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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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기묘한 일은 어떤 일이 있었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을때였을까? 『도쿄기담집』의 첫번째 단편 「우연한 여행자」속 필자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자신이 듣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음악을 두 곡이 재즈 뮤지션이 불러주었을 때처럼 우리에게도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도쿄기담집』이 나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작품인줄 알았더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읽지 않은 책이라 내게는 신작처럼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몇 권 읽었지만, 그의 단편소설은 처음 만났다. 불가사의한,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기묘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임에도 어김없이 무라카미식 느낌이 살아나는 건 어쩔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읽은 『도쿄기담집』은 에세이 느낌이 나는 책이었다. 기묘한 이야기를 함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고유한 감성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집은 총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저마다 우리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첫 번째 작품인 「우연한 여행자」는 매주 화요일 손님이 뜸한 카페에서 몇시간 책읽기에 빠져있던 남자가 한 여자를 알게 되어 여자로 인해 기묘한 경험을 한 이야기이다. 이 남자는 음대 출신의 피아노 조율사이며 게이이기도 하다. 두 번째 작품 「하나레이 해변」에서는 호놀룰루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다리를 물어뜯긴후 죽은 아들을 찾아 간 사치의 이야기이다. 아들이 죽은 후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다 간 사치는 해마다 일 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머물다 갔다. 언젠가 죽은 아들 또래로 보이는 일본인 대학생 둘을 차에 태우고 숙소로 왔던 사치는 역시 이곳에서 서핑을 하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를 보면, 2층 아래에 사는 시어머니에게 갔다가, 배가 고프다며 곧 돌아오겠다는 남편이 사라진 이야기이다. 남편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늘 계단을 이용했는데 2개층을 올라오는 5분 사이에 지갑도 없이 집에서 있는 옷차림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에 아내는 남편을 찾으려 사람을 불렀다. 무료로 남편을 찾아주겠다고 한 이는 그 여자의 남편이 사라진 계단을 서성거리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의 이야기는 소설을 쓰는 준페이가 그보다 몇살 연상인 여자를 만나 자신이 쓰려는 단편 소설이야기를 해준다. 남자가 평생 만나는 여자 중에서 정말 의미있는 여자는 세 명 뿐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는 그에게 과연 이 여자는 그의 세 명의 여자 중의 한명이 될까? 마지막 단편인 「시나가와 원숭이」는 자꾸 자신의 이름을 잊어먹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전화번호나 주소, 생일이나 여권번호까지 다 기억나는데 이름만 기억나지 않는 여자인 안도 미즈키의 이야기이다.

 

 

겨우 2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소설집이다. 얇은 소설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들 단편 속 인물들은 모두 상실의 시간을 겪은 이들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회복하고자 그 시간들을 견딘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 살아가야할 방향을 생각하기도 한다.

 

 

나에게로 온 책은 분홍색 표지를 한 책이 왔다. 양장본인 속지도 분홍색이다. 그린색 표지와 함께 2종의 표지가 있는데 상당히 이쁘다. 함께 색깔을 맞추고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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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닥터 슬립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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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공포물을 읽는 이유는 계절이 여름이기도 하고, 작가가 스티븐 킹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많은 작품이 영화화 되었고, 몇 편의 영화를 본적도 있다. 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후속작이라 하여 그 궁금함이 커졌다. 전작을 읽지 않아도 무리없이 읽을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다가, 자꾸 '샤이닝'이라는 말이 나와 혹시나 싶어 영화 정보를 검색했다.

 

'샤이닝'이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깃든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 즉 영적인 교감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화 '샤이닝'은 원작과 많이 달라 스티븐 킹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은 '따뜻함'이 있는데 반해, 영화는 '차가움'만 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의 어린 아이 대니가 중년이 된 모습을 그렸다. 어렸을때 강했던 샤이닝을 숨기려고 했지만, 이제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어가는 이에게 편안하게 눈감도록 인도해 준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를 '닥터슬립' 이라 불린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오버룩 호텔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자 그는 술을 마셨고, 알콜중독자가 되어 실수를 저질렀고, 알콜중독자를 치료하기 위한 모임에 나가면서 그의 주변에서 한 소녀 에브라가 나타나 메시지를 전한다.

 

댄의 주변에서 맴도는 소녀 또한 어렸을 때부터 능력이 남달랐던 샤이닝이다. 먼 거리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소녀 에브라가 댄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트루 낫'이라고 하는 이들은 샤이닝을 가진 어린 아이를 고문하고 죽여서 아이들에게서 나온 정기를 흡수하는 이들인데, 에브라는 야구하는 아이를 죽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아버렸다. 그것을 눈치 챈 트루 낫의 리더 로즈는 에브라를 잡으려하고, 에브라는 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어 만나게 되었다. 이제 댄보다 훨씬 뛰어난 샤이닝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브라는 위험해졌다. 그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힘을 합해야 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바닥이 있기 마련이지. 자네도 누군가에게 자네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거야. 그러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면 술잔을 손에들고 술집에 앉아 있게 될테니까. (1권, 294페이지)

 

 

 

 

책에서 보면 댄은 매주 한 번씩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다. 그의 삶이 슬프거나 아주 즐겁거나 할때 술에 대한 유혹을 견디기 어려운데, 댄은 한편으로는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과 아브라의 능력으로 '트루 낫'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또한 그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이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은 오래전 오버룩의 고통에서 치유를 받는 과정들이었다.

 

알콜중독은 본인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다. 알콜중독은 치료해도 치료할 때 뿐이고, 다시 술을 마시면 원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술이란 분위기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이처럼 폐해를 낳기도 한다. 적당하게 마시면 좋은데, 그 적당치를 넘겨버리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을 『샤이닝』의 소년 댄이 중년이 되어 자신의 삶을 헤쳐가는 모습을 그렸고, 한편으로는 알콜중독을 치료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일은 분명 신비하고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불편함과 고통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아브라의 엄마인 루시가 '하느님, 정말로 존재하신다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저희 딸아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라디오 좀 망가뜨려 주실래요?' 라고 했을까. 루시를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이 비범함보다는 평범한 아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스티븐 킹의 저력을 느끼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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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
앤 브래셰어스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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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시공간을 넘는다는 이야기는 꽤 많다. 또한 오랜시간 죽지않고 몇백 년을 사는 사람이야기도 있다.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도 있지 않았나.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자에게서 그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는 모습에 부러움 때문에라도 그 드라마의 내용에, 배우에게 열광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의 판타지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사람,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해 환생하고 또 그 사람을 애타게 바라보는 이의 감정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감정이입되어 가슴이 아프거나 뭉클하다. 『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에서처럼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해 천년을 넘게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 대니얼의 사랑도 그렇다.

 

우리가 느끼는 기시감도 전생의 기억들의 편린들이라고 하는데, 소설에서처럼 전생의 모든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현생에서 얼마나 힘들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현생에 적응하기란 너무나 힘들것 같다. 이처럼 대니얼은 자신의 전생을 모두 기억한다. 환생할때마다 조금씩 모습은 변하고 성격도 변하지만 영혼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 태어나 수없이 죽고, 수없이 새로 태어났다.

 

대니얼에게는 환생할 때마다 찾는 이가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자신의 실수로 한 소녀를 죽이고 말았을때의 죄책감과 그후의 생에서 자신의 형 조아킴의 아내로 온 소피아를 보고 소피아가 그 죽은 소녀였다는 걸 안 것이다. 처음 소피아를 보고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형의 아내였다. 형의 괴롭힘으로 소피아를 구하고자 모험을 했었고, 자신은 형에 의해 죽었다. 그 다음 생에서 대니얼은 소피아를 찾았고, 소피아를 자신이 다녔던 교회에서 만났다. 50대의 아주머니로, 자신은 너댓 살의 소년으로. 전생에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도 후생에서는 각자 다른 나이대의 사람으로 환생하는 가 보다. 형이었던 조아킴 또한 윤회를 거듭하면서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고, 대니얼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아름다운 표지를 자랑하는 『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는 2006년의 대니얼을 좋아하는 루시와 루시가 아주아주 오래전의 소피아의 환생임을 알아 본 대니얼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루시가 오래전 형 조아킴의 아내였던 소피아의 환생이란 것을 알아 본 대니얼의 애타는 마음이 그려진다. 루시는 루시대로 자신에게 소피아라고 부르는 대니얼도 이상하고, 대니얼을 생각할때마다 자꾸 꿈속에 나타나는 일들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이에 이야기는 현재의 대니얼과 루시, 대니얼의 과거의 생들이 교차되어 전개되며 우리를 대니얼이 바라보는 전생과 현생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에 최선을 다한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와 아빠 혹은 형제들, 자식들에 대해 다시는 못볼것처럼 잘하기도 하고 서운하게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면, 혹은 윤회를 반복하다보면, 현재의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도 같다.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 혹은 부모에 대해 더 좋았던 사람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살아간다는 것에도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일찍 죽기라도 한다면 금방 삶을 저버리지 않을까. 다음 생에 만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대니얼과 루시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이 여름밤을 밝혔다. 아직도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설렘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천 년을 지나온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또 한 번 아직도 가슴속에 사랑의 판타지를 품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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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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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무 힘들면, 살고 싶지 않다고, 죽고 싶다는 투정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면 더욱 그런 말을 습관처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열 개라도 되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르겠다. 삶은 저마다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행복할수도 불행할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요즘이면 더욱 그렇다. 주변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볼수 있었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배운 것 없었어도 가족에게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간 김만수 씨의 이야기이다. 김만수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김만수 씨의 주변 인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김만수 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말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데,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김만수 씨는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바보같은 모습일수도 있었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성석제 작가의 책은 위트있고 익살스럽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전에 읽은 『위풍당당』 에서도 조폭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려서 『투명인간』또한 그런 느낌을 갖게 할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투명인간』은 김만수 씨의 눈물겨운 이야기때문에 착잡함, 슬픔 등이 느껴졌다. 『투명인간』의 주인공 김만수 씨가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서인지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시골 생활이 떠올라 오래전 어렸을적의 일들이 떠올랐다. 가방이 없어 책보를 허리에 매고 다녔던 일들,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답례로 달걀을 드렸던 일들에 대한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오래전엔 그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책에서 김만수가 가족을 위해 그렇게 애써도 그의 희생에 대해 부모도 형제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제일 맏이인 누나가 재봉질로 동생들을 돌보다가 시집가버린 것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시절엔 그랬다. 어려운 경제에 형제들이 동생들의 학비를 대야 하는 경우였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 (369페이지)

 

사는 것 보다 죽는게 절대 쉽지 않다고 했던 위의 말에 가슴이 저며온다.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서늘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투명인간으로라도 형제들 곁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만수의 이야기는 슬픔이었다. 슬픔을 슬픔이라고 우길수 없는 아픔이었다.

 

나는 절대 하지 못했을 일들을 해낸 만수의 인생. 자신의 삶은 없다시피 삶을 살았고 끝까지 가족을 위해 투명인간으로라도 살아 남아 그들곁에 머물고자 했던 만수의 삶은 눈물겨웠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인해, 우리의 지난 시간을 되돌려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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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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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처음 내 곁에 왔을때가 생각난다. 오래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난지 몇개월 되지 않아 결혼을 하고, 짧은 연애를 만회라도 하듯 아이는 좀 늦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우리가 계획했던것보다 빨리 우리에게로 왔다. 갑자기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내가 퇴근후 하던 공부도 뒷전이 되고, 심한 입덧으로 직장생활도 가까스로 하게 되었다. 아이가 왜 이렇게 빨리 왔는지, 계획보다 빨리 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지 처음엔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후 5개월쯤 된후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기형아 검사라는걸 하자고 했다. 꼭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병원에서 권하기에 한 것이었다.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지가 나오고 아이는 예정일 10일을 넘기고서야 나왔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때 주위 사람들은 발가락이 제대로 있는지, 손가락이 제대로 있는지 보라고 해서 세어 보았었다. 얼굴도 봤는데 이목구비는 별 이상이 없었다. 안도했다. 그리고 십몇 년을 자라 큰 아이는 이제 열아홉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다행이다 싶은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아픈데 없고, 모나지 않게, 평범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별탈 없이 자란다는 게 새삼 큰 행복이란 걸 다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우리는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나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집을 다시 되돌아 보기도 하는 것 같다. 가까운 주변에는 장애인을 가진 가족들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둘러보면 꽤 많을텐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온통 사랑스럽기만 해야 할 아이가 만약 장애아로 태어난다면 부모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처음엔 부정하고 싶을 것 같다. 부정하고 또 부정해보지만 어차피 받아들일수 밖에 없음을 알고 아이에 대한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다운증후군의 아이들을 몇 번 본적이 있다. 지나는 길에 아마 스쳐지났을 것이다. 비슷한 얼굴을 가진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밝은 모습에 나도 지나가면서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전혀 꾸밈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여태 우리의 시선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은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 서효인이라는 시인의 딸이란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으로 알고만 있었는데, 책에서 보니 스물한번째 염색체가 하나가 더 많아 생기는 여러 증상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얼굴 생김새만 그렇지 건강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운증후군은 태어날때부터 심장 기형과 갑상선 저하 등 성장 장애와 정신지체의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시인과 시인의 아내는 처음 아이를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곧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지만 사랑스러운 자신들의 분신이며, 아이의 배냇짓에 사랑으로 미소 지을수 밖에 없었다. 어떤 아이가 이쁘지 않겠는가. 아이는 온갖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웃는 표정,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똥까지 열심히 누고 있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고 배길까. 저자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특별한 아이인걸.

 

시인은 아직 어린 은재에게 사랑이 가득한 편지를 책으로 썼다. 속도위반으로 아이가 생겼을때부터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은재를 처음 만나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안고 울음을 삼켜야 했던 이야기부터 부모가 되어 자식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감정들에게 자신들을 사랑으로서 키웠을 부모님들을 생각했다. 은재에게는 할머니, 외할머니, 이모, 고모가 되는 이들의 이야기까지도.

 

나는 사실 서효인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며 더 반가움이 앞섰다. 내게 익숙했던 곳이 서효인 시인에게도 익숙한 곳이라는 걸 알고부터였다.

 

 

나는 머릿속에 그렸던 그래프를 벗겨내 찢어버린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거기가 어디든, 유일하게 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다. 무한한 면에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별들에게는 상하와 고저가 없다. 그곳은 수학적 그래프의 면이 아니다. 상상밖의 아득한 우주다. 거기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제 빛을 내고 있다. (246페이지)

 

두 아이를 키워왔기 때문에 아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뭉클해졌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다운증후군인 아이라고 쉽게 말하기 힘들었을텐데도 가족들에게 알리고 은재에 대한 마음을 담은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읽고 있었다. 부모된 이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애틋함이 사랑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많은 것을 하고 싶을 때 늘 피곤해 아이에게 묶여있다는 생각으로 아이가 어서 자랐으면 하지만, 막상 아이가 자라면 부모가 필요없게 된다. 아이일적에 가장 필요로 하는게 부모이고 부모는 아이에게서 벗어나고자 하고, 부모가 조금 한가하고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을때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자 발돋움을 한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보았듯, 부모와 자식들의 기다림은 늘 서로 상충되는 것 같다. 처음엔 아이가 부모를 기다리고, 시간이 흐른 뒤 나중엔 부모가 아이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아이가 부모를 더 많이 찾을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사진이나 기록으로 남겨놓는 요즘 젊은 부모들이 참 부럽다. 육아일기도 적다 말았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못내 미안하다. 훗날 은재는 책으로 쓴 아빠의 러브레터를 보고 얼마나 감동할까. 시인인 아빠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작품이었다. 이런 아빠의 사랑은 받는 은재가 나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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