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8 친구 - 2019 가온빛 추천그림책 모두를 위한 그림책 18
다비드 칼리 지음, 고치미 그림,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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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암호인가 잠깐 생각했습니다. 혹시 암호라도 풀어야하나. 연필을 준비하고 책상에 앉습니다. 책을 펼치자 표지의 글자색과 같은 형광주황색의 면지가 눈 앞을 환하게 합니다. 형광색은 「데이글로 형제」가 발견했다던데.. 얼마전 밤톨군이 읽고 있던 인물그림책을 떠올리며 피식 웃습니다. 또 한장을 넘깁니다. 





내 친구는 4,998명이나 돼요.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습니다. 이런 매력덩어리 작가 다비드 칼리!! 라고 외쳤죠. 다시 표지를 보니 '잠시 잠수중' 이라는 태그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만 보고 덥썩 집어든터라 그림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만나면 이런 재미가 있군요. 꺼내두었던 연필은 조용히 집어넣습니다. 

네. 이 정도면 다들 눈치채셨다시피 SNS 에서의 친구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소셜 네트워크에 빨리 진입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림책으로는 저는 처음 만나보는 것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이 그림책의 서사는 흥미진진하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히 온라인에서의 내 친구들이 어떤지 이야기합니다. 그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일 수도 있고, '인스타'일 수도 있고, 그 다른 어떤 것일수도 있겠죠. 내가 공개한 어떤 정보와 이미지들로 취미나 관심사가 같으면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누르고, 가끔 덧글을 답니다. 과거 PC 로만 접근했던 시절에 비해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로 더욱 쉬워진 친구맺기. 그저 손가락 클릭 한번으로 맺어지는 관계들. 그러나 시작이 쉬운 만큼 끝내는 것도 쉬운 관계.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시공간적 제약없이 폭넓은 관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어느 단계 이상의 공감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거리감이 늘 존재합니다.

그림책 속에서는 흐릿한 형체로, 빛을 잃은 듯한 색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청소년이거나 성인이거나. 

이 책이 속한 시리즈가 '모두를 위한 그림책' 인 것을 보면 성인일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해봅니다. 주인공은 친구가 많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어떤 친구는 왜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의 생일을 잊은 친구도 많고, 주인공이 친구의 생일을 잊은 적도 많았죠. 메시지에 대한 덧글도 마찬가지였죠.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에게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주인공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한 명이 집으로 찾아옵니다. 

지금 내 친구는 한 명이에요.




과거 싸이월드로 대표되었던 국내 SNS는 외국에 비해 반 정도는 '닫힌' 네트워크를 지향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이웃' 과 '서로이웃' 이라는 개념을 둔 것처럼요.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을 보면 그냥 친구 단계는 친구 단계 하나입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아는 지인으로만 친구를 맺기에는 '좋아요' 를 더 받고 싶게 되죠. 이런 '열린'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여러 정보보안의 문제를 발생하기도 하는데 페이스북에서 주인이 휴가 중인 것을 알아채고 도둑이 든다던가, 누군가를 늘 지켜보며 스토킹을 한다던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 그림책에서 다루고 있는 친구관계의 네트워크는 이런 '열린' 네크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갑자기 본업 IT 분야가 나오니 뭔가 상세한 설명으로 들어가버렸네요. 그림책 속에서 찾아온 친구가 원래부터 아는 친구였던가 온라인으로 맺어진 친구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건가 생각해보다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뻗어가버려서요. 

어떻게 만나게 된 친구인 것이 뭐가 중요할까요. 이들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함께 먹으며 '친'해졌습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형광주황빛의 같은 티셔츠를 입은 모습도 의미심장해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색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주인공과 파장이 맞는 어떤 색이라는 그런 의미로 다가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늘 이야기되죠. 그런데 그 사회가 참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보니 삶에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오프라인 삶과 온라인 삶이 존재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두 가지가 전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도 마지막 장에서 느끼게 됩니다.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이다. 라는 결론이 아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렇게 오프에서 만난 이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역시 스마트폰. SNS를 보는지, 게임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아이들을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려면 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땀을 흘리며 농구라도 하고 있어야 했을테니까요. 

책의 크기는 스마트폰보다는 큰, 작은 태블릿 사이즈 입니다. SNS 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책에 더욱 어울리는 판형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처음에 '당신의 친구는 몇 명입니까' 로 제목을 적고 시작했던 글을 이제 '당신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로 바꿉니다. 책을 덮으며 친구란 어떤 것인가. 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거든요. 제게도 그림책이란 공통 관심으로 온라인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이 있군요. 온라인에서의 공감은 결국 오프라인 모임으로 확장되고는 합니다. 온라인의 글로만은, 연출된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 시선을 느끼고 더욱 가까워지는 분들이 생겼어요.  이 그림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하면서 '나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는가' 부터 시작해서 '나는 친구에게 어떤 친구인가' 까지도 생각해보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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