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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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느끼는 가을 바람이 제법 차갑다. 옷깃을 여미고 움츠려드는 건 어쩔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때면,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 뒤돌아보곤 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고보면 그때 좀더 열심히 살걸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수 없다. 다시 젊어질수도 없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젊음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정이 들더라. 이런 느낌은 비단 나 뿐만 아닐것이다.

 

가을 바람처럼 스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해 등단한 작가 김기창의 『모나코』란 작품이다. 가질만큼 재산도 가지고 있고, 넓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노인이 있다. 노인에게는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딸처럼 살갑게 챙기는 덕이라는 여자가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돌보며 지내온 탓인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노인은 어느 날 산책중에 한 여자를 보았다. 미혼모로 수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있는 진이라는 여자였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수 없는 노인은 생애 마지막 사랑에 빠진 듯 하다. 진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진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이십대의 마음 못지않다.

 

노인이 되면 저절로 죽음을 준비하게 될까?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지는 않을까.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재산을 뚝 떼어 아들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아들들의 얼굴도 마주할 수 없다. 가사 도우미를 하는 덕이와 진을 애타게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스산한 가을바람과도 같다. 흔히 혼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독사'라고 한다. 노인의 고독사는 사회문제로 번지기까지 했다. 오늘 저녁에 죽을지도 모르는 노인, 어쩌면 내일까지 숨을 쉬며 살아있는게 행복일수도 있는 일임을 매일 깨닫는 일은 슬픔이기도 하다. 진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을 바라보는 그 마음 하나로도 행복임을 알게 된 노인의 마음이 아프다.

 

 

 

가진 게 많은 노인답게 노인은 시니컬하다. 자신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던듯 하다. 나는 아무것도 강요 안 할 거야. 약속도 할 수 없어. 너는 미혼모에 예의도 없고 바보 같아도 나는 지금이 늘 최대치고 한계야. (111페이지) 삶의 마지막에서야 살아갈 이유를 깨닫지만, 노인이 진이 원하는 것을 다 줄 수는 없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는 진의 질문에 내일 죽을거야 라는 말을 할수 밖에 없었다. 진과 함께 있는 오늘이 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진이 떠나고 난뒤 진을 잃어버렸음을 알고 목숨을 놓은 건 아니었는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모나코』는 그가 가고 싶었던 모나코의 한 카지노였다. 모든 돈을 잃어버릴수도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노인이 베팅한 것은 돈이 아니라 수명임을 상상했다. 쓸쓸히 죽어가는 노인은 책 속에서 이름도 없다. 나이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웃의 노인들처럼 그저 한낱 이름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쓸쓸했다. 그럼에도 노인이 진과 혹은 덕이와 혹은 캐리어 할머니에게 말하는 모습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시니컬하게 내뱉는 말투에서 우리는 슬며시 입가를 늘이기도 한다. 그에게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받으려고만 했던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쓸쓸해진 마음때문에 마지막 책장을 덮어놓지 못했던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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