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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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 소설

 

 

어느 날 강가를 산책하다가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강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사색이 되어 찾는 가족들의 품으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왔다고 한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품고. 그리고 6개월 동안의 퇴고 끝에 창작과 비평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투고했고, 당선하였다. 금태현, 54세 신인 작가의 간략한 등단 경위이다. 인간의 마지막 직업은 작가다.” 작년 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블로그에서 봤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수상자들은 모두 40대 이상이었고, 한 분은 신인상인데도 50대였다고 한다. 흔히 산문은 영재의 문학이 아니라고들 한다. 세상과 인간을 깊이 꿰뚫고 글로 풀 수 있는 것은 연륜 없이 재능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등단할지 아득한 채 태어나지 못한 작가로 사는 것은 참 녹록지 않다. 죽은 아들 불알도 아닌 태아나 정자를 더듬고 주무르는 부모의 삶이란. 흔히 늙은 신인 작가가 그렇듯 금태현 작가 역시 여러 편의 소설 완성작을 가진 상태에서 등단하였다. 호기심과 성장욕으로 시작한 등단작 분석은 작가의 이력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전형적인 똘똘한 등단작이다. 창작과 비평이 좋아할 소재와 문제의식이다. 분명 현시대가 다뤄야 할 문학 주제였음에도 완결력 있는 일반’‘장편소설로 나오지 못했던 코피노에 대한 소설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현재 한국 문단이 사회문제를 소설로 푸는 데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심사위원들은 395편이나 응모되었으나 다수의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된 것과 달리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서사가 노련하다고 평했다. 십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 받고 인상적인 것은 생각해본 적 없는 ‘63년생의 문장이었다. 심사평과 당선 소감을 읽고 소설을 읽다가 책날개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코피노 청년의 한 동안을 다룬 이 소설에서 청춘을 묘사하는 태도는 20대 작가들처럼 생동한다. 부모나 선생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나이의 문장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였다. 

청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 아닐까.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심신적으로 인생에서 청춘은 시기가 있지만 그 시기가 지난다고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제 청춘을 놓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모습을 불러낼 수 있다고. 쉰 살이 넘은 대한민국 울산 토박이 금태현이 그린 스무 살 필리핀 세부아노 하퍼. 작가와 하퍼는 같은 오늘을 사는, 완전한 동시대인이다. 누가 누구의 과거나 미래가 아닌 채 같은 시간을 산다. 어디까지가 취재일까.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의 정의에 충실한, 현실에 있음직한 허구의 이야기이다. 망고스퀘어는커녕 필리핀과 일본을 잘 모르는 독자도 어떤 불편함이나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이국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 어떤 편견도 담겨 있지 않다. 처음 읽을 땐 전형적인 소재를 비전형적으로 전개하는 전체적 구성에 눈이 갔다. 그런데 다시 읽을수록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눈이 멈췄다. 어떤 심사평이나 당선 소감보다 개개의 문장과 행간이 작가의 모든 실력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편하게 읽었음에도 잠깐 무서움이 엄습했다. 

하퍼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뿐인데 사는 꼴이 소위 표현하는 막장이다. 배운 것 없고 할 줄 없는 게 없다고 유투브에 돈될 만한 영상을 마구 올려 광고수익으로 먹고 사려다가 번번이 저작권 위반의 쓴맛을 본다. 결국 그에게 돈 같은 돈을 벌게 해주는 밥벌이는 마약 배달 같은 뒷골목 심부름이나 소매치기. 유흥가에 있다가 도망쳐 미스 필리핀에 나간 베렌을 잡아오라는 심부름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이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빠지고, 오랫동안 헤어진 어머니와 재회하고. 하지만 인생은 그 순간에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듯,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얼마간의 하퍼의 일상일 뿐이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오로지 삶은 계속된다는 명제일 뿐. 가족을 버린 것은 한국인 아버지가 아니라 필리핀 어머니고, 사랑은 극적으로 인생을 바꾸지 않는다. 순간엔 비범했던 행보도 평범으로 남는다. 예상대로 전개되지도 무겁지도 않은 코피노 소설이라 마음에 들었다. 본 대로 쓸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인 것 같아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금태현은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통해 삼킨 청춘을 오늘에 토한다. 우리는 무엇을 응답할 것인가. 수많은 시절의, 수많은 청춘이 이 청춘에 얽히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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