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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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이란 걸 해본게 아마 중학교 때 이었을 것이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 들었을때, <여학생>이라는 잡지에 부록으로 딸려나오는 연예인의 사진을 오려 모았고, 내가 한창 좋아했던 조용필의 사진을 오려 스크랩 북을 만들었었다. 커다란 브로마이드를 방 벽에 붙여놓곤 만날 쳐다보며 흐뭇해하기도 했고, 스크랩북을 뒤적거리곤 했었다. 그 스크랩북을 나중에 친구 누군가에게 전해주었었다.

 

일단 하루키 씨의 『더 스크랩』은 스크랩 북처럼(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왼쪽 끝이 잘려져 있어 마치 우리가 모아놓은 스크랩 북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 속의 종이 또한 흰색이 아닌 푸른 빛을 띈 종이 색깔이라 부담없이 가볍게, 혹은 옛 추억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잡지를 보며 좋은 기사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라도 나오면 스크랩하였듯, 하루키씨 또한 미국의 잡지 <에스콰이어>나 <피플> <뉴욕타임스>일요판 등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1980년대에 약 사 년 동안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81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낸 책이다. 하루키 씨는 '이삿짐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졸업앨범을 무심코 넘겨보는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맞다. 『더 스크랩』은 벌써 30년 전의 기사에 대한 하루키 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글이며, 30대의 하루키 씨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소설에서의 느낌과 에세이에서의 느낌이 전혀 다른 작가다. 소설에서는 빛나는 청춘의 고뇌를 많이 다루었다면, 에세이에서는 하루키씨 만의 소심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아저씨의 느낌, 즉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미국판 잡지 들을 스크랩한 것처럼 기사에 대한 다양한 생각, 그만의 독특한 감정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인 것이다.

 

늘 작가도 한 사람의 독자라는 사실을 잊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씨도 작가이기전에 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한 부분이 있어 감동이었다. '<뉴요커>의 소설'이란 챕터인데, 하루키 씨는 잡지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훌륭한 단편소설을 만나는 것이다.(26페이지) 라고 한 부분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간 잡지가 나오면 목차를 보면서 자기가 볼 기사를 대충 훑게 되는게 하루키 씨 또한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소설을 찾아 읽는 기쁨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요커>에 실린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전화를 거는 곳」과 도널드 바셀미의 「벼락」을 추천한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카버의 작품은 금세 반할 정도로 좋은 단편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것 같아 무슨 작품이 있나 검색해보았다.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몇 작품이 보여 읽어보고 싶어 메모 해보았다.

 

술술 읽히는데다 다 읽고 나면 마음에 뭔가가 남는다. 훌륭한 단편이란 그런 것이다. (28페이지)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우리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을 이해못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나이를 먹는 것, 즉 늙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에스콰이어>란 잡지에 들어있는 늙는다는 것에 대한 특집 기사를 언급하며, 어떻게 하면 비교적 편하게 나이를 먹을까? 에 대해 <에스콰이어>는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포기하고 자신의 나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맞는 말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에게 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지, 금연과 조깅을 통해 상당히 젊게 꾸미고 다니는 42세의 독신 작가가 있고, 그에게는 21세 여대생의 연인이 있다. 그의 연인은 그와 오래 사귀었지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한다. 젊은 여성과 사귀는 45세 이상의 남자분은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매몰차게 차이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해서 행동하길 바란다는 글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데 이 기사를 읽는 남자들은 분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추억의 기사라고 하면, 그 옛날 로키 시리즈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로키 시리즈의 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의 기사와 함께 마이클 잭슨 닮은 사람의 진짜 마이클다워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얼마전에 읽었던 『미국의 송어낚시』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죽음에 대한 글도 있어 반가웠다. 이렇듯 80년대의 기사들에 대한 글을 우리를 추억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소치 동계올림픽 때문에 밤잠을 못이루며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데, 하루키 씨또한 1984년에 열렸던 LA올림픽에 대한 일기를 마지막 챕터에 넣어 경기를 바라보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했다. 지나간 시간들을 이렇듯 글로 만나면 새로움을 느낀다. 또한 그때 그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루키 씨의 『더 스크랩』으로 인해 198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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