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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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세 살의 철학자가 여든두 살의 아내에게 바치는 연서가 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그의 역사와 자세를 배울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계산적으로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 이 책을 만나보면 통감할 일이다.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 로잔에 머물다가 한 여자를 발견했다. 앙드레 고르는 영국 출신의 그의 아내 도린을 처음 만나던 날을 회상한다. 도린의 마음을 훔치려는 세 남자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그녀를 말이다. 자기가 넘볼 수 없는 여자라 여겼던 고르가 한달 뒤쯤 지나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춤추러 가며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도린을 알기 전 그는 여자와 두 시간만 만나도 지루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린은 예외였다. 도린과 떨어져 지내야 했을 때 비로소 그녀와 결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유일한 여자였다.

 

'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6페이지) 라고 편지가 시작된다. 사랑의 지고지순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몇십 년 동안 함께 살아도 그 시절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하지만 고르는 아내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편지로 남기고자 했다. 우선 그는 그의 책  『배반자』 에서 아내를 잠깐 언급한 것 외에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 사랑하는 마음을 더 깊게 표현할 수 없었는데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지, 왜 다른 사람은 안 되는지 그것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3페이지)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를 아직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뒤돌아보게 된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렇다고 느껴지기도 할테지만, 이토록 오랜 시간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게 슬픈 일이다.

 

그때 당신이 나에게 되어주었던 바로 그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되살려주어야 한다고 통감할 뿐입니다. 나는 이미 여기서 우리 사랑과 우리 부부 이야기의 큰 자락을 복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글을 쓰던 시절을 난 아직 샅샅이 되짚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설명을 찾아 내야만 합니다. (67페이지) 

 

 

당신은 '다른 세상'을 보고 온 사람입니다. 한 번 가면 아무도 못 돌아오는 나라에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당신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낭만적 영어로 하면 이렇게 요약되지요.

There is no wealth but life (85페이지)

 

2007년 9월 24일 앙드레 고르는 그의 아내 도린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 도린은 거미막염에 걸려 평생을 투병했다.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했다. 책에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절절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토록 사랑받는 도린은 죽어도 여한이 없었을 것 같다. 부부 중 누군가가 혼자 살아가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거기에서도 함께하자고 외친 그의 사랑이 메아리가 되어 날아왔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89페이지)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지고지순한 일이다. 운명처럼 다가와 운명처럼 사랑했고 스러진 도린과 고르의 사랑이 이토록 가슴속에 사무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축복이자 행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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