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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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투정 아닌 '진정 리셋'을 원한다면


  

 

뭐 하는 사람일까. 숱하게 이름을 들었지만 처음 그의 책을 읽어봤다. 철학자일까, 선생일까,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했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로는 그의 사람 됨됨이만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 전공은 사회학이지만 문화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선다고 한다.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인이라고 한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란 도발적인 책 제목. 제목만 보곤 급진적인 진보 운동(혁명) 담론을 담은 책인 줄 오해하였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글이면서 어떤 면에서 그 선언의 일원이 되어 리셋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책이었다. 다분히 중의적인 책.

  

 

리셋(reset), 다시 맞추다, 다시 제자리에 넣다,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일. 저자가 말하는 리셋의 프레임을 세상에 씌우니 일베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담론들이 좌우 상관없이 묶여지고 읽힌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조하며 내뱉는 노오력’, ‘헬조선’, ‘노예’, ‘수저따위의 말들을 내뱉는다. 이 단어들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진을 빼놓는 것 같아 듣기 싫으면서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다. 이 단어들이 불편한 이유는 이 상태에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 같이 죽는 종말만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저자의 표현으론 리셋이다.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원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 저자는 나는 역사의 힘을 믿는다.’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래서 진보를 믿는 진보주의자고 낙관주의자라는 저자가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지 궁금해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문장은 유려하고 간명했다. 그리고 일독하는 동안 적잖이 당황했다. 어디를 밑줄 쳐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과 전부 밑줄치고 싶은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하여 책을 거듭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선독자로서 감상은, 이 책이 궁금하다면 그냥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굳이 불안하면 목차 정도만 보고 말이다. 별로 두껍지 않거니와 술술 읽힌다. 현대 사회 중에서도 지금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의 이야기다. 모두의 감정이다. ‘싸그리 망해버리라며 리셋을 갈망하는 조울증적인 화병, 근대부터 내려온 유구한 사회화의 전통 속에 성장했지만 마주한 건 어떤 국민도 보호하지 않는 나라에서 그저 가만히 있어야하는 순교자적 나르시시스트 국민이 되어버린 자신이다. 너무나 슬픈데 존중받아본 적이 없어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가 다다른 결론은 한국은 민주주의가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세상을 리셋하고 싶어 하는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리셋하되 성공적인 리셋을 위해서 짚을 것을 잊지 말고, 리셋(전환)의 지점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뜨끔하고, 막연히 어떤 기분이 들지만 설명할 수 없었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풀어줘서 탄복하였다. 맞다. 쉽게 읽히나 편하지 않은 책이다. 역시 답 없이 분석과 통찰에 주인 책이지만 다른 그런 책들보단 좀 나은 이유는 그 분석과 통찰 속에 담긴 대상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포기하지 않는 희망 같은 게 엿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리셋의 속성은 자학이 아니라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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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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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 소설

 

 

어느 날 강가를 산책하다가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강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사색이 되어 찾는 가족들의 품으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왔다고 한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품고. 그리고 6개월 동안의 퇴고 끝에 창작과 비평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투고했고, 당선하였다. 금태현, 54세 신인 작가의 간략한 등단 경위이다. 인간의 마지막 직업은 작가다.” 작년 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블로그에서 봤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수상자들은 모두 40대 이상이었고, 한 분은 신인상인데도 50대였다고 한다. 흔히 산문은 영재의 문학이 아니라고들 한다. 세상과 인간을 깊이 꿰뚫고 글로 풀 수 있는 것은 연륜 없이 재능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등단할지 아득한 채 태어나지 못한 작가로 사는 것은 참 녹록지 않다. 죽은 아들 불알도 아닌 태아나 정자를 더듬고 주무르는 부모의 삶이란. 흔히 늙은 신인 작가가 그렇듯 금태현 작가 역시 여러 편의 소설 완성작을 가진 상태에서 등단하였다. 호기심과 성장욕으로 시작한 등단작 분석은 작가의 이력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전형적인 똘똘한 등단작이다. 창작과 비평이 좋아할 소재와 문제의식이다. 분명 현시대가 다뤄야 할 문학 주제였음에도 완결력 있는 일반’‘장편소설로 나오지 못했던 코피노에 대한 소설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현재 한국 문단이 사회문제를 소설로 푸는 데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심사위원들은 395편이나 응모되었으나 다수의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된 것과 달리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서사가 노련하다고 평했다. 십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 받고 인상적인 것은 생각해본 적 없는 ‘63년생의 문장이었다. 심사평과 당선 소감을 읽고 소설을 읽다가 책날개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코피노 청년의 한 동안을 다룬 이 소설에서 청춘을 묘사하는 태도는 20대 작가들처럼 생동한다. 부모나 선생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나이의 문장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였다. 

청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 아닐까.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심신적으로 인생에서 청춘은 시기가 있지만 그 시기가 지난다고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제 청춘을 놓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모습을 불러낼 수 있다고. 쉰 살이 넘은 대한민국 울산 토박이 금태현이 그린 스무 살 필리핀 세부아노 하퍼. 작가와 하퍼는 같은 오늘을 사는, 완전한 동시대인이다. 누가 누구의 과거나 미래가 아닌 채 같은 시간을 산다. 어디까지가 취재일까.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의 정의에 충실한, 현실에 있음직한 허구의 이야기이다. 망고스퀘어는커녕 필리핀과 일본을 잘 모르는 독자도 어떤 불편함이나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이국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 어떤 편견도 담겨 있지 않다. 처음 읽을 땐 전형적인 소재를 비전형적으로 전개하는 전체적 구성에 눈이 갔다. 그런데 다시 읽을수록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눈이 멈췄다. 어떤 심사평이나 당선 소감보다 개개의 문장과 행간이 작가의 모든 실력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편하게 읽었음에도 잠깐 무서움이 엄습했다. 

하퍼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뿐인데 사는 꼴이 소위 표현하는 막장이다. 배운 것 없고 할 줄 없는 게 없다고 유투브에 돈될 만한 영상을 마구 올려 광고수익으로 먹고 사려다가 번번이 저작권 위반의 쓴맛을 본다. 결국 그에게 돈 같은 돈을 벌게 해주는 밥벌이는 마약 배달 같은 뒷골목 심부름이나 소매치기. 유흥가에 있다가 도망쳐 미스 필리핀에 나간 베렌을 잡아오라는 심부름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이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빠지고, 오랫동안 헤어진 어머니와 재회하고. 하지만 인생은 그 순간에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듯,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얼마간의 하퍼의 일상일 뿐이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오로지 삶은 계속된다는 명제일 뿐. 가족을 버린 것은 한국인 아버지가 아니라 필리핀 어머니고, 사랑은 극적으로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순간엔 비범했던 행보도 평범으로 남는다. 예상대로 전개되지도 무겁지도 않은 코피노 소설이라 마음에 들었다. 본 대로 쓸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인 것 같아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금태현은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통해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다. 우리는 무엇을 응답할 것인가. 수많은 시절의, 수많은 청춘이 이 청춘에 얽히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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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AT(두캣) 무엇을 해야 합니까? - 가톨릭 사회 교리서
YOUCAT 재단 지음, 김선태 옮김, 유경촌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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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캣DOCAT]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청년을 위한 가톨릭 사회 교리서

 



 

이 시대에 혁명가가 아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저의 선임자인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여러분에게 청년 교리서 <YOUCAT>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YOUCAT>과 이어지는 책으로, 교회의 사회 교리를 담은 <DOCAT>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DOCAT>이라는 제목에는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to do)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해 줍니다. 이 책은 복음으로 먼저 우리 자신을, 이어서 주변 환경을, 마지막으로는 세상 전체를 바꾸는 데 도움을 주는 사용 설명서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나는 교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요즘 계속 고민하는 질문으로 성소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성소는 반드시 성직의 소명에 한한 것이 아님에도 서원 강권을 많이 받아왔기에 외면하고 미루던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회심과 신심단련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유캣YOUCAT> 시리즈의 사회 교리판 <두캣DOCAT>의 출간과 북토크 소식을 듣고 행사에도 참여하고 책도 재빨리 읽었다. 3, 4년 전 쯤 사회 교리와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과 위치가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두캣DOCAT>은 청년들을 위한 사회 교리 입문서로 사회 교리의 역사와 관련 문건을 소개하고, 문건들을 잘 발췌하고 정리해놓아 사회 교리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나갈 것인지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유캣YOUCAT>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총 328개의 질문이 담겨 있다.


사회 교리는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교리의 개념을 잘 모를 뿐 우리 대부분은 이미 사회 교리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교회요 사도로 세상에모범이 되고 기여하는 모든 것, 예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모든 행동이 사회 교리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이래로 구체적으로 성문화하였을 뿐, 전 교회 역사 내내 강조되어온 것이다. 사회 교리하면 정의 구현을 위한 시위 등 교회 소수파의 진보좌익 운동으로 오해하는 이도 많은 것 같은데 <두캣DOCAT>은 그런 오해를 바로잡는 좋은 사회 교리 안내서가 되어준다. 보통 사회교리가 크게 관심 있는 연대와 구호, 노동과 환경 뿐 아니라 현대 종교의 정치경제사회적 역할과 윤리와 생명 등 범위가 넓다는 것도 <DOCAT>을 읽으며 배웠다.

 

이 책으로 깨달은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회 교리는 세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며 별따로 만들어진 추가 교리나, 단순한 행동 강령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과 가톨릭 교리와 사회 교리는 단단히 맞물려 돌아가며 그리스도인들의 정신 고양을 촉구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두캣DOCAT>은 다른 유캣YOUCAT’ 시리즈처럼 청년을 위한책이다. 청년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서술도 쉽고 사진 자료도 많으며, 휴대하기 좋다. 한창 심신적으로 혈기왕성해 질문이 많은 청년들을 위해 주석과 함께 알면 좋은 글과 말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지난 930일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출간 기념 북토크에 참여하며, 청년이 아닌 신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 적잖이 놀랐지만 그 이유를 책을 읽고 알 수 있었다. 비단 청년 뿐 아니라 사회 교리에 대한 배움의 수요가 참으로 많은데 이런 단비 같은 책이 너무 뒤늦게 나왔다고 말이다. <두캣DOCAT>은 청년이 읽으면 가장 좋지만, 시력이 좋고 마음이 열린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현재의 자신의 교리 지식 전반과 생활 태도를 진단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앞으로의 신앙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듯싶다.

기독교는 복음의 종교고 전교의 종교이다. 그래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기독교를 떠올리면 온 사방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부르짖는 이를 떠올리며 전도를 못마땅해 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신학적 의미부여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성경에서 예수의 제자 부르심과 사도들의 초기 전도를 보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와서 보라정도로 메시지가 아주 간명하다. 그리고 생활로 하느님 나라와 말씀을 보여 준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사람들의 모습도 예수의 치유를 받고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시몬의 장모나, 남의 혼인 잔치에 떨어진 포도주를 걱정하는 성모처럼 단순한 선함이다. <두캣DOCAT>은 온갖 영성 체험과 각종 단체 활동, 성경과 교리 공부 등은 열심히 하다가 잊기 쉬운 그리스도인 정신의 기본을 기억하고 찾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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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 시간과 수입의 10% 투자로 흔들림 없는 미래를 완성하는 법
패트릭 맥기니스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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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10%기업가, 시대맞춤형 창업 모델

 

 


 

결국 극소수를 뺀 21세기 사회인의 천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저성장 시대에서 밥 먹듯 이직과 창업을 고민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서른한 살 미혼인 한국 여자, 우리 또래가 과도기 세대라고 생각한다. 요즘 주변 85-86년생들이 승진과 이직을 앞두고 죄다 신토익책을 붙잡고 있는데 후자에 대해 부모님은 걱정한다. 주변 여자들의 팔할 이상은 결혼해서 애가 있고, 여전히 선에서는 남녀 막론하고 서로의 안정스펙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안정은 희망보험이다. 평생직장 개념도 없고, 이직과 창업 계획은 대부분 신입 입사하면서부터 시작한다.

  

 

30대 초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당장 계획이 없는(심지어 연애조차 하지 않는) 남녀들은 그런 생각이 더하다. 대부분 돈 때문에 결혼을 미뤘고, 그러다가 더러는 더 큰 그림이 생겨 비혼주의자가 된다. 가끔씩 연차 몰아 여행가는 것으로 버티며 꿈(결혼이든, 창업이든)을 이루려 죽도록 돈을 모으고 있다. 작가처럼 퇴근 후 사업가는 아니어도 아르바이트는 많이들 한다. 절반 정도 남은 고정관념이 두려움을 촉발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직과 창업을 대하며 산다. 마인드는 과도기지만,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을 쌓은 후 창업하는 가장 어린 세대가 우리 또래지 않을까 싶다.

 

 

10%의 가용자원 투자로 직장을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는 패트릭 맥기니스, 모두가 이 작가처럼 될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과제고 배울 점이라 생각하였다. 저자의 페이스북을 먼저 알고 종종 염탐하곤 했는데 그가 올해 낸 책이 비즈니스북스에서 발빠르게 번역되었다기에 얼른 읽어보았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궁금증어째서 직장을 다니면서사업해야 하는지, 10% 정도만 투자해야되는지부터 풀며 책은 시작한다. 패트릭 맥기니스가 주창한 ‘10%기업가The 10% Entrepreneur’의 핵심은 위험을 최소화한 안정적인 다잡이다. 그래서 사업이 망하더라도 꾸준한 소득이 발생하는 월급 직장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 유대기독교의 십일조문화에 익숙한 미국이기에, 현지에선 저자의 주장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 듯싶다.

    

 

저자는 이러한 10%기업가 모델을 기회비용 제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느낌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실제 그런이 될 수는 없다고, 어떤 경제학적 선택이든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10%기업가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저자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다른 여러 10%기업가의 사례를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300쪽 미만) 꼭 필요한 방법론과 서식, 용어 해설만 담아 어떤 직장인이든 피곤하지 않고, 짬짜미 읽기 좋게 구성해놓았다.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책 속에 저자의 웹사이트, 페이스북, 트위터 주소를 실어놓아 연락할 수 있게 해놓았다.

  

 

먼저 읽은 지인이 이런 서평을 남겼다. 그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몇년째 스타트업 구상 중인 또래이다. 자신이 창업 준비에 투입하는 시간과 비용 얘기를 하며, 한 사업 창업을 하기에도 10%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작가가 남다른 학벌과 직업이기에 가능했지 보통 사람을 위한 모델이 아니라고. 그 얘길 듣고 창업은 아니고 등단을 꿈꾸며 열심히 글 쓰는 필자를 떠올렸다. 작년부터 매일 일:=1:1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자고, 먹고, 쉬는 시간을 그 사이에 넣어야 하는데 대부분 글 쓰는 12시간 안에서 쓰다가, 주말이나 휴가 기간을 거의 글쓰기에 올인하는 식으로 해서 1:1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등단 시기는 턱없이 아득하고 습작은 당연하고 취재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빡빡하다. 삶에 한가지 일(꿈)을 추가한다는 것도 참 만만치 않긴 하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자체는 당연히 다들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책의 사례를 가만 들여다보면 어떤 사업이나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자가 예시로 든 것 외에 이 책을 보고 다른 사업군을 개척했다는 독자들의 소식이 계속해서 들리길 간절히 바란다. 이 사업 모델의 지지자이자,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로서. 지인과 달리 필자가 이 책에 주목한 지점은 기회비용을 잘 느끼지 못할 만큼 부담 없이 사업을 대하는 태도, 10%투자하는 만큼 투자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예민하게 자신의 삶과 자산에 집중하는 태도, 월급쟁이가 결핍하기 쉬운 사업가들의 기질이었다. 그걸 가장 배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장에서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는 큰 자극이었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충분히 품어볼만한 꿈이고 롤모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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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만화, 가능성을 사유하다
닉 수재니스 지음, 배충효 옮김, 송요한 감수 / 책세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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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사유를 부수고 전진시키는 비범한 만화





내 생각의 형태는 어떨까. 색은? 방식은? 변한 것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에겐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엉뚱한 의문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하였다. 충격적이고 버거웠던 신간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를 읽어내며, 그 생각을 더욱 총체적이고 집요하게 다시 했고,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깨달은 자신의 현황에 적잖이 놀랐다. 필자의 사유세계는 처음 숫자 중심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숫자와 함수로 변환해 기억하였다. 예를 들어 어떤 지식을 어떤 책 몇 쪽의 좌표 몇으로 위치를 기억한다. 악보를 그래프처럼 읽어낸다. 숫자의 개념을 모른 아기 때부터 손가락, 발가락을 꼽으며 그렇게 생각을 하였는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참 자란 후에 알았다. 그 후 이미지적 사유와 언어적 사유가 더해졌다.



2015년 출간된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2016 린드 워드 그래픽노블상, 프로즈상를 수상하고 미국 도서관협회와 각종 언론에서 주목받았다. 책세상에서 발 빠르게 판권을 사 올 9월 번역 출간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기 전에 이 책이 하버드 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 철학책’, ‘컬럼비아 대학의 논문 심사를 통과한 최초의 만화 철학논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 타이틀만으로도 덮어놓고 찾아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지성의 실험, 그 개척과 진보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짜릿한 일이니. 이 책을 서둘러, 반드시, 직접 읽고 싶어 안달이 났던 이유가 또 있다. 출판사 홍보자료를 봐도 책이 잘 파악이 안 되어서 외국 서평을 읽고, 공개 컷들을 찾아봤는데도 어떤 책일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닉 수재너스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인문학부 조교수라고 한다. 그런데 남다른 책만큼 이력이 남다른 저자다. 수학을 전공한, 교육학자이자 만화가이자 예술비평가라니(수학,미술 학사,석사/교육학 박사). 하버드 수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중에 돌연 논픽션 만화가로 진로를 틀은 래리 고닉 같은 전례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저자의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이면서 훌륭한 철학책이고, 그 자신은 만화에 가장 집중한다니. 이 책의 교육학적 주제는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언플래트닝(Unflattening)이라는 새로운 (철학) 개념의 주창으로서, 새로운 논문 형식의 주창으로서, 탁월한 작품성의 그래픽노블로서 등등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를 톺을 관점은 한없이 많다.




언플래트닝이라는 개념은 빅토리아 시대에 나온 수학소설이자 환상소설이고 SF소설인 에드윈 애벗의 <플랫 랜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든 것이 납작한 평면의 2차원 세상 플랫 랜드를 다룬 이 소설에서 화자인 정사각형은 플랫 랜드를 벗어나 더 저차원인 라인 랜드와 더 고차원에서 온 구를 겪는다. 정사각형은 구 스승을 통해 3차원 이상의 차원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만 4차원을 겪어보지 않은 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사각형은 4차원 이상의 세상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며 자신의 플랫 랜드로 다시 돌아와 다양한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여생을 투신한다. 그러나 플랫 랜드 주민 역시 겪어보지 않은 차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저자는 여기서 칼비노, 마르쿠제 등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더하며 개념의 살을 붙여나가고 마침내 완성한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가 결국 강조하는 다양한 관점의 사고이다. 평평하고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난 언플래트닝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은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8개의 장(단조로움/다양한 관점의 중요성/5차원/생각의 형태/생동하는 인간 실체/판에 박힌 길/벡터의 세계/자각)2개의 막간극장(플랫랜드/묶인 줄)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가능하고 보여줄 수 있는 그래픽노블로 독자들의 시각적 사고를 자극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을 동경하고 평생 지평의 확장을 위해 애쓰듯 저자가 제안하는 시각적 사고, 다양한 사고가 결코 쉽지 않음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책을 읽고 있는 자세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이 책을 텍스트 논문으로 변환해 읽고 있었으며 이런 태도는 본문 뒤 마련된 작가노트, 참고문헌, 감사의 말, 초기 스케치들까지 다 읽고 있음을 깨달았다(이걸 읽으면 안그래도 남다른 그림이 얼마나 한컷한컷 지독하게 치밀한 구성이었음에 더욱 놀란다).




인간은 겪지 않은 것을 상상하기 힘들기에 고정된 시각을 철저히 전복하려면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으며, 문득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거 하나가 생각났다. 20대 후반 반년 동안 투병했던 원인불명의 난독증. 그게 사고체계를 전복시켰다. 보다 언어적으로 정교하고 언어에 예민해진 대신, 나도 모르게 숫자에서 출발해 이미지로 한없이 유연해진 사고를 다시 언어적으로 축소시키는 후유증이 생긴 것이다. 20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만화를 보며 머릿속에서 텍스트 논문을 구성하며 책의 그림과 텍스트를 분리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읽어 장점도 있었다. 감탄스러운 그림에 가려져 모를 뻔 했는데, 이 책의 텍스트 양이 상당하며 충분히 학위논문의 구성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각하고 흥미롭게 이 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이력과 관심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숫자에서 이미지로, 다시 언어로, 그리고 혼종으로 다양한 사고체계의 전복과 혼합을 겪었다.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면서 난독증에 걸려봤다. 천성을 믿고 30대에 수학과 컴퓨터언어를 도전하며 문이예 섭렵을 향하는 생고생 중이다. <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일반 출간 후 교육학’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철학’ ‘그래픽노블로서 존재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책 속에서, 독자들에게, 다면적으로 사고할 것을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특정한 프레임으로만 일독하고 그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가 부디 저자의 바람처럼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사고체계를 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의 형태에 대해 진단해볼 수 있게 하는 자극제였으면 좋겠다. 그 파격과 부정, 전복과 모색의 시간이 행복한 진보의 여정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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