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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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투정 아닌 '진정 리셋'을 원한다면


  

 

뭐 하는 사람일까. 숱하게 이름을 들었지만 처음 그의 책을 읽어봤다. 철학자일까, 선생일까,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했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로는 그의 사람 됨됨이만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 전공은 사회학이지만 문화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선다고 한다.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인이라고 한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란 도발적인 책 제목. 제목만 보곤 급진적인 진보 운동(혁명) 담론을 담은 책인 줄 오해하였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글이면서 어떤 면에서 그 선언의 일원이 되어 리셋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책이었다. 다분히 중의적인 책.

  

 

리셋(reset), 다시 맞추다, 다시 제자리에 넣다,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일. 저자가 말하는 리셋의 프레임을 세상에 씌우니 일베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담론들이 좌우 상관없이 묶여지고 읽힌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조하며 내뱉는 노오력’, ‘헬조선’, ‘노예’, ‘수저따위의 말들을 내뱉는다. 이 단어들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진을 빼놓는 것 같아 듣기 싫으면서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다. 이 단어들이 불편한 이유는 이 상태에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 같이 죽는 종말만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저자의 표현으론 리셋이다.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원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 저자는 나는 역사의 힘을 믿는다.’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래서 진보를 믿는 진보주의자고 낙관주의자라는 저자가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지 궁금해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문장은 유려하고 간명했다. 그리고 일독하는 동안 적잖이 당황했다. 어디를 밑줄 쳐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과 전부 밑줄치고 싶은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하여 책을 거듭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선독자로서 감상은, 이 책이 궁금하다면 그냥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굳이 불안하면 목차 정도만 보고 말이다. 별로 두껍지 않거니와 술술 읽힌다. 현대 사회 중에서도 지금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의 이야기다. 모두의 감정이다. ‘싸그리 망해버리라며 리셋을 갈망하는 조울증적인 화병, 근대부터 내려온 유구한 사회화의 전통 속에 성장했지만 마주한 건 어떤 국민도 보호하지 않는 나라에서 그저 가만히 있어야하는 순교자적 나르시시스트 국민이 되어버린 자신이다. 너무나 슬픈데 존중받아본 적이 없어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가 다다른 결론은 한국은 민주주의가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세상을 리셋하고 싶어 하는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리셋하되 성공적인 리셋을 위해서 짚을 것을 잊지 말고, 리셋(전환)의 지점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뜨끔하고, 막연히 어떤 기분이 들지만 설명할 수 없었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풀어줘서 탄복하였다. 맞다. 쉽게 읽히나 편하지 않은 책이다. 역시 답 없이 분석과 통찰에 주인 책이지만 다른 그런 책들보단 좀 나은 이유는 그 분석과 통찰 속에 담긴 대상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포기하지 않는 희망 같은 게 엿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리셋의 속성은 자학이 아니라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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