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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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나선 #히가시노게이고 #북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부랴부랴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계속 나올 줄만 알았는데, 그가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해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삶은 이처럼 허망하다. 죽음은 한순간이라는 것.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책을 읽었다.

 



『투명한 나선』은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책으로 유카와 마나부의 개인사가 나와 새로운 전환점을 도는 것 같다. 때로는 경찰 구사나기보다 더 정확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냉정한 판단력으로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인물이다. 바다에서 총상을 입은 익사체가 발견되며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구사나기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유카와 마나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간다. 유카와는 구사나기의 바람과 달리 협조를 단칼에 거절한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돕겠다고 약속한다.



 

시마우치 소노카는 왜 도피를 한 걸까. 마쓰나가 나에는 왜 소노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일까. 네기시 히데미는 시마우치 소노카와 무슨 인연이 있을까. 서로의 관계를 보며 의문이 들고, 유카와의 행동조차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긴다. 아버지와 무덤덤한 관계, 마치 참회를 하듯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집에 와 있는 장면 또한 나이가 들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오십 대의 관조적인 남자가 보인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구사나기와 유카와의 관계는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처럼 콤비를 이루어 소설이 진행된다. 하나의 사건이 생기고, 구사나기가 유카와의 도움을 요청하면 유카와는 못 이기는 척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사건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가 아무 말도 안 하면 그건 단서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물론 왓슨 박사와 유카와의 차이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유카와만의 매력이 있다. 시크하면서도 절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그 무심함이 매력이다.

 



워낙 다작을 냈던 작가이기도 하여, 갈릴레오 시리즈 중 읽었던 책을 살펴보니 썩 많지는 않다. 그중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카와 마나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가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대학교수 겸 물리학자라는 점이다. 냉철한 판단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때로는 구사나기보다 앞서 추리하고 사건을 해결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유카와 마나부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유카와 마나부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었는데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니 안타까움이 크다. 이전보다 더 인간적인 면이 엿보였던 것만큼 더한 매력을 발산했을 텐데 말이다. 삶은 이처럼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숨겨두었던 진실이 드러날 때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진실이 드러날까 조바심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네기시 히데미의 마음에 공감하는 이유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은 죽게 되어있다. 소설 속 죽음은 짜릿한 재미를 위한 책이지만 삶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상황이 다를 뿐이다. 독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주인공을 보며 삶이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이번 작품에서는 단편 「겹치다」가 수록되어 있다. 유카와 마나부의 가족사가 나와 당황했던 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카와 마나부의 연구실에 구사나기가 다시 등장했다. 물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서다. 물론 새로 맡은 사건이 난항을 겪자 찾아온 것이다. 이제야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카와 마나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안타깝다. 전작들을 찾아 읽어 보는 수밖에 없겠다.

 

 

#투명한나선 #히가시노게이고 #북다 #미스테리소설 #갈릴레오시리즈 #일본소설 #일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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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6-08-27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이 지났는데 오늘 알게됐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인데 암투병중인 것도 몰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다니 슬프네요.....
 
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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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다산책방



 

광부가 될 운명이었던 한 소년이 길을 걷는다. 간단한 짐을 싸 살아보지 않은 곳,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배가 고프면 일을 해주고 먹을 것을 샀으며 풀숲에 방수포를 치고 침낭에서 잠을 잤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닷가를 향해 걷다가 한 오두막 앞에 섰다. 풀이 자라 오두막을 온통 덮고 있는 곳이었다.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리자 이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이 든 여자가 나타나 함께 차를 마시자고 했다. 소년이 구해온 쐐기풀차를 함께 끓여 마시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침낭에 누워 아침을 맞았다. 새로운 미래가 그 앞에 펼쳐졌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지나가는 소년이었을 뿐인데, 차와 저녁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친절을 베푼 여성은 덜시 파이퍼다. 개 버터스와 함께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먹을 것이 풍부해 보였고, 어떠한 주제에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덜시로부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를 피해 오두막의 작업실로 갔던 날 그는 거기서 시집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체취가 묻은 공간에서 흔적이 묻은 물건들이 다수 있었다. 시선을 피하고 그 상황을 피하려는 덜시를 보며 말하지 않은 사연을 짐작했다.



 

삶은 저 바깥에서 내가 게걸스레 먹어치워 주기를, 허겁지겁 집어삼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각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도무지 만족을 몰랐으며, 나로서는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혹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깔려 익사하듯 죽어간 또래들을 위해서라도 내게는 삶을 탐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23페이지)

 






문학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경험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다. 때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의 삶에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지지부진한 삶 속에 문학은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안내자에 가깝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로버트의 앞에 나타난 덜시는 그에게 탄광 말고도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와 문학 혹은 철학을 말하고, 지금의 삶과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권한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너는 오직 네가 원하는 대로만 삶을 살아야 한단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지 말고.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어. 나를 믿어보렴. 모든 순수가 사라진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나 노력해야 할 목표야. 미래가 불확실할지라도 그 미래를 거머쥐는 건 온전히 네 몫이야. (143~144페이지)

 



다소 작위적인 면이 없잖아도 문학이 가진 상상력에 반하게 되지 않나. 로버트가 자유를 향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덜시 파이퍼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로버트를 일깨우고,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삶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자연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다. 로버트가 걸어온 길, 바다를 향해 펼쳐진 들판, 속삭이는 초원과 울룩불룩한 덤불 사이로 난 길, 돌담과 좁다란 울타리로 이어진 막다른 길. 이러한 장면을 작가는 ‘꿈결 같은 풍경’이라고 표현했다. 마치 그 장소에 있는 듯,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안에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처럼 소설은 섬세한 장면 묘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짧고, 우리는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것. (315페이지)



 

네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덜시 파이퍼의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원할 수 있는 것. 우리 부모가 살아온 길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경험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아닐까 싶다.

 

 

#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다산책방 #소설추천 #문학 #도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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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6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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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한국어 #문지혁 #민음사




 

문지혁 작가의 ‘한국어 시리즈’를 읽어 오며, 작가를 응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작가가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전임 강사로 채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작가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 『실전 한국어』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초보 아빠로서, 어른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 문지혁이 등장해 오토픽션의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자기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이지만, 글쓰기 강의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문학에 관한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소설은 작가 문지혁이 대학 강의를 그만둔 후 새로운 학교의 강사로 지원했으나 임용이 안 되고 구청의 ‘나도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뽀개기’ 수업을 맡아 진행한다. 수업 중에 술을 마시는 막걸리 아저씨를 비롯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와중에 은혜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고, 은채에 이어 은호가 태어났다. 아이 하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둘째부터는 첫아이에게 걸었던 기대나 걱정, 고민이 없다. 무엇을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그러한 감정들을 표현하며 아이에게서 발견한 어릴 적 습관 등을 보며 다시 놀란다. 이를테면 물을 싫어하여 절대 물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은 것들 말이다.




 

작가 문지혁이 등장하는 관계로 독자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고 여긴다. 아내 은혜나 아이들의 에피소드는 실제인 것 같고, 글쓰기에 대한 강의,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작가가 설정한 소설 속 인물일 거로 보인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봐도 좋겠다.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인간은 더디 자라는 존재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법.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을 배운다. 교사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강의하는 한편,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간절히 원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게 있지만 노력하지 않고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언어를 배우고 학원을 다니는 등 열정을 쏟는 타인들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무엇인가에 매진한다는 건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기는 법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이뤄내기란 도통 어렵다. 끈기와 노력, 열정이 부럽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중간에 힘들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느냐 말이다.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야 가능하다는 것을 자주 놓친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끝말잇기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거부할 수 없는 끝말잇기다. 아이가 가진 어휘력을 총동원하여 배움을 익히는 것부터 글쓰기의 시작점이다. 단어는 어휘력의 기초다. 끝말잇기를 통해 아이와 함께 단어를 배운다. 다람쥐-쥐라기-기차-차도-도시락이 이어질 수 있고, 다람쥐-쥐구멍-멍게-게시판-판타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를 있게 하는 존재의 애틋함과 연민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나는 오토픽션을 좋아하는 독자인가 보다. 이기호 작가의 짧은 소설도 그렇고, 한국어시리즈를 쓰는 문지혁 작가의 경우도 그렇다. 아마 『초급 한국어』어가 아니었다면, 즐겨 읽는 ‘오늘의젊은작가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문지혁’이라는 작가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초급 한국어』를 읽었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매력을 느껴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었던 듯하다. 작가는 한국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은채와 함께 끝말잇기가 이어진 것처럼 은호와 끝말잇기도 이어질 것이다.




 

막걸리 아저씨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 수업 방해꾼처럼 보였으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어른 학생이었다. 최대한 무감하게 표현했지만, 나는 울컥했다. 가족을 잃은 부모의 모습이, 흔적 하나라도 찾으려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다. 자식은 자라서 부모의 곁을 떠나고,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훌훌 떠나는 존재가 아니던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사랑을 줄 뿐이다. 작가에게도 한국어 시리즈는 가족의 소중한 기억일 것이며, 아이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작품으로 온전히 남아, 소중해지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실전한국어 #문지혁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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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아니다
김중혁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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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안온북스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 있다고 하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고 여기지 않은가. 만약 약간의 돈을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 그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갑갑한 현실 같은 거 잊고 말 것 같지 않은가. 다만 현실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될 듯하다. 분명한 게 꿈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세상만 존재할 것이므로 그렇다.

 



영화 <인셉션>이 생각났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의 잔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김중혁의 『꿈이다 아니다』를 읽었더니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꿈속으로 들어와 내가 가진 정보 혹은 기억을 훔쳐 갈 수도 있다. 나의 외모로 누군가에게 다가가 해를 끼칠지도 모르지 않나. 물론 중요 인물도 아니므로 훔칠 정보도 없겠지만, 꿈속의 세상과 현실이 맞물려 범죄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오랜만에 김중혁의 소설을 읽었다. 상상력의 세계, 꿈의 미래를 경험하는 듯했다. ‘달리’라는 회사에서 드림 큐레이터로 일하는 주이창과 ‘마이멘토모리’에 언더커버로 활동하는 경찰관 주아연이 주인공이다. 주이창은 달리글라스를 끼고 잠에 빠지면 뇌파 데이터를 꿈 변환기를 통해 변환된 영상을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꿈 해설 서비스’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갈라’와 ‘루팅’을 이해하면 좋겠다.

 






갈라에서는 접속자가 자기 기억의 표면을 떠다니며 오래된 감정과 기억 속의 장면을 더듬을 수 있다. (중략) 루팅은 사람의 생애 기억과 인지 패턴, 감정 반응을 더 깊은 바닥에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한번 내려간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한번 정착이 시작되면 되돌리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다. 갈라가 산 사람을 위한 휴식처라면, 루팅은 죽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안식처였다. (262페이지)

 



주이창과 주아연은 남매 사이로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생명유지장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살아 있는 게 아니므로 그만 보내드리자고 하는 아연과 살아있는 사람을 어떻게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겠냐가 이창의 의견이다. 각자 꿈속으로 들어가 신세계를 경험한다. 꿈속에서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꿈의 세계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육신을 버리고 영원하기를 원하는, 즉 루팅을 선택한 사람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세력이 있다는 거다. 그걸 알선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 약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 쓰레기처럼 여기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가족을 꿈속에서 만난다면 행복한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다정한 목소리, 웃는 모습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꿈속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AI로 죽은 사람의 모습도 나타낼 수 있는 시대다. 비록 상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꿈속에서 소통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꿈의 세계를 만든 자, 꿈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자, 상처마저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아는 사람에게 꿈속에서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헷갈릴 법도 하지만 결국에는 꿈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엔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일상이 지겨워도, 지겨움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일으킬 파장을 생각해 보면 살아갈 법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좋은 게 아닐까. 좋은 일이 생기면 꿈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꿈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안온북스 #SF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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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 -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
오정미 지음 / 무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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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모든것 #오정미 #무제

 



책이 내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낯선 작가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번씩 찾아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영화 <버닝>의 시나리오를 쓴 오정미 작가라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출판사 대표인 배우 박정민의 홍보도 컸다. 책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야기려니 여겼다. 책을 펼쳐보니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인생 영화’에 대하여 말하는 글이었다. 삶이 힘들어도 영화에서 위안을 얻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나 보면서 인생 영화로 남는 것이다. 이유도 없이 아빠에게 맞았던 한 여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보며 영화 속 아버지를 이해하고,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집안을 걸어 다니는 경험을 했다. 이처럼 영화만이 가지는 특별함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인생 영화라고 일컫는 것 같다.



 

인생 영화를 말하라고 했을 때, 자신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삶에서 어떤 순간에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발견할 것이며, 영화로 인해 고통을 잊을 수도 있다. 오정미가 만난 사람들이 그렇다. 인생 영화를 말하지만, 살아온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니가, 혹은 내가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그 간극을 영화에서 찾으려 했다.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였고, 영화의 소재가 될 법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뮤직 테라피스트로 일하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글이다. 친구에 대한 질투 혹은 부러움을 표현하고, 병동에 있는 비올라 수녀에게 불러주었던 ‘내 모든 것’. 누군가 나의 음악을 알아준다는 것. 가슴 벅차하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각자 개인의 것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의 감정이며 경험이다. 수많은 사람이 괴로워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걸 타인의 글로 알게 되지 않나. 개인의 감정과 경험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소재가 되어 작품으로 변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공감하며 감동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비슷비슷한 일들, 공감할 수 있는 주제,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면 된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에세이를 이렇게 오래 읽은 적이 없다. 글은 촘촘했고, 폰트가 작아 집중하고 읽어야 했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세상엔 참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구나.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에 출간되는 책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표지라서 의미 있었다. 무언가 내 글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다이어리 느낌의 표지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며 길고양이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SNS를 켜면 고양이 관련 글이 보여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 어떤 시인이 배낭에 고양이 사료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길고양이들에게 준다는 것을 보았다. 「무법자」편의 은애 이모가 그런 사람이다. 고양이에게 천사 같은 이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고양이들을 돌본다. 마음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는 것 같다. 구조한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은애 이모의 뒷모습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영화 <버닝>에 출연한 배우와 감독만 알았지 시나리오 작가는 몰랐다. 오정미 작가가 러시아 문학 번역 작가로도 활동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나의 인생 영화는 무엇일까. 개봉관 영화는 다 챙겨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무언가 놓치는 것 같은 감정이 들었었나 보다. 어느 한 작품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고 있어서일까.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도 좋아했고,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주구장창 보았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궁금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오는 <오만과 편견>을 좋아해 극장에서, TV에서 여러 번 보았다.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다. 사랑과 결혼,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감정이 녹아있는 작품이었다. 그걸 인생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갈수록 감정이 무디어지는 듯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우는 일도 줄어들고, 파안대소하는 프로그램도 드물다. 아마도 나이 때문일까. 경험치는 갈수록 쌓이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에 빠지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최근의 영화는 ‘볼 만하다’, ‘재미있다’가 많지, ‘감동적이다’, ‘또 보고 싶다’ 이런 영화가 드물다. 장편소설이나 장편 드라마가 외면을 받고 있는 시대다. 짧은 소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시대에 ‘인생 영화’가 생긴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인생 영화를 논할 수 있다는 건 감정이 살아있다는 거다.

 

 

#내모든것 #오정미 #무제 #한국에세이 #예술에세이 #리딩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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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6-08-05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대문자 T의 성향이 더 짙어져요.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말하는 그 ‘콕‘하는 감정이 뭔지 알겠는데, 그 감정이 진하거나 깊지 않아져서 큰일이에요.
그래도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는 참 많은 것 같아요. 제가 100% 감정 이입하지 못해서 그렇지. ^^

Breeze 2026-08-09 09:09   좋아요 0 | URL
최근의 나는 귀차니즘 때문에 무기력한 거 같아요.
친구들에게 연락도 잘 안하게 되고요. 뭐 원래도 그런 면이 없잖았지만요.
조금 힘내서 글도 써보려고 노력중이에요.
잘 지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