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루스 오제키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 루스 오제키





어린 시절 TV, 영화, 책 등 여기저기서 보고 바다만 가면 빈 유리병에 편지를 써서 그렇게 던졌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나 다른 어른이 쓰레기 투기한다고 등짝 때리러 쫓아오시곤 하였다. 멈출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동무들에게 얘기를 꺼내면 다 같은 생각이었다. 왜 한국은 외화의 어린이처럼 큰 나무가 있거나 근처에 큰 숲이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무 위에 아지트를 못 짓는지 울분을 토하면서 유리병 편지라도 해야지 평등한 세계, 지구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러는 먹어서 생산하고, 더러는 분리수거함을 얻은 투명한 빈 유리병에 편지를 넣었다. 바다가 문제였다. 하천이 있었긴 하지만, 하천에서 잘 떠내려가봐야 편지는 한국 사람이 줍게 될테니 슬펐다. 이국 사람이 내 편지를 받겠다는 생각을 접고 사랑과 우정의 낭만적 선물로 서로 유리병을 교환하는 데는 몇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소설에선 유리병으로 밀봉된 편지가 아니라 비닐로 꽝꽝 밀봉된 헬로키티 도시락통이 등장한다. 캐나다 해변가에서 루스는 그걸 발견한다. 도시락통 안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어판이 담겨 있었는데 펼쳐보니 본문은 간데 없고, 속을 다 뜯어낸 뒤 노트로 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트엔 일본인 소녀 나오의 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루스가 나오의 일기장을 받은 건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염려가 극에 달한 때. 그럼에도 호기심에 나오는 일기장을 한장 두장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할머니와 사이가 좋은 중학생 여자애의 평범한 수다 같았다. 하지만 지코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가미카제 강제징집으로 자살'당한' 아들 하루키1번 때문에 평생 고통을 달래며 승려가 된 초장수노인이었다. 나오에게는 끊임없이 자살'하고 싶어하는' 히키코모리 아빠 하루키2번이 있다. 지코와 나오의 나이를 초월한 의지는 자살했거나 할 것 같은 하루키 놈들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건 나오이다. 끔찍한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나오가 수취인불명으로 일기장을 흘려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알리려 한다는 점에서 나오는 이 일기장을 볼 당신이 내 하느님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일기가 씌어진 시점은 과거이다. 이 일기장은 일종의 '과거로부터 온 구조 요청'이다. 루스는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오와 그 주변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과연 캐나다의 소설가가 일본의 중학생을 구할 수 있을까.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인연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무슨 의미가 될까.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일본의 대지진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과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이긴 하지만,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는 것,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 고민을 겪는 왕따 아이가 등장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였다. 소재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으며 수출되고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에게 이 소설이 안겨다 준 명성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읽으면서 작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써야만 했던 소설이란 느낌을 내내 받아서 그 뿌듯함이 더 크지 않았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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