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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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마자마 라디오를 켠다. 예전엔 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사용했지만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스마트폰 어플을 깔아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예전의 라디오보다 잡음이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디제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인다. 퇴근 무렵 다시 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꽂아 라디오를 들으면서 퇴근한다. 오래 진행하는 디제이가 하는 말에, 그가 들려주는 음악에 귀가 먼저 즐겁고 마음마저 즐겁게 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게 만드는게 라디오가 하는 역할이다. 오래전에 듣던 라디오를 다시 듣는 느낌은 뭐랄까. 과거로의 회귀, 혹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다시 되찾는 일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듣고, 새로 나온 곡을 들으며 최근의 팝음악의 유행을 읽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 한 사람이 모여 수많은 청취자로, 남의 일도 나의 일인양 공감하고 울분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라디오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다. TV가 없던 시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수 있었다. 아마 제일 중요했던 라디오의 역할은 전쟁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거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볼때면 뭔가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라디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전 소식이나 승전 소식이라도 날아오는 날엔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라디오는 소통의 창구였고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그래선지 전쟁속에서 제일 먼저 압수하는게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통해 암호를 전달할수 있는 매개체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군들 모르게 라디오를 숨겼고, 전쟁 소식을 들었고, 또는 누군가에게 소식들을 전했다. 그런 라디오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TV나 인터넷등 편리하고 간편한 매체가 생겨났음에도 여전히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소년과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표지의 책.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의 이야기. 더구나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때문에 더한 궁금증이 일게 했던 책이다. 역시나 가슴먹먹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내일을 알수 없는 나날, 더군다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와 여동생이 하나 뿐인 고아 소년이 전쟁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소설은 다양한 매개체를 내세워 우리를 2차세계대전 속 한복판으로 이끈다. 라디오, '불꽃의 바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의 전설, 쥘 베른의 책, 전쟁, 소통. 오랜 시간을 들여 결국에는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인연.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 소설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뇌리에 깊게 박혔다.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생각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변해갔을 그들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소설의 시작은 눈이 멀게 된 한 소녀의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과 전쟁의 시작이 같다. 소설의 제목처럼 전쟁속에 가로막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녀의 시점으로, 소년의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두 이야기를 엮어가다보면 어느새 하나의 공간, 그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독일의 고아원에서 여동생 유타와 함께 라디오에서 프랑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던 베르너. 아빠가 일하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놀이터처럼 놀았던 소녀 마리로르. 라디오를 통째로 뜯어 고치는 능력이 탁월해 동네의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었던 베르너.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았던 독일군은 그를 소년들을 군인으로 키우는 학교로 데려갔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쇠 장인으로 일했던 아빠와 함께 중요한 박물관의 물건을 가지고 파리에서 생말로로 향했다. 

 

 

  온 세상이 어둠 속으로 변해버린 곳. 전쟁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빛이 없는 어둠속의 세상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도 비추는 한줄기 빛은 베르너에게는 단 하나의 친구였고, 오래전에 유타와 함께 들었던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환청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마리로르에겐 어땠을까. 아버지는 파리로 가는 길에 사라져 어딘가의 감옥에 있었고, 할아버지의 일을 돕던 마네크 아줌마의 죽음, 그리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작은 할아버지의 부재. 이 모든게 '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 저주 때문일까. 불꽃의 바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영원히 살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액운을 미친다는 저주. 아무도 없이 생말로의 집에 홀로 있는 마리로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소녀는 점자책으로 된 쥘 베른의 책을 읽었다.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의 모험 이야기인 『해저 2만리』라는 책이었다. 결말을 향해 달리는 쥘 베른의 책과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소년과 소녀도 점점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래층엔 누군가가 있고, 옷장속 다락방에 있는 마리로르는 배고픔과 목마름,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가 할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가 했던 대로 라디오에 대고 쥘 베른의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안네 프랑크가 죽음을 무릅쓰고 썼던 일기처럼 마리로르는 라디오를 통해 누군가 자신이 읽어주는 쥘 베른을 듣기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길다란 안테나가 누군가의 라디오로 전송되기를. 그래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소녀가 들려주는 쥘 베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던 사람이 베르너 하나 뿐일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다렸던 베르너였다. 미지의 누군가에게 쥘 베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녀 또한 위안을 얻었다. 아빠와 작은할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아래층에 있는 독일 군인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하나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으리라.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일에도 무심했고 친구를 구타하는 모습에서도 무심하게 대할수 밖에 없었던 소년의 망설임이 소녀가 내뿜는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어둠의 빛이 별빛이 되었다가 환한 햇빛이 되는 순간이었다. 긴 기다림의 끝. 안도의 한숨. 가슴먹먹함.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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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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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되어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들이 드물다. 오래 전에는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었다. 소아마비라는 것에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소아마비라고 불렀던 것이 '폴리오'라는 것을 알았다. 백신이 개발되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뿐 폴리오라는 것도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걸려 신경중추가 마비되는 증상 즉 소아마비라 불렸던 것이다.

 

  전염병이라는 것이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이웃간을 불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수 밖에 없다.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하는 『네메시스』에서의 주된 이야기는 전염병인 폴리오와 그로 인한 한 남자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본인이 원인이 아닐텐데도 자기로부터 전염되었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죄책감인 것이다. 그가 시력때문에 군대에 가지 못한 것도, 아이들이 폴리오로 죽어나가는 것도 다 자기때문이라 여겨 스스로 벌하며 죄인처럼 사는 남자인 것이다.

 

  1944년의 뉴어크, 여름. 친구들은 전쟁에 나가지만 나쁜 시력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못한 스물세 살의 버키 캔터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감독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운동을 잘하는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러던 이곳에 폴리오가 유행한다. 아이들이 폴리오에 걸리고 죽게 되면서 그는 아이들 집을 찾아 다니며 부모를 위로하고 하느님을 원망한다. 캔터에게는 여자친구 마샤가 있었다. 마샤는 방학동안 포코노 산맥 인디언 힐의 유대인 소년소녀 캠프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마샤는 폴리오로부터 그를 보호하려고 놀이터 감독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있는 인디언 힐의 캠프장에 오길 바랬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었던 버키는 캠프에 가는 걸 망설이고 마샤의 아버지를 만나고 와서 인디언 힐로 가게 되었다.   

 

  미지의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인디언 힐에 도착한 첫날 밤 버키는 다시 뉴어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이 아이들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이 시달린다. 인디언 힐에는 여자친구 마샤와 로맨틱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다.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인디언 힐 캠프에 적응한다. 다이빙을 멋지게 할 줄 알았던 버키는 아이들 중 한 명에게 다이빙 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며칠후 그 아이는 폴리오에 걸렸다. 고열과 구토 그리고 한쪽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보였다. 부모들은 이백오십 명의 캠프 아이들 중 백 명 이상의 아이들을 데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캠프장은 폐쇄되었다.

 

 

 

   결국 버키 또한 폴리오에 걸렸다. 자신이 뉴어크 아이들에겓 걸리게 했고 인디언 힐의 캠프에도 퍼뜨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버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지났다. 나이가 들어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젊은 날 근육질의 몸매였던 남자는 사라지고 몸이 불편한 그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은 화자가 주인공 버키 캔터와 크게 접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고, 버키의 주변에서 그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었다. 둘째 장은 작가가 바라보는 버키 캔터였고, 첫째 장과 세번째 장은 제3의 화자가 버키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둘다 폴리오에 전염되어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 남자는 비록 폴리오에 걸려 불편한 몸을 가졌지만 가족으로 인해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고, 다른 남자는 여전히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쪽으로 비켜 외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죄라는 것, 다른 사람의 판단보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스스로 죄인이라 여겼던 사람을 보며 타인들의 평가보다 자신의 잣대가 더 중요했던 사람의 이야기였다. 버키 캔터는 왜 스스로를 벌할까. 다른 어떤 이도 그가 폴리오를 전염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 자신이 전염 시켰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벌하고 살아왔던 한 남자의 병적인 죄책감과 두려움의 보고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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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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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싫다고들 말한다. 한국이 싫은 이유를 대라면 저마다 한두 마디씩은 다 할 것이다. 나한테 물어본다면 나는 물론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싫다고 하겠지. 사실 한국의 교육 문제때문에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 하지만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면 무조건 좋기만 할까?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사실 부모의 욕심으로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공부라야 힘든 시간을 견디어가며 성취할수도 있겠지. 외국으로 간 그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마 한국에서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할 것이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자꾸 외국에 간다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피력하고 있네. 못가는 것을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암튼 그래도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이력이 있으면 달리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력서를 낼 때도 자신감에 차 있을 것이며 일단 외국어가 되니까 외국어를 잘하는 인원을 뽑을때 유리한 조건일 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보기엔 부러운 스펙인 것. 암튼 우리가 보기에 보통의 사람인 계나라는 여성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되었다. 계나가 한국에서 못살겠다는 이유는 경쟁력이 없어서란다. 추위도 많이 타고, 무얼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며, 물려 받은 재산도 없어서란다.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호주로 가게 되었다. 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금만 빌려달라는 부모를 버리고, 계나를 사랑한다는 남자친구 지명도 버리고 말이다.

 

  계나는 호주에서 행복했을까? 내가 보기엔 그렇게까지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모아 둔 돈으로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자 친구도 만나는 삶에 대해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계나는 자유로워 보였다.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워보였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도 마음이 편해야 인생도 행복한 게 아닌가. 번듯한 정규직 직장이 아니어도 누구한테 소릴 들을 일도 없고.

 

 

 

 

어떻게 살건 간에 내가 살아 보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를 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영영 알 수 없겠지 .....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를.  (158페이지)

  

내가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161페이지)

 

  

  누군가의 삶에 대해 어떤게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삶의 방향에 따라 혹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게 행복의 척도일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호주로 가게 되었던 계나의 삶. 그토록 사랑한다던, 계나 아니면 안되겠다는 지명과의 짧은 동거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이면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는 지명과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는 그저 지명의 아내로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명과 결혼한다면 경제적으로야 넉넉하겠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행복은 없을 것이라는 걸 느꼈던 것이다.

 

  조곤조곤 말하듯 하는 소설이다. 마치 계나가 내 앞에 앉아 있는 듯 그렇게 느껴진 소설이다. 자신이 왜 한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떠날 수 밖에 없는지 얘기하는 형식에 계나의 말에 귀를 쫑긋거릴 수 밖에 없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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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선더볼트 1
아베 가즈시게.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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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동호흡기질환인 메르스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한동안 메르스 의심 환자들은 계속 늘어났고 확진 환자도 늘어가고 있었다. 온 나라가 메르스의 불안때문에 여행이나 교육, 각종 행사가 취소되었다. 또한 병원에 가기도 꺼려했고, 요양병원에서조차 면회 금지가 되었다. 그만큼 공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제 메르스 추가 환자가 생기지 않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메르스는 중동호흡기 질환인데 원인은 낙타에게서 왔다고 한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변종 바이러스가 많이 생겨나는 것 같다. 얼마전에 사스가 그랬고 이번에는 메르스 였다. 메르스때문에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해외 입국장에서는 거부를 당했다. 이는 우리나라 정부에서 초기 대응을 잘못했던 원인도 있었다고 본다. 메르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 책을 만났다. 이사카 코타로와 아베 가즈시케가 쓴 만화 제목같은 느낌의 『캡틴 선더볼트』였다.

 

  우리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TV 만화영화 '들장미 소녀 캔디'에 열광했듯 유년 시절의 아이들의 히어로, 텔레비젼 시리즈 전대물인 '캡틴 선더볼트'를 사랑했던 아이바 도키유키와 이노하라 유라는 소년이 있었다. 야구를 하던 이들은 선더볼트에 열광했고 특히 빨강색 유니폼을 입은 리더 레드를 좋아했다. 그가 주연으로 나온 선더레드가 개봉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레드의 추문으로 영화는 상영금지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아이바 도키유키와 이노하라 유는 특별히 내세울만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 아이바 도키유키는 특유의 오지랖으로 누군가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피해를 봐 어머니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가게와 집을 뺏기게 생겼다. 이노하라 유 또한 아이의 병원비 때문에 빚을 지고 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다른 이의 정보원 역할을 하는 상태였다.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물을 거래하는 사람때문에 갑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졌고 그들을 쫓는 이들이 있었던 것. 모모사와 히토미의 정보원 역할을 했던 이노하라 유 때문에 이들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모모사와 히토미는 후생성에 근무하며 나름대로 무라카미병을 조사했던 것이다. 과거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던 때 도호쿠지방에 관련된 조사를 하고 있었으며 이노하라 유와 아이바 도키유키가 이와 관련된 사건에 휘말린 것이었다. 만약 무라카미 병에 대한 예방 접종을 했으나 무라카미 병에 걸려 죽었다면 이유는 무엇때문일까가 이들의 주요 관건이었다.

 

  분화구의 물이 과연 바이러스를 일으켜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것일까. 무라카미 라는 병으로 불려 모든 사람이 예방 접종을 하게 만들었던 일본 정부의 해결방법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무라카미 병이 있으되 없다는 말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때로 없는 병을 있게도 하는 것이 일본 정부가 했던 일이었다. 무언가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또다른 하나를 떠트린다는 것. 최근의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좌충우돌 여정이었다. 누군가가 죽어 나가도 이들의 엉뚱한 행적들 때문에 죽음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들의 모험을 보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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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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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약 시한부 인생이라면? 내가 만약 살수 있는 날이 6개월정도 밖에 남지않았다면? 남은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나를 바라보는 사랑하는 가족들은 나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언젠가는 죽겠지만, 6개월안에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죽는다는 실존적인 공포보다는 마음속의 깊은 두려움이 곧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일이라는 걸 느끼자마다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혹은 염려가 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평소처럼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등 평소에 해왔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되고 만다. 내가 죽어 사라지는 것보다 남아있는 사람이 느낄 고통이 더 커보인다는 것.

 

 

  배우자를 위암으로 잃은 남편의 가족이 있다. 암이 발병하고 난후 1년이라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병에 대해 왜 하필이면 나를, 이라는 생각에 분노도 해보고 어느새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걸 바라보는 건 굉장한 고통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살 것이라고 낙관도 해보았지만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건 곧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 분이 생을 달리한지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의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시간이 훌쩍 간지도 몰랐나보다. 어른들 말씀이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들 하신다. 남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때로 가족들이 모였을때 그 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우리는 그 분의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을 잊지 않았다.  

 

  이렇듯 우울하게 시작된 생각으로 책의 스토리마저 우울하게 진행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있었던게 사실이었다.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라는 부제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 스물일곱 살의 여자 주인공 데이지. 암이 재발했음을 알게 된후 혼자 남을 남편 잭에 대한 염려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죽어야 하는 데이지의 마음이 죽을지도 모르는 분노보다는 남편에 대한 염려가 컸던 것이다.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양말은 늘 한쪽 발부터 벗어가며 던져놓고 아마 더이상 신을 양말이 없을 정도로 쌓아놓을 남편때문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줄 여자, 즉 잭의 새로운 아내를 찾아주어야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으면 '하필 왜 나일까'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자신이 죽고난 뒤 새로운 여자를 만날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들텐데도 남편에게 아내를 찾아주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데이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 우울한 나날을 보낼텐데 데이지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기를 원했다. 수의사 생활과 수의학 박사 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는 잭이 자신의 암 재발을 이유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고, 자신이 아직 살아있을때 학위 따는 것을 보고싶었다.   

 

 

 

  죽음을 앞에둔 데이지의 이야기가 우울하게 진행되기보다는 긍정적인 데이지의 마인드답게 생각보다 유쾌하게 진행되는 편이었다. 남편에게 새 아내를 찾아주겠다는 데이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미지의 그녀를 찾았지만 막상 남편 옆에 그녀가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남편의 새아내 따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외에 다른 여자와 행복하게 웃고 무슨 일이든 함께할 것이라는 상상하는 시간. 그 때부터 또다른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모르는 채로 있는게 낫다는 것. 또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지 않겠는가.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일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그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먼 미래가 아니다. 가까운 시일내 혹은 조금더 시간이 흐른 뒤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책 속의 데이지가 서른 살도 되지 않는 나이라 더 안타까웠다. 소설을 읽으며 또 다시 생각하는 것.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히 여길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 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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