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크랩이란 걸 해본게 아마 중학교 때 이었을 것이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 들었을때, <여학생>이라는 잡지에 부록으로 딸려나오는 연예인의 사진을 오려 모았고, 내가 한창 좋아했던 조용필의 사진을 오려 스크랩 북을 만들었었다. 커다란 브로마이드를 방 벽에 붙여놓곤 만날 쳐다보며 흐뭇해하기도 했고, 스크랩북을 뒤적거리곤 했었다. 그 스크랩북을 나중에 친구 누군가에게 전해주었었다.

 

일단 하루키 씨의 『더 스크랩』은 스크랩 북처럼(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왼쪽 끝이 잘려져 있어 마치 우리가 모아놓은 스크랩 북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 속의 종이 또한 흰색이 아닌 푸른 빛을 띈 종이 색깔이라 부담없이 가볍게, 혹은 옛 추억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잡지를 보며 좋은 기사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라도 나오면 스크랩하였듯, 하루키씨 또한 미국의 잡지 <에스콰이어>나 <피플> <뉴욕타임스>일요판 등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1980년대에 약 사 년 동안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81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낸 책이다. 하루키 씨는 '이삿짐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졸업앨범을 무심코 넘겨보는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맞다. 『더 스크랩』은 벌써 30년 전의 기사에 대한 하루키 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글이며, 30대의 하루키 씨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소설에서의 느낌과 에세이에서의 느낌이 전혀 다른 작가다. 소설에서는 빛나는 청춘의 고뇌를 많이 다루었다면, 에세이에서는 하루키씨 만의 소심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아저씨의 느낌, 즉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미국판 잡지 들을 스크랩한 것처럼 기사에 대한 다양한 생각, 그만의 독특한 감정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인 것이다.

 

늘 작가도 한 사람의 독자라는 사실을 잊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씨도 작가이기전에 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한 부분이 있어 감동이었다. '<뉴요커>의 소설'이란 챕터인데, 하루키 씨는 잡지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훌륭한 단편소설을 만나는 것이다.(26페이지) 라고 한 부분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간 잡지가 나오면 목차를 보면서 자기가 볼 기사를 대충 훑게 되는게 하루키 씨 또한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소설을 찾아 읽는 기쁨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요커>에 실린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전화를 거는 곳」과 도널드 바셀미의 「벼락」을 추천한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카버의 작품은 금세 반할 정도로 좋은 단편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것 같아 무슨 작품이 있나 검색해보았다.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몇 작품이 보여 읽어보고 싶어 메모 해보았다.

 

술술 읽히는데다 다 읽고 나면 마음에 뭔가가 남는다. 훌륭한 단편이란 그런 것이다. (28페이지)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우리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을 이해못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나이를 먹는 것, 즉 늙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에스콰이어>란 잡지에 들어있는 늙는다는 것에 대한 특집 기사를 언급하며, 어떻게 하면 비교적 편하게 나이를 먹을까? 에 대해 <에스콰이어>는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포기하고 자신의 나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맞는 말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에게 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지, 금연과 조깅을 통해 상당히 젊게 꾸미고 다니는 42세의 독신 작가가 있고, 그에게는 21세 여대생의 연인이 있다. 그의 연인은 그와 오래 사귀었지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한다. 젊은 여성과 사귀는 45세 이상의 남자분은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매몰차게 차이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해서 행동하길 바란다는 글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데 이 기사를 읽는 남자들은 분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추억의 기사라고 하면, 그 옛날 로키 시리즈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로키 시리즈의 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의 기사와 함께 마이클 잭슨 닮은 사람의 진짜 마이클다워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얼마전에 읽었던 『미국의 송어낚시』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죽음에 대한 글도 있어 반가웠다. 이렇듯 80년대의 기사들에 대한 글을 우리를 추억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소치 동계올림픽 때문에 밤잠을 못이루며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데, 하루키 씨또한 1984년에 열렸던 LA올림픽에 대한 일기를 마지막 챕터에 넣어 경기를 바라보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했다. 지나간 시간들을 이렇듯 글로 만나면 새로움을 느낀다. 또한 그때 그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루키 씨의 『더 스크랩』으로 인해 198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말미에 번역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앨리스 먼로의 『떠남』을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한 작품이다. 그 당시에 이 작품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라고.

 

사실 나도 꽤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고,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나는 그 이름을 몰랐다.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대부분 장편소설을 좋아하고, 단편소설을 더디 읽고 있는 탓일게다. 나 또한 작년 10월에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알았으니 말이다.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다가도 무슨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처럼.

 

이처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것 때문에 작가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를 읽고, 작가의 연륜에서 보이는 문장들, 깨우침에 대해 알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 『런어웨이』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볼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적혀진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였고,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소소한 모습들을 만날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속에서 표제작 「런어웨이」에서 주인공 칼라의 이야기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남편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클라크, 클라크가 없는 삶을 살겠다는 그 이유 하나때문에 택한 칼라의 모험이다. 클라크가 없는 토론토를 향해 버스에 올라탄 이유가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도피하고 싶었던 그 특별했던 하루에 느낀 모든 것, 자신의 삶, 자신의 곁에 있었던 클라크와 자신의 곁에 없을 클라크의 모습을 생각한 칼라의 특별했던 하루였다. 또한 칼라에게 도움을 주는 실비아의 마음 속 깊은 속내는 잃어버린 새로운 감정들을 만날 수 있기도 했다. 칼라 또한 남편 클라크를 피해 달아나면서 자신의 모습과 클라크와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지부진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평범하게 아웅다웅하고 살고 있는 것이 큰 행복임을 아주 늦게야 깨닫곤 한다. 어떠한 새로운 일을 결행하고서야 자신의 주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세 편, 「우연」, 「머지않아」, 「열정」은 모두 줄리엣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 소설이다. 연작 소설에서는 시기가 다른 주인공들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우연」에서의 줄리엣은 정교사 자리를 제안받지 못해 기차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에릭에게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어 「머지않아」에서는 웨일 베이에서 에릭과 함께 살고 있는 줄리엣이 딸 퍼넬러피를 데리고 어렸을때 살았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의 이야기이다. 교사인 아버지가 채소 장사를 하려고 교사를 그만 둔 이야기를 담았다. 「열정」에서 줄리엣은 이제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이십대가 된 퍼넬러피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들을 담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설렘, 만남, 고향의 부모, 누군가의 떠남을 알수 있는 연작 단편 소설이었다. 

우리의 삶을 보아도 누군가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나이가 들어 떠날 수 없는 이별, 그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나 간 시간들의 후회와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었다.

 

여덟 편의 작품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은 「런어웨이」와 「반전」이었다.

「반전」에서 로빈은 매년 여름에 한 편씩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스트래트퍼드에 가 연극을 보고는 자신에 손에 들려 있었던 페이즐리 무늬의 천 가방이 없어졌음을 깨닫고, 다시 극장으로 가보지만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기차표도 돈도 없는 로빈은 주노라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그의 가게에 가서 간단한 음식을 대접받고 그가 구입해 준 기차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남자는 대니얼, 혹은 다닐로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로 돈을 돌려주고 싶어하는 로빈에게 내년 6월 자신의 가게로 찾아올 것을 부탁한다. 아보카도 색으로 주름이 퍼지는 녹색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 편지는 주고받지 말기로 해요. 편지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니까. 그저 서로를 머릿속에 담아만 뒀다가 내년 여름에 만나요. 나한테 미리 알릴 것도 없어요. 그냥 오기만 하면 돼요. 지금 이 마음 변치 않는다면 그냥 오기만 하면 돼요.  (377페이지,「반전」중에서)

 

일 년의 시간을 기다린 후에 그녀는 다시 연극표를 예매하고 그를 만나러 스트래트퍼드에 갔지만 그가 무정하게 내쫓는 바람에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감정은 바래기 마련이다.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늘 마음속에 남아있었을 다닐로, 혹은 대니얼에 대한 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우리 또한 그렇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찾아갔을때 그 사람이 부재할 경우 혹은 내침을 당할 경우 마음을 다치고 돌아온다.  평생 오해를 안고 돌아오지만 시간이 지난후 진실을 알았을 경우엔 주인공의 마음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도 아플수 밖에 없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을 읽으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장편과는 다른 단편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달까. 단편도 이렇게 재미있고,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유려한 문장속에서 느낄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다시 느낄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붓다의 십자가 - 전2권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여름휴가를 역사유적 탐방차원으로 강화도를 다녀왔다.

강화도에서 며칠 머물며, 고려 시대의 숨결을 느꼈고, 아픈 역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인해 강화도는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곳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기억들과 함께 언젠가 TV에서 했던 드라마 '무신'으로 인해 몽골의 침략을 제대로 바라보았고, 노비출신으로 고려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가 된 김준의 이야기를 보며, 고려 황제보다도 더한 권력을 누렸던 고려 무신정권의 역사를 알수 있었다. 

 

김종록의  『붓다의 십자가』는 드라마 '무신'의 시대적 배경과 일치한다.

몽골의 침략으로 집정 최이(최우)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고, 그곳에서 대장경판을 새롭게 만들어 지금의 팔만대장경을 만든 인물이다. 『붓다의 십자가』는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소설이다. 대장경을 새롭게 만들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그들이 권력을 누리기 위해 했던 일들을 허구의 인물인 지밀 승정의 시선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강화도 선원사 대장도감, 대구 부인사의 초조대장경을 몽골군이 불태운후 대장경을 새롭게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지밀 승정. 스승 수기 도승통의 부름에 달려가 남해에서 올린 경판에 십자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밀은 경판을 새겨 올린 김승이란 각수장이를 찾아 나선다. 남해의 각수마을에 들어선 순간, 의문의 회오리바람으로 지밀은 앞이 보이지 않게 되고, 같이 갔던 시자 인보 또한 며칠후 의문사 한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지밀은 인보의 죽음을 조사하려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책 속에서 불상 가운데 새겨진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책을 읽으며 나는 기독교를 경교라 부른게 아니었나 했는데, 고대 동방기독교인 경교는 대진경교라고도 불리우며 불교와 기독교가 접목되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불교가 석가모니의 말씀을 따르고, 경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니 이 모두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겠다. 

 

왕이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들어가 버리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백성들이 굶주리는데 집정 최이의 비호를 받는 승려들은 호위소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의지하는 건 예수의 말씀이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다. 서방정토라 여겨진 김승 촌장이 이끄는 각수장이 마을에서 지밀은 그마저 그곳이 자신이 꿈꾸던 곳임을 느꼈던 것이다.

 

처음 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때, 대장경에 예수란 이름이 있다는 말에, 작가의 상상력이 아닌가 했다. 붓다의 불상에 새겨진 십자가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라 느꼈지만, 책 1권의 첫머리에 보면 그에 관련된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다.

 

합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은 우리가 학교 다닐적부터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수학여행때에도 합천 해인사를 들렀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려인들의 아픔과 나라를 잃고 싶지 않은 염원으로 새겨졌을 팔만대장경이 새롭게 보였다. 비록 최이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그렇게 했을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이 책으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동화를 다시 읽는 일은 우리를 추억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꿈을 꾸었던 그 시간들, 동화속 이야기에 동화되어 우리는 많은 꿈을 꾸었다. 풍족하지 못한 삶을 나는 책속의 사라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을 꾸었었다. 내가 공주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들. 그런 달콤한 상상을 하느라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아마 많은 소녀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몇몇 이성적인 소녀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소공녀』속 사라도 그런 소녀이다. 

처음엔 공주처럼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버지 크루 대위가 있었고, 아버지가 부자이기 때문에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 가진게 많은 소녀였어도 사람을 대할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책을 많이 읽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상상의 나래를 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크루 대위에 의해 민친 학교로 오게 된 일곱 살의 사라 크루는 돈이 많은 아버지때문에 민친 교장으로부터도 특별 대우를 받았다. 아빠는 다시 인도로 돌아갔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걸로 위안 삼았다. 열한 살의 생일날 공주처럼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하던중 아빠가 사라에게 돈 한푼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민친 교장은 화려한 사라의 방을 빼앗고, 쥐가 들끓고 겨울을 견디기 힘든 다락방으로 옮기게 한다. 하룻밤 사이에 공주에서 하녀로 바뀌어버렸다.

 

춥고 배가 고프지만, 다락방에 있는 쥐에게도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빵부스러기를 주던 마음씨 착한 소녀였다. 오래전에 읽을때도 마음 아팠지만 다시 읽어도 마음이 아픈 구절을 보자면, 빵집 앞에서 동전을 주워 빵을 샀지만, 자신보다 더 배고파 보이는 아이에게 여섯 개의 빵중에 다섯 개를 주고, 자신은 한 개의 빵만을 먹었을때이다. 코끝이 시큰해질정도로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배고픈 아이에게 자기보다 더 배고픈 아이가 보일리가 없는데도 사라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인데도 얼마전에 읽은 것처럼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이 났다.

다락방 옆방에 사는 부엌데기 베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일, 우연히 원숭이 때문에 알게 된 람 다스와의 인연도 그대로였다.  

 

어쩌면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친 건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인지도 몰라.  (126페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견디기 힘들어하는데, 사라는 자신에게 시련이 닥쳐 왔어도 그에 굴하지 않고, 힘겨운 상황을 상상력으로 이겨낸 것이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배가 고프고 추우면 자신이 공주라 생각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내고자 한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이 주어질때 절망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라는 절대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버리지 않았고, 스스로 공주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했다. 우리가 이야기에 위안을 얻고자 책을 읽듯이, 힘겨울때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그 시간들을 견뎠던 사라였다.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동화를 읽었다.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다는 편견을 버리자고 했지만, 내가 읽는 소설들에 밀려 동화책은 내 가까이에 놓아두지 않았다. 물론 동화를 좋아하긴 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공주 시리즈나 공주 시리즈에 버금가는 소녀 취향의 동화는 늘 마음속에 남아있다. 비룡소에서  펴낸 하트우드 시리즈의 첫번째로 나온 이 책은 아이에서부터 어른을 위한 위안을 주는 성인을 위한 동화이다.

 

최근에 보는 드라마 중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이 나오는 '별에서 온 그대'이다. 약속이 있더라도 10시 까지는 집에 가자며 '우리의 도민준씨'를 봐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의 도민준씨, 조선시대 때부터 400년간 살아온 미남자다. 물론 드라마 제목처럼 별에서 온 사람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순간 이동하여 구할수도 있으며, 시간을 1분 정도 멈출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남자가 이 책을 읽었다.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읽는 책은 곧바로 인터넷 서점 및 일반 서점에서도 상위 순위에 있게 마련이다.

 

이 책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도 드라마에서 먼저 알게 되어 궁금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너무도 감동적인 내용에 눈물을 흘리고는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사랑하는 법을 새로 배우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이며, 토끼의 귀는 진짜 토끼의 털로 만들어졌고, 꼬리 또한 진짜 토끼털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이 토끼는 에드워드 툴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도자기로 만든 토끼의 주인은 애벌린 툴레인이라는 어린 소녀였다. 에드워드는 애벌린의 할머니 펠리그리나에 의해 만들어졌고, 에드워드에게는 회중시계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애벌린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애벌린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에드워드는 그 사랑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저 일상화된 받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받는 사랑에 너무 익숙해져 그 사랑을 마주 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사랑에 대해 잘 몰랐다. 펠리그리나 할머니도 그게 안타까웠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그토록 많았는데도 사랑이라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던, 펠리그리나 할머니가 이야기해준 어느 공주처럼 말이다.

 

 

에드워드는 어떤 사정으로 애벌린과 헤어지게 되었고, 늙은 어부에 의해 바다에서 구해졌고 그의 아내 넬리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개 루시에 의해 쓰레기더미에서 구해져 불과 함께 지냈고, 브라이스에 의해 사라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그토록 애벌린에게 사랑을 받았을때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다. 아니 느끼지도 못했다. 애벌린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지만, 몇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동안 이제 에드워드는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에드워드 또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면 애처롭다. 또한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했고, 에드워드를 살리기 위해 에드워드를 버린 친구까지 있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던 것이다.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거야.  (195페이지)

 

에드워드가 이처럼 간절하게 누군가를 기다려본적이 있었던가.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펠리그리나 할머니의 말을 가슴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야 사랑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늦었다 해도 결코 늦지 않을수도 있다. 마음속에 깊이 들어온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일이었다.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고통스러운 일도 많고,  때로는 혹독하게 다가온다. 고통과 혹독한 삶을 헤쳐나가다보면 우리가 성큼 성장해 있듯, 사랑하는 법도 우리는 살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 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