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 것 같아 - 두통의 숨겨진 이야기
어맨다 엘리슨 지음, 권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머리 아파' 란 말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신경을 많이 써도, 뭔가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도 머리가 아프다. 늘상 달고 살았던 통에 쉽게 넘겨버리고 했던 두통의 원인은 다른 통증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이를 통해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Splitting: The Inside Story on Headaches

두통의 숨겨진 이야기

어맨다 엘리슨 지음, 권혜정 옮김

글항아리

 

 

스스로의 두통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은 역시 아이의 '머리 아파' 란 말이다. 통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는 알러비 비염으로 코가 막혀도 '머리 아파', 소화가 안되어도 '머리 아파', 열이 나도 '머리 아파', 멀미를 해도 '머리 아파' 혹은 '어지러워' 였다. 그 중 알러지 비염이 심해졌을 때의 '머리 아파' 가 가장 흔한 경우다. 3장의 '부비동, 감각, 콧물' 에서는 만성 알러지 비염 환자인 나와 아이를 위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꽃가루가 날리면 상비약으로 가방안에 들어있는 히스타민계 알러지약의 '히스타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간다. 

 

코와 부비동에서 히스타민이 분비되면 배상세포의 점액 분비량이 더 늘어나서,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와 섞인다. 이렇게 되면 코가 막혀서 풀었을 때 나오는 점액의 점도와 색이 평소와 달라진다. (...) 히스타민은 코에 있는 감각수용기에 직접 작용해서 가려움이나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울혈은 주로 혈관 안에서 일어나며, 코가 가렵고 따가운 것은 신경성 증상이다. 

 

 

어려울 것만 같은 의학 지식들이 가득한데도 번역가의 번역이 위트가 넘쳐서 술술 읽힌다. "부비동 좀 내비동~" 이라니!!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부로 구성된 「마담 보바리」 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엠마가 성실한 시골의사와 결혼 후에 조금씩 느껴가는 환멸, 그리고 사랑을 꿈꾸며 벌이는 다른 남자와의 밀회를 다룬다. 책이 발간된 185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가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던 만큼 불륜은 만연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 책이 발간된 후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 또는 '간통을 미화한 혐의', 혹은 '작품의 일부가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 로 기소되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 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라마르 부인 자살사건)을 취재해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사실소설'의 전형적인 걸작이기도 하다.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북레시피

 

 

이브 생로랑이 사춘기 소년 시절 그렸다는 삽화를 먼저 감상하고 본문을 읽기 시작한 터라, 그가 그린 삽화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좀 더 관심있게 읽었다. 초반 샤를의 시점으로 이어지던 이야기는 엠마와의 결혼 후, 엠마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생겨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던 지극한 행복, 열정, 도취 같은 말들이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려 애썼다. 

 

- p95

 

 

시골의사 샤를과 결혼한 엠마는 "세상에, 내가 왜 결혼을 했지?" 라고 한탄을 시작한다. 행복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꿨으나 '자기 심장에 부싯돌을 살짝 문질러보아도 불티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반면 샤를은 이 결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그 무렵 부부는 후작의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엠마에게 있어 그 곳은 꿈꿔왔던 세상처럼 느껴진다. 왈츠를 출 줄 모르던 엠마였지만 주위에서 자작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다가워서 그녀에게도 춤을 청한다. 이브 생로랑의 삽화 중 이 장면. 

 


 

소설 속 묘사는 매우 자세하고, 감각적이다. 

 

앞가르마를 타서 양쪽으로 내려 귀 부분에서 살짝 볼록하게 나온 머리가 파르라니 빛났다. 틀어 올린 머리에 꽂은 장미꽃 가지가 흔들리며 꽃과 꽃잎 끝의 인조 물방울들도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연한 주황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초록이 섞인 방울술 장미꽃 다발 세개로 더 돋보였다. - p113, 엠마의 모습

 

레이스 장식, 다이아몬드 브로치, 둥근 메달이 달린 팔찌가 코르사주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가슴에서 반짝이고, 드러낸 팔 위에서 살랑거렸다. 이마에 꼭 붙이고 목덜미에서 틀어 올린 머리칼에는 물망초, 재스민, 석류꽃, 이삭 모양 장식, 수레국화 등이 왕관 모양이나 포도송이 또는 잔가지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 p114, 파티에 참가한 여성들 모습

 

 

 

문득 당시의 드레스 이미지가 궁금하여 <마담 보바리> 영화 포스터를 찾아보았다. 

 


 

좌로부터 1949년, 1991년, 2014년

 

그녀가 초반에 바랐던 것이 그저 몽상이고, 쓸데없는 욕망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샤를의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아들을 낳기를 바라며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힘이 넘치고, 머리는 갈색인 아이. 이름은 조르주라고 할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가 남자일 거라 생각하니 마치 지난날 자신의 모든 무력감에 대해 복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남자는 적어도 자유롭다. 불타는 정열을 체험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애물을 넘어 통과하고, 저 멀리 있는 행복도 움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계속 금지에 부딪힌다. 무력하고도 유순한 여자는 연약한 몸과 법률의 속박에 직면해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줄로 연결된 베일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펄럭인다. 언제나 욕망에 끌리면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관습에 붙들린다. 

 

-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담 보바리」 가 발간된 185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던 만큼 불륜이 만연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 책이 발간된 후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 또는 '간통을 미화한 혐의', 혹은 '작품의 일부가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 로 기소되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 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라마르 부인 자살사건)을 취재해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사실소설'의 전형적인 걸작이기도 하다.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이미 책장에 꽂혀있지만,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 기념판이라는 '특별판' 의 매력이 가득한 이브 생로랑의 삽화가 수록된 책을 다시 펼친다. 패션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 내게는 어릴 적부터 입생로랑으로 각인된 ) 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니 더욱 궁금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북레시피

 

 

3부로 구성된 「마담 보바리」 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엠마가 성실한 시골의사와의 결혼 후에 조금씩 느껴가는 환멸, 이후 사랑을 꿈꾸며 벌이는 다른 남자와의 밀회, 그리고 그녀의 파멸 과정을 다룬다. '결혼이라는 일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상을 바랐던' 여성이라고도 불리는 마담 보바리. 제목에서부터 그녀는 마담 보바리, 즉 보바리 부인이라는 것에 문득 눈이 간다. 행복하고 낭만이 가득한 결혼생활을 꿈꿨던 ( 보바리 부인이기 이전 ) 엠마란 이름의 주인공은 권태롭고 지루한 일상과 책 속에서 읽었던 이상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생겨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던 지극한 행복, 열정, 도취 같은 말들이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려 애썼다. 

 

- p95

 

 

 

'자기 심장에 부싯돌을 살짝 문질러보아도 불티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만다. 반면 남편인 샤를은 이 결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 이 간극은 엠마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사실 원하는 이상과 비교해서 보는 현실은 불만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그건 엠마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겪곤 하는 일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다르기에 조금이라도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있던가. 때로는 그 차이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지 않던가. 순수했던 시절의 엠마가 바랐던 것을 그저 '몽상'이고, '쓸데없는 욕망'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샤를의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엠마는 아들을 낳기를 바란다. "여자는 계속 금지에 부딪힌다. 무력하고도 유순한 여자는 연약한 몸과 법률의 속박에 직면해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줄로 연결된 베일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펄럭인다. 언제나 욕망에 끌리면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관습에 붙들린다."(p159)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꿈꾸던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돌진은 이미 결혼한 여성이었기에 '불륜'으로 읽혀버리게도 되지만, '사실주의 문학' 의 대가인 플로베르의 심리묘사를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비정상적으로 음탕하거나 탐욕스럽다기보다는 낭만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너무 강했던, 그리고 오히려 욕망의 실현을 위해 저돌적으로 용감했던 여인으로도 읽힌다. 용감했으나 욕망의 렌즈를 통해 현실을 계속 왜곡해서 보는 것이 더욱 안쓰러운 여인. 그녀는 현실이 자신이 꿈꾸던 세상과 같지 않자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문득 엠마가 욕망의 렌즈로 현실을 굴절시켜서 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이 주어졌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삽화가 수록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펼친 책은, 앞 부분에 이브 생로랑의 필사와 함께 삽화가 먼저 등장하는 구성이었다. 해설을 읽어보니 1951년, 열다섯살의 소년이 1부 전체와 2부 첫 부분을 필사하고 삽화를 그려놓은 필사본의 모습을 수록해놓았다. 1부와 2부를 읽어가며 앞쪽에 나왔던 장면들이 어떤 이야기를 묘사한 것인지 추측해보는 재미 또한 얻는다. 열다섯살이 그려낸 엠마의 드레스의 모습은 아름답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이브 생로랑이 앞으로 창조해 낼 스타일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책의 후반부에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이브 생로랑이 직접 장면을 적어놓지는 않았기에 후대의 사후조사에 의한 연결이다. 

 

플로베르는 '자연은 의미심장한 현상을 일으키나 그 의미를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자연과 같은 소설을 쓰고자 했다. 엠마가 함께 달아나자고 하자 부담을 느껴 모습을 감춰버리는 첫 연인 로돌프부터, 지방 소도시의 약사, 엠마를 파산과 종말로 몰아넣는 상인 등 소설에는 엠마 외에도 엠마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긴다. 플로베르는 인간을 정밀하게, 또 종종 냉소적이면서도 되도록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플라토닉 러브로 시작했던 레옹과 헤어진 후, 로돌프를 통해 일탈을 경험한 엠마는 재회한 레옹과 더욱 과감한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그 만남에서도 엠마는 '불륜의 사랑 속에서 시시하고 단조로운 결혼의 모든 것을 다시 발견'(p405) 한다. 그런 행복의 저속함이 치욕스러워도 '하루하루 더 악착같이 거기에 목을 맨 채, 너무 커다란 행복을 원함으로써 그 행복을 전부 고갈시키고'(p405) 있었다. 

 

그녀는 행복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삶은 대채 왜 충만하게 채워질 수 없는 것일까? 삶이 무엇엔가 기대는 순간 그것은 왜 바로 썩어버리는 것일까? ...... 그러나 만약 어딘가에 아주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 열정이 넘치는 동시에 아주 세련된 용맹한 성격, 하늘을 향해 청동 리라로 애절한 축혼가를 울리는 천사 같은 모습을 한 시인의 마음이 있다면, 그녀라고 왜 찾아내지 못할 것인가? 아, 무슨 가당치도 않을 일! 게다가 찾으려 애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거짓이었다! 모든 미소는 권태의 하품을, 모든 기쁨은 저주를, 모든 쾌락은 혐오를 감추고 있으며, 가장 근사한 입맞춤도 오직 더 강렬한 쾌락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욕망만을 입술 위에 남길 뿐이었다. 

 

- p337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엠마는 결국 경제적 파산과 불륜에 대한 수치심으로 독약을 먹는다. 그녀로 인해 남편과 그녀의 딸 또한 불행해지고 마는 과정이 건조하게 표현된다. 그녀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갈망은 결국 비극을 부르고 말았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꿈꾸고 상상 속을 달리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 소설 작품 속에 살기를 꿈꾸는 돈키호테의 기질' 의 성향을 '보바리슴'이라고 부른다.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불만족스러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리질환을 뜻하기도 한다. 문득 그녀의 왜곡된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결핍의 모습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엠마가 소설 속에서 찾던 이상은 이제 우리에게는 각종 미디어와 SNS를 통해 다가오는 여러 모습들로 치환된다. '욕망의 렌즈'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순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제목이다. 이른바 ‘코시국’ 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오늘은 프로젝트 동료의 자녀가 확진 판정을 받아 일하다가 검사하러 갔고, 내 아이가 다니던 학원의 옆 반 선생님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요새는 밀접접촉자가 아니면 PCR 검사대신 자가진단키트를 준다고 한다.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줄이 너무 길어서 오히려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감염될 걱정을 해야할 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비에이블

 

 

‘여행’ 이라는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컥울컥 버글버글 끓다 못해 콧구멍에서 허연 김이 나오는 것’ 같다는 저자는 일기라도 써보기로 한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그 두글자 만으로도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 속에 담겨있던 그 이야기들이 꺼내어지고 책으로 나와 독자들 앞으로까지 왔다.

 

여러가지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는 ‘낯선 곳에서는 사소하지 않은 용기가 생긴다‘ 라는 제목의 1장에 담긴다. 저자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배낭을 쌌던 여행 이야기는 내 이야기도 했다. ( 라떼는 말이야…? ) 뭘 가져가고 뭘 놓고 가야하는지로 시작되는 고민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반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넘어갈 수도 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땐 둘 중 하나다. 그냥 싹 다 가져가는 것과 떨레떨레 몸만 가는 것. 보통은 첫 번째 방법으로 시작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후( 내 허리, 내 어깨, 내 멘탈) 슬슬 두 번째로 옮겨간다. 고생 없이 요령만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당시의 배낭여행 트렌드는 2리터짜리 생수를 짊어지고 다니고, 제일 싼 바게트를 사서 뜯어먹고 다니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분위기 좋은 카페 한 번을 못 갔던 여행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쫄쫄 굶으며 고생해야 진정한 대한의 청년이며 그렇지 않으면 겉멋 들고 골이 빈 젊은 애라는 분위기’( p37) 가 있었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 내 배낭여행 또한 그랬기에. ( 또, 라떼는 말이야.. )

 

이런 1장은 여행을 기록하는 법에 관한 소회로 마무리된다. 언젠가는 휘발될 지 모르는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저자는 여행 한 번에 노트 한 권씩 완성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여행의 매 순간을 낭만적으로 즐겁게 기록한 것 같은데, 사실 꼬박꼬박 노트를 채워가는 건 생각보다 더 귀찮고 고되다. ‘(p108)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예전의 방식이고 지금은 노트 대신 노트북을 쓴다고. 생각해보면 무거운 카메라 대신 휴대폰 카메라를 쓰게 되었고, 로밍이나 포켓 와이파이 대신 여행지의 심 카드를 사서 끼우게 되었다는 변화. 정말 그렇다. 눈치채고 있지 않았는데 글로 마주하니 실감이 난다.

 

2장. ‘그곳이 어디든, 난 내 삶을 잘 살고 싶다.’ 또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우리들을 함께 격려하는 듯 하다.

 

‘살면서, 일하면서, 여행하면서, 그동안 직접 겪은 일과 보고 들은 일들이 쌓여 우리들 각자의 인사이트가 된다.’ (p186) 라는 저자는 이러니,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역시 어렵다고 고백한다. ( 나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나도 그래.. 를 몇 번을 말하는 건지. ) ‘여행의 로망은 현지인 친구 만들기 아니냐고 묻는다면, 로망이란 실현되기 어려워야 제맛이라고 대답하겠다’(p187) 라는 문장에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이런 위트있는 문장들이 더욱 읽는 재미를 준다.

 

 

어느 여행자의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이야기 또한 공감 투성이의 문장이 가득하다. 여행지에서 에너지로 가득한 듯한 예전 사진을 보면, 역시 노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는 저자. 인간은 놀아야 얼굴이 활짝 핀다며. ( 끄덕끄덕 ) ‘여행이란 돈을 쓰는 거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아주 그냥 작정하고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데 얼굴이 피는 건 당연하다’ (p189) 여행에서 몸을 훨씬 더 많이 움직이는 것도 얼굴이 반짝이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릴 적엔 아프고 피곤한 게 별로 겁나지 않았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치, 뒷일 따위 생각 않고 온 힘을 다해 놀다가 한순간에 방전되어 아무 데서나 꼻아떨어지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이제 뒷일을 너무 잘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 p191



내 속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십견으로 ( 네, 오십이 아닌데 오십견이 온 지 오래입니다. 손목, 어깨병은 직업병일지도..) 버티고 버티다가 큰 맘 먹고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던 데, 너무 아파서 의도치 않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프로젝트 사이클 상 야근 릴레이가 필요한 시기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고 아파 신경 쓰이던 요즘이라 더욱 눈에 들어온 문장이었을지도. 자연스럽게 이제 꿈꾸는 여행은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여행이 된다. 문득 체력이 있을 때 마음껏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른달까.

 

먼 훗날엔 이 시기가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될까? 알 수 없다. 그저 당장의 허들이 높아만 보이고, 눈앞의 터널이 길게만 느껴진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가 소환한 여행의 기억들은 읽는 이의 저마다의 기억들을 소환한다.이 긴 터널에서 문득 기분이 좋아지는 빛을 조금이나마 발견한 기분이다. 우울에만 잠겨있지 말고 즐거운 것들을 떠올리며 마음관리를 해야하는 시기, 가고 싶은 곳을 떠올려보며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버티는’ 힘이 되는 듯 하다.

 

우리 모두 그리운 장소에서, 

꿈꾸던 장소에서, 곧 다시 만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운데이션과 지구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5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운데이션과 지구

Foundation and Earth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 )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5 

황금가지



트랜터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지구에 관한 모든 자료들은 누군가에 의해, 파운데이션 세력이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 감춰졌다고 생각하는 트레비스는 가이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기에 지구에 관한 자료가 없는 것 아니냐고 추정한다. 문명인에게는 문명 초기의 기록을 파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방대한 기록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가이아인에게 지구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트레비스가 지구를 찾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4권은 1982년에, 5권은 1986년에 나왔다. 이어지는 두 권의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4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했다. 트레비스는 콤포렐론으로, 오로라 행성으로, 솔라리아로, 알파행성 등으로 계속 움직이며 지구를 찾는다. 그나저나 트레비스의 우주선의 이름은 '파스타호' 다. 처음에 먹는 파스타인걸로 착각.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계속 이런저런 파스타 요리들을 떠올리며 배고파했는데 책의 후반부에서야 이름의 유래를 알았다. “저 우주선은 멀리 떨어진 별에서 왔습니다. ‘파스타(Far Star)’가 바로 저 우주선의 이름입니다.” (p526)



Far Star 를 Pasta 로 상상하다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