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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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순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제목이다. 이른바 ‘코시국’ 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오늘은 프로젝트 동료의 자녀가 확진 판정을 받아 일하다가 검사하러 갔고, 내 아이가 다니던 학원의 옆 반 선생님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요새는 밀접접촉자가 아니면 PCR 검사대신 자가진단키트를 준다고 한다.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줄이 너무 길어서 오히려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감염될 걱정을 해야할 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비에이블

 

 

‘여행’ 이라는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컥울컥 버글버글 끓다 못해 콧구멍에서 허연 김이 나오는 것’ 같다는 저자는 일기라도 써보기로 한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그 두글자 만으로도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 속에 담겨있던 그 이야기들이 꺼내어지고 책으로 나와 독자들 앞으로까지 왔다.

 

여러가지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는 ‘낯선 곳에서는 사소하지 않은 용기가 생긴다‘ 라는 제목의 1장에 담긴다. 저자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배낭을 쌌던 여행 이야기는 내 이야기도 했다. ( 라떼는 말이야…? ) 뭘 가져가고 뭘 놓고 가야하는지로 시작되는 고민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반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넘어갈 수도 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땐 둘 중 하나다. 그냥 싹 다 가져가는 것과 떨레떨레 몸만 가는 것. 보통은 첫 번째 방법으로 시작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후( 내 허리, 내 어깨, 내 멘탈) 슬슬 두 번째로 옮겨간다. 고생 없이 요령만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당시의 배낭여행 트렌드는 2리터짜리 생수를 짊어지고 다니고, 제일 싼 바게트를 사서 뜯어먹고 다니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분위기 좋은 카페 한 번을 못 갔던 여행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쫄쫄 굶으며 고생해야 진정한 대한의 청년이며 그렇지 않으면 겉멋 들고 골이 빈 젊은 애라는 분위기’( p37) 가 있었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 내 배낭여행 또한 그랬기에. ( 또, 라떼는 말이야.. )

 

이런 1장은 여행을 기록하는 법에 관한 소회로 마무리된다. 언젠가는 휘발될 지 모르는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저자는 여행 한 번에 노트 한 권씩 완성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여행의 매 순간을 낭만적으로 즐겁게 기록한 것 같은데, 사실 꼬박꼬박 노트를 채워가는 건 생각보다 더 귀찮고 고되다. ‘(p108)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예전의 방식이고 지금은 노트 대신 노트북을 쓴다고. 생각해보면 무거운 카메라 대신 휴대폰 카메라를 쓰게 되었고, 로밍이나 포켓 와이파이 대신 여행지의 심 카드를 사서 끼우게 되었다는 변화. 정말 그렇다. 눈치채고 있지 않았는데 글로 마주하니 실감이 난다.

 

2장. ‘그곳이 어디든, 난 내 삶을 잘 살고 싶다.’ 또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우리들을 함께 격려하는 듯 하다.

 

‘살면서, 일하면서, 여행하면서, 그동안 직접 겪은 일과 보고 들은 일들이 쌓여 우리들 각자의 인사이트가 된다.’ (p186) 라는 저자는 이러니,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역시 어렵다고 고백한다. ( 나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나도 그래.. 를 몇 번을 말하는 건지. ) ‘여행의 로망은 현지인 친구 만들기 아니냐고 묻는다면, 로망이란 실현되기 어려워야 제맛이라고 대답하겠다’(p187) 라는 문장에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이런 위트있는 문장들이 더욱 읽는 재미를 준다.

 

 

어느 여행자의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이야기 또한 공감 투성이의 문장이 가득하다. 여행지에서 에너지로 가득한 듯한 예전 사진을 보면, 역시 노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는 저자. 인간은 놀아야 얼굴이 활짝 핀다며. ( 끄덕끄덕 ) ‘여행이란 돈을 쓰는 거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아주 그냥 작정하고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데 얼굴이 피는 건 당연하다’ (p189) 여행에서 몸을 훨씬 더 많이 움직이는 것도 얼굴이 반짝이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릴 적엔 아프고 피곤한 게 별로 겁나지 않았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치, 뒷일 따위 생각 않고 온 힘을 다해 놀다가 한순간에 방전되어 아무 데서나 꼻아떨어지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이제 뒷일을 너무 잘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 p191



내 속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십견으로 ( 네, 오십이 아닌데 오십견이 온 지 오래입니다. 손목, 어깨병은 직업병일지도..) 버티고 버티다가 큰 맘 먹고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던 데, 너무 아파서 의도치 않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프로젝트 사이클 상 야근 릴레이가 필요한 시기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고 아파 신경 쓰이던 요즘이라 더욱 눈에 들어온 문장이었을지도. 자연스럽게 이제 꿈꾸는 여행은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여행이 된다. 문득 체력이 있을 때 마음껏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른달까.

 

먼 훗날엔 이 시기가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될까? 알 수 없다. 그저 당장의 허들이 높아만 보이고, 눈앞의 터널이 길게만 느껴진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가 소환한 여행의 기억들은 읽는 이의 저마다의 기억들을 소환한다.이 긴 터널에서 문득 기분이 좋아지는 빛을 조금이나마 발견한 기분이다. 우울에만 잠겨있지 말고 즐거운 것들을 떠올리며 마음관리를 해야하는 시기, 가고 싶은 곳을 떠올려보며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버티는’ 힘이 되는 듯 하다.

 

우리 모두 그리운 장소에서, 

꿈꾸던 장소에서, 곧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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