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문학상
수상작이 나오면 나는 이상하게도 먼저 최명희 작가의 『혼불』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도 나지 않지만,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 하룻밤을 새워 다 읽어버리고는 그 다음 권을 누가 대여해 가버려 애타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며칠 전 이 작품을 읽으려고 기다리는 와중에
인터넷 서점에서 『혼불』을 검색했다. 내가 읽었던 판본과는 다른 새 판본으로 나와 있는 책을 질러 말어 하며 책들의 표지를 바라보았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고,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아쉽기만 했던 그 때의 감흥을 기억하면서, 올해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비밀 정원』을 읽게
되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홍도』와는 다르게, 마치 오래전에 『혼불』을 읽었던 마음으로 읽게 된 것 같았다. 혼불의 배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오래된 종갓집 '노관'의 풍경이 그랬고, 노관을 도우는 사람들, 그 속에서 붙박이처럼 노관을 지키고
있는 요의 어머니가 그랬다. 오래전에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은 감춰두고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었다. 요의
어머니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값지고 고결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삭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한 발치 건너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을 본다는 건 애달픔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저 마음을
다스리고만 있는게 최선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우리의 마음도 더 애가 타는지 모를 일이다.
『비밀 정원』은
노관이라 불리는 한 종갓집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책 속의 화자인 요의 성장 과정, 집안의 붙박이 화분처럼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 십여년의
독일 생활을 청산하고 노관으로 오게 된 율이 삼촌의 슬픔어린 눈빛. 그 눈빛에서 드러나는 지난날들의 시간은 하나의 빛처럼 노관에 스며들게
된다.
예스러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고택 노관은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30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온 시간과 1980년을 거치는 요의 삶도 역사의 한 시간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못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요정 테레사와의 인연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