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기만의 방 ㅣ 에프 클래식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평점 :
나는 종종 지인들의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늘 책을 선물하다보니, 아이들은 힐씨 이모(혹은 아줌마)는 늘 책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다행하게도 (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 골라 보낸 책들은 늘 재미있었다고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지인의 딸이 대학생이 되면 늘 이 책을 선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을.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
에프 클래식
184쪽 | 312g | 133*225*10mm | 2021년 03월
에프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위해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울프는 1928년 10월,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두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소득(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후 강연 발표문의 내용을 발전시켜 이 책 「자기만의 방」 에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고찰하고, 그들이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뒤틀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여성 작가들을 문학사 안에 위치시킨 최초의 시도이자 성을 중심으로 문학적 유산을 논의한 최초의 이론서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 책이 페미니즘 책의 고전이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 이전까지 소설 속의 위대한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바라본 모습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이상했습니다. 여성의 삶에서 그런 관계는 얼마나 작은 부분입니까. 게다가 남성은 성이 자기 코에 걸어 준 검정색 안경이나 장밋빛 안경으로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여성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이런 이유로 소설 속 여성의 성격은 특이하게 나타납니다. 놀랄 만큼 지극히 아름답거나 지극히 불쾌하고, 천사처럼 선량한 모습과 악마처럼 타락한 모습을 오갑니다. 연인인 남성이 자신의 애정이 솟구쳤는지 가라앉았는지, 순조로운지 아니면 불만족스러운지에 따라 여성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 자기만의 방.4장, p123
개인적으로 (어쩌다보니) 「자기만의 방」 의 여러 에디션을 모아왔다. 그리고 모아놓은 것들은 다시 선물로 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책으로 다시 읽었다.

여러 에디션의 자기만의 방,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관련 책
그녀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자,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다. 외부의 제약이 없는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창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단 '창조력' 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에 직면'하는 삶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지.
그러니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현실에 직면하여 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활기를 전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활기찬 삶을 살아가라고 부탁하는 셈입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63
가부장적인 환경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면들을 서술하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국면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읽으며 깨닫는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점이다. 또한 '여성' 이라는 단어 대신 '사람'이라는 말로 치환해도 의미는 그대로 남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신체에 두 가지 성이 있듯이 마음에도 두 가지 성이 있는지, 그리고 마음의 두가지 성도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얻기 위해 연합해야 하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서투르지만 우리 영혼의 약도를 그려 두 가지 힘,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각자의 내면을 관장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남성의 머릿속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세합니다. 이 두 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정신적으로 협력할 때 우리는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남성이라고 해도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이 작용해야 합니다. 여성 또한 자기 속의 남성과 교류해야 합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46
이런 이야기들은 옮긴 이의 말에서 서술한 것처럼, 서로에게 '욕을 퍼붓느라 시간을 낭비'(p136) 하지 않으며 '두려움과 증오' 가 '거의 사라진' 시대를 꿈꾸게 한다.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보게 된다.
나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뒤져도, 남성의 동료가 되고 대등한 존재가 되어 더 숭고한 목표를 위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단히 그리고 평범하게 말할 뿐입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 자기만의 방. 6장, p163-164
「자기만의 방」은 필사를 해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이전에 '릴레이 필사 챌린지' 로 한번 필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문장이 나를 두드릴까 궁금해하며 이번에도 다시 필사를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대학생이 된 지인의 아이에게도 또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계속 모으게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