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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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특수 청소를 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나는 작품은 강지영 작가의 『하품은 맛있다』와 정명섭 작가의 『유품정리사』인데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일본 작가가 쓴 작품도 읽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생각한 게 살아가는 모습보다 오히려 죽음 이후의 모습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커다란 빙산이다. 죽음 이후의 모습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죽음은 세상의 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한낱 오물을 뿜어내는 그래서 온갖 구더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 존재거늘 너무 집착하고 욕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 김완은 특수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죽은 자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청소한다. 죽음의 냄새를 먼저 맡고 죽은 자가 남긴 흔적들을 청소하면서 삶과 죽음의 이면을 생각한다. 최근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데, 고독사를 하는 이의 나이는 점점 어려진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의 경우 70~80대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50대가 가장 많고 점점 더 나이대가 내려가는 수준이라 한다.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자신의 삶이 버거워 누군가를 챙기는것이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다양한 죽음의 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살 현장에서 발견한 캠핑장, 화장실 위 천장의 도시가스 배관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모든 틈에 청록색 천면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 밀실을 만들어 놓고 착화탄 여러개를 얹어 불을 피웠다. 그런데 그의 집 수거함엔 완벽하게 분리수거가 되어 있었다.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모든 준비를 하였던 것일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47페이지)

 

가난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자 누가 있으랴. 나는 아직 죽음을 생각할 만큼 가난해보지 않아서 그 마음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현장에 갔을 때 태반이 전기요금 연체로 전기공급 제한 통지서나 도시가스 체납으로 공급을 제한하겠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가난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가며 죽음을 부르는 것 같다. 

 

죽은 자가 남긴 쓰레기를 치우며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라고 하였다. 수술용 글러브와 신발 덮개, 그 안에 신는 비닐로 만든 신발 덮개, 방진 마스크와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그곳에 살았던 이의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 묵묵히 죽은 이의 흔적을 치우는 시간은 마치 고행을 하는 것과도 같다.

 

죽은 이가 남긴 흔적을 치우는 시간을 1장에서 그렸다면, 2장은 특수청소 일을 하며 느낀 점들을 말했다. 일할 때 괴롭지 않은지, 도저히 즐거운 점이라곤 없냐곤 물으면 딱 잘라서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고 했다. '벽지가 뜯겨 나가고, 장판 한 장 없이 오로지 시멘트 벽만 남은 집을 보면 그제야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 라고 했다. 앞서 말했던 고행의 시간이리라.

 

네 평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의 온 집안에 쓰레기 더미로 문을 열 수 없는 집에서 화장실에 가득 쌓여 말라붙은 똥 덩어리를 청소하는 장면에서는 특수청소의 어려움을 다시 실감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똥을 그러모아 봉지에 옮겨 담고 나서 화장실 청소를 마친후 느낀 점은 너그러워 진다는 거다. 평소 우울감에 시달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추천하고 싶다. 그 화장실이 더럽고 끔찍할수록 더 좋다. (221페이지) 라고 하였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걸려오는 자살을 예고하는 전화를 받을 때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이야기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는데 미리 죽음 이후에 치울 청소 비용을 물어본다든지, 착화탄으로 자살을 하게 되면 괴로움을 느낀다는데 진짜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그 경우 어렵게 전화 위치추적을 하여 살려낸다고 하니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를 비롯해 삶과 죽음의 의미와 이유를 알 수 있어 숙연해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 이후의 우리의 모습들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삶이 힘들다고 여기는 분들,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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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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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숲은 알고 있다』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숲은 알고 있다』에 이어 『워터 게임』으로 이어지는 다카노 시리즈 두 번째로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즉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다카노의 스파이가 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다카노는 스파이 훈련을 받는 열일곱 살의 예비 요원으로서 평소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 외워야 할 사항들을 외우고 사건으로 첩보 활동의 일환으로 미리 만나야 할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다카노는 친모가 다섯 살의 그와 동생과 함께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가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오사카 아동 방치 사건을 보고 이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 다카노는 어머니가 창문과 문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방치해 동생은 죽고 살아남은 아이였다. AN 통신에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골라 첩보활동을 하는 예비 요원으로 길러왔다. 나란토라는 섬에서 야나기와 함께 예비 첩보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AN요원이 18세가 되면 첩보원으로서 가슴에 폭탄을 심어 놓고 35살이 될 때까지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매일 보고를 하지 않으면 폭탄은 터지게 장치되어 있고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일본 배우 후지와라 다쓰야와 한국 배우 한효주와 변요한이 출연한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을 작품으로 생각된다. 변요한이 맡은 데이비드 김은 다카노가 파리에서 예비 임무를 수행할 때 기숙사에 다녀간 흔적이 보이는 한국인으로 다카노와 함께 많은 사건에서 부딪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부모가 없는 다카노 가즈히코는 오키나와 나란토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도모코 아줌마의 도움을 받는다. 나란토로 오기 전에도 후미코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가 첩보 요원으로 길러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같은 애정을 갖고 있다. 다카노가 겪은 일들을 다 알고 있는 가자마 다케시는 그가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주는 존재다.

 

 

 

친구 야나기 또한 AN통신의 예비 첩보요원이었으나 활동중 중요한 정보를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야나기가 써 둔 편지를 발견하고 야나기를 도와야 할지, 이것 또한 첩보 요원으로서의 시험을 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현재의 다카노를 있게 한 인물이 가자마라고 할 수도 있다. 가자마는 다카노가 과거의 기억때문에 괴로워할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괴로우면 언제든 죽어도 좋아! 하지만 생각해봐! 오늘 죽든 내일 죽든 별로 다를 게 없어!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아 .....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봐! 그리고 그날을 살아내면, 또 하루만 시도해보는거야. 네가 두려워서 견딜 수 없는 것에서는 평생 도망칠 수 없어. 그렇지만 하루뿐이면, 단 하루뿐이면, 너도 견딜 수 있어. 넌 지금까지도 그걸 견뎌냈어. 하루야. 단 하루라도 좋으니 살아봐! 내가 지킨다! 넌 내가 반드시 지켜!. (326~327페이지)

 

비정한 첩보원의 세계이지만 가자마라는 인물을 내세워 살라고 간절하게 말하는 부분이 작가의 메시지였다. 어떻게든 살아내라고 울분을 토하듯 말하는 가자마의 외침이 다카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카노는 나란토 섬에서 만난 시오리에게도 그 말을 전해주는데 시오리 또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첩보 소설임에도 휴머니즘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다카노에게도 가자마의 말 때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상처를 가득 안고 의연한 척 하는 어린 다카노를 엄마의 품처럼 지켜주었던 것도 후미코였다. 후미코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늘 가자마에게 다카노의 안부를 묻는다. 열여덟 살이 되어 정식으로 임무를 받을때 성공했는지 그 한 마디만 전해달라는 마음에서 모성이 느껴졌다.

 

첩보 요원이 나오는 소설이라 꽤 박진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이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소설이 첩보요원들의 활동을 나타냈다고 하더라고 기저엔 휴머니즘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의 프리퀄에 해당되는 작품이어서 그 다음 이야기가 될 시리즈의 첫 편인 소설이 무척 궁금해진다. 『숲은 알고 있다』에서부터 거론되었던 상하수도 사업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워터 게임』도 읽고 싶다. 모든 시리즈는 함께 읽어주어야 제맛이므로. 그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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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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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적부터 이야기와 함께 자란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던 때부터 시작이다. 그런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된후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도 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에게 해준 건 동화였다. 동화를 읽어주다보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느냐고 질문의 질문을 거듭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거듭하다보면 하나의 이야기는 곁가지를 들어내며 여러 개의 이야기로 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늘 이야기에 목말라있는 것 같다. 유년 시절의 기억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로 잊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영화, 연극, 뮤지컬, 소설 그리고 드라마 등, 수많은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와도 같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는 이야기가 빚어내는 뇌과학적인 측면의 비슷한 점을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들이 우리 뇌에서 빚어지는 감정들의 연관성을 피력했다. 제4장에 걸쳐 스토리 텔링의 과학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1장에서는 만들어진 세계, 2장에서는 결함 있는 자아, 3장에서는 극적 질문, 4장에서는 플롯과 결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많은 이야기가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 (30페이지) 라고 하였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는 삶 혹은 생각을 가진 내용들이 나오면 그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어 깊이 빠지게 된다. 이것은 뇌가 변화를 감지하여 신경 활동이 급격히 증가된다. 신경 활동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 즉 우리의 모든 경험들이 뇌 속에 정보로 저장되어 통제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넣어서 주인공의 주의를 끌고, 나아가 독자나 관객의 관심으 끌여들인다. 역사적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변화의 의미를 알았다. (중략) 변화의 순간은 결정적이므로 대개 첫 문장에 응축된다. (32페이지)

 

수많은 작품들에서 첫문장은 무척 중요하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까 강조하기도 하는데,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게 만드는 것이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품들 속 첫 문장들 중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 작품이 가진 소설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내용이 첫 문장 다음에 올 것인지 궁금함에 계속 읽게 되는 순간이다.

 

시각을 완벽한 것처럼 경험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뇌의 집착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밝혔다. 우리가 꾸는 꿈과 독서의 원리 또한 뇌가 그 파장을 받아 신경계 모형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책에 적힌 단어나 혹은 마법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면 뇌는 그 마법사의 모형을 만들어 작가가 만든 세계를 각자 구축한다는 설명이었다.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 것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신경과학자 벤저민 베르겐에 따르면 우리가 단어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형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작가가 배치하는 단어의 순서는 무척 중요하다. 매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처럼 괴물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정확한 묘사여야 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묘사하여야 한다.  

 

이야기에서 인물은 중요하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건 완벽하지 않는 인물 때문이다.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유능한 집사인 스티븐스를 결함을 가진 인간이라 여기지 못했었는데 저자는 스티븐스가 가진 결함을 설명한다. 저택의 중요한 행사를 총괄하는데 있어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보러 올라갔음에도 행사 때문에 그냥 내려왔고 스티븐스 시니어의 죽음이 임박했음에도 집사의 의무를 다하려 했었다. 불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독자의 머릿속에 환각을 심어 환각 속에 갇히게 만든다.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을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도 인물처럼 흥미진진하고 변화무쌍한 극에 주의를 빼앗긴다.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게 만드는 인물이 없다면 사건은 아무런 의믿 없는 현상일 뿐이다. (135페이지)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이 필요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극적 질문에 대한 답이 명쾌할 수도 있지만 실제 현실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완벽한 삶이 없듯 완벽한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 프라이스가 부유한 친척 토머스 경에게 차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패니 프라이스가 되어 화를 내며 지켜보게 된다. 몇 년 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이것이 나보코프가 그린 장치였음이 밝혀졌다. 계속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험버트를 부족하고도 결함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야 했고, 잘생기고 좋은 옷을 입고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또한 험버트가 롤리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롤리타가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몰고 가야 했다. 즉 롤리타의 어머니가 사라져야 했고, 롤리타가 험버트를 만나기 전에 클레어 퀄티라는 남자와 도망쳐야 했다. 나보코프의 생각대로 험버트를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성인이 된 우리가 진실이라고 경험하는 환각은 우리의 과거에 구축된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세계를 보고 느끼고 설명한다. (224페이지)

 

이야기는 진실한 위안을 준다. 고도로 사회화된 종인 우리가 받은 저주는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가 타인과 잘 어울리고 성공하고 싶어하므로 우리는 거의 항상 상대에게 조종의 대상이 된다. (중략)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결함 있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266페이지)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위의 발췌 문장에서처럼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감이다.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으면 재미없는 책이 된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그려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음을,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해도 나보다 힘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공감을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야기의 탄생을 뇌과학 측면에서 바라본 글이었다. 이야기 속에 빠지기 위해 필요한 인물의 결함과 극적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들에서 뇌 속에 저장된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이야기가 탄생되었다. 우리가 인물들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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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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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동물들을 좋아하여 병아리 및 햄스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였다. 털 알레르기가 있어 절대 안된다고 했었다. 3년 전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딸아이가 가족 회의를 거치지 않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온 거다. 내 손 만큼 작은 아이였는데 바라보고 있으니 상당히 귀여웠다. 낯가림이 심해 내가 아이 방 들어갈 때마다 숨어버리곤 하여 흔적만 볼 뿐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한두 달이 지난 뒤 방을 탈출하여 점점 거실로 나오더니 그제서야 다른 가족들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집에 고양이가 처음 왔을때 한두 달 간은 얼굴에 뾰루지가 나서 가렵더니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이 또한 가족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 지금은 고양이가 내 얼굴에 털을 비벼도 아무렇지도 않다.

 

딸아이가 집을 떠난 뒤 고양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 무릎으로 올라와 지긋이 쳐다보고, 몸을 비벼대는 건 일상이다. 잠을 잘 때는 침대 발치에 가로로 길게 몸을 뻗고 자느라 신랑과 나는 벌 아닌 벌을 선다. 즉 깊은 잠을 못 잔다는 것. 고양이는 마치 어린 아기를 대하듯 해야 한다. 하는 짓이 꼭 아기 같기 때문이다. 체중 때문에 다이어트 사료를 먹이고 있는데 맛이 없는지 다른 간식 내놓으라며 밥그릇 앞에서 시위하곤 한다. 또한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키보드 위에 앉거나 의자에 앉아 있다. 계속 작업하면 놀아달라고 칭얼대듯 손목이나 발목을 문다.

 

 

 

이처럼 가족이 된 뒤에 읽는 고양이 관련 책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키우기 전에는 버거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동감을 마구 표시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 출간 소식을 보고 소설이 아닐까 했다. 이 책은 도리스 레싱이 그동안 키워왔던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였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기고 키워왔던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작가가 어릴 적 짐바브웨의 수도 솔즈베리에서 머물 때 고양이 불임수술이란 게 없었기에 많은 개체수 때문에 살처분 했던 일화부터 시작했다. 그 역할을 어머니가 했는데, 어머니가 사라졌을 때 할 수 없이 아버지가 고양이들을 살처분해야 했다. 얼마나 비참했던지 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눈물을 글썽였다고 했다. 고양이 특성상 새끼 난지 10일만에도 새끼를 밸 수 있다 한다. 작가가 솔즈베리에 있었을 때 고양이가 40마리나 되었다 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작가는 고양이가 임신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거의 2주일마다 새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자주 낳다보면 또 새끼를 죽여야하지 않겠나. 네 마리씩 두세 번을 낳는다고 했을 때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한도가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집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시기를 늦춰 했더니 한달에 한두 번씩은 아파트를 달려다니며 구애의 소리를 지르곤 한다. 고양이의 발정을 인간의 욕심때문에 배제해버린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있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웠던 작가는 고양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암컷 고양이가 수컷 고양이를 만나 새끼를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회색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어떤 수컷을 만났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즐겼다.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는 수컷이고 한 마리다. 고양이를 키우다보니 두 마리쯤 키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한테 놀아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나 고양이는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어 한 집에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으면 자기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영역을 지키기위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키우다보니 아파트나 길가에 있는 고양이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전에 고양이가 있으면 피해다녔던 데 반해 지금은 야~옹하고 부르며 지켜보고 있다. 한겨울에 자동차 밑으로 숨거나 하면 얼마나 추울까 안타까워한다. 따뜻한 데 있는 우리집 고양이를 가리켜 '너는 복 받은 줄 알아라' 며 혼잣말을 건넨다.

 

 

 

녀석들은 무척 좋은 환경에 익숙한 나머지 음식, 편안함, 따뜻함, 안전을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더 키울 생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물며 병든 고양이라면 더욱더 안 될 말이었다. (203페이지)

 

그럼에도 결국 아픈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여 이름을 지어주고 병원에 데리고 가 정성을 다하여 보살폈다. 이러한 고민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애묘인들이 그러지 않을까.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를 키우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것 같다.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간혹 한 번씩 동물을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때가 있다. (216페이지) 나도 그렇다. 고양이가 나한테 와서 평소에 듣지 못했던 톤으로 야옹 거릴 때 답답할 때가 많다. 아들과 나는 '아토야, 사람 말로 해줄래?' 하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서 서로 말이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침대에 누워 있거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때, 아이처럼 배 위로 올라와 만져 달라고 책 밑으로 쑤욱 들어온다. 그러면서 내 손에 자기 얼굴을 갖다 대는데, 나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양손으로 눈부터 귀, 머리, 턱 등을 손가락으로 만져 준다. 빗겨주듯 만져주고 있으면 고양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콧김을 내뿜으며 가르릉 거린다. 나는 또 그게 사랑스러워 어쭈쭈 하며 볼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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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0-05-2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냥이 키우는 데 정말 말이 통하면 좋겠어요. 저번에 어떤 분이 그러시길, 반려동물이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나 아파‘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공감 공감이었어요. 아픈 걸 제때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쵸?

어슐러 르 귄도 냥이 키우면서 에세이 썼는데, 이 책은 전체가 고양이 이야기인가 봅니다. 장바구니로 직행합니다~^^

Breeze 2020-06-01 15: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울긴 우는데 왜 우는지 모르니까 안타까울때가 많아요.
즐겁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
 

 

캐리 멀리건과 메릴 스트립, 헬레나 본햄 카터, 벤 위쇼 등이 출연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를 보았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영국의 여성 투표권이 1920년에 제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앞서 나가던 나라였으나 여성에 대한 참정권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저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여성 참정권에 대하여 싸운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왜 이런 주제를 말하느냐 의심스러울 것이다. 사람은 보는 만큼 시야가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본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소설에서 여성 참정권에 대하여 언급된 걸 보고 반가워서 내지르는 탄성이었다. 진 웹스터는 이 소설을 1912년에 썼고 <서프러제트>라는 영화 또한 그 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키다리 아저씨』를 몇 번을 읽었으나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편지 중에서 '여성 참정권' 에 대하여 발언한 것은 뜻깊은 발견이었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작업과도 같다. 성년이 되어 『키다리 아저씨』를 세 번쯤 읽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그저 주디 애벗과 키다리 아저씨의 사랑이야기로 보았다면 윌북 판으로 읽는 네 번째의 『키다리 아저씨』 읽기는 여성의 참정권과 여성의 지위, 그리고 『작은 아씨들』에서의 조와 마찬가지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나타낸다는 점이었다.  

 

주디는 고아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으나 그녀가 쓴 영작문을 보고 작가로 키우겠다는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에서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 대학생활을 편지로 써 보내며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키워 나간다. 기숙사에서 만난 샐리 맥브라이드와 우정을 나누고 줄리아 펜들턴과도 가깝게 지낸다. 펜들턴 가문의 딸인 줄리아의 삼촌이 찾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의 고백을 받지만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마음 때문에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간문 형식의 소설은 무척 매력적이다. 1인칭 소설로 진행되며 상대방을 향한 마음만 들어나니 애틋하다. 상대방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애가 탄다. 일기 형식의 편지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의 정체를 모르지만 어느 누구보다 가깝게 여기는 이유와도 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건 정말이지 기묘한 느낌이에요. 흥미롭고 낭만적이죠. 가능성이 많잖아요. 어쩌면 저는 미국인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요. 고대 로마인의 직계 후손일지도 모르고, 바이킹의 딸이거나 러시아 망명자의 자녀로, 원래는 시베리아 감옥이 있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116페이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건 굉장히 큰 슬픔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그 기원을 모르니 자신의 탄생에 대하여 불안하다. 그런 마음들을 유머스럽게 드러내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다른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선물을받을 수 있어요. 아버지와 오빠, 이모, 삼촌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누구와도 그런 관계일 수가 없어요. 그건 그냥 재미 삼아 하는 생각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사실은 혼자 벽에 등을 대고 세상과 싸워야 해요.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고 계속 안 그런 척하죠. (131페이지)

 

밝은 모습으로 지냈으나 주디가 숨겨놓았던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키다리 아저씨가 모자를 사라며 50달러 수표를 보냈던 것을 거절하며 보낸 편지다. 뉴욕의 상점가에서 줄리아가 비싼 모자를 사는 걸 주디가 편지로 썼던 내용에 대한 키다리 아저씨의 답이었다. 한번도 고아인 적이 없어 주디의 마음을 백 퍼센트 알 수 없겠지만 이 세상에 가족이 아무도 없다면 너무너무 슬플 것 같다.

 

 

 

 

앞서 주디를 가리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이라고 표현했다. 주디는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 장학금을 타게 되었다. 더이상 키다리 아저씨의 학비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는 장학금을 포기하라고 한다. 주디는 장학금을 포기하라면 아저씨가 준 용돈까지 받지 않겠다는 당찬 모습을 보인다. 또한 방학때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점점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아씨들』이 핫한 배우들과 함께 영화로 제작되었듯 『키다리 아저씨』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작은 아씨들』은 꽤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던데, 『키다리 아저씨』는 영화적인 요소가 덜하나. 1935년도 뮤지컬 영화만 있어 아쉽다. 제발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판사 윌북의 걸클래식 컬렉션1과 함께 많은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걸클래식 컬렉션2다. 화려한 그림을 자랑했던 컬렉션1과는 조금 차분한 그림으로 소녀적인 감성을 느끼게 하는 사랑스러운 세트다. 몇 번이고 읽어야 하는 이유, 사랑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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