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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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이시봉의짧고투쟁없는삶 #이기호 #문학동네

 

이기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무려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기다렸던 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반려견 이시봉이다. 작가가 키우고 있는 반려견에게 역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반려견의 이름도 다름 아닌 이시봉이다. 이시봉이라는 이름은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이다. 새로운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그 생명력을 드러낸다.

 



이시봉은 이시습의 반려견이다. 도로에 뛰어든 이시봉을 구하려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시봉을 무시하고 이시습 또한 이시봉에게 애정을 주지 못한다. 다만 새벽에 이시봉을 데리고 야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이시봉이 뛰어갔다. 누군가 죽이려는 고양이를 이시봉이 구했다. 그 영상을 찍고 있던 리다가 SNS에 올린 후 앙시앙 하우스에서 거래를 제안해왔다. 이시봉을 그들에게 팔라고 했다. 이시봉의 혈통이 프랑스의 귀족 비숑 프리제라고 하면서 말이다.






 

소설은 세 가지의 갈래로 이시봉을 향한다. 그 첫 번째는 앙시앙 하우스의 정채민 대표와 파리에서 만난 김상우, 박유정이며 두 번째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스페인 왕국 고도이와 알바 공작부인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 왕비 이야기로 향한다. 다른 하나는 이시봉을 데려다 키운 아버지가 회사의 파업에 참여한 노조 간부로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희망 퇴직원을 내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낸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은 유머러스하고 휴머니즘을 다룬다. 물론 이 작품은 인간적인 것보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과 교류하는 동물을 보라. 특히 반려견은 인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인간을 돌보고 인간을 따른다. 비록 죽음이 다가온다고 해도 말이다. 개처럼 영리한 동물이 없는 것 같다. 산책을 가자고 하면 현관에 미리 가서 인간을 기다린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달려오고 인간의 기분을 살핀다.

 



인간은 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산다. 희망,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희망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을 속이고 과시했던가! 개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에 들뜨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희망만 면밀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도 서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204페이지)

 



이번 작품에서 특별했던 점은 작가가 살았던 지역과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랐던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작가가 현재 머무는 광주광역시와 근교 나주가 그곳이다. 시습의 아버지가 처음 이시봉을 데려왔던 장소가 나주였고, 시습과 시봉이 살고 있는 장소 또한 광주다. 친숙한 지역이 거론되어 반가움마저 든다.

 



이시봉이 개 농장에 맡겨지기까지의 과정은 정채민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시습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조 간부가 된 인간 이시봉와 김태형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점이다. 이야기가 확정되어 시습과 시봉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 죽음의 책임을 이시봉에게 전가하고 보살피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이시봉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키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인간이 곁에 있는 개나 고양이를 왜 반려동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반려인으로서 동물이 주는 위로를 알고 있다. 시습의 아버지가 우리집 막내라고 했듯 우리집에서도 고양이는 우리집 막내. 가족 모두 엄마, 아빠, , 누나로 불린다. 우연찮게 우리집에 온 고양이는 가족이 되었다.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개를 보면 반갑고 예쁘다. 책이 출간되기 전, 책을 다 읽고 작가의 인스타에 방문했더니 이시봉이 달리고 있었다. ‘이시봉, 이리와!’ 소리에 달려오고, 달리는 이시봉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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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0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작가가 오랫만에 낸 책이 반갑네요. 소재는 독특하지 않은데 이름이 특이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재밌을거 같아요. 뭐 언제나 이기로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기대해봅니다.
 
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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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여름완주 #김금희 #무제



 

어렸을 적엔 겨울을 좋아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여름이 좋다고 말했다. 더위를 잘 타지 않아 땀을 많이 흘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전에 비해 뜨거워져서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내게 여름은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는 계절이다. 어느 계절이야 그렇지 않겠냐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건 시간의 소중함이다. 아마 애틋함이라고 해야겠다.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이다.

 



김금희 작가의 최근작을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의 신작 소식은 반가웠고, 그 출판사가 배우 박정민이 대표라는 게 호기심이 생겼다. 더군다나 시각 장애인을 위하여 듣는 소설로 출간되었다고 해서 더 궁금했다.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 시리즈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오디오북을 먼저 발간한 후 이어서 종이책을 출간한다. 그 첫 번째를 연 작가가 김금희다.

 







소설의 내용을 보자. 창세기 비디오 대여점의 딸 손열매는 할아버지를 위해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스탠리 입키스의 대사를 성대모사했다. 그런 경험으로 성우가 된 열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룸메이트였던 고수미가 연락을 끊은 뒤 보증금마저 까먹고 있을 때 열매는 고수미의 고향 완주 마을로 향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완주 마을에 도착해 수미의 엄마가 하던 장의사 안의 매점에 눌러 앉는다. 매점에서 뜨거운 믹스 커피를 팔던 열매는 그곳을 방문하는 마을 사람 모두를 알게 되고 옆집의 어저귀와도 친해진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양미도 챙겨야 한다. 그들을 챙기느라 열매의 우울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은 희곡처럼 지문과 대사가 있다. 그런 까닭에 쉽게 읽히고 금방 읽게 된다. 감동 또한 크다. 등장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어저귀(강동경)만 달랐다. 나무의 소리를 듣고 숲의 모든 것과 교감하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감정을 묘하게 건드린다고 해야겠다.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돌보고 반대로 위안을 얻는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여럿이 모여 함께 일하기보다는 혼자서 일하는 경우도 많으며, 관계에 대하여 소홀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복작복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싸워주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가 있다. 갈 곳을 잃은 열매에게 수미의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머물게 한 수미의 엄마도 따뜻하다. 시골의 과한 관심이 좋지 않다고 여겼는데 소설에서는 그게 다정함으로 비친다. 그게 문제다. 자꾸만 현실에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소설에서는 바라게 되는 것이다. 공감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여긴다는 거다.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얻는 것들이 있다. 잃었던 나의 미래가 눈앞에 보이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학교라고는 담을 쌓았던 양미가 열매의 말을 듣고 친구들이 오기 전에 미리 학교 갈 준비하는 걸 보면 저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배려, 그리고 따뜻함이다. 누군가는 인간성을 잃어간다고 하는데, 살펴보면, 우리가 교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 한 조각을 내어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떤 방식으로 살더라도 현재까지 우리는 뛰고 있다. 저 멀리 완주가 눈앞이다. 아니, 여전히 완주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어디까지 왔던 현재까지가 완주다.

 

 

#첫여름완주 #김금희 #무제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듣는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장편소설 #박정민 #듣는소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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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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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헤세 #북하우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서너 번쯤 읽은 것 같다. 여러 번을 읽어도 이 작품을 확실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데미안작품을 만나면 읽어 보고 싶다. 특히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나온 작품은 독문학자이자 독일문학 번역가인 전혜린 타계 60주기 기념 복원본이다.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은 변경했으나 복원본이기에 60년대 특유의 어법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유려한 문장, 유려한 번역이라는 걸 실감했다. 데미안은 처음 전혜린이 번역했을 당시 파격적일 정도로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책이다. 더욱 유명한 일화는 전혜린의 친구가 데미안을 빌려가 돌려받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는 문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데미안이 무슨 작품이기에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을 붙잡고 있었나.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나와 달리 다른 독자들은 데미안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할 수 있나 궁금하다. 몇 번을 읽어도 머릿속에 부유하는 것들 때문에 제대로 읽었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성장소설로 분류한다. 하지만 한창 성장하는 중,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나 또한 아들이 중학생일 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데미안을 추천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는 소설이며, 읽으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었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다만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해를 했든 하지 못했든 삶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로 소설을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난 후 삶의 변화를 이끄는 작품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삶의 방황기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 신의 또 다른 이름 '아프락사스'에 관한 탐구가 이어지며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찾는 과정이 크다. 어린 소년은 살아가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종교적인 삶, 학구적인 삶, 정치적인 삶 같은 거 말이다. 궁극적인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삶보다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마지못해 사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다. 자꾸 엇나가고 미끄러질지 모른다.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손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그런 인물이었다. 과거 더 어렸던 소년 시절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해결해준 사람이 데미안이었으며 종교와 삶의 기로에서 방황할 때 떠올린 것도 데미안이었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소녀를 베아트리체라고 이름을 짓고, 밤마다 꿈을 꾸며 그 모습을 그린 후 들여다보았을 때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은 데미안과 비슷했다. 데미안을 넘어서는 인물로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인물이었다.

 



이마에 표지가 있는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 마치 연락을 받은 사람처럼 나타난다고 가정해보라. 특별한 능력을 있는 자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데미안과 데미안의 어머니 그리고 싱클레어가 특별한 표지를 갖고 태어났다.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전달된다. 만날 즈음이 되면 서로를 찾으며 어느 장소에서 스치듯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마치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매혹적인 소설이다. 삶의 고민, 삶의 방향과 기로에 서 어느 길로 갈지 판단할 수 없을 때 나에게 다가온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등대가 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방향대로 길을 가는 것보다, 삶의 본질적인 고민과 동시에 방향성을 갖게 된다. 살아가면서 두려움은 필연적이다. 어떤 길로 나서든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길을 향해 나서고, 가로막혀 있으면 뒤돌아 나오면 된다. 어떤 길로 가든 내가 선택한 길은 후회가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걸어갈 수 있다. 아프락사스를 향해 탐구하고 나아갔던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북하우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세계문학 #전혜린 #전혜린타계60주기기념복원본 #노벨문학상 #독일소설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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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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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빛이우리를비추면 #사라피어스 #밝은세상

 



스위스의 알프스 지역인 크란 몽타나의 럭셔리 호텔 <르 소메>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의 형사 엘린 워너로 남동생 아이작의 약혼 파티에 초대되어 <르 소메>에 도착했다. 전에 맡은 사건에서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해 몸과 마음이 무너져 현재는 휴직상태다. 형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직면한 <르 소메>의 살인사건은 그를 다시 형사로 거듭나게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표정에서 비로소 그의 능력이 빛난다.



 

<르 소메> 호텔은 과거 결핵 환자들을 치료했던 요양원 건물이었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설원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럭셔리한 호텔로 거듭난 <르 소메>는 요양원 건물에 있었던 과거의 비극이 일어났던 물건들을 전시해 섬뜩한 기분을 갖게 한다.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한 의도였다.

 





눈사태 예보에 손님들과 직원들이 호텔을 떠나고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호텔의 고객 관리실 직원 아델이 사라지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호텔의 부지배인이자 아이작의 약혼녀인 로라까지 사라져 보이지 않자 엘린은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린다. 남동생 샘의 죽음에 아이작이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았다. 아이작이 로라를 죽인 게 아닐까 의심하며,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눈사태로 호텔에 출동하지 못하는 스위스 경찰을 대신해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 엘린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한다.

 



설원과 햇빛을 감상할 수 있는 거대한 유리창,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뜨거운 물을 즐길 수 있는 스파, 그리고 탈의실, 기록보관실 등 열리지 않는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엘린은 놓친 게 없는지 조바심을 내고 머릿속은 과거의 기억과 혼재하여 불안하다.

 



스파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얼굴에 고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결박되어있는 손목에서 손가락이 모자랐다. 왼손에 한 개, 오른손에 두 개가 잘려 나갔다. 다른 장소에서 잘린 손가락 세 개와 숫자가 적힌 구리반지가 있는 유리 상자가 발견되었다. 마치 요양원 시절을 전시하는 듯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전시물에 가까웠다. 그녀를 따르는 수상한 움직임, 보안 카메라에 찍힌 사람의 행적, 과연 아델을 누가 죽였을까 의심하는 순간 나타난 로라의 시신 그리고 엘린을 공격하는 살인범. 엘린의 행적을 따라가며 느끼는 공포가 컸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감각에 공감하며 살인자가 누구일지 유추하게 되었다. 밀실 살인처럼, 현재 호텔에 머무는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누가, 무슨 이유로 살인을 하는지 파악해야 했다. 과거 요양원에서 행해졌던 일 때문에 복수를 하는 것인지 의심하는 한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게 엘린의 역할이다.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건 때문에 휴직 중이었던 엘린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건을 해결하는 중간 밝혀진 과거의 진실은 추악하다. 오래된 사건을 잊지 못하고 복수의 칼날을 벼려왔던 사람에게 눈은 가려져 있는 안대와 같다. 복수를 위해 기회만 엿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엘린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트라우마로 남아 봉인해두었던 과거의 진실을 아이작과 대화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사건을 해결한 엘린은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

 



사건의 중심에서 선 엘린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엘린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소설의 마지막에 이른다. 복수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 마치 전시하듯 시신을 전시하는 자는 어떤 아픔을 겪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엘린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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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지음 / 정은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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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거대한서점진보초 #박순주 #정은문고

 



일본의 도쿄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고서점 거리 진보초. 다양한 책에서 진보초에 관련된 글을 읽고 진보초를 거니는 나를 상상했다. 쌓여 있는 헌책 더미들. 장르별로 다양하게 구성된 서점을 구경하며 책과 노니는 기분을 가질 것 같다. 일본어를 알지 못해도 각 서점만이 가지는 특징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책 여행일 것이다.



 

아마 작년에 진보초가 배경으로 나온 소설을 읽으며 이 책을 구입했던 것 같다. 책과 서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 또한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직접 진보초를 찾아가 서점 대표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 자료와 함께 서점이 만들어진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탐구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종이책을 파는 서점은 여러모로 경영난을 겪겠지만, 자신들의 특장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 손님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세계의 서점들을 방문하는 책 여행자들에게 빠질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서점이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것, 서점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일 것 같다. 100년 이상 된 서점이 코로나를 겪으며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점을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대부터 이어온 서점 대표들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서점은 문학을 비롯해 인문, 과학, 예술 분야 등 전문 서점으로 구성되어 독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서점을 찾아 거닐면 된다.

 



우리나라의 헌책방 거리 중 가장 유명한 장소가 부산 보수동 책방일 것이다. 몇 년 전 부산 여행 시 방문하고 좀 실망했었는데, 진보초는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광주 계림동에서 책 한 권을 찾고자 헌책방을 훑은 적이 있다. 헌책방이 꽤 많았던 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이 헌책방도 겸하고 있어 작은 책방이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책의 첫 장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라는 서점은 책장 하나를 빌려 주인으로서 책을 구입하고 재고 관리와 SNS에서 홍보도 하며 오프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한다. 이사를 하며 책을 정리했으나 아직도 많은 상태에서 이런 점은 괜찮아 보였다. 직접 책 판매자가 되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좋은 책을 선별하는 안목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종이를 소중히 한다는 것은 책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책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그만큼 옛날 책을 아껴 다음 세대에게 점점 확산시키는 것이다.” (243페이지)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선호한다. 전자책에 대한 홍보를 보아도 흥미를 끌지 못한다. 눕거나 앉아서 읽을 수 있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종이책 고유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관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다. 거실 전면, 부엌 식탁 앞 전면, 방 등에 있는 책장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버겁기도 하다. 책방 한 칸을 셰어할 수 있다는 발상이 새로웠다. 한번쯤 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보초 거리와 서점인의 시각에서 책방을 경영하는 것과 서점만의 장르별 특징을 담았다. 물론 책방 골목 사이에 있는 맛있는 카페며 식당을 곁들여 방문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책 여행자로 산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유럽 뿐 아니라 세계의 책방을 다니는 에세이를 읽은 적 있는데, 책 여행을 한다는 자체로 감동이었다. 훗날 전국의 서점 뿐 아니라 세계의 서점을 돌아다니는 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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