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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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상 수상작이 나오면 나는 이상하게도 먼저 최명희 작가의 『혼불』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도 나지 않지만,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 하룻밤을 새워 다 읽어버리고는 그 다음 권을 누가 대여해 가버려 애타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며칠 전 이 작품을 읽으려고 기다리는 와중에 인터넷 서점에서 『혼불』을 검색했다. 내가 읽었던 판본과는 다른 새 판본으로 나와 있는 책을 질러 말어 하며 책들의 표지를 바라보았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고,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아쉽기만 했던 그 때의 감흥을 기억하면서, 올해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비밀 정원』을 읽게 되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홍도』와는 다르게, 마치 오래전에 『혼불』을 읽었던 마음으로 읽게 된 것 같았다. 혼불의 배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오래된 종갓집 '노관'의 풍경이 그랬고, 노관을 도우는 사람들, 그 속에서 붙박이처럼 노관을 지키고 있는 요의 어머니가 그랬다. 오래전에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은 감춰두고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었다. 요의 어머니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값지고 고결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삭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한 발치 건너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을 본다는 건 애달픔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저 마음을 다스리고만 있는게 최선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우리의 마음도 더 애가 타는지 모를 일이다.

 

『비밀 정원』은 노관이라 불리는 한 종갓집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책 속의 화자인 요의 성장 과정, 집안의 붙박이 화분처럼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 십여년의 독일 생활을 청산하고 노관으로 오게 된 율이 삼촌의 슬픔어린 눈빛. 그 눈빛에서 드러나는 지난날들의 시간은 하나의 빛처럼 노관에 스며들게 된다. 

 

예스러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고택 노관은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30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온 시간과 1980년을 거치는 요의 삶도 역사의 한 시간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못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요정 테레사와의 인연도 마찬가지이다.

 

 

 

연못가에서 처음 테레사를 만나고 테레사가 노관으로 답장을 바라지 않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요요보다 두어살은 더 먹었음직한 테레사가 요요와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지게 될까. 테레사가 자신의 성장과정을 왜 동화 형식으로 써 편지를 보냈을까. 80페이지에 달하는 '요정의 편지'라는 장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할 필요가 있나 싶었었다. 테레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사자들은 왜 말이 없을까, 몰래 고민하며 읽은 부분이다. 알았지만 굳이 내세워 설명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밀의 문을 열게 된 요는 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율이 삼촌과의 관계도 그랬다. 엄마가 율이 삼촌과 함께 멀리 떠나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떠나지 않고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서로 상반되었다.

 

 

당신의 문 밖에 나를 너무 오래 세워두지 마시오 · · · · · · ·. (259페이지)

 

 

통속 가요의 가사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위 문장은 너무도 통속적이지만 그만큼 애절하게 들린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애타하는 마음과 함께 하고 싶은 염원이 들어있는 말이다. 너무도 진부한데도 이 말이 와닿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돌리려는 한 남자의 애절한 독백이기 때문이다.

 

 

앞서, 요의 어머니를 붙박이 화분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애절한 율이 삼촌의 고백을 들었음에도 고요하게 있는 요의 어머니의 속내를 알수 없어 답답했다. 율이 삼촌의 마음을 알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있는 이유가 못내 궁금했다. 나는 소설을 읽다가 율이 삼촌이나 요의 어머니가 왜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불쑥 고백을 하는 것일까 의아했다. 한 장의 편지로, 몇 편의 시로, 비밀의 정원속에 남겨두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부분의 노관의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 조금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먼 시간속에서 찾아든 매혹적인 사랑이야기 때문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너무 비약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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