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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평점 :
「마담 보바리」 가 발간된 185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던 만큼 불륜이 만연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 책이 발간된 후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 또는 '간통을 미화한 혐의', 혹은 '작품의 일부가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 로 기소되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 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라마르 부인 자살사건)을 취재해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사실소설'의 전형적인 걸작이기도 하다.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이미 책장에 꽂혀있지만,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 기념판이라는 '특별판' 의 매력이 가득한 이브 생로랑의 삽화가 수록된 책을 다시 펼친다. 패션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 내게는 어릴 적부터 입생로랑으로 각인된 ) 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니 더욱 궁금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북레시피
3부로 구성된 「마담 보바리」 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엠마가 성실한 시골의사와의 결혼 후에 조금씩 느껴가는 환멸, 이후 사랑을 꿈꾸며 벌이는 다른 남자와의 밀회, 그리고 그녀의 파멸 과정을 다룬다. '결혼이라는 일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상을 바랐던' 여성이라고도 불리는 마담 보바리. 제목에서부터 그녀는 마담 보바리, 즉 보바리 부인이라는 것에 문득 눈이 간다. 행복하고 낭만이 가득한 결혼생활을 꿈꿨던 ( 보바리 부인이기 이전 ) 엠마란 이름의 주인공은 권태롭고 지루한 일상과 책 속에서 읽었던 이상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생겨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던 지극한 행복, 열정, 도취 같은 말들이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려 애썼다.
- p95
'자기 심장에 부싯돌을 살짝 문질러보아도 불티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만다. 반면 남편인 샤를은 이 결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 이 간극은 엠마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사실 원하는 이상과 비교해서 보는 현실은 불만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그건 엠마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겪곤 하는 일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다르기에 조금이라도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있던가. 때로는 그 차이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지 않던가. 순수했던 시절의 엠마가 바랐던 것을 그저 '몽상'이고, '쓸데없는 욕망'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샤를의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엠마는 아들을 낳기를 바란다. "여자는 계속 금지에 부딪힌다. 무력하고도 유순한 여자는 연약한 몸과 법률의 속박에 직면해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줄로 연결된 베일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펄럭인다. 언제나 욕망에 끌리면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관습에 붙들린다."(p159)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꿈꾸던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돌진은 이미 결혼한 여성이었기에 '불륜'으로 읽혀버리게도 되지만, '사실주의 문학' 의 대가인 플로베르의 심리묘사를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비정상적으로 음탕하거나 탐욕스럽다기보다는 낭만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너무 강했던, 그리고 오히려 욕망의 실현을 위해 저돌적으로 용감했던 여인으로도 읽힌다. 용감했으나 욕망의 렌즈를 통해 현실을 계속 왜곡해서 보는 것이 더욱 안쓰러운 여인. 그녀는 현실이 자신이 꿈꾸던 세상과 같지 않자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문득 엠마가 욕망의 렌즈로 현실을 굴절시켜서 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이 주어졌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삽화가 수록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펼친 책은, 앞 부분에 이브 생로랑의 필사와 함께 삽화가 먼저 등장하는 구성이었다. 해설을 읽어보니 1951년, 열다섯살의 소년이 1부 전체와 2부 첫 부분을 필사하고 삽화를 그려놓은 필사본의 모습을 수록해놓았다. 1부와 2부를 읽어가며 앞쪽에 나왔던 장면들이 어떤 이야기를 묘사한 것인지 추측해보는 재미 또한 얻는다. 열다섯살이 그려낸 엠마의 드레스의 모습은 아름답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이브 생로랑이 앞으로 창조해 낼 스타일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책의 후반부에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이브 생로랑이 직접 장면을 적어놓지는 않았기에 후대의 사후조사에 의한 연결이다.
플로베르는 '자연은 의미심장한 현상을 일으키나 그 의미를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자연과 같은 소설을 쓰고자 했다. 엠마가 함께 달아나자고 하자 부담을 느껴 모습을 감춰버리는 첫 연인 로돌프부터, 지방 소도시의 약사, 엠마를 파산과 종말로 몰아넣는 상인 등 소설에는 엠마 외에도 엠마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긴다. 플로베르는 인간을 정밀하게, 또 종종 냉소적이면서도 되도록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플라토닉 러브로 시작했던 레옹과 헤어진 후, 로돌프를 통해 일탈을 경험한 엠마는 재회한 레옹과 더욱 과감한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그 만남에서도 엠마는 '불륜의 사랑 속에서 시시하고 단조로운 결혼의 모든 것을 다시 발견'(p405) 한다. 그런 행복의 저속함이 치욕스러워도 '하루하루 더 악착같이 거기에 목을 맨 채, 너무 커다란 행복을 원함으로써 그 행복을 전부 고갈시키고'(p405) 있었다.
그녀는 행복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삶은 대채 왜 충만하게 채워질 수 없는 것일까? 삶이 무엇엔가 기대는 순간 그것은 왜 바로 썩어버리는 것일까? ...... 그러나 만약 어딘가에 아주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 열정이 넘치는 동시에 아주 세련된 용맹한 성격, 하늘을 향해 청동 리라로 애절한 축혼가를 울리는 천사 같은 모습을 한 시인의 마음이 있다면, 그녀라고 왜 찾아내지 못할 것인가? 아, 무슨 가당치도 않을 일! 게다가 찾으려 애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거짓이었다! 모든 미소는 권태의 하품을, 모든 기쁨은 저주를, 모든 쾌락은 혐오를 감추고 있으며, 가장 근사한 입맞춤도 오직 더 강렬한 쾌락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욕망만을 입술 위에 남길 뿐이었다.
- p337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엠마는 결국 경제적 파산과 불륜에 대한 수치심으로 독약을 먹는다. 그녀로 인해 남편과 그녀의 딸 또한 불행해지고 마는 과정이 건조하게 표현된다. 그녀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갈망은 결국 비극을 부르고 말았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꿈꾸고 상상 속을 달리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 소설 작품 속에 살기를 꿈꾸는 돈키호테의 기질' 의 성향을 '보바리슴'이라고 부른다.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불만족스러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리질환을 뜻하기도 한다. 문득 그녀의 왜곡된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결핍의 모습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엠마가 소설 속에서 찾던 이상은 이제 우리에게는 각종 미디어와 SNS를 통해 다가오는 여러 모습들로 치환된다. '욕망의 렌즈'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