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문득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자식들한테 그리 살갑게 대하신 분이 아니었는데, 맏이라 그런지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다는 아버지. 나는 그 사랑을
채 알기도 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룰루랄라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떠난 빈 자리 때문에 몇날며칠을 우셨다는 아버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더 어른 스러운 삶을 살라고 떠나보내는 것이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에
대한 마음을 알겠다. 막 태어났을때 정신없이 키우다가, 한밤중에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가서 밤을 새우고 출근하고 하면서,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서 빨리 낫기를 기도하셨겠지, 하는 마음들을 이제는 안다.
아버지에게는 총 네 명의 자식이
있다. 맏이인 나를 비롯해 줄줄이 딸 셋에 마지막에 아들을 낳으셨지만, 막냇동생은 아직까지 장가를 가지 않아, 손자들이라고는 우리집 아이들 둘,
셋째 여동생이 나은 손주 녀석이 있어 달랑 셋 뿐인 손자를 가지셨다. 우리집 딸아이가 큰 아이라 유달리 이쁨을 받았다. 자식은 정신없이 키우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손주가 이쁘다더니, 아버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못하게 하실 정도로 애정을 쏟으셨다. 손주들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이들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하시고, 아이들과 통화해 용돈까지 부쳐주신다.
나도 나이가 더 들어 손자들을
보면 아버지처럼 하게 될까. 아이들이 성장하니 아주 어린 아이들이 이쁜것을 보면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것 같다. 이 모든게
나이들어가는 증거려나. 지나가는 어린애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수가 없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예쁜것 같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많은 소설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인 최인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하도 많이 나오니까 읽었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었다. 『유림』이나 『지구인』,
『제4의 제국』등을 읽었구나. 그의 영화속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인 '다혜'라는 이름이 작가의 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마 다 알 것이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절부터 작가가 딸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으면 딸의 이름을 작품속에서 사용할까, 많은 부러움을 안고 있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손녀딸을을 손녀딸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나의 딸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길
좋아했던 작가는 작가의 딸에서부터 그 딸의 딸에 대한 사랑을 글로써 나타냈다. 침샘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딸의 딸에 대한 글을
쓸수 있기를 기도했던 그의 애정어린 마음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딸이 처음 태어나던 날의 기억, 시간이 갈수록 자라오는 과정들에서 아빠로서 느꼈던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딸이 딸을 낳았을때의 기쁨, 정신없이 키웠던 딸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손녀딸을 바라보는
기쁨과 행복이 글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처럼 한없이 쏟아붓는 사랑을 받은 딸과 딸의 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느 누구도
이처럼 자식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네가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비 오고 눈 오고 바람이 불
것이다. 그것은 이 애비로서는 어쩌지 못한다. 네가 홀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만 이 애비는 겨우 우산을 씌워줄 뿐. 우산으로 가릴 수 있는
비바람은 아주 조그만 부분일 뿐. 나머지는 너의 몫이다. (43페이지)
세상에 막 나왔을때부터 40년간의 딸에 대한 기록과 딸의 딸에 대한 12년간의 기록은 최인호
작가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이토록 큰 애정을 가지고 있고, 애정을 표현한 사랑은 드물 것 같다. 최인호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의 딸과 딸의
딸은 무척 행복했겠구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이토록 독차지 했었구나.
뒷부분을 읽을때는 작가가 투병을 했던 와중에도 딸의 딸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고통을 참았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아껴서라도 딸의 딸을 향한 사랑을 적어내려갔을 그의 고통이 생각나서이다. 리뷰를 쓰는
시간에도 다시 뭉클해졌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우리를 기쁘게 한다. 어린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는 생명의 소리며, 어린
아이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긋한 냄새는 천국에서 갓 배달되어온 화원花園의 꽃향기인 것이다. 어린아이를 안을 때 느끼는 그 포근함은 우리를 창조한
하느님의 품을 연상케하는 대리만족이며, 어린아이의 그 천진스런 눈망울과 표정은 분명히 존재하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들과 천상의 언어로
대화하는 천상의 표정인 것이다.
(239페이지)
사랑은 어쩌면 기록인것 같다.
사랑은 어쩌면 표현이다.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고, 자식에게도 얼굴 보고 이야기 해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사랑한다는 말도 습관처럼 하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최인호의 글에서 다시 알았다. 사랑하면 사랑한다도 표현해야겠다. 자꾸
딸들에게 무심하다고 뭐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냥 흘려듣지 말아야겠다. 표현을 덜 하실 뿐 아버지도 우리를 최인호 작가만큼 사랑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딸들과
딸들의 딸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주 전화를 하시고, 안부전화 잘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께 이번엔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라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