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두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친구가 생각이 난다.

한 친구는 대학교 동창인데,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한 동네에 살았었다. 대학 시절 내내 친하게 지냈고, 졸업하고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서도 가끔 전화를 통해 사는 얘기를 주고 받곤 했다. 삼남매중 막내였던 이 친구는 키도 내가 올려다 봐야 할 만큼 컸지만 가끔 막내같은 귀여움과 엉뚱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빠가 증권사에 가서 뭘 하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고 가셨는데 자신없다며 같이 가 달라고 해서 기어이 나를 대동하고 그 증권사에 함께 감으로써 나도 잘 모르는 그 심부름에 대한 책임감을 나눠지기도 했었고, 여운형 선생과 관련된 레포트를 써야하는데 어느 책을 봐야 금방 머리에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물어봐서 언뜻 생각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보는게 어떻냐고 했더니 나를 너무나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넌 모르는게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내가 민망했던 기억도 있다 (참고로 그 친구는 문과, 나는 이과 ^ ^). 미국으로 가서도 아이낳고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남편있는 학교에서 공부도 더 하고, 나중엔 직업과 연결될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 도서관학과가 있는 조그만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도서관학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에게  수강신청을 앞두고 나에게 상의차 전화를 했던 정말 재미있는 친구이다. 둘째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나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엔 눈물도 안 나온다던 친구. 보고 싶다. 지금은 전화 번호도 이메일 주소도 가지고 있지 않아 연락도 못하지만, 아이들과 남편과 잘 지내고 있기를, 또 그럴거라고 믿어본다.

또 한 친구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데, 나의 고등학교 일기장을 보면 이 친구 얘기가 없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가 집착을 했던 친구이다. 딸 넷인 집의 둘째딸. 체구는 크지 않으나 카리스마도 있고 보스 기질도 있으며 남을 자상하게 챙길줄도 아는 친구였다. 그런데 내 속을 잘 드러내지 않던 나는 고등학교 1, 2학년 내내 이 친구 속을 좀 태웠었나보다.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해야할 3학년에 올라가자 이 친구가 갑자기 나를 보고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이다. 너 왜그래? 하고 물었으면 될 것을 나는 그냥 속상하고 상처받으며 1년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식 무렵, 그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너를 아끼는 사람들의 애정에 벽을 쌓지 말라고, 그건 감정의 사치일 뿐이라는, 나를 정말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와 같은 대학엘 들어가게 되었고, 이 친구 역시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어 이제 못만나나 했더니 내가 미국에 잠깐 가 있는 동안 우연찮게 연락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의사로 일하던 이 친구는 나랑 만난날 갑자기 병원에서 oncall이 걸려 바로 나가야되자 나를 결국 끌고 병원까지 가서 나는 그 병원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게 된 적도 있었다. 결혼이 늦어 아이의 연령도 내 친구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던 내게 이 친구는 그나마 아이를 늦게 낳아 나이차가 제일 적게 나는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이를 낳을 거란 소식을 듣고서부터 연령대 별로 아이에게 보여주면 좋을 책 리스트를 만들어 내게 메일로, fax로 보내주던 친구. 아이가 태어나서 당장 카시트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를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차에 태울수도 없는 미국의 실정에 맞게 튼튼한 카시트를 선물로 보내주어 지금까지 우리 아이가 애용하고 있다. 이 친구의 큰 아이 생일이 내 생일과 같아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며 거의 매년 내 생일엔 국제 전화로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친구. 이번에도 통화하며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을 서로 연발했다.

이제 우리, 정말 언제나 만날수 있을까. 고등학교, 대학교때의 그 앳된 모습 대신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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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11-1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이 멀리 떨어져 있군요. 안타까워요.
님은 한번 맺은 우정 끝까지 지키실 듯 한데.....
이웃에도 좋은 친구가 계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조금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습니다....

hnine 2006-11-1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제가 사람을 잘 못사귀는데 한번 사귀면 오래 가긴 하지요. 위의 친구도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것같은 예감을 그냥 믿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