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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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캐릭터로 대표되는 인물을 바라 볼때면 어느 새 그 인물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건 기본이고 마치 실제 인물처럼 여겨지는 게 정설이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 시리즈도 소설의 배경이 여행상품으로도 나와있지 않은가. 사와자키 시리즈로 대표되는 하라 료의 추리소설은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장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잠이여』와 소설집 『천사들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 1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 2로 다시 시작되었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는 꽤 단순한 플롯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경찰이 아닌 탐정으로서 맡은 업무는 경비 역할 같은 비교적 가벼운 일에서부터 사라진 인물 찾아주기와 살인사건에 연루된 일까지 경중을 달리하여 의뢰인들이 찾아온다. 만약 살인 사건이나 실종된 인물을 찾아주었을 때 그가 책정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준다고 해도 사와자키는 받지 않는다. 자기의 목숨이 위협받았을 때도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책정한 금액 만을 받는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사와자키는 돈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맡았을 때 꼭 살인사건과 연결되고, 경찰들과는 비교적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와자키 또한 경찰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그가 경찰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의 직업 답게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르게 말하면 경찰이 해야 할 일, 탐정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나누지 않고, 궁금한 것들은 살펴보고 조사해봐야 편한 성격이라고 해야 옳겠다.

 

 

소설의 출간 시점이 2004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사와자키가 수사하고 탐문하는 방식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물론 2004년의 출간시점에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흔한 휴대폰도 없이 그가 자리를 비웠을때도 여전히 전화 서비스업체에 전화한 내용, 이름들을 듣는다. 한편으로 답답하지만 그 시대가 가지는 상황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총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냥을 위한 공기총도 관의 허락하에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총기 사용이 흔한 일인가 궁금해지는 참이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로 찾아온 방문객과 그 방문객을 경찰서로 태워다 주었다가 총격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게 이 소설의 골자다.

 

폭력단원을 은행앞에서 죽인 남자와 그를 대신해 자수한 남자, 그리고 은행에서 사라진 귀족 출신의 구십 대 노인. 사건의 한복판에 서게 된 사와자키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듯 사와자키 또한 일반적인 수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즉 경찰이 하는 식의 수사 방식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수사 방식이 아닌 사와자키만의 수사 방식이 돋보인다. 물론 독자를 사로잡는 트릭이겠지만 작가가 원하는 방식대로 따라가다보면 불안하다. 작가가 숨기고자 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와자키를 노리는 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매번 이름을 달리하여 찾아온 남자는 누구인가. 사와자키가 차로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 젊은 경찰관은 살아 남았을까. 많은 의혹을 품고 읽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가와 있다. 이게 하라 료가 노렸던 점이기도 할 것이다. 누가 살인범일까 독자들을 의심케 하다가 어느 순간 독자들이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한참 읽다가 하라 료의 트릭이 궁금해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가 읽었더니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에게도 감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가 의심스럽다고 여겨진 인물이 꼭 결말 부분에 가서는 드러나기도 하다는 점이다. 떠돌았던 와타나베가 죽고 탐정으로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와자키의 활약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더불어 전편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니시고리의 등장도 그 반가움을 더했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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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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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에서 와타나베 탐정은 이름만 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시리즈 첫편에서는 와타나베의 활약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바였다. 하지만 알코올 홀릭에 빠진 와타나베는 사와자키가 탐정사무소에서 없을 때 종이 비행기로 아주 간단한 메모만 전할 뿐이었다. 궁금한 것 중 하나가 경찰 출신 와타나베가 마약과 돈을 훔쳐 달아난 뒤로 사와자키는 왜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가 내심 궁금하던 차였는데, 이처럼 와타나베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 종이 비행기를 접는 습관 때문에 사와자키에게 종이 비행기로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 다른 탐정 소설과는 다른 점이랄까. 셜록 홈즈도 왓슨 박사의 도움을 받듯 혹은 <탐정>이라는 영화에서 성동일과 권상우가 함께 짝이 되어 탐정 사무소를 이끌어가듯 와타나베가 어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늦깎기로 데뷔한 소설가 하라 료. 하드 보일드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설가. 더불어 사와자키 시리즈를 오롯이 혼자서 이끌어가는 마흔 살의 탐정을 창조해냈다. 소설이 나온 시점이 1988년 답게 휴대폰도 없이 전화 서비스를 이용해 메모를 받는 식의 아주 구세대적인 시대다. 그가 외출하고 없을 때 전화 서비스 담당이 전화를 받아두었다가 사와자키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전화 건 사람의 목소리와 용건을 말해준다. 지금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서비스에 약간의 답답함을 무시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오른 손을 감춘 한 남자의 방문이 있었다. 르포라이터인 사에키를 찾는다. 그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의 행방을 궁금해한다. 탐정이란 고로 말을 삼가야 한다. 사에키라는 인물을 찾으려면 사건 접수를 해야 했고, 도쿄 도민 은행 전표가 찍힌 20만 엔이 든 봉투를 맡아달라며 건네주고 사라진다. 자신의 이름이 가이후라고 했다. 그리고 사라시나 슈조의 변호사가 전화를 하고 자신의 집으로 방문해 줄 것을 요하고 그곳에서 사라시나 슈조의 딸 사에키 나오코가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게 된다.

 

 

사에키 나오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사에키의 탁상 달력에 와타나베 탐정사무소가 적힌 메모는 누가 가르져 준 것일까. 정식으로 사건을 의뢰받은 사와자키는 사에키의 행방을 좇고 자신에게 20만 엔을 맡긴 가이후를 전화번호부에서 찾는다. 사에키가 머물렀던 집에 가봤으나 사이후나 사에키의 흔적은 없고 경찰 신분증을 지닌 한 거구의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사에키가 무엇을 조사한건지 파악하려고 신문을 뒤적이다가 도쿄 도지사 후보 사키사카의 저격 사건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가이후라는 이름을 쓴 남자는 누구인가.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하고 그의 가방에 들어있었던 거금과 총기는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 였다.  

 

 

미스테리 소설이 그렇듯 도지사 후보의 스캔들 사건과 이에 대한 괴문서의 정체가 드러남과 동시에 괴문서를 이용한 사람이 있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돈 때문이었다. 가진 자는 더 갖기를 희망한다. 권력 또한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큰 법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배신하고 누군가를 끌어내리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해 얻고자 하는 것이 크다.

 

사와자키 탐정의 추리가 빛나는 시점이다. 하나를 바라보지 않고 여러 개를 짜 맞출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니시고리 경부를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줄 줄도 안다.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합법적이지 않다. 반면 일본에서는 합법적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공인 탐정 제도 도입를 거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설 속 사와자키는 오히려 경찰관보다 더 앞서 간다는 것이 매력이다. 셜록 홈즈에서도 경찰관이 셜록의 도움을 받았듯, 비교적 자유로운 사와자키가 니시고리 경부에게 도움을 주는 식이다. 경찰이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식이랄까. 고독한 사와자키의 거친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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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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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모델을 구할 수 없어 자신을 그리는 경우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동생 테오에게 의지했지만 돈이 없어 주로 창녀들을 그렸고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에는 화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슬픔이 깃든 표정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한 모습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보여지길 원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화가는 신의 모습처럼 그리기도 한다. 화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가가 그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가에게 그림이란 자신의 마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소설가 또한 그렇지 않는가. 소설 속 문장에 자기 안의 생각들을 담을 수밖에 없다.

 

 

또하나의 이유는 화법을 바꾸기 전 자화상으로 연습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든 그렇지 않든 자기를 그리며 변화를 시킨다.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경우는 많았다. 주변 인물들을 그릴 때 슬쩍 자신의 모습을 그려 모델을 최소화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감추었다. 박홍순 작가는 화가들의 자화상과 그 모습에 투영된 한 편의 소설을 대입해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해 냈다.

 

 

 

그동안 많은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련된 글을 읽었으나 이상하게 에곤 실레의 <이중의 자화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봐놓고도 내가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 에곤 실레의 <이중의 자화상>과 <삼중의 자화상>이 실려 있는데, 한 장의 그림의 이중의 혹은 삼중의 다른 자신의 모습을 담는 식이다. 심리적 변화가 굉장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듯, 분열된 자아를 보듯 또다른 자아를 나타낸 것 같다. 절제와 불안감이 한 장의 그림에 동시에 표현한 식이다. 에곤 실레의 그림과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소설을 연결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이중성을 표현한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삶은 그림에서 잘 나타난다. 강렬한 색채가 빛을 발하고 표정은 굳어있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자신의 목을 에워싼 곳에 피가 배어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엘로에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이라는 그림 외에 <나와 디에고 리베라>라는 그림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디에고의 모습은 거대하고, 그 옆에 선 자신은 아주 작게 그렸다. 이것 또한 화가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디에고를 사랑했지만 여성편력이 심한 디에고에게 상처받은 내면의 표현이었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연민으로 보았던 것이다.

 

저자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과 함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엮었다. 아이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우연히 젊은 남자 브론스키를 만나 집을 나와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이미 사랑이 식은 브론스키를 바라보아야 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마음을 프리다 칼로를 연민의 마음으로 보았다.  

 

 

들라크루아는 좀처럼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그림 <햄릿으로서의 자화상>도 비교적 초기작에 가까운데, 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인물을 차용한 것은 자신의 성장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성장 경험을 햄릿의 우수와 번민처럼 여겼다는 뜻이다. 들라크루와의 자화상과 연결될 소설에는 당연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마치 자신의 감정인양 햄릿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게 여겼으리라. 아버지를 죽인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 그로 인한 햄릿의 번민과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지 않나. 

 

<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섭의 삶과 그림에 대한 열망을 책으로 읽어서인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과 글을 쓴 편지들. 함께 수록된 <시인 구상의 가족>이란 그림에 드러나는 이중섭의 모습은 애달프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렸던 궁핍한 삶. 언젠가는 남덕이라 부르는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함께 살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던 이중섭의 삶이 그 시대의 아픔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이중섭의 상실감을 최인훈의 <광장> 속 인물 이명준과 함께 나타냈다.

 

 

 

 

화가들의 자화상과 소설 속 인물들은 이처럼 교묘하게 닮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자화상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소설. 화가들의 자화상 속 표정은 다양하다. 그들 삶의 다양성처럼 다양한 표정뒤에 숨어 있다. 화가의 그림을 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의 삶의 궤적일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경제적으로 궁핍했는지, 가진 재산이 많이 여유가 있었는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책 한 권 속에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화가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겪지 못했던 감정의 파도를 느끼기도 한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세밀화로 그린 <연필로 그린 자화상>에서 피로하고 남루한 화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가 못다했던 삶이 그가 살고자 했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과 너무 다른 실제 그의 모습인것처럼.

 

다만 한 가지, 자화상 하면 빠지지 않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수록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고흐의 이야기가 너무도 유명해서 일까.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화가 누스바움과 콜비츠, 아르테미시아, 키르히너, 프로이트의 그림은 다시 살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인문학으로 안내했다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미술관과 인문학> 시리즈는 <감정의 자화상> 그림과 연결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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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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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록때문에 역사가 살아 숨쉰다.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작가가 써낸 글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 또한 그렇다. 우리가 무심코 행동해왔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게 하나의 문화가 되듯, 누군가의 기록은 필요하다. 그게 부모님의 일일지라도, 그게 자기 고향의 이야기일지라도.

 

고향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마치 여행 에세이처럼 여겨진 제목때문에 읽기 시작했던 책이 하나의 에세이처럼 여겨진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굳이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우리 부모님들이라고 해야 옳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던 우리의 부모.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남은 건 노인들 밖에 없는 시골. 이곳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소설집으로 엮였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는 유달리 자신의 고향집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소설로 남겨 고향은 흔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 달인의 경지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부녀회장이 미워 질투로 인해 욕설을 내뱉는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 사람들과 닮았다. 정확히는 시골의 풍경이 그려졌다. 오늘을 사는 시골의 늙은 사람들. 한 마을의 이웃 숟가락 숫자까지도 꿸 수 있다는 시골 사람들의 인심과 과도한 관심이 불러온 이야기들이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데, 유달리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작가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엿보였다. 이런 소소한 기록과 이야기들이 뻔한 이야기라 싫은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재미있게 읽혔다. 시어머니가 한번씩 말씀하시던 시골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글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배길 그런 이야기들의 집합이었다.

 

 

바쁜 모내기 철이 오기 전 시골 사람들은 여행을 다닌다. 그렇게 해서 간 여행이 도시의 어머니들 못지 않다. 소설의 표제작이기도 한  「놀러 가자고요」는 소설의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아내 오지랖 여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여행을 독려하는 이야기다. 방송을 해버리면 간단할텐데 이러저러한 사유로 거절할 사람들을 줄이고자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한다. 어떻게든 30명을 채우고자 분투하는 것인데 놀러 못가겠다는 이들의 사연이 다 제각각이다.

 

평소 남편에게 꼼짝 못하는 오지랖 여사의 기지가 빛난 부분이 있는데, 돼지 잡는 곳에서 꼬박 몇 시간을 기다려 자식들을 위해 갈비를 사왔는데, 오지랖 여사가 그만 태워먹었다. 순간의 기지로 며느리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시켜 가족들이 맛나게 먹는데 이 또한 김사또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지 않았나 싶다.  또한 아들과 며느리에게 친척을 대동하고 온 방문판매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만병통치 욕조기를 사고 싶은 어머니의 속내, 금방이라도 카드를 긁어 어머니에게 사주고 싶은 아들. 그러나 400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사줄 수 없다고 따지는 며느리의 속내를 밝힌 이야기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심각할 이야기들인데, 김종광의 글로 읽고 있노라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살아온 부모님들의 이야기와 자식들의 이야기. 농촌에 청년회라고 해봤자 50대가 태반인 곳에서 울력을 부치는 애환들까지 위트있게 읽힌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동네의 모든 이야기들을 들고 사는 어머니들의 입담이 퍽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게 왜 김종광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여태 읽지 못했는가 이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출간 작품 중 최근에 출간한 작품이 『조선 통신사』다. 전자책으로 구매한 것 같아 살펴봤더니 구매하겠다고 생각만 했지 아직 미구매 상태였다. 그 책 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이번 소설집에서 느꼈던 맛깔스러운 문장을 그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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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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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텔레비젼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있었다. 손예진과 정해인이라는 배우가 친구 동생, 누나 친구로 연애를 하는데 꽁냥꽁냥대는 그들의 연애가 예뻐 본방사수하며 챙겨 본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는 아주 현실의 연애를 했는데, 직장 생활도 그 중의 하나였다. 회사의 회식 날 할 수 없이 부장이나 이사 앞에서 탬버린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서 오죽했으면 별명도 윤탬버린이었을까. 그런데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의미로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도한 성추행으로 문제시되자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은 한두 명 일뿐, 모두들 한 발 물러서서 윤진아에 대해 수군댔었다. 다른 직원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임엔 틀림없다.

 

소설의 첫 번째 내용이 이와 같은 일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접촉, 성적 농담, 만나자는 전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남자인 팀장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제대로 조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공황장애를 앓으면서까지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SNS에 적극적으로 알렸으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20페이지)라고 다짐했다. 아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터 이 책에 대한 호감도가 쑥 올라갔다고 봐야겠다. 첫 번째 사람이 조용히 넘어갔기 때문에 과장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자신 또한 조용히 덮고 넘어갔다면 다음 사람에게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 속 소진처럼, 드라마속 윤진아처럼 과감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육십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 속에 녹아냈다. 직장인으로서 애환을, 누군가의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산다는 것의 애환을 들려주었다.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 혹은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또다른 변주곡이다.

 

 

여성 직장인으로서 성희롱을 고발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공기업 퇴직 노동자, 학교 급식실의 조리사로서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시위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이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 결혼을 앞두고 이혼을 준비 중인 언니를 바라보는 심정, 이땅의 엄마로서 손녀들을 키우는 애환 등을 담았다.

 

젊어서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고, 나이가 들어서는 며느리의 아이, 딸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힘겨움을 담았다. 아이들을 챙기다보면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오늘의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딸과 며느리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을 봐주는 시어머니는 신경쓰는 며느리, 일하느라 바빠 도통 자신의 시간을 낼 수 없어 사위를 욕해보지만 아들 또한 마찬가지 아닌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지 말 것.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99페이지)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201페이지)

 

최근에 스치듯 본 드라마에서 어떤 여성이 그러더라. 여자는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이 없다고. 그저 아이 엄마가 된다고. 무시해보려고도 하지만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대변이었다.

 

여성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무조건 참지 않는다. 맞서 싸운다. 이처럼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게 아닐까.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다를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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