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아름다운 건 여백의 미가 있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그려진 선 몇 개가 그림이 되는데 이것은 난초가 되기도 하고 대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림도 아름답지만 그림에 스며든 빈 공간, 즉 여백이 있어 더 아름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유현준 교수를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만났다. 동시대의 사람이지만 이렇게 박학다식한 사람이 있을까. 그가 어느 공간에서 말을 할 때마다 감탄하고는 했다. 그의 저작이 많음에도 여태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마 그가 건축사이기때문이었다. 나한테는 문외한인 분야이니까. 그렇다고 아주 문외한인 주제는 아니다.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제부가 모두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으므로. 알게모르게 많이 접했다. 어딘가를 여행하면 그 건물의 아름다움 즉 외관을 보는 나와 달리 그들은 건축물의 구조 등을 보았으니까.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막막함이 없잖았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좋아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건축과 관련된 건은 자신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교류로 인하여 건축물이 서로의 것들을 닮아 있는 융합을 말한 부분에서였다. 즉 문화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어쩌면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었던 내용의 글이었다.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의 공간에 대하여 말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문명의 발생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리적 조건에 따라 강수량이 달라지고, 강수량에 따라 벼농사와 밀농사를 짓는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벼농사는 모를 심는 과정부터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므로 집단의식이 강하다. 반면 밀농사는 혼자서 씨를 뿌리는 과정에서부터 개인주의가 강한 것이다. 서양이 '나'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양이 '우리'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양의 건축물과 서양의 건축물은 지리적 요건에 따라 달라 지는데, 동양이 땅이 물러 나무를 주재료로 한 기둥이 중심이라면 서양은 곧은 땅의 영향으로 벽을 중심으로 한다. 기둥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건축물은 담양의 소쇄원의 정자같은 모양이다. 땅이 무르기때문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얹는 식이다. 기둥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건축물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다. 여름철에 창문을 접어 올려 처마밑에 걸쳐 바깥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운치를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이와 반대로 서양의 건축물은 바깥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건축물을 디자인한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고 나무 덧문을 대기도 하였다. 이것은 수학적 계산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건축과 비움을 가치로 한 동양의 건축이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의 건축물은 서로 다른 점으로 시작되었으나 동서양의 교류로 인하여 서로를 차용하여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강해졌다는 것을 설명했다. 르 코르뷔지에를 포함하여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명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초기 작품인 '크륄러 뮐러 하우스'에서는 파르테논 신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구조적인 벽을 버리고 철골 기둥 구조를 이용했다. 저자는 일본의 사찰 등과 비교하였는데 놀랍도록 그 구조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양은 비가 많이 오는 기후 땅이 무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로티 구조(한옥의 마루, 원두막)를 사용했던 건축가가 르 코르뷔지에다. 미스 반 데어 로에 역시 같은 방식으로 '판스워스 하우스'를 만들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나무 기둥 대신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했고, 1914년에 발표한 돔이노(Dom-ino) 구조 시스템은 주춧돌이 있는 한옥 건물과 비슷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얼마전에 이웃분의 블로그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돔이노 구조와 사진을 접해 낯설지 않았다.   



독학으로 공부한 안도 다다오를 빠뜨릴 수없다. 안도는 루이스 칸과 르 코르뷔지에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건축을 공부했다. 안도의 건축 양식과 공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도의 대가 센노리큐는 기존의 전통 건축에서 변형된 방과 피빌리온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사진과 설명으로 접한 안도의 '물의 교회'는 단순하면서도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퍼즐처럼 공간들을 다채롭게 분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과거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SNS에 사진을 올리는 가상의 공간까지 건축물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시각으로 건축물과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는데, TV 프로그램에서처럼 명료한 설명이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건축물과 그로 인한 문화의 이해였다. 문화는 이처럼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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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20-09-17 17:26   좋아요 0 | URL
말씀도 잘하시더니 글도 맛깔스럽게 잘 쓰시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