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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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라고 하면 일단 괴테부터 떠올리는 게 당연하다. 이반 투르게네프 하면 『첫사랑』을 떠올리듯 『파우스트』는 괴테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진 작품이라 다른 작가가 감히 사용하지 못할 제목이다. 그런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과감히 동명의 제목을 붙였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때 드디어 유명한 고전을 읽게 되는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읽고 싶은 작품이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못 읽게 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이니 일단 이 책부터 읽기로 한다. 

 

 

작가정신에서 펴낸 러시아 고전 산책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세 편의 중편 소설이 수록된 작품이다.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로 「세 번의 만남」,「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앞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 작품 모두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으며 남자인 서술자가 한 여성을 바라보며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렸다. 능동적인 사랑을 하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한 여성을 그저 바라보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표제작인 「파우스트」 부터 이야기하겠다. 주인공 파벨 알렉산드로비치가 친구 세몬 니콜라예비치에게 보내는 아홉 편의 서간문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9 년 만에 영지로 돌아온 파벨은 우연히 대학 동기인 프리임코프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가 오래전 좋아했던 베라 니콜라예브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초대로 방문하여 아직 소녀적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라를 바라보며 그녀의 어머니에게 베라와의 청혼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파벨은 영지에 돌아온 후 언젠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 중 괴테의 『파우스트』를 발견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베라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해 책을 읽어 주는데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베라의 어머니가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을 한 탓에 지금까지도 시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간문 형식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파벨의 입장에서만 쓴 내용이기에 편지를 받는 상대방의 반응은 글 속에서 유추할 뿐이다. 이 소설은 마치 독자에게 들려주듯 하고 있어서 파벨이 『파우스트』를 읽어주고 난 뒤 베라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베라에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도 있었다. 시나 소설을 읽으며 베라처럼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테니 말이다.

 

 

「세 번의 만남」은 읽는 내내 어쩐지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마 작품 속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성이 불렀던 노래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노래를 글린노예 마을로 사냥을 갔다가 다시 듣게 되었다. 어느 저택에 서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하여 시선을 돌렸고, 소렌토에서 우연히 보았던 여성임을 알아보았다. 아름다웠던 여성의 얼굴을 잊을리 없었다. 그때와 같이 이번에도 한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그 저택을 지키는 노인 루키야느이치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세 번의 만남에도 그는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와 헤어졌다는 말에도 도망치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지 못했다.

 

 

「이상한 이야기」 또한 소피라는 소녀에 대한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죽은 사람을 보여준다는 바실리에게 다녀온 후 소피와 함께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순례자의 시중을 드는 허름한 옷을 걸친 여자를 보았는데 그녀가 소피였다.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순례자로 인식된 그는 죽은 프랑스 가정교사를 보여주었던 바실리였다. 소피는 삶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스승을 원했다. 그녀가 찾았던 스승이 바실리라는게 아이러니다.

 

 

 

 

베라도 그렇고, 소피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게 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피를 순례자로부터 데려왔지만 일찍 죽은 것처럼 베라 또한 파벨에게 마음을 고백한 뒤 앓아 누웠다. 노래를 부르던 여성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고 울며 달려나갔다. 욕망에 대한 말로가 어디인지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굉장히 시적인 문장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어렵지 않고, 다른 작가들처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욕망과 절제, 감정에 충실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언젠가 이웃분이 선물해주신 『첫사랑』이 있는데 그 작품에서는 또 어떤 스토리를 만들었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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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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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두 가지의 물건이 필요할 때 우리는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 편의점은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들이 많이 있어 곧잘 방문하곤 한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반면 찾던 물건이 없을 때의 난감함이라니. 그렇다고 이 책이 난감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 편의점이 그렇다는 말이지.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의 도서 선정 위원이었던 이시한 작가의 『지식 편의점』은 지적인 현대인을 책이라는 모토를 달고 있다. 우리가 읽었음 직한, 누구나 읽었다고 여길 만한 책을 말하는데, 책들 중에서는 어려운 책들도 끼어있다. 어렵다고 여겨 읽지 않은 책들이 비교적 많다는 사실에 저자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알겠다. 

 

 

 

 

저자는 총 18권의 책을 소개하며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지식의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였다. 처음엔 질문하는 인간에서 시작하여 탐구하는 인간을 거쳐 생각하는 인간이 된다. 그 책의 처음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부터 시작한다. 읽은 사람마다 책이 좋다고 말해왔으나 여태 읽지 못한 작품이다. 인류의 미래를 말하는 『호모데우스』만 읽었을 뿐이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의 공감을 느끼지 못해서다.

 

 

작가는  『사피엔스』를 가리켜 '인류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기억 회귀의 장치이자 예측의 도구로서 인류의 역사를 풀어놓습니다.' (35페이지) 라고 했다. 인류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가 그리는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이었다. 많은 SF영화가 그렇듯 말이다.  『사피엔스』 또한 기술 발달 속도를 보면 2100년이면 현생 인류를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화두를 안겨 준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래도록 올랐던  『총, 균, 쇠』는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라는 핵심 개념만 잘 알아도 절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이 콜롬비아 등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고자 했을 때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로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저자는 천연두 균에 내성이 생긴 유럽의 가축들을 풀어 놓아 원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의 균은  『총, 균. 쇠』의 하나에 속한다. 이러한 의미를 알고 보니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무엇을 우려했는지 알수 있겠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이들과 함께 만화로도 읽고, 일반 서적으로도 읽었다. 아마 이 작품을 한두 번쯤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성경에 모티프를 두고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행적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또한 너무도 유명하다.  『장미의 이름』 은 영화로 만났기에 읽었다고 여긴 작품이었으나 역시 읽지 않은 작품이었다.  『군주론』은 '새로운 지역을 다스리게 된군주가 그 지역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라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 책은 피린체라는 새로운 지역을 다스리게 된 메디치 가를 위해 쓴 책' 이라는 사실이다. 정작 마키아 벨리는 새로운 통치 세력인 메디치 가에 잘 보여서 관직에 복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장미의 이름』은  『셜록 홈스』의 오마주라고도 표현했다. 윌리엄 수사와 조수인 아드소의 역할은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와 흡사하다고 말이다. 아울러 저자는  『장미의 이름』에서 과학에 위협을 받고 있는 종교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썼는지 그 탐욕스러움과 위선을 상징했다고 표현했다.

 

 

 

질문하는 인간 편에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러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를 담았다. 탐구하는 인간편에서는 꽤 많은 작품을 수록했는데 그 작품들을 보자면, 플라톤의  『국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등 총 10편의 책을 소개한다. 공교롭게 생각하는 인간편에서 언급하는 책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다른 작품이야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읽으려고 구매해 두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지금이라도 읽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저자도  『코스모스』를 가리켜 '우주 과학 서사시를 통해 오늘 날 인류를 있게 한 코스모스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와 우주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은 멸종 위기종과 다름없으니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304페이지) 라고 했고, 인터넷 서점의 한 블로그 이웃도 상당히 재미있다고 해서 책장의 높은 곳에 위치한 책을 침대 옆 협탁의 목록에 올려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면 의무적인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한번 느낀다. 읽고 싶어서 구매한 책들이 많다. 그 책을 다 읽었느냐면 그렇지 않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뿐만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  『천일야화』,  『수용소군도』,  『비잔티움 연대기』등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지 다른 신간들에 밀려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책을 소개하는 책들을 만날 때면 책 제목을 메모하고 갖고 있던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인 독후감 형식이 아닌 현대인들을 위한 지식의 편의를 위해 만든 책이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지식을 습득한다는 느낌이 커 유익한 독서였다. 앞으로  『지식 편의점』 시리즈가 계속 될 것 같은데, 다음에 출간될 「성장하는 인간」 편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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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7-0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책방 갈다에서 [코스모스] 읽기 모임 할 때마다 늘, 등록해야할까 갈등.
반 강제 의무적 책읽기 필요한 것 같아요^^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커피.
그 맛이 궁금하다.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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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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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읽지 않는 작품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되도록이면 외국문학 보다는 한국문학을 더 읽겠다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읽지 않은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 세상의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법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어디에선가 강영숙 작가의 『라이팅 클럽』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궁금하다,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 왔음에도 여태 읽지 못했다. 드디어 강영숙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그것도 『라이팅 클럽』을.

 

 

『라이팅 클럽』을 읽으며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글은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가. 삶이 곧 글쓰기인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들의 삶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글을 쓰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자신의 삶에서 책 한 권쯤 펴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김 작가와 영인이라는 두 주인공의 손을 빌려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계동의 어느 골목에서 글짓기 교실을 하는 김 작가와 그의 딸 영인의 이야기다. 평생을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삶이 곧 글쓰기의 작업과도 같은 김 작가를 바라보는 냉정하고도 애정어린 시선이, 작품을 다 읽고나면 어느샌가 따뜻한 감동이 느껴진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소설을 쓰겠다고 늘 끄적거리는 영인. 사랑하는 친구에게도 편지로 좋아하는 마음을 날려보냈다.

 

 

김 작가와 영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물은 이름이 없는 알파벳 이니셜로 존재할 뿐이다. 즉 다른 사람의 삶과 글쓰기 작업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늘 글을 쓰고 있었던 여성이 책을 낸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글은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물었을 때도 그 작가는 J라는 이니셜로 존재할 뿐이었다. 다만 오래된 계동의 집 주인인 할머니는 김 작가와 영인을 따스하게 품어준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가가 되려고 하면 대학에 가서 창작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인은 대학을 가지 않고 그저 글을 쓸 뿐이었다. 영인 곁에 존재하는 R이나 A도 특별한 인물은 아니다. 그저 시니컬하게 바라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으로 존재한다. J 작가가 영인에게 일러주었던 대로 글을 쓸 때는 묘사가 중요하다. 묘사를 하기 위해 골목길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그것을 글로 쓰고자 했다. 글쓰기 교실에 찾아온 키가 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장이라는 남자에게 마치 경쟁하듯 마음을 주었던 영인과 김 작가에게 마치 그들의 삶을 그대로 묘사할 수 있겠금 시련을 주었다.

 

 

그 사람의 삶은 한 편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사람이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한두 권의 책이 될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반까지의 영인의 삶이 나오는데 그가 경험한 삶은 스스로 고통의 삶으로 들어간 것과 같았다. 미국에서 네일아트를 하던 영인이 라이팅 클럽을 열었던 것은 김 작가에 대한 그리움, 계동의 글쓰기 교실이 진정한 글쓰기 작업의 일환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글짓기 교실의 유리문이 드드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사선을 그으며 떨어져 내리던 굵은 여름 빗방울, 축구하던 아이들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 그곳에 드나들던 온갖 구질구질하고 우울한 인간들, 그들이 몰고 들어온 먼지 입자들과 값싼 술 냄새, 그리고 대책 없는 자기 폭로, 두고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 라이터, 담배, 스타킹, 립스틱, 서류 봉투, 한 페이지씩 파르르 떨며 되살아나는 여러 종류의 책들, 왜 그때 만났던 허접한 인간들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기만 하는 걸까. (18~19페이지)

 

 

결국 글쓰기 라는 작업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나기도 하지만 다양한 삶을 살아온 경험의 산물이다. 소설에서는 그것을 나타낸 것 같다. 영인이 갈구하는 글쓰기는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도 같다는 거다. 기쁨과 슬픔, 때로는 자신의 존재때문에 삶이 버겁다 느끼는 것 또한 이러한 삶이 글쓰기의 작업과도 같다는 것을 나타낸 것 같았다.

 

 

엄마와 딸 사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남남 관계처럼 보였던 김 작가와 영인의 관계가 끈끈한 애정으로 뭉쳐져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김 작가가 병원에서 아팠던 것도 영인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었는지도 몰랐다. 강영숙 작가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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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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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야구 경기를 해도 보지 않는 편이다. 국가대항전할 때는 TV앞에서 앉아 있는데 야구를 알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경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야구 관련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야구 경기의 용어가 많이 나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이 야구 선수들이 나오는 소설이고 또 그걸 접목한 기업 소설이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일곱 개의 회의』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자와 나오키』를 쓴 이케이도 준이라는 작가의 이름에 읽어볼 생각을 했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삶의 치열한 싸움을 작품 속에 그려낸다는 점이다. 읽지는 않았지만 『한자와 나오키』 또한 은행을 다닌 작가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고, 『일곱 개의 회의』 또한 한 기업의 영업부를 중심으로 한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를 아주 디테일하게 나타냈다. 『루스벨트 게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재미있는 스코어라고 말하는 8대 7의 점수를 비교하며 야구단과 아오시마 제작소가 살아가야하는 치열한 삶의 방법을 말한다.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기업 아오시마 제작소는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경기 불황으로 그들의 주 계약업체인 재패닉스와 도요카메라로 부터 수주 물량을 줄이고 가격 인하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이에 더 새로운 상품으로 경쟁 회사보다 앞서야 하는데 상품 개발실 부장은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거래처 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구조 조정안을 제안받는데, 이 또한 쉽지 않는 일이다. 100명의 직원들을 추려내어 해고 해야 하고, 일년에 3억엔의 비용이 들어가는 야구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과 야구팀을 이끌어가는 감독과 부장, 매니저, 선수를 중심으로 소설이 진행되는데 직원들의 사정을 생각해야 하는 인간적인 면과 회사를 생각해야 하는 경영진의 입장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사실 회사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비용적인 면을 생각할 때에 야구팀은 줄여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음 사회인 야구팀을 창단한 아오시마 제작소의 회장 아오시마는 무엇이 직원들을 즐겁게 하는지, 사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지를 내다 보았다. 그럼에도 야구팀을 해체할 수 밖에 없는 사정에는 공감을 하였다. 즉 회사의 사장인 호소카와의 판단을 믿어주었다는 거다.

 

회사의 직원들을 생각하지 않는 호소카와를 보며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전체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점점 응원하게 되었다. 경영 컨설턴트의 시각으로 회사를 바라보며 이익이 될 게 무엇인지 간파해내는 능력은 호소카와만이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업체인 미쓰와전기의 반도 사장에게서 합병 제안을 받았을 때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거절하였던 점도 마찬가지다.

 

결국 관계가 없을지도 몰라. 이게 마지막 경기든 아니든 상관없어. 이렇게 뜨겁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앞에서 적당히 싸울 수는 없잖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좋아하는 야구를 하는 수밖에 없어. 그것 말고 뭐가 있지? (432페이지)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물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고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을 응원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고등학교때 에이스 투수였으나 아오시마 제작소의 생산부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오키하라를 열심히 응원했다. 그를 발탁해 준 다이도 감독의 사람을 보는 눈이 마음에 들었고, 그가 과거의 폭력 사건을 잊고 진정한 투수로서의 능력을 갖기를 바랐다.

 

소설을 읽다가 자꾸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거액의 자본을 기대하며 합병을 원하는 주주 중 한 명인 다케하라가 주주들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주주들은 스스로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단면을 보게 했다. 미화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회사의 주인은 직원들이라고 나왔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을 읽는데 자꾸 '회사의 주인은 직원들인데, 직원들이 없으면 회사가 있을 수 없는데' 하는 다분히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처럼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직원의 입장에서 호소카와나 사사이를 판단했던 것 같다. 숫자에는 정확한 사사이가 회사 전체를 아우르는 사장이 될 수 없었듯이 객관적으로 회사를 바라보는 호소카와 같은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역시 매력적인 작가다, 이케이도 준은. 그동안 호기심만 있었는데 『한자와 나오키』를 읽어보고 싶다. 그 매력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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