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섬 > 우리는 윤동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_<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와의 만남 (2016.03.18 창비 서교 사옥)

2016년 창비 책읽는당 페이스북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월 창비에서 정한 창비책 한권을 읽는 북클럽인데, 3월 선정 도서는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였다.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난 2월 영화 <동주>가 개봉했기도 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등 윤동주 관련 서적이 인기던 때이기에 즐겁게 함께 읽었다.

 

 

 

 

 

 

 

 

 

 

 

 

 

 

 

 

평소에 전기 소설보다는 역사 사료로 직접 인물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가

안소영 작가의 책들은 성인보다 청소년에 더 타깃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

<시인 동주>로 그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책은 예상했던 것처럼 읽기 쉬웠는데 책을 읽고 너무나 작가가 궁금해졌다.

엄청난 취재량과 그 자료를 정갈하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책 속에 나왔던 동주의 지인들을 한 사람 한사람 정리해 다시 보여주는 섬세함이란. 대상(윤동주)에 대해 보통 애정과 열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운좋게 알라딘에서 연 <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에 초대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평소처럼 합정역에서 내려 창비서교사옥에 가는데 알라딘 중고 서점 합정점 발견!!

COFFEE라고 써 있는 걸 보니 카페도 겸하는 것인가??

이 날 사진 찍고 아직도 못 가봤다. 곧 가겠지.

 

 

 

로비에서는 <위니를 찾아서>를 한창 주력 홍보하고 있었다.

이날 작가와의 만남 참석자에게는 <위니를 찾아서> 책갈피를 줬다.

 

 

강의 전에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카페 창비에서 다시 책을 훑어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혹시 책을 당일 사올 사람을 위해 카페 창비에 마련되어 있었던 <시인 동주> 매대

 

 

 

 

안 갔으면 두고두고 한이 맺혔을 만한 열강이었다.

창비에서는 간단히 책에 대해 소개하고, 동주의 시를 함께 나누고, 질문을 좀 받고, 사인회까지 해서

1시간반~2시간 정도의 행사를 예상했던 것 같은데

책과 꼭 닮은 안소영 작가님 책에 대하여 동주에 대하여 얼마나 주옥 같이 귀한 말씀을 많이 나눠주시던지

정신 없이 듣느라 바빴다. 질문이 끊이질 않아 강의만 1시간 반이 훌쩍 넘어, 사인회까지 끝나니 10시가 넘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작가님은 <동주와 몽규>로 책 제목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송몽규라는 존재를 나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는데

 

1. 자료가 너무 적어서

2. 취재한 내용만으로 책을 끌고 나갈만한 작가로서 역량이 부족해서

3. 취재하면 할수록 윤동주란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윤동주에 집중한 <시인 동주>를 썼다고 한다. 

 

제목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셨다고 하는데

'시인'이란 말을 꼭 붙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지었다고 했다.

"윤동주는 그토록 시인으로 불리길 꿈꿨으나 단 한번도 시인으로 불리질 못하고 죽은 청년입니다."

 

<책만 읽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갑신년의 새 친구>, <시인 동주>

지금까지 쓴 책이 전부 전기 소설인 게 궁금하였는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져서 사료들을 보다가 이덕무로 시작해 문제의식과 관심이 점점 현대로 향해가고 있다고 하셨다. 개화기의 청년을 다룬 <갑신년의 새 친구>를 쓰며 그렇다면 식민지 현실에서 청년들의 삶은 어떨지에 대해 궁금해졌고, 생각 끝에 택한 사람이 윤동주였는데 취재를 하며 윤동주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음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차기작이 된다면 대한민국 어느 시대의 청년의 삶을 다뤄보고 싶다고.

 

안소영 작가는 자신의 책이 소설로 볼 수 있을까란 말을 했는데

객석에서도 이 책을 역사책으로, 국문학 자료 등으로 보며 수업에서 활용하거나 공부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윤동주 이미지 대부분은 1976년 <나라사랑>이란 잡지에서 동주의 연희전문학교 벗들이 회고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노인이 나라는 비록 암흑기였지만 인생에 가장 혈기 왕성하고 빛났던 청춘을 떠올리며 친구를 생각하다보니 윤동주는 자연스럽게 실제보다 더 청초하고 맑고 순한 사람으로 포장되었다고 한다.

 

안소영 작가가 윤동주 시인에 대해 책을 쓰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점이

한 사람이 어떻게 서정시인과 저항시인이 가능할까였다는데 그래서였다.

실제 윤동주는 훨씬 내면이 강하고, 이지적이며,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드는 성품이었다고.  

 

책에 이미 있는 내용들을 다시 살피기도 했지만

작가가 어떻게 책을 썼는지 많이 알게 되어 좀 더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한껏 얻어간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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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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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무대화된 현실, 삐걱거림의 판타지아

 


 

수년 전부터 나는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이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나의 문학적 지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 작가의 말 (p.247)


 

성북동엔 아몬드나무 하우스가 있다. 1층에 고흐의 <꽃 핀 아몬드나무>가 걸린 이 4층집은 북카페지만 영업은커녕 로스팅머신도 없고, 기실 마마의 품속으로 모여 든 고아같고 난민같은 이들이 같이 사는 공동 주택이다.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동거자들은 서로의 사연은 알고는 있지만 함께 짊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한 데 살면서 가족의식을 키워나가는데 마마는 숨소리조차 없는 침묵으로 그들의 욕망을 묵살한다. 이 기묘한 집에 마마의 제안을 받은 김명우가 집사로 들어온다. 마치 아몬드 나무 하우스의 완성은 김명우인 것처럼 그가 입주하자 장사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폭주한다. 마마, 명우, 난희, 보라, 현주, 윤정, 정민, 윤태가 얼키고 설켰던 시간들.


일독을 마쳤을 때 너무나 괴상한 기분이었다. 처음엔 완성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피에로들의 집>도시 난민유사 가족이라는 매력적인 주제가, ‘영화그림음악이 종횡무진 하는 현란한 양념을 얹어, ‘슬럼프세월호라는 작가의 내외적 작가의 문제와 결합한 소설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분명 한 편의 소설인데, 조각조각 구획화된 글로 읽힌다. 교과서 같은 결말 처리에 그 동안 읽었던 모든 것들이 허무하고 평이하게 느껴지며 온 힘이 빠진다11년 만에 완결한 장편소설이라면, 그 소설은 역작 아니면 졸작일 확률이 높다. 이 소설은 후자구나 하고 진저리쳤던 한참 동안의 시간을 정리할 찰나 다른 생각이 스쳤다. 원래 이런 소설, 이상하고 낯선 소설이라고.

 

 

순간 나는 절망 이후에 찾아온다는 체념과 마주하고 있었다. 말해 무엇하랴만,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잃고 삶을 허비하게 되면 어떤 기회라도 늘 다른 이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었다. - p.13

 

누군가와 헤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뒤에 남겨진 자의 더한 고통이자 혼란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사라짐의 의미도 조금씩 변해갔다. 한동안은 그녀를 탓하고 원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후 긴 자책의 시간이 찾아왔고 지금은 그녀가 오직 살아 있어주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과 강요된 체념만이 남게 되었다. - p.50

 

저야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보니 난민을 거둬 보살피는 대모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봐야겠죠. 지금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들 모두가 실은 난민이나 고아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어쩌면 당신도 난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마마로 살아가는 거겠죠. 남달리 외롭게 살아온 분이거든요.” - p.93

 

 

<피에로들의 집>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명우가 지인들에게 늘 듣는 소리가 있다. 말을 연극 대사조로 한다는 것. 가만히 보면 <피에로들의 집> 자체가 무대화한현실 이야기이다. 소설 자체가 현실에 바탕을 둔 허구(이야기)인데 <피에로들의 집>은 그 소설을 다시 연극화함으로써 현실과의 이질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이 책이 동시대에 실재하는 인물과 장소와 사물의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 작위적인 판타지로 느껴졌던 것이 비로소 수긍이 간다. 완벽하게 작가가 설계한 세트장 서울 위에 펼쳐지는 인형극을 보는 느낌이랄까. 계간지 연재 당시 제목이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는 걸 듣자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작가는 소설의 무게중심을 피에로의 ‘속성’에서 연대로 맞추기 위해 ‘밤’을 ‘집’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 책은 연극(피에로)이 끝나고 난 뒤()의 심정으로 읽는 연극이라고.


 

제목을 의식하지 않으면 처음 <피에로들의 집>은 대단히 디테일이 살아 있는 섬세하고 현실적인 소설처럼 느껴진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묘사부터해서 배경 설명이 매우 자세한데다가 실재했던 것이나 그를 비슷하게 바꾼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인물, 구성, 전개가 상투적이고 단순해진다. 여기에서의 섬세한 묘사는 현실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소설을 더욱 극적이고 작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래서 인물 각자는 비련의 주인공 심정으로 자기 삶에 몰두하지만 독자들은 심드렁하다. 예상한 지점에 대모는 아프고 입주자들은 퇴장한다. 다들 적절할 때에 사고나고, 떠나고, 만나고, 죽는다. 그 모든 일에 김명우가 있으며 남의 인생 해결과 자기 성장을 동시에 도모한다.


 

, 기성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이 때로 무차별적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걸까요? 더군다나 기득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거칠어지죠. 그런 난폭한 방식으로 자기 보상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 같은데도 말예요.”

그는 계속 얘기하고 싶은 눈치였고 나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사회적 재난을 시청하면서 그때마다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부류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녁을 먹고 나서 일가족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시면서 말예요. 타인의 불행을 목격하면서 내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낀다는 거죠.” - p.147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다름 아닌 박윤정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지난겨울 그녀가 여행했던 행로를 따라 내가 지금 이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김현주와 정민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내가 다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왔다는 사실을 절로 알게 되었다. 거기엔 내가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 p.244

 

 

그 와중에 작가는 세월호로 힘든 심정이나(당시 연재를 중단했었다),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티나게 드러낸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우며 총체적 난국이다. 하지만 제목을 의식하고 보면 이 책의 모든 괴상함이 삐걱거림의 판타지아로 느껴진다. 아마추어스러움, 진부함, 현실적인 비현실 등 책 안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있는 이질감과 한없이 흠처럼 느껴졌던 것을 모두 피에로라는 상징 뒤로 숨길 수 있다. 과장, 공허, 거짓, 조롱 등 광대놀음 그 자체로. 정서는 무대 중이 아닌 무대 후로. 그렇게 보면 더러는 낭만적이고 더러는 측은하며 만감이 교차해 제법 독후감이 괜찮아진다. <피에로들의 집>은 그래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소설이다. 누군가는 열광하고 의미 부여하며 소설을 한참 곱씹고 즐기겠지만, 누군가에겐 작가 이름을 다시 확인하며 기함하고 실망할 소설이다.

 

윤대녕 작가와 <피에로들의 집>의 가장 큰 적은 작가 자신, ‘윤대녕의 네임 벨류(문단의 위치). 문단의 중요 스승이자 중견작가가 정통 문예지(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발표한 소설이 아니라 신인 작가가 쓴 소설이었다면 분명 더욱 후한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형식적 실험, 아이디어만 건질만한 평작이었다. 숱한 퇴고를 했음에도 책 속에 작가가 글을 쥐어짜는 고통이 곳곳에 느껴졌고, 여러모로 반듯하고 모범적이었지만 그래서 감탄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 윤대녕 스스로도 오랫동안 지향하고, 구상하고, 시도했던 주제라고 밝혔듯 <피에로들의 집>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소설은 반드시 다시 나올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 미래가 있다면 프로토타입으로 견뎌볼 만한 소설이다.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출간 기념, 소진시까지 '윤대녕 필사노트' 증정 中

4-5mm 두께의 손바닥 노트다. 윤대녕의 전작을 발췌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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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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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작가다운 작가와 그에 대한 애정과 존경으로 빚은 걸작집

 

  
 

 

일본 본격 추리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거니와 일본 문학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워낙 소설을 읽을 때 서정보다 서사를, 문장보다 세계관과 사회참여성에 마음이 기우는지라 마츠모토 세이초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사회파 추리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는 본격 추리가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에도가와 란포에 대해서만큼은 막연하지만 강하게 필독 작가라는 과제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 본격 추리의 아버지이자 대란포로 불리는 위용이 무색하게 그의 책은 국내에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괜찮은 전집, 선집을 내는 출판사가 그 동안 없었고, 그나마 2008년 두드림에서 단편 전집을 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 초 시공사의 장르문학 브랜드 검은숲에서 출간한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는 존재만으로 소중하고 반가운 책이었다. 그런데 그 만듦새까지 훌륭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출간순이 아니라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단편과 장편의 조합으로 책을 엮었는데, 출판사가 ‘(한국에서) 나 없이 란포 보지 마라’고 하는 듯한 환청이 들릴 것 같은 압도적인 질이었다. 작가를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이 책의 편집에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었다. 

 

 

일본의 최신 에도가와 란포 전집이자 그간의 란포 연구와 서지학적 자료를 야무지게 모아둔, 고분샤의 에도가와 란포 전집(30)’를 원전으로 하였다. 다만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편집부역자와 일본 출판사, 유족이 논의하여 단편과 장편이 있는 우리만의 또 다른 결정판으로 다시 냈다. 1권을 내며 란포의 직계손과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평론가들이 기획한 <에도가와 란포 전집 30>의 국내 유일 정식 완역본으로 시리즈를 홍보한 걸로 봐서 엘러리 퀸 시리즈처럼 뚝심 있게 전집으로 완결할지 모르겠다. 설사 선집으로 그친다 하더라도 에도가와 란포의 마니아나 이제 관심이 생긴 독자들에게 소장 가치 200% 이상이다.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에는 단편 세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천장 위의 산책자와 장편 거미남을 실었다. 각 작품은 읽기 전에-작품 본문-자작 해설로 구분되어 있으며 다시 풍부한 각주를 통해 판본별 차이나 작품 관련 정보들을 담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은 초판 한정으로 전용 케이스가 있는 3권 분권 반양장 누드사철본으로 나왔다. 2쇄부터는 일반 단권 양장본(케이스 없음)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누드사철본이 예상외로 아주 튼튼하고 종이가 완전히 펴져서 읽기 편했다. 분권으로 되어 있어 휴대하기도 좋았고.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재밌으면 된다.’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을 읽으며 소설의 의미와 도리는 이것이라고 깊이 깨달았다. 실린 네 편 중 어느 하나 평범하고 재미없는 소설이 없다. 에도가와 란포는 1923년 등단하였다.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의 경계가 없으며 일본형 추리소설이 구축되지 않았던 시대, 젊은 에도가와 란포는 오늘날 문학계에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거미남을 발표하기 전에는 오히려 통속소설이 판치고 순수소설이 위기인 것에 심한 고민과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는 소설에 어떤 철학(사상)이나 가치관도 담지 않았다. 그저 읽기에 재밌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자신의 재능을 자신하지 못하였다. 등단한 지 3(1926난쟁이발표)만에 심한 비관에 빠져 2년 휴필한 적도 있는 그였다. 에도가와 란포는 작가와 소설, 평론의 관계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자작 해설’, 흔히 작품은 출간되는 순간 작가의 품을 완전히 떠나기에 평론이 존재하고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독점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는 반드시 자기 작품마다 평을 붙였다. ‘자작 해설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적어도 자기 작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며 끝까지 놓지 않았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1929)-단편: 일본적 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꿈결 같은 환상기담

1929년 발표한 단편소설. 작가에게 흔한, 문예지 독촉에 급히 쓴 작품인데 뜻밖에 상당히 란포에게 상당한 애착 작품이 되었다. 처음 쓴 원고를 너무 졸작이라고 찢었다가 1년 반 후에 급히 쓸 소설을 고민하다가 개작했다는데, 대단히 일본적인 미학이 살아 있는 환상기담이다. 오시에(압화의 일종) 속 아가씨에 매료되어 상사병에 걸린 남자가 결국 스스로 오시에 속에 들어가버리고, 그 오시에를 가지고 다니며 서글퍼하는 남자의 동생이 전하는 기묘한 이야기.


 

애벌레(1929)-단편: 작가관을 엿볼 수 있는 전설적 금지소설

일본의 군국주의와 대동아공영 광기는 19세기 말부터 해가 갈수록 강해져 갔다. 만주사변 직전에 일본이 개입했던 전투의 피해자를 소재로 한 애벌레는 당대 일본인들에겐 너무 야하고 엽기적인데다가 반사회적이라 처음엔 악몽으로 제목을 바꾸며 출간하기도 하고 검열을 피해 복자(……)를 남발을 했으나 오랫 동안 금지소설이었다. 촉망 받던 군인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사지를 잃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에 몸뚱이만 있는 애벌레 같은 꼴이 된다.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역전되고, 아내는 본심을 드러내는데, 강렬한 결말을 대표로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애벌레이미지가 대단히 세다. 란포는 반전이나 장애인혐오로 쓴 게 아니라, 그저 기발하고 독특한 소설을 쓰고 싶어 쓴 것인데, 대단히 시대를 앞서나간 전설적 문제작이다.

 


천장 위 산책자(1925)-단편: 자칭타칭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자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 일종

일본의 가옥구조를 잘 모르는 타국인들에겐 천장 위(지붕 아래) 공간이 낯설어서 다락방으로 흔히 번역되곤 하였던 작품. 역시 작가들에게 흔한, 소소한 일상을 집요하게 소재로 잡고 발전시킨 소설이다. 천장 위 산책에 빠진 범죄 오타쿠라는 주인공 설정이 독특하다. 일본의 최초 사립탐정 캐릭터이자 일본 3대 명탐정 캐릭터(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가즈미 교스케)’ 중 하나인 아케치 고고로(1925년 창조)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거미남(1929-30)-장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에도가와 란포의 첫 통속소설.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 일종, too

흔히 장르문학을 대단히 통속적이고 순수문학의 반대 개념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일본 본격 추리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는 통속소설 집필을 꺼렸다. 고단샤의 끈질긴 설득 끝에 <거미남>을 시작으로 여러편의 통속소설을 쓰게 되는데 원고료도 많이 주고 수정 요구를 하지 않는 고단샤에 태도를 우호적으로 바꾼다. 목적 달성(교미) 후 수컷을 잡아 먹는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암거미를 닮은 살인마 거미남(푸른 수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상한 회사 채용공고로 시작해 결말까지 계속 반전하며 독자가 편안할 틈을 안 주는 전개가 매우 인상적인 작품. 아케치 고고로가 활약하는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1.변신 소망 평생 간직한 코스프레 소망

2,투명인간 소망과 혐인증 근저에 흐르는 히키코모리사상

3.태내 소망 벽장 속의 향락

4.엿보기 취미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본다

5.렌즈 선호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로서의 장치

6,아사쿠사 취미 범죄애호자의 장난감 상자

7.구경거리 취미 애착과 향수의 모티브

8.유토피아 소망 파노라마 취향이 낳은 인공 낙원

9.인형 사랑 인공물에 담긴 영원한 아름다움

10.성적 도착 반복해서 묘사된 페티시즘의 쾌락

11.잔학 선호 향수로서의 그로테스크

12.탐정소설 취미 명탐정들에게 바치는 오마주

13.괴기 취미 표현 방식으로서의 괴기적 연출

14.자기애 자신과 관련된 자료 수집과 셀프 패러디, 잔학성

노무라 고헤이(란포 연구가/3p.214)

 

 

란포 연구가인 노무라 고헤이는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읽는 키워드를 14개로 꼽았다. 역자처럼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속 네 편의 키워드를 나름대로 분석하며 2권엔 어떤 작품이 담길지 예상해보는 것도 이 책과 노는 한 가지 방법이다. '결정판'을 붙이면서 결정판스럽지 않은 평범한 선집, 전집이 많은데 시공사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결정판'이란 이름에 걸맞는 걸작선이었다. 일단 이 책을 보고나면 다른 출판사의 란포 번역본이 읽기 싫을 정도로 공들인 번역과 편집이 남다른 책이다. 「거미남」은 초역이라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세 편은 이미 번역된 적이 있는데도 새로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에도가와 란포. 일본의 본격 추리 소설을 논할 때 그를 빼놓을 방법이 있을까. 드디어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을 읽기 좋은 전집(선집)이 나왔다. 에도가와 란포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일본 장르문학의 고전을 읽는다는 의무감으로 읽은게 더 컸는데, 이 책 덕에 란포의 매력에 푹 빠졌다. 비슷한 생각으로 읽기를 망설이는 독자에게 강력 추천한다. 출판사와 번역자의 성실함과 세심함도 대단하지만, 역시 에도가와 란포가 작가다운 작가이기 때문에 책이 이만큼 완성도 있고 반짝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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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
하재욱 지음 / 나무의철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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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하루] 심지어 글까지 늘은 하재욱은 하재욱이다

 

 


누군가에겐 헛된 하루였을 오늘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대충 뒹굴어도 아깝지 않은 무엇일 테지만, 무수히 많은 날들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지상에서 펼쳐보는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겠지요. 이 차이를 느껴버린 이의 어깨 위에 놓인 하루는 얼마나 무거울까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삶이 고단하고 무거울수록 오늘이라는 단 하루만을 상상하고 노래하고 스케치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묘하게도 간절해집니다. 오늘 하루치 고단함이 너무 간절해서 고마워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치 사랑이 너무 간절해서 느닷없이 눈물이 맺히기도 합니다. - 작가의 말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3 시절, 이 말이 소포클래스가 한 말인지도 모르는 애들도 교실자습실독서실 등 각종 책상에, 스케줄러 등에 열심히 써놓곤 하였다. 너무나 뜨겁게 감동한 누구는 한낱 필기구로는 비장함이 표현되지 않는다며 커터칼로 문구를 새기다가 엄마보다 매운 선생님의 불손맛을 알기도 하였다. <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이하 오늘 하루”)>, 제목을 보고 피식하였다. 옛날 생각이 나서, 열 살 넘는 나이 차가 아무렇지 않아져서. 그 동안 하루 연작을 보고 또 보며 아끼면서 공감은 하면서도 큰 형님의 이야기, 간절한 나의 미래처럼 느꼈던 감이 더 컸는데 세 번째 하루 연작인 <오늘 하루>는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책이 한결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책의 주인공과 아이들은 더욱 컸음에도, 평행선을 달리며 같은 시간을 사는 사이임에도 새삼스럽게.

 

 

그 놈의 장 자끄 상뻬. <오늘 하루><안녕 하루>, <고마워 하루>에 이은 하재욱의 세 번째 하루 연작이다. <오늘 하루>는 이전 두 책과 달리 출판사를 바꿔 토네이도미디어그룹의 자회사 나무의철학에서 나왔다. 장서가의 입장에서 그로 인해 판형까지 바뀔까봐 걱정했는데 서체만 바꿨을 뿐 판형은 다행히 유지하였다. 흥미로운 건 두 출판사 모두 한국의 장 자끄 상뻬를 밀며 홍보한다는 점이었다. 작가에게, 화가에게 2○○이란 호칭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인지도를 좀 더 빨리 높이기 위해선 그만한 마케팅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프레임에 벗어나기 전까지 하재욱 그대로의 하재욱은 꽤 가려질 수밖에 없다. 색감과 화풍, 채색기법이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남성 독자에게 소구 가능한 남자 그림 에세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웠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성인 그림책 시장이 30대 미혼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도 마케팅도 여성향인데다가, 장 자끄 상뻬가 그 대표적인 작가이므로.

 

 

함부로 피어나고 느닷없이 져도 다시 피어나는 봄날이 오는 것은 이제 너희들 이야기다. 나는 이제 여름밖에 없는 사내처럼 뜨겁게 식혔다가 다시 뜨겁게 일해야겠다. 황혼 때까지 남은 내 모든 봄날 너희에게 주마 아이들에게

 

사는 것도 그렇다. 생활의 무게감이 없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 있어 곤혹스럽고, 생활의 고단함에 허리가 꺾일지언정 두발은 땅속 깊이 단단히 박힌다. 어디 오도 가도 못하지만 헛다리짚지 않는다. 집단린치 또는 민간요법

 

과거의 나에 대해 이런저런 평론을 하다가 그립다 못해 아름다워져버린 내 과거를 더 이상 표절하진 말자 싶었어요. 멀고 먼 미래의 내가 표절하고 싶은 지금을 살아야지 싶었어요. 오늘 하루부터

 

시는 못 되겠지만 가슴 아픈 시구절 하나는 될 수 있을까

소설은 못 되겠지만 아름다운 문장 하나는 될 수 있을까 내 하루

 

 

게다가 세 번째 책인 <오늘 하루>에 와서 하재욱은 글까지 늘었다. 그 동안 하루 연작의 장르를 카툰포엠으로 보았다. 0.7mm 국민볼펜 모나미로 쓱쓱 스케치해 스캔한 후 컴퓨터로 채색한 그림에 마지막이 제목이자 반전인 짧은 글을 덧대 놓았으므로. 한 살 더 먹은 만큼 여성호르몬이 늘어났거나 숨겨왔던 솜씨를 이제 드러낸 것일 수도 있으나 <오늘 하루>에 실린 글 중엔 긴 글도 꽤 많고, 정색하고 진지하게 읽게 되는 글도 좀 있었다(‘그림에세이로 수렴하려나). 세권 다 작업방식은 같은데 채색이 좀 다른 그림들이 좀 있다. 아니면 출판사가 달라져 콘셉트 자체가 달라진 건가 제목도, 소제목도, 글도 길어지고 비슷한 듯하지만 낯선 감성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소재는 여전히 가족과 직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샐러리맨 40대 초반 가장의 일상이지만. 하루 연작을 계속 읽고 있거나, 이참에 모두 읽으려고 계획 중인 독자는 이 미묘한, 그림과 글의 변화를 알아채보길

  

 

남자는 문제 해결자여야만 할까, 한국 남자는 위로의 주체여야만 할까, . 1년 동안 시중에 나온 위로’, ‘힐링과 관련한 온갖 책들을 최선을 다해 읽고 훑고 외우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으레 토닥이는 남자(작가)와 토닥임을 받는 여자(독자)’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토닥임이 간절히 필요했던 남자도 어떻게든 괜찮아지고는 자신이 위로받는 글보다 자신이 위로하는 글을, 남자보다는 여자를 챙기며 책을 쓴다. 마음이 힘든 건 사람의 문제고 실제 생물학적으로도 남자가 더 감성적임에도 으레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스스로 털고 일어나게. 그래서 <오늘 하루>를 비롯한 하재욱의 하루 연작이 반가웠고, ‘한국’ ‘남자들에게 많이 권하였다. 같은 시대를 견뎌나가는 소회가 있고, 소년에서 남자가 된 모든 한국 남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있다. 간 괴롭히며 소주 털어놓고 있는데, 어떤 털 숭숭난 아재가 다가와서는 던지고 초록병 뺏어가는 느낌의 책이다. 그거랑 같은 건데 속 안 아픈 거야.


 

대부분 정신없이 보낸 평범한 날이었지만, 그 하루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보면 다시 만날 수 없어 그립고, 이제껏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하재욱의 하루 채록은, 그 글과 그림이 주는 위로는 ‘하루’ 그 자체 같다. 그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주 진국인데 책만 펴보면 넘어가는데, 외양이 너무나 소박해서, 쉽게 남들을 홀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 그의 ‘라이프 스케치’ 하루 연작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하루’만큼 ‘남의 하루’를 존중하는, 그래서 ‘우리의 삶’을 애틋하게 아끼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점점 발견되라고. 사실 하루 연작 외에도 하재욱은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린다. 예명과 연재처도 여럿이라 여기저기서 그의 그림과 마주친다. 그럼에도 하루 연작에 가장 눈과 마음이 간다. 하루 연작이 그의 그림 중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해서일까, 그 현실의 하루하루를 사는 중인 한 보통 사람에겐 아무튼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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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서종한 지음 / 학고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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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사람을 살리는 개설서국내 최초 심리부검서

 

 

 

심리부검으로 자살 원인을 밝히면 예방책을 더 정확하게 짤 수 있다 - 토머스 조이너(플로리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p.97)

 

 

평소 범죄수사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다물론 무엇을 베꼈고 어떤 클리셰를 쓰는지도 보지만가장 큰 이유는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의 비자연사를 이 감독과 작가는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구경하며특히 살면서 직접 접하지 못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나름대로 생각에 빠지기 위해서이다현실과 드라마의 간극을 가늠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그 중 인간이 사력을 다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평생 천착하는 주제다.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우리의 자살 이해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사랑도 종교도 그 어떤 것도 책임과 의미가 되지 못하게 된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을걸까. ‘자살생존자라는 용어가 있다부모자녀애인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겪는 자살로부터 남겨진 느낌이 너무나 커서 하루하루 생존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자살고위험군의 일종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살에 대해 자신감에 차 있었다삶에서 자살을 끊어내는 방법에 대해 강한 확신이 들었고자살 실패자이자 자살 구조자였던 경험을 살려 책을 쓰는데 어떤 사람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고 원고를 지워버렸다행복전도사 최윤희의 자살이었다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학연이 있어 그가 어떻게 상담가로 변신해 행복전도사로 인지도를 다져나가는지를 실시간으로 보고 들어왔기에 당황스러웠다그 때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이지만일찍부터 남을 돌보는 일과 인연이 깊었고사회과학을 전공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그의 자살과 그가 앓던 병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에 대해 경험보다는 공부의 세계로멀리 떨어져 있되 섬세하게 보는 계기가 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심리부검>은 어떤 책을 무척 감명 깊게 읽고 그 책을 낸 학고재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샅샅이 살피다가 알게 된 책이었다개념을 보고 흥미로워서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2008년 처음 심리부검 보고서가 검찰과 법원 참고자료로 제출된 적이 있었고 2013년에는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에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심리부검 첫 사례가 있었다보건복지부는 심리부검체계구축을 위해 2014년 연 10억 예산 규모의 중앙심리부검센터를 개소하고 올 초 사업 기간을 2년 연장하였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니만큼 성과만 좋다면 정식 기구화되고 심리부검도 제도화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부검>의 저자도 이번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당연히 참여했을 줄 알았는데 캐나다에 있어서인지 관련 뉴스에 이름이 없다.


교양서 형태로 출간했긴 하였지만 사실상 국내 최초 심리부검 개설서이다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심리부검에 대한 책을 계속 내려고 한다아직 박사학위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리부검 경험과 공부량이 많은 사람이다. 2007년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2008년 국내 최초의 심리부검 보고서를 쓴 사람도 저자다그 후 6년 동안 보건복지부와 아주대학교와 협력해 심리부검과 자살을 연구하였고 전 미국자살예방협회회장이자 법심리학자인 자살학의 권위자 레니 버먼의 심리부검 자격전문교육을 이수한 한국인 최초의 인증 받은 심리부검 전문가이다나름대로 심리부검 운영 계획안을 만든 적도 있고 2013년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표준화된 심리부검 프로토콜 완성을 목표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처음 책의 구성을 봤을 땐 유품정리인이 쓴 고독사 사례집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가 쓴 법의학 사례집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의 심리학 버전이라고 생각하였다하지만 책을 읽으며 얼마나 표시를 하고 공부를 했던지 모른다아직 박사 학위 과정이고 그가 원하는 만큼의 연구 정립에 도달하지 못해서인지 첫 책은 이런 구성이 최선일 수 있겠다하지만 심리부검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가 굉장히 제한적인 우리나라다. <심리부검>은 일반 출판사에서 나온 최초의 심리부검서이고 사례연구집의 구성 사이사이에 심리부검의 현황과 방법론 및 과제들이 충분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개설서로 손색없었고 존재만으로 소중한 책이었다(심리학 학술서 전문 출판사 학지사에서 2014년 말 자살학의 아버지 에드윈 슈나이드먼의 심리부검 인터뷰집을 번역한 적이 있다현재는 심리부검에 대해 읽을 수 있는 한글책은 2권밖에 없는 셈)

  

심리부검은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와 그의 자살생존자와의 면담을 통해 자살 원인을 찾는 것이다그야말로 심리를 부검하는 것인데 부검 대상이 죽었기 때문에 자료와 주변인을 간접적으로 부검한다. 1934년에서 1940년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적으로 자살하는 사건을 계기로 자살 원인 규명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심리부검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1958년 LA 부둣가 추락 사건에서 심리부검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고 법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이다미국 자살예방협회를 중심으로 에드윈 슈나이드먼토머스 조이너레니 버먼이 주요 권위자이며 미국캐나다핀란드 등이 도입하였다심리부검의 주 소비자는 법원과 경찰보험사이며 북미에선 판결과 수사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심리부검은 단순한 과학적심리적 수사 도구를 넘어 자살로 위장된 타살을 찾아내고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조명 받고 있다예를 들어 주저흔과 방어흔을 구별하고목을 맬 때 줄을 감는 횟수에 대한 것도 대표적인 심리부검의 성과이다자살자의 흉터는 공포에 대한 저항과 고통에 대한 적응이 섞여 패턴화되거나 반복적인 깊은 주저흔을 보이는 반면 타살에 의한 흉터는 일관성 없는 자해 흉터와 그에 대해 사망자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다 생긴 방어흔을 보인다목메 자살한 것처럼 위장된 시체는 목을 한번밖에 안 감은 반면진짜 자살한 시체는 자신의 목숨을 확실히 끊기 위해 두 번 이상 감는다심리부검은 그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자살 사례 분석을 통해 자살과 자살의 징조를 유형화한다.

  

토머스 조이너 같은 경우 자살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인 자살 위험성 평가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는데 서종한은 다시 한국에 맞는 고위험군  분류 프레임워크(자살 위험 프레임워크)’를 만들었고 <심리부검>에서 소개하고 있다책 가장 앞장에 실린 자살 위험 자가진단 플로차트와 책 뒷부분의 고위험군 프레임워크’ 결과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재밌으면서 재밌지 않을 수 있다전자에서 자살과 거리가 멀다고 나온 사람들마저 고위험군 프레임워크에서 걸리는 항목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스트레스 환경에 놓여 있으며 자살에 취약한지 새삼 놀라고 깨달았다저자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심리부검 프로토콜도 실어놓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완성될지 무척 기대된다.

가짜 유서와 진짜 유서를 구별하고진짜 유서를 다시 유형화하는 대목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LIWC 프로그램 사용 등 문장 구성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이 방법론의 경우 심리부검 뿐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모든 학문과 산업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성조사법이고 어느 정도는 아예 계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컸다다만 저자도 걱정하지만 심리부검은 표준화하기가 까다롭고 역사가 아직 짧기 때문에 갈 길이 멀고아무리 잘 만든 보고서도 법관과 수사관의 자의적 해석배심원의 동요를 통제하는 문제가 남는다아무튼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었다일생의 이론을 먼저 세우고 나중에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던 로고테라피의 빅터 프랭클이 떠오르기도 해서그가 박사학위 받을 날이 기다려지고 그가 한창 만들고 있다는 <심리부검 핸드북(가제)>도 궁금해졌다

  

올 초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012년에서 2015년 자살 사망자 121명을 심리부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자살자의 93.4%가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내고88.4%는 정신질환자라며 신호를 알아차리고 정신질환 시 꾸준한 치료가 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심리부검>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뒤 살아남을 경우 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한다자살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자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생각했을 때 자살 예방과 자살 구조심리부검은 매우 중요하다자살을 무조건 이기적으로 볼 수 없다고타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자살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타살성 자살도 많다는 것이 잊히지 않는다책 뒤표지의 이 말로 서평을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갈음한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유족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며,

국가적으로는 자살 예방을 위한 필수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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