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46
김소월 지음, 이주영 엮음, 천은실 그림 / 현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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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저절로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게 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런데 이 동요는 모두가 알아도 정작 김소월의 시가 가사라는 것은 잊곤 한다. 나도, 밤톨군도 마찬가지였다. 표제인 「엄마야 누나야」 외에 15편의 시가 일러스트와 어우러지는 시그림책 한 권을 펼친다.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시, 이주영 엮음, 천은실 그림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 46 
36쪽 | 360g | 270*217*7mm | 2021년 02월 
현북스


나는 아이가 초등학생 때도, 지금의 중학생 때도 아이의 교과서를 종종 들여다보곤 한다. ( 내가 학생때는 몰랐건만 요즘 교과서는 정말 잘 만들었고, 재미있다! ) 중학 국어의 첫 단원은 대부분 '문학' 분야로 시작하는데, 그 시작이 또한 시다. 교과서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밤톨군네 학교의 교과서로는 1학년 때 윤동주의 「서시」가, 그리고 지금 2학년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수록된 것들을 교과서의 공부하는 제재로서만 만나지 말고, 즐길 수 있는 문학으로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 나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마치 종이를 잘라 붙인 듯한 느낌의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배경으로 세밀하게 자리한 일러스트들은 시와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채도가 낮은 색의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수채화를 즐겨 그리며 다양한 분야의 그림작업을 해왔던 천은실 작가는 시어의 이미지를 그림에 잘 녹여냈다. 내 경우 천은실 작가의 일러스트는 그림책보다도 인디고 출판사의 아름다운 고전시리즈의 아기자기한 삽화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그림책으로 만나보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김소월 시그림책에 수록된 시의 표기는 1925년 초판본 「진달래 꽃」 과 그 후 여러 사람이 현대어로 바꿔 쓴 여러가지 김소월 시집을 비교해보면서 되도록 언어 감수성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부분은 되도록이면 원문을 따랐다고 한다. 또한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를 고려하여, 한자를 우리말로 옮겼을 때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은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원문을 살린 시어 중 어려운 단어는 풀이가 따로 달려있다. 

 

김소월의 시에는 아련한 슬픔이 담겨있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민족시인으로서, 일제강점기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라는 점이지만, 이제는 시 자체가 주는 느낌을 오롯이 느껴보게 된다. 산책길에 보이는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맺은 것을 보며 이 시를 떠올린다. 자연은 봄이 되면 묵묵히 싹을 틔운다. 김소월이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희망을 노래했듯이, 우리도 지금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를 견디어내며 다시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새눈

 

섧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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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니? 에프 그래픽 컬렉션
틸리 월든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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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틸리 월든의 작품은 매 작품마다 섬세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2년 동안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살았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전작 「스피닝」 에서는 피겨 스케이팅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겪는 폭력과 따돌림, 첫사랑, 커밍아웃 등의 사건들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혼란스러운 성장기의 문턱을 넘어온 이들에게 아릿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듣고 있니?」 는 내면의 상처를 겪고 도피 중인 두 여성 비와 루의 우연한 만남과 짧고도 긴 여정을 그려내며 상실, 고통, 슬픔, 우정,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픽노블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윌 아이스너의 이름을 딴, 미국 최고의 그래픽노블에 주어지는 ‘아이스너 상’ 을 수상한 작품이다.

 

듣고 있니?
Are you Listening?
틸리 월든 글, 그림
에프

막연한 목적지로 가는 중인 것 같은 루와 누군가 또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비는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두 여성의 로드 트립은 유명한 로드 무비인 「델마와 루이스」 를 떠올리게도 했다. 루와 비의 여정에도 가는 곳마다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신비한 고양이를 시작으로, 그 고양이의 인식표에 써있는 서부 텍사스로 가는 길은 불안정한 세계로 변하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서 위협을 받으며 도망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그들은 길 위에서 점점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꺼내놓게 된다. 

 

  “치유와 회복력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 북리스트 (미국도서관협회)  
 

작가는 무게감 있는 텍스트를 절묘한 판타지에 녹여낸다. 일러스트는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초조하며, 어떨 때는 바람이 실제로 부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해 질 무렵의 어스름한 시간과 밤이 연상되는 색감을 활용해 두 인물의 심리와 변모하는 풍경의 불안정함을 다채롭게 표현하고도 있다. 또한 각 컷의 프레임도 인물의 혼란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어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인물들의 심리가 불안정해지면 이미지의 프레임도 녹아내리는 듯하거나 지그재그로 표현되며 불안정함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이런 섬세한 표현들은 읽는 이들이 그녀들의 여정에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만든다. 

 


그들이 도착한 서부 텍사스의 서부 마을은 무엇인가 모르게 신비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이가 건네는 말들은 이야기 내내 작가가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서부 텍사스는 크고 작은 게 완벽하게 섞인 곳이죠. 
땅, 하늘 ... 다 나름의 정신을 가졌죠. 나름의 마음도요. 

<중략>

모든 사람, 모든게 잠재적인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저 그걸 볼 수 있는 세상과 무리 가운데 서 있기만 하면 돼요. 

- 듣고 있니?, p254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혹은 놀라운 일이... 정말, 큰일이 생겼을 땐, 산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고, 하늘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 산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죠. 정말 잔혹한 일이에요. 
하지만 여기선, 모두 듣고 있어요. 

길도, 구름도, 나무도... 
당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어요. 
당신이 본 건 모두 스스로가 만든 거예요.
그걸 다시 못 보는 것도 그런 이유죠

- 듣고 있니?, p256

 

작가는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시작했다. 책을 펼치면서 어떤 의미인가 궁금했던 이 문장은 책을 덮고나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여행 안내서들은 기만을 다룬다.
바다는 정신적 속성이다.
지도는 모두 허구이며,
여행자들은 모두 서로 다른 개척지에 이른다.

- 에이드리언 리치, 「여정(Itinerary)」

 

여행의 끝에서 '좋은 여행이었다' 며 서로 헤어지는 그들의 뒤에는 '그냥 많은 땅들' 이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는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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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마 주니어 중학 국어 비문학 독해 연습 2 - 글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한 중학 숨마 주니어 국어 비문학 2
김영신 외 지음 / 이룸이앤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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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권을 풀기 시작한 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꾸준히 하기만 하면 부담없는 분량인지라 두번째 권도 부담없어 한다. 첫번째 권이 예비 중1~중1 단계로 제시되어 있으니 이제야 제 진도에 맞는 권을 풀게 되는 셈이다. 
 


숨마주니어, 중학 국어 비문학 독해 연습 2
중2~중3 대상
이룸이엔비


본문을 읽고 주어진 문제만 풀기 바빴던 처음과 달리 아이도 나도, 어느 정도 교재에 익숙해졌다. 첫번째 권은 녀석이 문제를 풀면 엄마가 채점을 해주며 오답을 체크하고 해답지의 해설로 짚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그러다가는 '자기주도학습' 이 아닌 부모가 주도하는 학습이 될 듯 했다. 이번 권의 목표는 '비문학 독해' 에 대한 실력 향상도 이지만 녀석이 스스로 계획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보는 것도 함께 연습해야 할 듯 하다. 

그 과정의 하나로 최근 방영된 EBS 의 [당신의 문해력] 을 밤톨군과 함께 봤다. 아이는 영상에서 제시된 테스트의 문항들을 자신도 맞춰보겠다며 도전하다가 모르는 어휘가 생각보다 많음을 깨달았다.


 

어휘를 익히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영어 단어를 외우듯이 어휘를 모아놓은 목록으로 외우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우리 어휘의 특성 상 한자를 함께 공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문장 속에서 ( 정확한 뜻은 알지 못하더라도 ) 문맥 상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일테다. "그래서 네가 비문학 독해를 풀고 있는 거야 " 라고 하니 이제야 녀석은 이 공부가 재미있어졌던 모양이다. 하루에 풀 분량을 넘어 더 풀겠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의 다섯가지 분야의 제재 중 아이는 [사회] 분야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나오는 단어들도 내용도 어렵게 느껴진다고. 그러나 정작 많이 틀리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예술] 분야라니 아이러니 하다. 


 

비문학 독해의 연습에 있어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문단의 요지, 주제 등을 분석' 하는 능력과 '목표 시간 내에 글을 이해하는 능력' 이다. 이 둘을 위해서는 당연히 '어휘력'이 따라줘야 한다. 각 글감 본문의 옆에는 아이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어휘를 따로 발췌하여 설명해두었다. ( 이는 정답지의 해설서에도 함께 나온다. ) 이전에는 이 어휘를 그냥 넘겼던 녀석이 방송을 본 이후에는 꼼꼼하게 체크한 흔적이 보인다. 

 


이 어휘들은 각 제재의 말미에서 따로 모아 테스트를 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앞서 공부한 지문에 나와있는 어휘들이므로 자연스럽게 복습이 된다. 국어 독해 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 어휘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문학 독해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방송에 따르면 실제로 학교 수업을 위해 필요한 어휘가 2,440 여개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기본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수업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막막해졌다. 분명 과거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을 아이들일텐데 말이다. 


'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어휘력에 관심을 가지기에 어휘력 관련 교재도 슬쩍 하나 마련해두었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던 유아시절, 그림책과 낱말 카드를 통해 우리 말을 배워가지 않았던가. 그때처럼 어휘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책놀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비록 그것이 교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녀석이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 가장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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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 숲 이야기 라임 그림 동화 27
스테판 키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라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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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떠 있는 밤, 푸르스름한 숲에 어슬렁거리는 커다란 동물이 어슬렁거린다. 자세히 보니 호랑이다. 개인적으로 호랑이를 좋아하는 나는 '호랑이와 숲' 이라니, 어떤 이야기일지 더욱 궁금해진다. 

 


 

GREEN : 숲 이야기 
VERT, Une histoire dans la jungle
스테판 키엘(Stephane Kiehl) 글, 그림 
32쪽 | 474g | 296*277*7mm | 2021년 03월
라임 


화자인 아이는 자신의 가족이 초록 숲에 도착했던 날을 떠올린다. 집채만한 배낭을 짊어진 채로 숲에 들어왔던 가족은 숲이 얼마나 울창한지 팔다리를 온통 긁히고 찔리면서 초록빛 세상으로 한발 한발 들어가야 했다. 그동안 살았던 땅을 떠나 이전 삶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한 곳.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은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읽는 이도 함께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초록 초록 한 세상. 이 땅에는 수백 가지 포유류와 조류들이 먼저 살고 있었다. 아이는 이들이 이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들 중 밤마다 포효하는 왕이 있다. 

 


 

숲에서 들리던 소리들이 어느 날 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의 가족처럼 다른 마을에서 사람들이 옮겨오기 시작하고 초록 숲이 줄어든다. 마을을 둘러싼 초록 숲은 차츰 예쁜 정원으로 바뀐다. 친구였던 원숭이들을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쫓아내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궁금하다.

 

그들의 왕국에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처지인데....
되레 그들을 내쫓다니요?

 

왕은 어디로 간 것일지도 궁금해하던 아이는 물을 길러 간 강에서 왕을 마주한다. 겁이 난 아이는 곧바로 도망쳐왔지만 나중에 모닥불가에 앉아 이 때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종종 들려준다. 우리도 그림책 속에서 화자의 회상을 함께 들은 셈이다.



 

여기는 온통 초록 숲이었단다!
여기저기서 참 좋은 냄새가 났지!
여기서 왕은 매우 행복하게 살았어.
그때는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망쳐놓은 왕의 영지. 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왕은 어디로 떠났을까. 


그림책 속의 숲은 지구의 허파라는 불리는 아마존의 숲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아마존 뿐만 아니다. 전 세계에서 축구장만한 숲이 1초에 한 번씩 사라진다는 기사도 쉽게 검색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골프장의 난개발로 여의도 면적의 20배의 숲이 사라졌다거나(2014년 기사),  지난 10년간 여의도 면적(290ha)의 188배에 해당하는 산림이 사라졌다는 국감자료에 대한 기사(2016년 기사)도 보인다. 아이와 함께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인간이 자연과 그 속에 사는 동물들에게 끼친 영향, 조화롭게 사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확장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다.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  속 여러 동물들과 연계해서 이야기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해당 책의 챕터에도 'Tiger' 편이 있다. ) 비슷한 결의 그림책으로 「나무 늘보가 사는 숲에서」 란 책도 떠오른다. 팝업이 멋진 책으로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
 

그림만으로 유아들이 읽어도 멋진 책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 확장해보려면 초등 저학년 이상이 더욱 좋을 듯 하다.

 

** 본문 속 참조 기사 링크 : 

골프장 난개발... 여의도 면적 20배의 숲 사라져

사라지는 삼림... 10년간 여의도 188배 면적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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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에프 클래식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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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지인들의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늘 책을 선물하다보니, 아이들은 힐씨 이모(혹은 아줌마)는 늘 책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다행하게도 (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 골라 보낸 책들은 늘 재미있었다고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지인의 딸이 대학생이 되면 늘 이 책을 선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을.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
에프 클래식
184쪽 | 312g | 133*225*10mm | 2021년 03월
에프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위해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울프는 1928년 10월,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두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소득(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후 강연 발표문의 내용을 발전시켜 이 책 「자기만의 방」 에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고찰하고, 그들이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뒤틀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여성 작가들을 문학사 안에 위치시킨 최초의 시도이자 성을 중심으로 문학적 유산을 논의한 최초의 이론서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 책이 페미니즘 책의 고전이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 이전까지 소설 속의 위대한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바라본 모습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이상했습니다. 여성의 삶에서 그런 관계는 얼마나 작은 부분입니까. 게다가 남성은 성이 자기 코에 걸어 준 검정색 안경이나 장밋빛 안경으로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여성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이런 이유로 소설 속 여성의 성격은 특이하게 나타납니다. 놀랄 만큼 지극히 아름답거나 지극히 불쾌하고, 천사처럼 선량한 모습과 악마처럼 타락한 모습을 오갑니다. 연인인 남성이 자신의 애정이 솟구쳤는지 가라앉았는지, 순조로운지 아니면 불만족스러운지에 따라 여성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 자기만의 방.4장, p123

 

개인적으로 (어쩌다보니) 「자기만의 방」 의 여러 에디션을 모아왔다. 그리고 모아놓은 것들은 다시 선물로 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책으로 다시 읽었다. 



여러 에디션의 자기만의 방,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관련 책

 

그녀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자,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다. 외부의 제약이 없는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창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단 '창조력' 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에 직면'하는 삶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지.

 

그러니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현실에 직면하여 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활기를 전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활기찬 삶을 살아가라고 부탁하는 셈입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63

 

가부장적인 환경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면들을 서술하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국면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읽으며 깨닫는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점이다. 또한 '여성' 이라는 단어 대신 '사람'이라는 말로 치환해도 의미는 그대로 남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신체에 두 가지 성이 있듯이 마음에도 두 가지 성이 있는지, 그리고 마음의 두가지 성도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얻기 위해 연합해야 하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서투르지만 우리 영혼의 약도를 그려 두 가지 힘,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각자의 내면을 관장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남성의 머릿속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세합니다. 이 두 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정신적으로 협력할 때 우리는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남성이라고 해도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이 작용해야 합니다. 여성 또한 자기 속의 남성과 교류해야 합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46

 

이런 이야기들은 옮긴 이의 말에서 서술한 것처럼, 서로에게 '욕을 퍼붓느라 시간을 낭비'(p136) 하지 않으며 '두려움과 증오' 가 '거의 사라진' 시대를 꿈꾸게 한다.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보게 된다. 

 

나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뒤져도, 남성의 동료가 되고 대등한 존재가 되어 더 숭고한 목표를 위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단히 그리고 평범하게 말할 뿐입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63-164

 

「자기만의 방」은 필사를 해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이전에 '릴레이 필사 챌린지' 로 한번 필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문장이 나를 두드릴까 궁금해하며 이번에도 다시 필사를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대학생이 된 지인의 아이에게도 또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계속 모으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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