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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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아들녀석때문에 구매하게 되었다. 백수린의 소설이 좋은 건 알았지만, 신작 소식에 바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종이책으로 구매할까, 전자책으로 구매할까 갈등중이었다고 해도 될까. 그러던 차에 백수린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던 아들이 작가의 소설이 너무 좋다며 신작 구매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구매를 결정했다. 



여태 읽어왔던 백수린의 소설답게 단정했고 거의 여성의 서사였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다양한 주인공들을 만났다. 때로는 사람때문에 힘겨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이별을 한후 뒤늦게야 후회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고해도 이별한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몇 작품은 읽은 소설이라서 반가웠고,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던 것과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다시 읽다보면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매력적이었다는 말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시간의 궤적」이나  「고요한 사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다시한번 작가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작품들 모두다 좋았지만 특히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  「흑설탕 캔디」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었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같은 경우, 내가 백수린 작가의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뭔가 백수린 작가 답지 않은 소설이라 여겼다. 사춘기,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게 된 시기.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며 만나는 친구들 또한 다양한 감정으로 만나게 된다. 부모님에게는 공부 잘하고 착한 딸이지만 사춘기를 지나는 주인공 '나'는 엄마가 사 준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밤마다 몰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는 성에 눈뜨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다미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며 그 아이가 말하는 직접적인 호기심으로 점점 다가간다. 소설 속에서 언급하던 것과는 다른 실제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다미는 베프 선주와는 다른 느낌의 친구다. 소설은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을 주로 다뤘는데 그때는 금기의 단어였지만 이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한 시기의 추억이었음을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엄청 큰 사건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삶의 궤적임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흑설탕 캔디」를 읽는데 어쩐지 그리움에 젖은 듯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증조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한 단편이었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이 느꼈을 상황같은 건 없었다. 프랑스에 가지도 않았고 많이 배운 할머니도 아니었다. 기억나는 건 곰방대를 들고 앉아 계신 것만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왜 증조 할머니를 떠올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게 할머니라곤 그 분밖에 없어 그랬는지도. 상우 말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꾼 주인공 '나'는 오래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기들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 교육을 받은 할머니때문에 어렸을때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가 프랑스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후 프랑스로 건너갔던 '나'의 가족은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와 함께 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던 '나'는 그곳에 적응하는 게 바빠 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본어는 잘하지만 프랑스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에 신경쓰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일기장을 들춰보며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살았던 1층에 거주한 브뤼니에 씨와 얽힌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피아노 곡이 들리는 소리에 그 집앞 창문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멈춰있었는데, 그 뒤로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는 불한 사전과 한불 사전을 놓고 이야기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동안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느꼈을 향수를 음악과 브뤼니에 씨 때문에 버티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약간의 자책과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9월이긴 하지만 여름에 나왔으므로, 또 여름에 구매하였으므로 여름에 어울리는 제목의 책이다.  「여름의 빌라」의 주아는 배낭 여행중 알게 되었던 독일에 살고 있는 베레나와 한스 의 초대로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의 한 빌라로 향하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둘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초대하거나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주아도 남편 지호와 함께 베레나와 한스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배낭 여행때 만났었고, 지호의 유학시절을 포함해 5년 넘게 알아온 관계였다. 같은 공간에 머물다보면 서로의 생각이 달라 마찰을 빚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살아온 환경때문일 수도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때문일 수도 있다. 



사원들을 구경하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상가옥 마을에 가기로 했다. 건기에는 육지이지만 우기에는 톤레사프 호수가 범람해 모든 집들이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었다. 수상가옥 마을을 다녀온 후 한스는 날씨 걱정도 없고 삶이 여유로웠다고 말하며 그곳으로 어떻게 돌아갈까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지호는 수상가옥 마을의 아이들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거라고 한다. 나중에야 베레나와 한스의 딸이 한 사건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아가 베레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결말에 그만 울컥하고 만다. 손녀딸 레오니와 있었던 일화였다. 네모난 선을 그렸던 레오니.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오자 그 아이들에게 다른 선을 그어 주었던 레오니였다. 선 밖에 있던 아이들에게도 선을 그어 선 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이 피부 색깔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된다. 하나의 선은 두 개가 될 수 있고, 세 개, 네 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음을 어떻게 여느냐에 다르지 않을까. 다양한 경험이 우리 삶의 커다란 자양분이듯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우리 삶의 다른 자양분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친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재산과도 같지 않은가. 다시 백수린의 소설에 매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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