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 - 1996 보스턴 글로브 혼북 대상 수상작 상상놀이터 8
애비 지음, 원유미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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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작고 연약한 주인공이 사악한 악당을 이기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아동문학의 전형적인 모티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아동문학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새롭게 나오고 있으며, 여전히 사랑받는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작고 약한 주인공에게 일체화를 느낄 수 밖에 없는 데다가, 뻔한 이야기라 생각되어 읽기 시작하지만 그 뻔함을 비트는 요소들을 만나면 오히려 더 재미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파피

애비 글 / 원유미 그림

보물창고


딤우드 숲 속. 이야기의 시작에는 작은 생쥐 두 마리가 등장한다. 파피와 래그위드. 원어로 보면 Poppy, 양귀비꽃 이라는 이름과  ragweed, 돼지풀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두 마리 생쥐를 바라보는 한 마리의 수리 부엉이도 있다. 이름은 미스터 오칵스. 



파피와 래그위드는 친구처럼 보인다. 래그위드가 파피를 '자기' 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더 친밀한 사이일 수도 있다. 이 숲에서는 미스터 오칵스의 허락없이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은 무슨 이유인지 허락없이 넓은 공터로 왔다. 숲을 다스리는 것이 수리부엉이라고 생각하는 파피는 두려워하며 계속 돌아가자고 하지만, 래그위드는 파피에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몰라' 라고 지적하며 두려워할 것 없다고 이끈다. 그러나 곧 래그위드는 지켜보던 수리부엉이에게 잡아 먹혀버린다. 밤톨군은 "응? 주인공 아녔어? 벌써 죽어버리다니. 부엉이 나빴어~!" 라고 중얼. 사실 나도 래그위드의 대사들을 곱씹고 있던 터라 초반에 사라져버린 것에 놀라긴 했다. 주인공 파피를 성장시키기 위한 전형적인 클리셰 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읽는 이에게는 미스터 오칵스가 저절로 공동의 적이 되어버린다. 초반부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어버린 것.


미스터 오칵스가 파피를 마저 잡으려고 달려들지만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다. 수리 부엉이가 생쥐를 쫒는 장면은 생생한 묘사 덕분에 더욱 긴박감이 넘친다. 간신히 인간이 버리고 간 낡은 집, 그레이 하우스라는 생쥐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오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레이 하우스에 사는 생쥐 가족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근방에서 더이상 충분한 식량을 조달하기 어렵게 된 것. 그래서 생쥐들은 미스터 오칵스에게 근방에 새로 생긴 뉴하우스로 이사할 수 있도록 허락 받기로 한다. 왜 생쥐들이 부엉이에게 허락을 받게 된 걸까?


파피의 아버지이자 생쥐들의 대장인 렁워트는 미스터 오칵스가 생쥐를 잡아먹는 나쁜 무리, 특히 고슴도치로 부터 생쥐들을 보호해주고 있으며, 그 대가로 미스터 오칵스를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그레이하우스를 벗어날 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생쥐들은 실제로 고슴도치를 본 적은 없으나 미스터 오칵스의 말대로 가시를 쏘아 생쥐를 잡은 후 조각조각 내어 먹는 사악하고 교활한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외부에서 온 생쥐였던 래그위드는 언제나 그런 생각들에 반기를 들며 질문을 하던 생쥐였었다. 왜 오칵스라는 작자에 대해 두려워해야하는가. 왜 오칵스는 그런 것을 요구하는가. 왜 오칵스는 고슴도치와 생쥐를 구분하지 못해서 우리의 안전을 침해할 수 있다고 하는가 등. 그의 의심은 타당해보였으나 다른 생쥐들은 그의 의심이 늘 불편했었다. 파피는 래그위드가 사리지고 나서야 그가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마음 속에 작은 의심의 씨앗이 싹튼 것.


생쥐 무리들의 대표단이 미스터 오칵스에게 이사에 대한 허락을 구하자, 그는 파피가 자신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파피는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사를 가지 않으면 미스터 오칵스가 얻을 수 있는게 뭐지?" 라고 생각해본다.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고학년쯤 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안다. 이들을 위한 동화에서도 이제 주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파피는 뉴 하우스에 무엇이 있을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한다. 두렵지만 큰 용기를 낸다. 


작은 생쥐 파피가 뉴 하우스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을 더 키운다. 여우를 피하다가 고슴도치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고슴도치를 직접 만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진실을 깨닫게 된다. 파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을 깨달으며 계속 성장한다.  




단지 네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 작자가 하는 마을 전부 믿을 필요는 없단다


- 제13장, 이른 아침, p150, 고슴도치 에레스의 말 중에서 


파피가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들은, 그녀의 모험을 함께 하는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당한 권위라는 것에 대해, 말로만 전해들었던 소문의 이면에 있을 진실에 대해, 용기에 대해..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뉴베리 상' 을 세 번이나 수상한 글 작가의 내공은 이 책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보스턴글로브 혼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익숙한 소재 임에도 중간중간 허를 찌르는 전개라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유머코드라던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참 좋다. 


다시 표지를 들여다 본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사 눈에 들어온다. 파피의 귀걸이, 파피가 손에 들고 있는 바늘처럼 보이는 어떤 것. 파피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것들. 초반에 사라졌지만 끝까지 존재감을 잃지않는 래그위드라는 생쥐의 흔적. 표지의 보이는 것들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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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비「」밀「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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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로 주목을 받으며 일본 문단에 등장했던 작가. 다른 필명으로 투고 웹사이트에 올렸던 글이 인기를 끌면서 이후 책으로 출간되었고 영화화까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되었다. 이후 작가는 꾸준히 다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번의 새로운 신간을 만났다. 




나만의 비밀

스미노 요루 지음

소미미디어


표지의 다섯 소년, 소녀들. 소설의 구성도 다섯명의 등장인물 각각이 화자가 되어 각 장을 이끌어간다. 덕분에 같은 사건을 여러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한가지씩 가지고 있다. 자신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능력을 상대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유추해보고는 한다. 물론 그 능력이 만능은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표지의 인물들이 궁금해서 각자의 능력을 말풍선에 메모해서 한번 정리해보았다. 정리하면서 이제야 알아챈 사실인데, 각 장의 제목에 화자의 능력에 대한 힌트가 있었던 것! 


주인공들의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정리해 본 능력들. 


쿄라는 소년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물음표, 온점, 느낌표 등으로 상대의 감정을 느낀다. 밋키라는 소녀는 사람들의 감정이 +, -  로 기우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파라라는 소녀는 4초후 상대의 심박수를 느낄 수 있다. 



즈카라는 소년은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하트, 클로버 등의 기호로 상대의 기분을 느낀다. 다이아몬드는 분노, 스페이드는 기쁨 하트는 즐거움. 이런 식으로 이름 붙였다. 엘이라는 소녀는 상대의 관심이 향하는 화살표를 볼 수 있다. 


이 다섯인물들이 서로 얽히며 보여주는 풋풋한 감정, 고민 그리고 갈등. 이들은 모두 성장하면서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는다. 내게는 부족한 어떤 것을 다른 친구에게서 발견하고 부러워하면서 서로 조금씩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 과정이 촘촘하게 짜여있어 책을 덮으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친구를 부러워해보지만, 정작 그 친구는 미래를 너무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가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고 고민하지만, 오히려 다른 친구는 그 친구의 신중함 덕에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늘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처럼 보이는 친구는 스스로가 매우 차가운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정작 재미있어 보이려는 모든 것을 계산해서 행동하느라 지쳐있다. 


내가 외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편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이며, 영어는 배워두면 도움이 되는 도구니까 가족을 편히 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그걸로 충분하다며 진로를 정했다. 그러니 말하자면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서 낸 결론이 아니었다. 그냥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으로 정하고 말았다. 흥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르고 고른 것은 아니다. 잘애에 대해 충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 비해 곰곰히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엘 쪽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p185, 즈카


-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따윈 없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면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기능 같은 것으로, 내가 차가운 인간인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 네가 재미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내 발언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재미있다고 생각되겠지라고 계산해서 말하는 거야. 네가 재미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내 행동은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거라 노리고 한 행동이고. 


p161, 파라


- 어째서 나한테는 사람들의 좋아하는 마음이 보이는 걸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 아쉽지만 이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응원 정도였다. 내가 아니라 좀 더 귀엽고 밝은 아이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신도 보는 눈이 없다.


p265, 엘




어쩌면 작가가 이 인물들에게 부여한 능력은 어떤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닐지도.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둘러싼 것들을 판단하고 배우고, 흡수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는 상대의 표정을 읽고, 누구는 상대의 목소리의 톤을 판단하며, 누구는 눈빛을 읽는 것처럼. 작가는 그런 것들을 조금 특별하게 그려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소년, 소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문득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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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어디에나 있지 아트사이언스
브리타 테큰트럽 지음, 이한음 옮김 / 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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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지식에 눈도 황홀한 일러스트. 매력적인 지식정보그림책. 숨은 그림찾기의 재미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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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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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만나는 무민마을 '가을'의 정취. 생각해보니 전 무민 소설은 살짝 계절을 빗겨서 읽게 되는 듯 합니다. 지난 여름에는 무민마을의 겨울을 느꼈었거든요. 특이한 생명체를 만들어 남동생을 골려 주려고 시작된 이 무민 이야기는 이제 세계적인 판타지 동화가 되었답니다. 총 8권의 무민 연작 소설에서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마지막 에피소드이기도 한지라 지금의 계절과 관계 없이 궁금함에 얼른 책을 펼쳤다지요. 토베 얀손은 이 시리즈로 1966년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할 국제 안데르센 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지음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08

232쪽 | 312g | 128*188*20mm

작가정신




8권의 무민 연작 소설


이 작품은 1970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작가의 어머니 싱느 하마스텐-얀손(Signe Hammarsten-Jansson)이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무민 가족이 외딴 등대섬으로 떠난 뒤 텅빈 무민 골짜기의 이야기로, 무민 가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에피소드 입니다. 7권  『무민파파와 바다』 와 함께 진행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민 가족은 등장하지 않아도 개성있는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밤톨군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한, 고독을 사랑하여 늘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스너프킨부터 필리용크, 밈블, 훔퍼 토프트, 헤물렌, 그럼블 할아버지까지 여섯 명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와 지인들이 좋아하는 꼬마 미이가 등장하지 않아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요. 



  무민, 그리고 꼬마미이 팬 인증..


어머니를 잃은 작가의 상황이 투영되서 인지 나오는 이들은 어떤 것들을 잃거나 잊어 결핍된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엄마를 찾는 홈퍼 토프트의 말들은 당시 작가의 마음처럼 읽히기도 한다죠. 토프트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무민마마를 이상적인 엄마라고 생각했거든요.


무민마마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흠 잡을 데 없는 어른이고 상냥하며 위로가 되는 무민마마가 얼굴도 없이 커다랗고 둥글고 매끄러운 풍선처럼 떠오르기만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민 골짜기는 온통 진짜가 아니라 집도 정원도 강도 모두 화면 위에 떠오른 그림자극 같기만 했고,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상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토프트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나머지 이제 화가 날 정도였다. p228


무민 골짜기와 행복한 가족 이야기는 빛바래 사라져 버렸고, 무민마마 생각도 저만치 떨어져 나가 너무 낯설어진 나머지 무민마마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p230



다른 이들도 불안을 다독이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민가족을 찾아왔지만 무민가족은 떠나고 없었죠. 결국 무민가족이 떠나버린 빈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투닥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무민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무민 가족의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헤물렌은 무민파파를 따라하고, 필리용크는 무민마마 역할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 무민 가족은 아침 커피는 늘 베란다에서 마신단다. 하지만 손님, 특히 처음 온 손님한테는 바로 이 거실에서 커피를 대접하지. p47. 헤물렌


- 무민마마는 요리할 때 휘파람을 불곤 했어. 조금 제멋대로이기도 했고......p140, 밈블


- 무민 가족은 기분이 우울하거나 화가 나서 혼자 있고 싶을 때 뒤뜰로 갔지. <중략> 무민파파랑 무민마마랑 무민은 가끔 서로를 무척 지겨워했어. p173, 밈블



원제는 '무민 골짜기의 11월' 입니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곧 눈으로 뒤덮일 일만 남은 늦가을의 정경을 떠올립니다. 황량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이 가을을 지나 겨울을 견디고 나면 다시 봄이 찾아오게 되겠죠. 무민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테구요.


이제 무민 그림책에 이어 무민 소설도 섭렵했으니 남은 건 무민 코믹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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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8 친구 - 2019 가온빛 추천그림책 모두를 위한 그림책 18
다비드 칼리 지음, 고치미 그림,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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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암호인가 잠깐 생각했습니다. 혹시 암호라도 풀어야하나. 연필을 준비하고 책상에 앉습니다. 책을 펼치자 표지의 글자색과 같은 형광주황색의 면지가 눈 앞을 환하게 합니다. 형광색은 「데이글로 형제」가 발견했다던데.. 얼마전 밤톨군이 읽고 있던 인물그림책을 떠올리며 피식 웃습니다. 또 한장을 넘깁니다. 





내 친구는 4,998명이나 돼요.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습니다. 이런 매력덩어리 작가 다비드 칼리!! 라고 외쳤죠. 다시 표지를 보니 '잠시 잠수중' 이라는 태그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만 보고 덥썩 집어든터라 그림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만나면 이런 재미가 있군요. 꺼내두었던 연필은 조용히 집어넣습니다. 

네. 이 정도면 다들 눈치채셨다시피 SNS 에서의 친구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소셜 네트워크에 빨리 진입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림책으로는 저는 처음 만나보는 것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이 그림책의 서사는 흥미진진하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히 온라인에서의 내 친구들이 어떤지 이야기합니다. 그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일 수도 있고, '인스타'일 수도 있고, 그 다른 어떤 것일수도 있겠죠. 내가 공개한 어떤 정보와 이미지들로 취미나 관심사가 같으면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누르고, 가끔 덧글을 답니다. 과거 PC 로만 접근했던 시절에 비해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로 더욱 쉬워진 친구맺기. 그저 손가락 클릭 한번으로 맺어지는 관계들. 그러나 시작이 쉬운 만큼 끝내는 것도 쉬운 관계.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시공간적 제약없이 폭넓은 관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어느 단계 이상의 공감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거리감이 늘 존재합니다.

그림책 속에서는 흐릿한 형체로, 빛을 잃은 듯한 색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청소년이거나 성인이거나. 

이 책이 속한 시리즈가 '모두를 위한 그림책' 인 것을 보면 성인일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해봅니다. 주인공은 친구가 많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어떤 친구는 왜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의 생일을 잊은 친구도 많고, 주인공이 친구의 생일을 잊은 적도 많았죠. 메시지에 대한 덧글도 마찬가지였죠.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에게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주인공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한 명이 집으로 찾아옵니다. 

지금 내 친구는 한 명이에요.




과거 싸이월드로 대표되었던 국내 SNS는 외국에 비해 반 정도는 '닫힌' 네트워크를 지향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이웃' 과 '서로이웃' 이라는 개념을 둔 것처럼요.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을 보면 그냥 친구 단계는 친구 단계 하나입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아는 지인으로만 친구를 맺기에는 '좋아요' 를 더 받고 싶게 되죠. 이런 '열린'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여러 정보보안의 문제를 발생하기도 하는데 페이스북에서 주인이 휴가 중인 것을 알아채고 도둑이 든다던가, 누군가를 늘 지켜보며 스토킹을 한다던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 그림책에서 다루고 있는 친구관계의 네트워크는 이런 '열린' 네크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갑자기 본업 IT 분야가 나오니 뭔가 상세한 설명으로 들어가버렸네요. 그림책 속에서 찾아온 친구가 원래부터 아는 친구였던가 온라인으로 맺어진 친구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건가 생각해보다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뻗어가버려서요. 

어떻게 만나게 된 친구인 것이 뭐가 중요할까요. 이들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함께 먹으며 '친'해졌습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형광주황빛의 같은 티셔츠를 입은 모습도 의미심장해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색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주인공과 파장이 맞는 어떤 색이라는 그런 의미로 다가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늘 이야기되죠. 그런데 그 사회가 참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보니 삶에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오프라인 삶과 온라인 삶이 존재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두 가지가 전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도 마지막 장에서 느끼게 됩니다.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이다. 라는 결론이 아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렇게 오프에서 만난 이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역시 스마트폰. SNS를 보는지, 게임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아이들을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려면 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땀을 흘리며 농구라도 하고 있어야 했을테니까요. 

책의 크기는 스마트폰보다는 큰, 작은 태블릿 사이즈 입니다. SNS 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책에 더욱 어울리는 판형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처음에 '당신의 친구는 몇 명입니까' 로 제목을 적고 시작했던 글을 이제 '당신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로 바꿉니다. 책을 덮으며 친구란 어떤 것인가. 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거든요. 제게도 그림책이란 공통 관심으로 온라인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이 있군요. 온라인에서의 공감은 결국 오프라인 모임으로 확장되고는 합니다. 온라인의 글로만은, 연출된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 시선을 느끼고 더욱 가까워지는 분들이 생겼어요.  이 그림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하면서 '나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는가' 부터 시작해서 '나는 친구에게 어떤 친구인가' 까지도 생각해보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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