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느끼는 가을 바람이 제법 차갑다. 옷깃을 여미고
움츠려드는 건 어쩔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때면,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 뒤돌아보곤
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고보면 그때 좀더 열심히 살걸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수 없다. 다시 젊어질수도
없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젊음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정이 들더라. 이런 느낌은 비단 나 뿐만
아닐것이다.
가을 바람처럼 스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해 등단한 작가 김기창의 『모나코』란 작품이다. 가질만큼 재산도 가지고 있고, 넓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노인이 있다. 노인에게는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딸처럼 살갑게 챙기는
덕이라는 여자가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돌보며 지내온 탓인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노인은 어느 날 산책중에 한 여자를 보았다.
미혼모로 수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있는 진이라는 여자였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수 없는 노인은 생애 마지막 사랑에 빠진 듯 하다.
진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진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이십대의 마음 못지않다.
노인이 되면 저절로 죽음을
준비하게 될까?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지는 않을까.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재산을 뚝 떼어 아들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아들들의 얼굴도 마주할 수 없다. 가사 도우미를 하는 덕이와 진을 애타게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스산한 가을바람과도 같다. 흔히 혼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독사'라고 한다. 노인의 고독사는 사회문제로 번지기까지 했다. 오늘 저녁에 죽을지도 모르는 노인, 어쩌면 내일까지 숨을
쉬며 살아있는게 행복일수도 있는 일임을 매일 깨닫는 일은 슬픔이기도 하다. 진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을 바라보는 그 마음 하나로도
행복임을 알게 된 노인의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