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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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마자마 라디오를 켠다. 예전엔 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사용했지만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스마트폰 어플을 깔아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예전의 라디오보다 잡음이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디제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인다. 퇴근 무렵 다시 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꽂아 라디오를 들으면서 퇴근한다. 오래 진행하는 디제이가 하는 말에, 그가 들려주는 음악에 귀가 먼저 즐겁고 마음마저 즐겁게 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게 만드는게 라디오가 하는 역할이다. 오래전에 듣던 라디오를 다시 듣는 느낌은 뭐랄까. 과거로의 회귀, 혹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다시 되찾는 일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듣고, 새로 나온 곡을 들으며 최근의 팝음악의 유행을 읽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 한 사람이 모여 수많은 청취자로, 남의 일도 나의 일인양 공감하고 울분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라디오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다. TV가 없던 시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수 있었다. 아마 제일 중요했던 라디오의 역할은 전쟁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거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볼때면 뭔가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라디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전 소식이나 승전 소식이라도 날아오는 날엔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라디오는 소통의 창구였고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그래선지 전쟁속에서 제일 먼저 압수하는게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통해 암호를 전달할수 있는 매개체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군들 모르게 라디오를 숨겼고, 전쟁 소식을 들었고, 또는 누군가에게 소식들을 전했다. 그런 라디오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TV나 인터넷등 편리하고 간편한 매체가 생겨났음에도 여전히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소년과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표지의 책.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의 이야기. 더구나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때문에 더한 궁금증이 일게 했던 책이다. 역시나 가슴먹먹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내일을 알수 없는 나날, 더군다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와 여동생이 하나 뿐인 고아 소년이 전쟁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소설은 다양한 매개체를 내세워 우리를 2차세계대전 속 한복판으로 이끈다. 라디오, '불꽃의 바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의 전설, 쥘 베른의 책, 전쟁, 소통. 오랜 시간을 들여 결국에는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인연.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 소설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뇌리에 깊게 박혔다.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생각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변해갔을 그들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소설의 시작은 눈이 멀게 된 한 소녀의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과 전쟁의 시작이 같다. 소설의 제목처럼 전쟁속에 가로막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녀의 시점으로, 소년의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두 이야기를 엮어가다보면 어느새 하나의 공간, 그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독일의 고아원에서 여동생 유타와 함께 라디오에서 프랑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던 베르너. 아빠가 일하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놀이터처럼 놀았던 소녀 마리로르. 라디오를 통째로 뜯어 고치는 능력이 탁월해 동네의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었던 베르너.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았던 독일군은 그를 소년들을 군인으로 키우는 학교로 데려갔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쇠 장인으로 일했던 아빠와 함께 중요한 박물관의 물건을 가지고 파리에서 생말로로 향했다. 

 

 

  온 세상이 어둠 속으로 변해버린 곳. 전쟁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빛이 없는 어둠속의 세상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도 비추는 한줄기 빛은 베르너에게는 단 하나의 친구였고, 오래전에 유타와 함께 들었던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환청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마리로르에겐 어땠을까. 아버지는 파리로 가는 길에 사라져 어딘가의 감옥에 있었고, 할아버지의 일을 돕던 마네크 아줌마의 죽음, 그리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작은 할아버지의 부재. 이 모든게 '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 저주 때문일까. 불꽃의 바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영원히 살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액운을 미친다는 저주. 아무도 없이 생말로의 집에 홀로 있는 마리로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소녀는 점자책으로 된 쥘 베른의 책을 읽었다.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의 모험 이야기인 『해저 2만리』라는 책이었다. 결말을 향해 달리는 쥘 베른의 책과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소년과 소녀도 점점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래층엔 누군가가 있고, 옷장속 다락방에 있는 마리로르는 배고픔과 목마름,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가 할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가 했던 대로 라디오에 대고 쥘 베른의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안네 프랑크가 죽음을 무릅쓰고 썼던 일기처럼 마리로르는 라디오를 통해 누군가 자신이 읽어주는 쥘 베른을 듣기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길다란 안테나가 누군가의 라디오로 전송되기를. 그래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소녀가 들려주는 쥘 베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던 사람이 베르너 하나 뿐일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다렸던 베르너였다. 미지의 누군가에게 쥘 베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녀 또한 위안을 얻었다. 아빠와 작은할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아래층에 있는 독일 군인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하나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으리라.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일에도 무심했고 친구를 구타하는 모습에서도 무심하게 대할수 밖에 없었던 소년의 망설임이 소녀가 내뿜는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어둠의 빛이 별빛이 되었다가 환한 햇빛이 되는 순간이었다. 긴 기다림의 끝. 안도의 한숨. 가슴먹먹함.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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