 9.11 사건으로 갑자기 잃은 후, 아버지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대한 상상을 하며 슬픔과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구제하고 싶은 심정으로, 아버지 방에서 발견된 열쇠의 정체를 밝히러 다닌다.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모르던 어떤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기의 상상도 그만 둘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며.

책은, 이 아홉살 소년의 글,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사랑하는 소녀를 잃은 후, 말하기를 잃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의 편지,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와 결혼하였으니 역시 평생을 외로움과 상실의 고독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편지등이 엮어져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특이한 사진, 사진들. 어쩌면 보는 사람의 마음에 글 보다 더한 깊이의 색깔과 음(音)으로 부딪혀 오는 사진들이 한 몫을 톡톡이 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오스카가 사건이 일어나던 그 날의 일을 거꾸로 되돌리는 상상을 하여 아빠가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침대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며, 그 이후 몇 페이지에 걸쳐서는 무역센터 건물로 부터 낙하하는 어느 사람의 모습이 클로즈 업 된 사진을 연속적으로 실코 있는데  이 사진들 역시 사람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시간의 역순으로 실려져 있다.

사람은 어쩌면 망각의 동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을 끝내 끌어 안고 버티기에 더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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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0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네요. 잊고 싶은 기억을 끝내 끌어안고 버티기에 강한,,,
이 책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kleinsusun 2006-12-0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 미국에 계셨군요.
이 글을 읽으면서 오스카의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왜 그런 남자를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은 일요일 오후 행복하게 보내세요!^^

픽팍 2006-12-0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잘 읽었어요 맘에 확 와 닿네요
땡쓰투 하고 갑니다 ㅋ

hnine 2006-12-0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사람이 망각의 동물은 아니지만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기위해 노력할 줄 알 듯이, 저는 사람이 전혀 이성적인 동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성으로 감성을 다스리려고 노력할 줄 안다는 점에서 구별되는 것 아닐까...생각하지요. 이 작가의 경력도 흥미로왔어요.
kleinsusun님, 그날 막상 학교에 갔는데 미국 애들을 아무도 그 사건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더군요.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맞아요. 오스카의 할머니의 외로움을 저도 같이 느끼는 기분이었답니다.
픽팍님, 감사합니다. 제가 잘 써서가 아니고, 잘 읽어주셨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