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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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보았던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오른다. 공소시효만료를 앞두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 되어, 피해자들의 가족들에게 더없이 안타까움을 주었던 영화였다.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그 사건들을 간헐적으로 봐왔지만, 막상 영화에서 그 사건을 대하는 이들을 보고는 꼭 잡혔으면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이 작품 『64』또한 오래된 유괴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는 사건 '64'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1987년 일본의 군마현에서 있었던 '오기와라 요시아키 소년 유괴살인사건'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당시 유괴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로서 공소시효가 만료된 2002년에 작품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주인공인 '미카미'에게 투영하지 않았나 싶다. 

 

작품에서의 『64』는 쇼와 64년에 일어난 사건이라 하여 사건명이 '64'라고 붙여졌다. '미카미'는 D현 경찰서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경무부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발로 뛰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는 형사와는 달리 내부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으로 형사들에게서, 형사들과는 다른 족속이라는 식의 폄하를 받는다. 경찰서의 홍보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사건이 생겼을때 경찰서 출입기자단들에게 사건의 개요를 알리기도 하고, 통제하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형사들에게는 사건을 캐려는 자들로 비치고, 기자단들에게는 알면서도 숨기지 않나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하는 자리다.

 

홍보담당관 미카미에게는 자신과 똑닮은 딸 아유미가 있다. 아유미는 미인인 엄마를 닮지 않고, 아버지 얼굴을 닮았다는 게 너무 싫고, 죽고 싶어해 석 달전에 가출했다. 혹시라도 시체라도 찾았나 싶어 체형이 비슷한 시체가 나왔다는 말에 아내와 함께 확인을 했지만, 자신의 딸이 아닌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시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가출해 생사를 알수 없어 아내는 외출도 하지 않고, 전화기 옆에만 붙어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다그치지도 못하며, 또한 기자들을 상대해야하는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일이 있다.

 

상관으로부터 본청의 청장이 과거 14년전의 미제 유괴살해사건인 '64'의 사건현장과 유족의 집을 방문해 사건 해결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에 홍보실의 미카미는 유족의 집에 방문해 청장의 방문 허락을 해달라고 하지만 유족은 거절한다. 유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미카미는 '64'에 관련된 형사들을 찾아다니지만, 과거 아마미야 쇼코가 유괴되었을때 자택에서 대기했던 팀들도 찾아가지만, 사건 이후로 경찰을 그만두고 연락이 되지 않는 이도 있고, 사건을 캐는 미카미를 경무부에 물들은 형사 출신 미카미로 보기 시작하는 형사들때문에 숨어있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소설 『64』를 여타의 추리소설이 아닌 경찰소설을 썼다. 경찰이 주인공이고 유괴살해사건이 생겼을때, 사건을 추리하며 해결해가는 경찰관들의 모습보다는 경찰 내부와 외부 조직의 관계와 갈등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무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경무부서의 일의 특성과 그들을 사무직으로만 바라보는 발로 뛰는 형사부들의 심리가 들어있었다. 형사들은 살인사건이나 유괴사건이 생겼을때, 출동한 후부터 사건을 해결하고자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고 직접 몸으로 뛰며 살인범들을 잡고자 하는 행동형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사무실에서 일하며 정시에 퇴근하는 경무부서의 일을 우습게 보는 것도 사실이다. 형사 출신인 미카미가 홍보담당관으로 인사이동으로 왔을때 그를 바라보는 홍보실의 직원들도 2년후면 형사부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미카미 또한 자신이 있을 곳은 형사부라는 생각을 짙게 하고 있었다.

 

기자 출신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날카롭고 강렬했다. 미카미의 입을 빌어 형사의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무를 다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어떤 일 하나로 얼마나 심약해지는 지, 또한 얼마나 집요하고도 철저해질 수 있는지 다양한 인간상들을 볼수 있던 작품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식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점, 누군가를 아끼기 위해 사건의 한 실수를 과감하게 덮을 수도 있는 점,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약한 인간이지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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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즈음, 시인의 신작 시집 출간을 앞두고 두 권의 시집을 구매했다. 얇은 시집이라 가방에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읽으려고 했다. 어쩐지 몇 장을 이어 넘기지 못했다. 아직 나는 시인의 시에 적응중이었다. 열심히 적응하다고 거의 일 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미루지 못해 다시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연이어 두 권의 시집을 읽었더니 시인에게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SNS에서 보이는 그 직설적인 모습과 닮아 있는 시였다. 


나만 이런 느낌을 갖는 게 아니었다. 김민정 시인을 가리켜 '거칠고 직설적이고 극단적' 이라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약간 외설적인 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인은 직설적이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이 그대로로 표현하는 시인이라고 보였다. 


이번 시집의 화두는 '곡두'다. 곡두란,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시집의 모든 시에는 곡두 숫자가 새겨져 있다. 


······ 얕은 바람에도 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거기 담겨서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니까 나 보라고 떠주는 그 한 삽의 마음. 보이는 마음은 써야 하는 마음, 쓰인 마음은 읽어야 하는 마음. 읽힌 마음은 들킨 마음. 들켜진 마음은 번지는 마음. 시는 그렇게 들불처럼 퍼져서 비밀이 안 되어야 하는 마음.  ······  아 젓가락은 왜 자꾸 떨어지고 지랄일까 딴청 피우듯 말하는 나의 마음. 이 마음. 다 만나려고 이별하고 또 이별하려고 만나는 것을 끝끝내 알아버린 나의 마음. 이 마음의 쓰기는 끝끝내 말로는 끝이 안 나서 있는 연필 두고 자꾸만 새 연필 사러 가게 만드는 나의 마음. 이 마음. (36~37페이지, 「네 삽이냐? 내 삽이지! - 곡두 13 」 부문)


처음 읽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다시 읽으니 너무 좋다. 그 모든 직설적이고도 거친 언어가 아닌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는 시 였다. 이래서 시를 계속 읽는거지, 하며 혼자 뇌까린다. 시는 한번만 읽어서는 모른다. 두 번 혹은 세 번 읽어야 그제야 조금씩 마음에 들어온다. 몇 번을 읽으면 그저 가슴에 쏙 박힌다. 


······

차분한 차가움의 온도여.

여정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멈춤이래도

너는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이 갔대도

당신은 당신이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내 속의 내가 나는 아니라 할 적에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사물이 사물 속으로 들어가듯

사물이 사물 속에서 나오듯

감동하지 않고

나는 이제 어 이상

헤아리지도 않는다. (95페이지, 「우리는 그럴 수 있다 - 곡두 33」)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건 시어 혹은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시는 좀더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직설적인 건 여전하다. 

이제 그게 싫지 않다.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이래서 시를 계속 읽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와닿는 시.

적응중이었던 시인에게 어느새 적응 완료 상태다. 


사람들과의 대면 교류 대신 책과 씨름하는 비대면의 시대에 그래도 이 시집을 끝까지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다시 또 읽는다면 더 좋아지겠지. 지금보다도 훨씬. 시를 읽는 사람이고픈 지금의 나. 나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너의거기는작고나의여기는커서우리들은헤어지는중입니다 #그녀가처음느끼기시작했다  #아름답고쓸모없기를 #날으는고슴도치아가씨 #김민정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책  #책추천  #책리뷰  #시  #한국시  #시집  #시집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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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4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에 시인이 적은 ‘나는 너의 부록‘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랑이 있을것이다.

breeze님 글을 읽으니 오늘,김민정 시 다시 꺼내 읽어야겠어요. ^.^

Breeze 2020-12-22 10:02   좋아요 1 | URL
저도 다른 분의 시집 리뷰를 보면 시집을 꺼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감사합니다. ^^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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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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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네본다. 내가 원해서, 내 선택으로 지금에까지 왔다. 만약 누군가의 강력하고도 계획적인 상황하에 갇혀 선택이라는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산다면 어떨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를 납치하여 감금상태로 자기의 아이를 낳게 한다거나 몇십 년 동안 감금 상태로 지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본 소설 『룸』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다루지 않았나. 나는 모드 쥘리엥의 에세이도 그것처럼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친아버지다. 자기가 원하는 딸을 만들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전기가 흐르는 철책이 있는 집에서 감금하다시피 딸을 키웠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그 소녀의 이야기다. 서른네 살의 루이 디디에가 아마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섯 살 자닌을 아버지인 광부의 허락을 받고 데려왔다. 자닌을 학교에 보내고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그 이유는 완벽한 아이를 위한 교사로서의 역할을 위해서였다. 자닌이 대학을 졸업후 준비가 되었다고 여겼을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다. 그 아이가 바로 모드 쥘리엥이다. 



세 살때부터 육중한 철책 문이 있는 집에서 갇혀 살게 되었다. 교육은 엄마로부터 받았으며 문학과 글쓰기, 철학 등을 배웠다. 아버지에게서는 독일어를 배웠고 모든 악기를 연주하길 바랐기에 피아노, 아코디언 등을 음악 선생을 통해 배웠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게 각종 훈련을 받았다. 정원 일과 지하실, 혹은 청소 등을 스스로 해야 했으며 인부를 불렀을 때도 그들을 도와야했다. 모드의 아버지는 프리메이슨의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으며 모드를 '선택받은 인간'  혹은 '우월한 존재' 즉 초인으로 만들고자 했다.   



인격적, 육체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보통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법이지만 모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어머니 또한 하나의 피해자였으니 모드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을때 아버지의 질책을 두려워했다. 오히려 감시자에 가까웠다. 이 부분에서 놀란 점이 모드의 어머니 또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에게 교육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동물을 키우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셰퍼드 린다를 키우게 해주었으며 말과 오리 등을 키우게 해주었다. 부모님에게 받지 못하는 애정을 동물로부터 채웠다. 모드에게 사랑하는 동물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견디지 못했으리라.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한번 놀랐다. 왜곡된 사고로 인하여 모든 것에 준비된 아이를 만들어가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충분히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나가지 못했던 모드의 어머니 또한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모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음에도 누구하나 도우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모드에게 몰랭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집에서 갇혀 지내야 했을까. 




모드 쥘리엥의 에세이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어 나는 자꾸 소설을 읽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모드 쥘리엥이 했던 모든 행동들이 감탄스러웠다. 누구도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다. 미리 지쳐 모든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모드를 지탱해 준 것이 문학과 음악이었다. 부모님 몰래 침대 밑에 숨겨두고 읽었던 책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은 대체로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조그만 방 하나가 세상의 전부였던 『룸』의 주인공도 걷는 연습부터 했던 것처럼. 태어나서부터 세상의 중심이었던 가족과 집으로부터 탈출했음에도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비로소 자유로워졌음에도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심리치료의 도움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제 모드는 심리치료사의 길을 걷는다. 그럼에도 이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만큼 고통스러운 기억때문에 힘들었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몸이 갇혀있는 것과 마음이 갇혀있는 건 다르다. 마음의 감옥때문에 힘든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모드 쥘리엥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우리 안에 갇혀있는 마음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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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reeze 2020-12-16 10:54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서재의달인 축하드리고 연말 즐겁게 보내세요. ^^

scott 2021-01-09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선뜻 책장을 펼치기 힘겨울만큼
한아이에 인생을 어떻게 뒤흔들고 망쳐놨는지,,,,,

브리즈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reeze 2021-01-11 11: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중얼거리고 읽었습니다. ^^

얄라알라 2023-01-2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부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에세이 리뷰를 볼 때마다 꼭 봐야지 했다가 드디어 2023년 읽고, breeze님의 리뷰를 다시 읽으니 더 와닿습니다! ^^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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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카모메 식당>을 보았다. 일본 영화나 일본 소설을 가끔씩 찾는 이유가 서정적인 면이 좋아서이다. 별다른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 한데 그것에서 느끼는 감정은 따스함이다. 모르겠다. 그들의 무심함을 따뜻함으로 느끼는지도. 타인에 대하여 무관심한듯 보이는데도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따스하게 대하는 것 같다. 다만 표현하지 않을 뿐인가. 일본인들 특성상 타인에게 폐가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과도한 감정 표현을 삼가는지도 모르겠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 또한 잔잔함과 은근한 따스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간 읽은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 다 좋았다. 이번에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또한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좋았다. 이성 보다는 오히려 동성의 관계에서 서로 의지하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같다. 




미우라 시온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야기한다. 네 명의 여자가 한 집에 산다. 일흔을 앞두고 있는 쓰루요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걱정고민이 없는 소녀처럼 산다. 37세의 자수 작가인 사치는 그 직업을 취미 생활로 여기는 쓰루요의 외동딸이다. 사치와 동갑내기 친구인 유키노는 기억나는 순간부터 거의 혼자 생활해 왔다. 유키노와 함께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다에미는 스물일곱 살로 이 집안의 평균 나이를 내려놓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네 명의 여자가 한 집안에 모여 산다. 다만 마키타가의 수위실에 야마다 씨가 사는데 그가 유일한 남자다. 


쓰루요와 사치에게 아가씨라 부르는 야마다 씨에게는 아직 유키노와 다에미랑 함께 산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에미의 전 남친이 스토커처럼 찾아오자 그때서야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약간은 무심한 사람들이다. 야마다 씨는 쓰루요와 사치는 자기가 지키겠다고 곧잘 말하곤 했다. 쓰루요의 딸인 사치는 자수 작가다. 하루종일 바늘로 자수를 놓으니 밤낮이 바뀌기도 한다. 사치가 유키노를 알게 된 경위도 자수 작품을 가지고 손님을 만나러 갔다가 잘못 알아봐 연락처를 주고 받다가 친해졌다. 유키노가 머물던 작은 집에 누수가 생겨 사치네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키타가에는 잠겨진 방이 하나 있었다. 쓰루요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잠긴 방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아무도 없는 날 유키노가 열리지 않는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박스 안에 앉아 있던 갓타 미라를 발견했다. 쓰루요가 사치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사실을 숨겼나 의심했다. 나중에야 갓타의 비밀의 밝혀지는데 그 와중에 까마귀 젠푸쿠마루들이 나와 그들만의 언어로 그간의 사정을 말한다. 


다녀왔다고 말하면 어서 오라고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잔소리가 심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이런 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중략) 다에미는 자신을 포함한 네 사람을 미개척지에서 특별한 관습을 유지하며 사는 부족같다고 여겼다. (221페이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유키노와 다에미가 마키타가에서 머물며 이곳을 '우리 집'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식사 준비나 화장실 청소 등은 당번을 정해놓고 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모두들 한 마음이 되어 보호하려 든다.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게 가족이 아니겠는가. 유키노가 머물던 2층 방에서 누수가 되어 물이 쏟아지자 그녀에게 사치는 자신의 방 한켠을 내주어 유년시절 단짝처럼 한 방에서 지내게 한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걸듯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말한다. 언젠가는 마키타가에서 나갈지도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긴다. 




끝내 나오지 못했던 말과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갈까. 너희 인간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는 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허공으로 사라져 두 번 다시 소생하지 못하는 마음과 말들. (159페이지)


소설에서는 까마귀들이 쓰루요와 간다 사치오 부부에게 얽힌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판타지에 가까운 전개다. 또한 여자들만 사는 집에 도둑이 드는데 그때 하필이면 아가씨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야마다 씨는 감기로 앓아 누워있었다. 도둑이 사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을 때 도와주는 신비한 존재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갑자기 나타나 사치를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 일을 기회로 사치는 아버지가 자기를 지켜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부재하였던 아버지가 나타난 것 같은 느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준 느낌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임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모두 하나가 되어 끈끈한 정을 느끼게 했던 소설이었다. 나이 든 배우들이 나와 같이 사는 프로그램이 있다. 친구들이 가끔씩 이야기하는데 늙어서 한 달이나 혹은 두 달 정도 함께 모여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혈연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가 나타난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서로 마음을 맞춰가며 조금씩 양보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일이 괜찮아 보였다. 이런 형태의 가족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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