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 일기에 나타난 어느 독일인의 운명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강명순 옮김 / 메리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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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파울 요제프 괴벨스

 

 

 

괴벨스. 이름만 들어도 움찔한다. 나치 정권의 선전대장.

그가 문학 박사였다는 것을 소설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얼핏 들어봤던 것 같다.

마케팅, PR, 언론 등 전공자들에게 괴벨스는 무섭지만 훌륭한 학습대상이었다.

독일어를 모르지만 그의 선전 영상을 유투브로 많이 봤다.

단 한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었다. 자막이 없어 알아듣지 못해도 빠져들 게 하는 마력.

 

그가 젊은 시절 남긴 반자전적 소설 <미하엘>.

지금까지 한국에 괴벨스의 소설이 단 한번도 번역된 적이 없기에 무척 궁금하였다.

 

“1923719일 쉴리어제 인근의 어느 광산에서 용감한 노동자로 일하다 죽음을 맞이한 내 친구 리하르트 플리스게스한테 이 책을 바친다.”

 

<미하엘>의 헌사.

24살에 박사학위를 받은 괴벨스는 26살에 이 책을 썼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는 나치당을 인정하지 않았던 괴벨스는 이 책을 쓴 2년 후 나치당에 입당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미하엘은 이 책의 모델인 리하르트와 괴벨스 본인의 중간 정도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전도유망한 대학생에서 광산노동자로 투신하는 미하일의 몇 년간의 일기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이다.

 

답을 알고 푸는 수학문제 같은 느낌, 다 푼 수학문제의 풀이과정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계속 출판사들에서 거절을 당하다가 제국회의 의원이 된 이듬해인 1929년 처음 출간된다. 그리고 1945년까지 17쇄까지 찍었으나, 그가 죽고 세월이 흘러 잊혀진 소설이다.

왜 출간을 거절당했는지 느낄 수 있을만큼 완성도가 별로다. 괴벨스가 얼마나 학문적으로 똑똑했을지는 몰라도, 전형적인 20대 문학도의 풋풋하고 거칠고 날선 습작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그럼에도 괴벨스의 삶을 알고 보는 <미하엘>은 읽으면서 섬뜩한 구석도 많고, 마음 편히 읽어지지 않는다. 괴벨스는 미하엘을 통해 당대 자신이 가진 생각들을 마구마구 늘어놓는다.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정치에 대해, 여성에 대해, 노동에 대해 일기인만큼 너무나 시끄럽고 산만하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미하엘, 미하엘의 연인, 일기 모두 결국 괴벨스의 대변수단이고 괴벨스가 절친한 친구에게 바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 사상이 매우 극단적이고 편협하다.

청년만이 옳고 노인은 가치 없다거나 미하엘이 연인과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여성관들. 노동에 대한 무한신성시.

 

그래서 결국 이 책이 남기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혁명하라

그리고 그는 히틀러를 통해 이 책을 쓰며 했던 생각들의 상당수를 실행하였다.

 

괴벨스가 아니었으면 출간되기 힘들었을, 치기 어린 청춘의 흑역사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쉽게 읽었으나 편하게 읽을 수 없었던 책이었다.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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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이언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관리법
리드 호프먼 외 지음, 이주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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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The Alliance: Managing Talent in the Networked Age(2014;미국)

 

[얼라이언스] HRM, 동맹하라

 

 

 

20161,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회장은 당해 다보스포럼의 의제로 제안하며 ‘4차 산업혁명개념을 주창했다. 그 후 현재까지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치러진 우리 대선에서도 빠질 수 없는 화두였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듯, 시시각각 변하는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것이 많이 체감하지 못한다. 실제로 3차 산업혁명 개념을 주창한 제레미 리프킨은 아직 3차 산업혁명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가 급변하고 있으며, 그만큼 전산업적으로 불안정하기에 대비를 해놓아야된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한국경제신문이 번역·출간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관리법이라는 부제를 붙인 <얼라이언스>. 이 책은 사실 4차 산업혁명 주창 이전인 2014년에 나온 책이다. 저자들은 현재를 네트워크 시대로 정의하고 지금 필요한 HRM의 핵심으로 동맹(alliance)’를 말한다. 어떤 스펙보다 인맥 관리를 잘하는 인재가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자질은 단순한 마당발이나 친화력 높은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복무 또한 다양한 업무를 거칠 수 있는 전환복무제로 하는 것이 평생직장이 없는 오늘날 기업에게나 직원에게나 모두 유리하다고. 그래서 동맹이 중요하다. 계속 연결, 연결. 사람이 힘으로 불안한 시대를 극복하라는 것이 저자들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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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사계 - 칭기스칸 역사기행
박원길 지음 / 채륜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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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사계 - 박원길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릴 적 밤마다,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틀어주던 징키스칸 드라마를 보다 잔 기억이 난다.

지금도 무협지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당신 아이의 세상은 좀 더 낫길 바라며 아이가 강호를 평정하고 큰 물에 놀길 바라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꿈과 인사이트를 아주 옛날에,

영광스럽던 대제국에서 찾았던 것이 참 재미진다.

아버지가 그랫듯, 무림고수의 길은 책 속에 있고

부모처럼 평범하게 살기도 버겁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었다.

미세먼지로 아웅다웅하는 이 땅을 넘어, 중국을 넘어

몽골에 가고 싶었다. 그곳은 청명하고 뜨겁기만 할 것 같아서.

그런 환상을 <칭기스칸의 사계>에 있는 사진들은 한껏 자극한다.

그런데 그런 풍경은 몽골에서 아주 짧다고.

 

수많은 몽골기행기 중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역사학자가 쓴 역사기행이어서이다.

칭기스칸의 삶의 궤적을 전공자의 해설과 함께 엿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 역사기행기로 매우 만족스럽지만

의외로 참으로 서정적이라 인상적이었다.

표지에 이 책에는 시가 흐른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시가 흐른다고 되어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정말 그렇다.

시 인용이 참 많다. 당시의 서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칭기스칸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많으면 더 재밌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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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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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다 미쓰요

 

 

 

그냥 사연 많은 여자 정도로 해두죠.” 내뱉고는 아차 싶었다. 일동 신원과 이력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을 짓고 눈을 한껏 반짝이며 질문과 성토를 퍼붓는다. 노희경 작가가 그랬다. PD들이 여 작가가 담배를 피면 한번 더 보고 이혼했다고 하면 기대를 한다고. 확실히 사연 많은’ ‘여자라는 것은 연애와 예술에 있어 굉장히 주목받고, 본인에게도 꽤 쓸모 있는 정체성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순간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선입견과 오해가 싫다. 그리고 자칭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포장 아닐까, 정말 그런 사람은 이런 표현을 입밖에도 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조용히 여생을 이어가고 싶을 것이다.

 

가쿠다 미쓰요의 <평범>, 표제작을 포함해 평범에 대한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집이다. 드라마화가 되었다기에 독서량도 늘리고 여가로 영상물도 즐길 겸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책을 읽는 것으로만 족하기로 한다. ‘평범을 말하는 단편 두 개가 연달아 이혼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이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각자의 직업에 충실하며 사는 것, 하루 여섯 시간 이상씩 자고 밥을 세 끼 먹는 것이다. 그런 가치관에서 이혼은 완전한 비범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는 평범을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한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들이 원하는 평범이란 과연 평범이 맞을까. 이루고 싶고 이뤄야 한다고 강박하는 어떤 ’, ‘로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평범>의 집필 의도와 독서 의도가 대단히 좁게 보였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평범의 정의를 묻고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자기만의 그 답을 만든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이 된다!”라고 말하는 띠지의 첫 문장은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 아래 인용문에는 매우 공감하였다. “매일매일 충실히 살아가는 거야!” 삶이 반짝반짝 빛났고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웬만하면 힘들 것 같지만, 죽음으로 완성될 그 삶의 모양새가 어떻든 매일매일 우리는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충실히 살아간다고.

 

소설 속에서 열심히 만나고 계속 누군가와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보는 게 별로 재밌지는 않았다. 이게 드라마화된 모습은 어떨까나 상상해봤는데 그것도 재밌어 보이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디테일하게는 어느 독자들의 마음을 움찔움찔하게 하는 비범함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냥 우리가 매일 겪는 이야기를 적당하게 리드미컬한 언어와 무난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제 삶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때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심신을 가라앉히는 데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볼 수 있을까, 이미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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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루스 오제키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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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 루스 오제키





어린 시절 TV, 영화, 책 등 여기저기서 보고 바다만 가면 빈 유리병에 편지를 써서 그렇게 던졌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나 다른 어른이 쓰레기 투기한다고 등짝 때리러 쫓아오시곤 하였다. 멈출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동무들에게 얘기를 꺼내면 다 같은 생각이었다. 왜 한국은 외화의 어린이처럼 큰 나무가 있거나 근처에 큰 숲이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무 위에 아지트를 못 짓는지 울분을 토하면서 유리병 편지라도 해야지 평등한 세계, 지구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러는 먹어서 생산하고, 더러는 분리수거함을 얻은 투명한 빈 유리병에 편지를 넣었다. 바다가 문제였다. 하천이 있었긴 하지만, 하천에서 잘 떠내려가봐야 편지는 한국 사람이 줍게 될테니 슬펐다. 이국 사람이 내 편지를 받겠다는 생각을 접고 사랑과 우정의 낭만적 선물로 서로 유리병을 교환하는 데는 몇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소설에선 유리병으로 밀봉된 편지가 아니라 비닐로 꽝꽝 밀봉된 헬로키티 도시락통이 등장한다. 캐나다 해변가에서 루스는 그걸 발견한다. 도시락통 안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어판이 담겨 있었는데 펼쳐보니 본문은 간데 없고, 속을 다 뜯어낸 뒤 노트로 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트엔 일본인 소녀 나오의 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루스가 나오의 일기장을 받은 건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염려가 극에 달한 때. 그럼에도 호기심에 나오는 일기장을 한장 두장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할머니와 사이가 좋은 중학생 여자애의 평범한 수다 같았다. 하지만 지코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가미카제 강제징집으로 자살'당한' 아들 하루키1번 때문에 평생 고통을 달래며 승려가 된 초장수노인이었다. 나오에게는 끊임없이 자살'하고 싶어하는' 히키코모리 아빠 하루키2번이 있다. 지코와 나오의 나이를 초월한 의지는 자살했거나 할 것 같은 하루키 놈들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건 나오이다. 끔찍한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나오가 수취인불명으로 일기장을 흘려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알리려 한다는 점에서 나오는 이 일기장을 볼 당신이 내 하느님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일기가 씌어진 시점은 과거이다. 이 일기장은 일종의 '과거로부터 온 구조 요청'이다. 루스는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오와 그 주변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과연 캐나다의 소설가가 일본의 중학생을 구할 수 있을까.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인연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무슨 의미가 될까.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일본의 대지진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과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이긴 하지만,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는 것,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 고민을 겪는 왕따 아이가 등장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였다. 소재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으며 수출되고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에게 이 소설이 안겨다 준 명성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읽으면서 작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써야만 했던 소설이란 느낌을 내내 받아서 그 뿌듯함이 더 크지 않았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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