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지 않다고 여겼으나 꽤 많은 추억이 있다는 걸 나이가 먹은 후에야 느끼게 된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빠 혼자 계시는데, 무심한 자식들은 전화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아빠가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거시는데 아빠의 전화가 없으면 내가 해보곤 한다. 유달리 자식들을 애틋하게 생각하시는 아빤데, 최근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기분이 좋지 않거나 뭔가 불만 사항이 있으시면 계속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시는 터라 자식들을 질리게 하곤 한다. 그럼에도 나나 동생들은 아빠에게 잘하는 편이다. 우리끼리 말하길 자식들이 착해서 그렇다고 한다.

 

 

 

앞서 『엄마라는 여자』 리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딸을 둔 아빠들은 참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딸들이 아빠를 그렇게 좋아하지만 성년이 되고부터는 엄마를 더 애틋하게 생각한다. 아빠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엄마에 대해서는 애정을 듬뿍 담아 소소한 기억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빠도 우리에게 서운하다 말씀하신 적이 많았다. 엄마에게만 선물을 하고 전화를 하며,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말하는 것 때문이었다. 반면 아빠에 대한 것은 온통 나쁜 기억들이었다. 아빠와 함께 있는 장소에서 특히 셋째 여동생이 아빠의 흉을 잘 보는데 우리는 옆에서 웃고 난리고, 아빠는 삐친 표정을 하신다.

 

마스다 미리의 아빠를 보는데 어쩌면 그렇게 웃기는지, 꼭 우리들의 아빠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성질이 급해 짜증내는 건 다반사고 식당에 가서도 맨 위에 있는 메뉴를 시키고 뜨거운 음식도 먹을 때도 얼음을 넣어야 하는 작가의 아버지는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어렸을때 작가나 여동생이 아빠를 대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보지 못하게 하고 눈치를 보아야 했던 일화는 보통의 아버지와 똑같았다.

 

 

어렸을때 일요일 아침에 하는 <들장미 소녀 캔디>나 <은하철도 999>를 보아야 하는데, 짓궂은 아빠는 우리가 문 뒤에서 몰래 보는 걸 알면서도 절대 우리를 방안으로 들이지 않으셨고, 우리끼리 키득거리면 채널을 다른데로 돌리곤 하셨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그때 한참 권투가 유행이었을 때, 권투 장면에 집중하느라 숟가락이 입 앞에서 정지 상태로 있은 적도 많았다. 이상하게 아직도 그런 장면은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하는 것 하며, 좋아하는 한신 팀의 야구를 끝도 없이 계속 보는 작가의 아버지와도 닮았다.

 

 

식탐이 많은 작가의 아버지는 만주가 5개 있을 때, 세 사람의 가족이 있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두 개씩, 한 사람은 한 개를 먹으면 되지만, 아빠는 먹다 보면 3개, 이어 네 개를 다 드셔버린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남편을 닮아 웃음이 나온다. 먹다보면 계속 먹는 건 이해하는데, 아직 먹지 못한 다른 가족들을 위하여 남겨놓는 마음 씀씀이도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만 홀랑 다 먹어 버린다. 그런 아빠에게 타박을 하면서도 엄마는 늘 잊지 않고 아빠의 간식을 챙기며 이해하는 모습에서 일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본다.

 

 

어떻게 보면 아빠의 흉을 많이 보는 내용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빠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 나온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빠에게서 나온 딸, 그 딸이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에 나도 몰래 뭉클해진다. 아마도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며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지 않았을까.

신간이 나오면 부모님에게 먼저 드릴텐데, 자신의 글을 면전에서 읽는 아빠를 타박하는듯하면서도 뿌듯해하는 마음이 보였다. 다만 자신의 옛날 기억을 더듬으시며 말씀하셨지만 왠지 딸의 책을 읽고 판단하는 게 부끄러우셨을수도 있다는 걸 안다.

 

  

 

 

 

  

이 책을 읽고 집에 가족모임 때문에 아빠가 오셨다. 아빠라는 남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애정을 담아 쓴 글을 읽으며 아빠를 생각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아 달라고 미리 전화를 하시고는, 열무김치가 시다 하시며 바로 거절의 말씀을 하시는 아빠.  그럼에도 우리와 손자들에 대한 애정을 들어내시는 아빠를 볼 때면 마음 한켠이 시큰해진다. 아마 이것은 마스다 미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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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6-25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고 자라셨면 Breeze님 연배가...?!ㅋㅋ
저는 저 보다 젊은 분이시겠거니 했는데...
근데 으나철도 999는 주일 날 아침에 한 건 확실한데
캔디는 월요일인가 암튼 평일 날 저녁에 한 것으로 기억하는 아닌가요?
암튼 전 캔디는 많이 못 봤어요. 그때 TV는 한 대고 오빠와 동생 2대1이니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나중에 만화책으로 나와줘서 얼마나 고맙던지...ㅠ

Breeze 2020-06-25 13:46   좋아요 0 | URL
캔디, 일요일 아침 아니었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ㅋ 만화방에서 빌려만 보다 지금은 컬러 애장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빨강머리앤 다음으로 좋아하는 캐릭터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