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책들이 있다. 우리는 그걸 우화라 부르게 되는데, 우화 속에서 드러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 역사 속 사실과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인 진실들을 표현한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화와 아이들에게 읽히는 우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다르지 않다. 

 

『동물농장』과 『1984』가 한데 엮인 책을 읽고 조지 오웰이 가진 정치적 사상과 생각들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동물농장』을 읽은 느낌은 어쩐지 남다르다. 두 번째 읽는 책에 대한 감동이 더 크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어떤 번역본을 읽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사고가 다르게 되는데, 김욱동 번역가의 책으로 읽으며 그가 표현한 단어의 다름에 새삼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번역가 또한 한 사람의 다른 작가가 아닌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동물농장』은 혁명을 통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린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인간들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동물들을 통해 나타낸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영국에서 정치가들이 불편해하는 정치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그가 그린 동물들의 세계는 우리 인간사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보인다. 

 

존스 씨의 장원 농장에 있는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존스 씨를 비롯해 가족들을 쫓아 내었다. 겨우 숨을 쉬고 살아갈 만큼의 먹이만 주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동물들의 삶은 비참하며 고통스럽다는 이유였다. 모든 동물들의 평등을 내걸어 일곱 계의 계명을 만들고 혁명을 이루어 동물들만의 농장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혁명의 역사가 그렇듯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 권력을 놓기가 쉽지 않다. 더 큰 권력을 찾고 그들의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모든 동물들이 처음엔 행복했으나 돼지들의 지휘 아래 일하는 자와 권력을 누리는 자로 나뉘게 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처음엔 스노볼이 동물들을 이끌었다. 풍차 건설 계획을 세운 것도 동물들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권력은 또다른 권력을 탐하게 되는데, 나폴레온이 그 역할을 한다. 즉 스노볼의 풍차 건설 계획을 반대하고 나서며 설계도에 오줌을 갈겼다. 그리고는 개를 앞세워 스노볼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나폴레온이 동물농장의 실권을 장악했다. 일반 동물들이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으나 나폴레온은 집안에 틀어박혀 마음대로 먹을 것을 탐하고 개들을 밖에서 지키게 했으며 스퀼러에게 모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모든 동물들이 참석했던 일요일의 집회도 나폴레온이 비공개로 직접 주재하고 결정 사항은 스퀼러를 통해 일반 동물들에게 지시하였다. 모든 동물들의 평등을 강조하고 나선 혁명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지도자인 돼지와 일반 동물들의 계급의 간극이 생겼다. 공산주의의 시작이었다.

 

두 발 달린 인간들을 동물들의 적으로 간주하고 평등한 삶을 시작하였으나 권력으로 인하여 그들의 삶은 변질되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하면 되는거야.'라는 말을 외쳤던 복서를 어떻게 죽였는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이 떠오를 정도였다. 자신들에게 필요없어진 동물들이라 여겨 과감히 버렸다. 이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상을 꿈꾸었지만 그들의 이상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농장은 이전보다 부유해졌지만 동물들은 이전에 비해 풍족하지 않았다. 돼지와 개는 예외였다. 그들은 식욕이 왕성하였고, 다른 동물들의 생활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배를 곯고 추위와 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굶주림과 고통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물 농장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힘든 삶이어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거울처럼 비춘다.

 

*덧 ; 소설 뒷편엔 100페이지 가량의 역자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작중 인물들과 사건의 비유적인 표현 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의 사상,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까지 김욱동 교수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라틴어 등에 뿌리를 내린 언어보다는 앵글로-색슨 토착어인 영어식 표현과 그 번역에 대하여도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동물농장  #조지오웰  #비채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비채모던앤클래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전 자주 가던 책방에서 소설 한 권을 발견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이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말하는 소설을 읽고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았으나 오래전 출간한 작품 한 권밖에 없었다. 전작을 읽고서 작가의 신작에 목말라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뒤에야  『잠옷을 입으렴』이 출간되었고, 또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출간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출간하자마자 구입해 홍콩 여행시 숙소에서 책장을 넘기는 걸 아쉬워하며 읽었었다. 지금 그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사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드라마로 방영된다면 더 아름답겠다고 여겼으나 아직까지 드라마화되지 않았다. 


이렇듯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라는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표지 또한 마치 첫사랑을 소환하듯 연한 핑크빛이다. 산문집에는 나뭇잎소설이라 하여 짦은 소설이 아홉 편이나 수록되어 있어 이도우 작가와 더 가까워지는 듯 하다. 작가가 소설을 쓰며 드는 생각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다. 작가가 바라보았던 시선과 생각들이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으로 그대로 나타나는 것과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의 생각에 이입되었다. 마치 세 소설의 주인공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한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은섭이 쓰는 굿나잇 책방의 블로그 비공개 글을 사랑하였다. 책방에 들여온 신간 소식과 굿즈에 대한 생각, 무엇보다 좋아했던 건 해원에 대한 마음을 쓴 글이었다. 목해원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표현했는데 아마도 그 설렘이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의 공진솔과 이건 피디의 애틋함은 사랑을 바라보며 드는 감정들과 라디오가 주는 감동이 컸다.  『잠옷을 입으렴』은 또 어땠나. 둘녕이라는 이름과 수안이라는 이름이 주는 어린 날의 기억때문에 아련하였다. 


소설을 쓰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정든 대상을 혼자서 보고 느끼기엔 아쉬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 기왕 들려준다면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우리 마을에 작가고 아담한, 무슨 사연이 숨은 듯한 폐가가 있습니다. 그 폐가를 어떤 청년이 빌려서 책방을 열었습니다.'라고 쓰고 싶었다. (27페이지)



 


책과 영화를 보며 끝없이 타인의 삶과 만나는 건 이런 간접경험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르 클레지오의 말처럼 '나는 나의 인간성과 나의 육체를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우리를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고백 속으로 탐험하도록 밀어 넣는 것 같다. (75~76페이지)


산문집은 작품의 주인공들과 함께 하는 추억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을 작가의 개인적인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어 더 생명력을 얻는 느낌이랄까.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삶을 기억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내가 가진 시름은 저만치 물러나는 느낌이고 새로운 인물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느낌때문이다. 


기말고사 시간에 단편 소설을 읽고 8절지에 요약해서 쓸 것과 다시 16절지만큼 요약할 것, 그리고 8절지에 쓴 것과 16절지에 쓴 요약본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하여 16절지 만큼 요약하라는 시험에 대하여 말하였다. 인터뷰 글들을 써서 편집자에게 건네면 사진 사이즈때문에 글을 줄여달라는 전달을 받았던 일화를 말했다. 이것을 네 박자 리듬의 글쓰기라고 표현했는데 작가가 줄여 쓴 문장을 읽고 있으면 줄여쓴 문장이 더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졌다. 글쓰는 작가로서 고민과 생각들을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다음 작품은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오래 사랑받을 가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쓰는 동안 스트레스는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땐 멍하니 은퇴 후를 상상해본다. 글쓰기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면 오히려 글이 주는 기쁨을 더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249페이지)  


작가의 소설을 더 자주 읽고 싶다. 그러러면 부지런히 소설을 써야 할텐데, 작가가 말하길 아주 느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느리게 쓴 작품이지만 작품 속에 녹아든 작가의 모든 감정들, 사물이나 인간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다.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작품을 더 자주 보고싶다는 것. 작가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산문집도 좋지만, 작가가 창조하여 빚어내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서 만나고 싶다.  


#밤은이야기하기좋은시간이니까요  #이도우  #위즈덤하우스  #사서함110호의우편물  #잠옷을입으렴  #날씨가좋으면찾아가겠어요  #책추천  #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이런 것도 다 있었어.

와인 좋아하는 내게도 어울릴만한 유리컵이넹.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슬비 2020-04-2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즈 선물로 받았는데, 앙증맞은 사이즈예요.
평소 동생과 제가 와인마실때 둘째 조카에게 이 잔에 사과주스 따라주면 좋아하네요.^^
지금은 달고나 라떼 사이즈에 딱 적합해서 좋은데, 굿즈로 받을때는 몰랐는데 가격이 좀 사악하군요.

Breeze 2020-04-27 11:36   좋아요 0 | URL
아이들도 좋아하는 유리컵이군요.
그러고보면 상당히 기발해요. 이러한 디자인을 한다는게요. ^^
 
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부질없는 것이어서 어쩐지 읽은 내용 같은 단편이 있었다. 아마 젊은작가상이나 다른데서 읽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이상해서 다시 찾아 보니 4 년 전에 읽은 장편소설 『홀』의 내용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중  「식물 애호」 라는 작품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책을 찾기 시작했다.  장편 『홀』은 단편  『식물 애호』의 확장판이라는 걸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장편  『홀』과 똑같이  「식물 애호 」에서는 오기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용도 거의 흡사한 것 같다.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오기가 바람을 어떠한 이유로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에서 교통사고가 났으며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주한 건 장모의 슬픈 얼굴이었다. 딸을 먼저 보낸 장모의 얼굴에서 무언가 다짐같은게 보였다. 장모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겠지만 오기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간병인과 물리치료사를 해고 했으며 그에게는 장모 밖에 없었다. 오기의 집 정원은 매우 아름다웠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가꾼 덕분이었다. 하지만 장모는 정원의 나무를 뽑고 날마다 구덩이를 판다. 새로운 나무를 심으려나 지켜보자니 불안할 따름이다. 구덩이에 무엇을 심겠다는 것인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는 불안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오기가 장모의 행동을 바라보는 불안함.  「소년이로」 또한 유준의 집에 놀러왔다가 자꾸 자고 가면서 자신에게만 적의를 표현하는 유준의 엄마와 유준 아빠의 회사 상황 등을 지켜보는 소진에게 느껴지는 것도 불안함이었다. 소진은 유준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을 알면서도 왜 유준의 집에 머무르는지. 자고 가라고 하면 뒷방에서 홀로 잠을 자면서 까지 유준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했다. 


「원더박스」는 떨어지는 이불을 피하려다 넘어져 척수를 다친 수만과 그의 아내 소영의 이야기다. 계약을 잘못해 그 책임을 떠안은 수만은 김의 아파트를 찾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치료비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지만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입원해 있는 수만때문에 간병인으로 일하게 되는 소영은 20여 년 동안 누워있는 환자인 노인을 돌보고 있다. 수만이 물었던 질문, 누구의 잘못이냐고 대답하고 말 것 같았다. 수만이 처한 상황과 아내 소영이 처한 상황. 이들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물을 수 밖에 없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다. 


군대에서 폭력 가해자가 된 처남과 장인과 장모 그리고 노인이 구급차로 실려가던 밤에 짖지 않았던 사실을 탐구하는  「개의 밤」, 87일만에야 자신을 찾은 우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을 담은 「우리가 나란히」, 제초제를 잘못 뿌려 그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에게 묻는 「잔디」는 남편 또한 자신의 잘못을 모른척하고 있었다는 걸 말한다. 그 사과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부서 배치를 받은 진과 그의 사수  유의 어긋남 「월요일의 한담」. 오보에를 불었던 아버지가 잦은 실직에도 쾌활하였으나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케어했던 것들을 말한 이야기 「다음 손님」 또한 우리에게 남은 숙제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다정한 아버지가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 우리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말이다. 






「소년이로少年易老」라는 제목을 나는 '소년 이로' 라고 생각했다. 즉 이로 라는 소년의 이름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에서 앞부분을 따왔다는 걸 알았다. 즉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또는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 어떤 삶을 살았든 나이듦을 피할 수는 없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쓰러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년 유준의 눈빛에서 우리는 어느 한 순간에 어른이 되고 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지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고 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나이들어가고 싶다는 건 나의 바람 뿐일까.  


#소년이로  #편혜영  #문학과지성사  #식물애호  #우리가나란히  #개의밤  #원더박스  #월요일의한담  #잔디  #다음손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이 되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늘 그립고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서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은 굉장한 즐거움을 줄거라 여기는데 아마도 그건 내 생각 뿐일 지도 모른다.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를 위해 많은 걸 준비했을테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이 크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소설의 한 꼭지를 읽으며 엄마가 좀 딸의 요구를 들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네 명인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곤 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일정에 맞는 나라에서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시간을 즐긴다. 올해에도 벌써 다른 나라를 향해 떠났을텐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하늘길이 막혀 아쉬울 뿐이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젊은 작가상에서 혹은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백수린 작가만으로 된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는 거다. 마음산책의 짧은소설 시리즈는 이기호 작가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다. 마치 에세이를 읽듯 무난하게 읽히며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총 13편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주정아 작가의 그림이 삽입되어 소설의 내용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작가가 말하길, '나는 오랫동안 나의 소설 작업이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언어로 그린 그림이 진짜 그림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근사한 일이었다.' 했다. 언어로 그린 그림은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타나 익숙한 느낌을 준다.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처럼 짜릿함이 또 있을까. 「어느 멋진 날」에서는 아이와 함께 바닷가 파라솔에 누워 책을 보는 한 여자를 비춘다. 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데 그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을 무심코 즐기는 한 여자의 마음에서 설렘을 느꼈다. 그는 여자에게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와 짧은 대화를 하며 여자는 얼마나 설렜을까. 자기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해주는 사람이 이제는 드물 듯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더위나 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은행 등에 가곤 한다. 아마 집에서 공항이 가깝다면 공항처럼 더위나 추위를 피하는데 좋은 장소도 없다. 휴가 기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전기세 때문에 잘 때만 켜기로 약속한 진우와 주희는 휴가기간에 공항으로 향한다. 냉방이 잘된 공항에서 음식을 먹고 각자의 노트북을 챙겨 테이블에 앉아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주희는 문득 어렸을때 아빠와 떠났던 어느 여름 휴가를 떠올렸다. 텐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고 수영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 이거야 말로  「완벽한 휴가」가 아닌가. 


첫 문단에서도 밝혔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딸이 엄마를 위해 기획한 프랑스 파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를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  「남과 여」에서처럼 해주고 싶었으나 파리의 에펠탑도 줄서서 기다리느니 그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자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절대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여행 준비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그저 딸이 하자는 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행복한 여행이란 멀리있지 않다. 낯선 도시에서 함께 해 지는 석양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도 없는 밤」에서는 간병인으로 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설량이 최대치로 오른 날 주인공이 돌보고 있는 노인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연락했으나 폭설 때문에 노인은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노인에게 무심했던 여자는 혼자 죽어가고 있는 노인에게 조금만 참으라며,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소설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 죽어가는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간병인, 아이를 가진 나이 어린 부모, 예쁘다며 키스 한 번만 하자고 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시선. 일본어를 배우며 사귀게 된 남자와 5년후 다시 한번 도쿄를 여행하게 되는 연인들의 모습들. 아내가 죽고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오게 되는 여정을 말하는 글들. 본인은 아무리 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나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습에서 세대 간의 격차를 느끼게 된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우리 주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며 다양한 삶을,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여기게 된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는 채로 있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하겠는가. 


#오늘밤은사라지지말아요  #백수린  #마음산책  #주정아  #짧은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