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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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이리가 #윤강은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시리즈를 좋아했다. 수상작들을 거의 다 챙겨볼 정도였다. 오늘의 작가상이 없어져 아쉬웠었는데 10년 만에 공모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 첫해 수상작이면서 윤강은 작가의 데뷔작이다. 민음사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어 더 반가웠다.



 

넷플릭스에서 <대홍수>라는 영화를 보면서 지구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윤강은의 저편에서 이리가또한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한반도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생존과 기억의 오라토리오 같았다.



 

근미래의 지구는 대멸종으로 온통 흰 눈으로 가득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터전에서 생존하고 있다. 자원이 고갈된 한반도에서도 남해안 쪽에는 온실 마을이라고 하여 온실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길러 중부지역인 한강 구역이나 압록강 기지까지 물건을 보낸다. 열 마리 정도의 개가 끄는 개썰매를 이용하여 온실 마을에서 한강 구역으로, 압록강 기지로 보내는데 한번 다녀오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장소에서 추위밖에 없는 빙하에 가까운 날씨라고 보면 되겠다. 얼음벽을 세워도 살을 에는 추위에 맞서야 한다. 곡식과 육류 등 식량을 비롯한 물자를 생산하는 온실 마을과 달리 한강 구역은 철의 품질이 월등하다. 압록강 기지는 한반도를 지키는 군인들이 대륙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거주하고 있다.







 

문득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거대한 차단벽을 만들어 생활하고 약한 자들에게 핍박을 가했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생각났다. 지배자에 의해 활동의 제약을 받는 인간들.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의 집단에 가까워 보였다. 화합과 약속에 의해 유지되던 이들의 평화도 대륙군의 침략으로 와해되고 말았다. 내가 혹은 우리가 살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이방인들을 배척한다. 보편적인 역사에서 나타난 것과 같다. 우리의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타인(혹은 이방인)들을 죽이는 건 역사에서 비일비재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멸망을 앞둔 한반도에서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삶에 대한 의욕을 보여주는 인물 다섯 명이다. 기억의 파편을 안고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상처와 후회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이 오면 더 남쪽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도망쳐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를 찾아 움직인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서로가 가까워져야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못내 안타까워서다. 가까이 다가갈 듯 멀어지는 이들은 끝내 생존할 수 있을까. 미소 지으며 만날 수 있을까.

 



생명도감에서 지금은 사라진 동물과 식물의 씨앗을 보며 과거의 시간을 상상해본다.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라졌던 동물의 하울링 소리를 들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구의 멸망은 지금과는 다른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운송 수단으로 개썰매를 이용하고 하루면 갈 거리를 한 달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주문한 뒤에 하룻밤이면 배송 되는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과거로 회귀하는 미래를 상상하니 아찔할 뿐이다. 결국 지구는 멸망하고 다시 원시 시대가 되고 마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남아 다음 시대의 인간을 위해 자원을 보존하고 살리려 애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공존하던 각 구역의 사람들이 나만 살겠다고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것은 결국 파멸에 이를 뿐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은 사라진 것들을 되살릴 수 있다. 지금 이곳에 없더라도. (156페이지)



 

살을 에는 추위에 밖을 나서본 적이 있는가. 햇볕이 들지 않은 음지는 굉장히 차갑다. 하지만 햇볕이 비치는 쪽으로 다가서면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다르다. 그 따스함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눈 속의 씨앗이 조용히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있기를 바라게 되는 그 마음을 알까.

 

 

#저편에서이리가 #윤강은 #민음사 #오늘의작가상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소설 #오늘의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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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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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하의것들 #조르주페렉 #녹색광선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그것이 여행이든 퇴직이든. 일상 이외의 것들을 그린다. 만약 기억하고 싶은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도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기억하고 싶은 장소를 기웃거리지만, 그저 장소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머뭇거리는 마음을 차마 안다고 하지 못하겠다. 익숙한 것은 금세 잊히고, 새로운 기억을 찾아 어디론가 헤매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왜 그렇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 하는 것인가. 결국엔 과거의 기억에 묻혀 살 것을.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은 순수하게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기에 구매했다. 한 남자가 거리에 서 있다. 태어나 자란 곳. 그러나 기억에는 없는 장소에 서서 그곳의 풍경을 담담하게 전한다. 빌랭 거리 1번지(태어난 곳)부터 24번지(어머니의 미용실이 있던 곳)를 거쳐 38번지까지, 매년 찾아가 그림 그리듯 설명하는 글에서 기억하지 못한 어떤 애틋함을 느낀다. 묘사가 길어질수록 낙후되고 사라진 곳이 많다. 도시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가는 장소를 매해 바라보며 어쩌면 작가는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리가 사라지고 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을 거라는 존재의 절망 같은 거.

 





보통 이하의 것들은 조르주 페렉의 실험 문학에 가깝다. 실험적인 장소들의 나열, 특히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의 나열은 일반 문학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해야겠다.



 

조르주 페렉의 실험 정신은 특별한 규칙을 세운 엽서 쓰기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받았을 법한 엽서의 내용을 어떤 규칙을 정해두고 쓴 글이다. 발신자가 각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엽서를 보낸다. 어떤 호텔에서, 수영으로 햇볕에 타거나, 캠핑을 하거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누워 있다며 천 번의 키스를 보낸다. 어떤 문장에서는 며칠에 돌아갈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행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받은 듯한 엽서들. 이 글을 보고 여행지에 있는 우리를 생각해본다. 짧게 전하는 여행지의 일상,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내는 키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언제 돌아가겠다는 만남의 기약. 멀리 여행을 떠나면 이와 같은 엽서를 보내도 괜찮겠다. 여행지의 풍경을 찍은 엽서 몇 장을 사서 간단하게 마음을 전해 글을 쓴다. 글쓴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질 풍경 그리고 안녕의 말들을.

 



우리는 베네토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어. 날씨가 정말 좋아. ,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지! 나는 햇볕에 탔어. 키스를 보내. (80페이지)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최고의 모범적 여행자였던 스탕달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다. : “어떤 나라를 여행하든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택해야 한다. 런던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한가로이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다.”(일기, 181789) (130페이지)

 



여행지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여행이다.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도시에서 돌아다닌다는 건 쉽지 않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 도시의 장소들을 세세하게 둘러보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아쉬운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아마 여행지에서 일 년쯤 머문다면 그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12년 동안 빌랭 거리를 묘사하고 회상하는 글을 기획했던 것과 비슷한 포맷으로 책상 위의 물건을 묘사한다. 아주 놀랍다.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게 글이 될 수도 있구나. 새로운 시도였다. 소설도 아닌, 에세이도 아닌. 일기도 아닌. 색다른 조합이었다. 글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스틸 라이프 / 스타일 리프>의 역자 노트를 보면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계열적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작은 모눈종이와 금속 만년필 하나에서 끝이 났는데 이 묘사는 계속될 거 같기도 하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늘 고민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페렉이 시도했던 다양한 글쓰기 방식에 적응되어 탐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보통이하의것들 #조르주페렉 #녹색광선 #해외문학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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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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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방패 #이마무라쇼고 #북스피어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성을 쌓으려는 새왕.

어떤 방어도 깨트리는 총을 만들려는 포선.

최고의 방패최강의 창을 만드는,

두 천재 장인의 대결을 그린 소설.



 

이러한 홍보 문구에 낚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 북스피어 대표가 쓰는 책 홍보 글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닿아 글자 하나 빠짐없이 읽게 하는 능력이 있다. 북스피어 대표의 글을 읽으면 항상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읽지 않아도 왠지 구입해야 할 것 같다. 이 또한 대표의 역량일 것이다. 두께감이 특히 마음에 드는 책들이 많다.

 



1984년생의 작가 이마무라 쇼고는 댄스교실에서 청소년들에게 춤을 가르쳤다. 가출했다 돌아온 제자가 했던 말에 자극을 받아 나오키상을 꼭 받겠다고 선언했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가 '시대 소설이라면 많이 읽어 자신 있었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 읽은 책이다. 또한 시대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시리즈잖나. 침대맡에 책을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은 책을 이제야 끝맺게 됐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시대 소설(다른 나라의)이란 것도 꾸준히 공부하듯 읽다 보면 매력에 빠지게 되어 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 역사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의 장면이 하나의 영화 화면처럼 펼쳐졌다.

 






16세기 일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활약하던, 다이묘들이 전쟁을 일삼았던 센고쿠 시대. 다르게 보자면 조선을 침략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을 싸움을 하는 장수가 아닌 돌을 이용해 석축을 쌓는 장인과 총포를 만드는 장인의 시선으로 소설을 썼다. 신선한 발상이다. 우리가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앞장서서 싸우는 장군과 그 부하들만 보았지 돌을 쌓는 장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상대편 진영에서 성을 빼앗기 위해 철포를 쏜다. 만약 상대편의 군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성을 쌓아둔 곳이 철포에 맞아 무너지면 돌을 쌓는 장인들이 나타나 석축을 쌓는 걸 반복한다. 목숨이 위태로울 법하지만, 두려움을 이기고 돌을 쌓는다. 직접 성안에 들어가 석축을 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상대편과 전쟁을 하듯 무너진 돌을 주워 석출을 쌓는 광경이 특이하였다. 또한 철포를 만드는 장인도 석축을 무너뜨리기 위해 상대편의 진영에서 포를 쏘아 무너뜨리고자 했다. 무사와 장인들은 별개의 존재로 보았는데 이처럼 상대편에 서면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돌의 목소리를 듣는 교스케는 겐사이의 제자로 들어가 행수의 친척인 레이지를 제치고 도비타야의 후계자가 되었다. 석축을 쌓는 일은 떼기조, 쌓기조, 운반조로 나뉘어있다. 교스케는 다양한 일을 거치며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석축을 쌓는 일은 돌에 번호를 붙여가며 틈새를 막는 작업이다. 직접 대어보지 않고도 원하는 숫자를 불러 석축의 빈틈을 채운다. 총포를 만드는 장인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다. 반면 석축을 쌓는 일은 무사 뿐 아니라 농부들을 포함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보호하는 일이다. 성이 무너지면 농부를 포함한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족을 잃는다. 교스케 또한 그렇게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을 잃었다. 총포를 만드는 장인과 교스케가 마주 보며 대화를 하듯 포를 쏘고, 석축의 틈을 메우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시대 소설도 이처럼 재미있다는 것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이 사라지도록 만들겠다는 이상은 같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크게 다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476페이지)

 



새의 강펄처럼.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쌓는 겁니다. (625페이지)

 



만약 교스케와 겐쿠로가 같은 편에 서서 싸웠다면 큰 발전은 없었을까. 다른 진영에서 마주할 수 있어 이들의 대결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알고 읽으면 책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센고쿠 시대를 검색해 읽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빠를 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기억하기가 쉽지 않지만 메모해가며 읽다 보면 이해가 빠르다. 소설에 집중하여 새왕 교스케와 포선 겐쿠로의 긴박한 대결이 지켜보다 어느 순간 소설의 마지막에 이른다. 띄엄띄엄 읽는 것보다 주말 같은 시간에 몰입하여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시대 소설도, 재미있네!

 

 


#새왕의방패 #이마무라쇼고 #북스피어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나오키상 #시대물이이렇게재미있을리가없어시리즈 #연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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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시 일상시화 6
서효인 지음 / 아침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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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시 #서효인 #아침달



 

우리와 같은 층을 공유하는 옆집은 나 보다 15년 이상의 연배를 가진 부부다.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는데 마주친 건 고작 10번 정도 되었으려나. 그분들이 움직이는 시간대와 출근 등으로 우리의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산책길에 나서다 산책하고 들어오는 그분들과 마주친 게 몇 번이다. 예전 같으면 이웃사촌이라고 하여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지금은 연배도 다르고 어려운 이웃일 뿐이다. 아마 옆집 어른들도 그렇게 여기지 않으실까.

 



이웃이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이웃과 시라는 제목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민낯이 그대로 보인다고 해야겠다. 드문드문 관찰할 수 있으면서 다소 먼 관계. ‘시와 생활이 서로 건너는 방식을 탐구하는 일상시화 시리즈로 시인 서효인이 이웃을 바라보는 여러 단상들을 추억의 에피소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주제를 달리하여 쓰는 산문 <아무튼>과 비슷한 시리즈로 보인다. 대신 일상시화 시리즈는 시인이 쓰는 산문이라는 게 다르다. 마치 시를 읽는 듯 간결한 문장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다. 아마도 시인의 이름만 보고 구매한 산문일 것이다. 시인의 산문을 읽었었고, 시도 읽었었지만 산문이 더 좋았다. 산문에서 가족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이모네 가족, 할머니,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모들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한동네에 살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고, 각 집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아마 이모들 이야기를 이 책에서 처음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가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녔다는 게 신기했다. 특히 이모네 가족들과 임자도에 배를 타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읽고 반가움을 느꼈다. 엄마 산소가 거기 있어 갈 때마다 대광해수욕장에 들러 해변을 거닐다가 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과거 이십 대 시절, 친구들과 대광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가서 텐트를 빌려 12일 동안 술만 마셨다는 건 안 비밀.

 








한여름의 민어는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참치회나 연어도 좋아하지만, 민어회는 정말 차지고 고소하다. 고추장,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고추장 양념이나 소금에 참기름을 넣은 참기름장에 두툼한 회 한 점을 찍어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해마다 가족의 생일이 끼어있는 초여름에서 늦여름까지 민어회를 챙겨 먹는다. 뼈와 무를 넣어 푹 고아 끓인 민어탕은 한여름의 보양식이다. 삼계탕보다 더 자주 먹는 민어회에 관한 이야기를 시인의 산문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익숙한 장소, 추억이 깃든 장소를 책에서 마주하는 그런 마음을 알려나. 막 아는 척 하고 싶고, 반갑다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을.



 

과거의 기억은 역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이에게 가닿는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출판인이기에 그가 쓰는 모든 글을 읽고 싶어진다. 작가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웃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에 공감하며 마치 내가 느낀 것처럼 해가 되지 않는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효과가 있다. 발걸음 소리, 음악 소리, 말소리. 생활소음 이라지만, 아래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건 기본이란 걸 다시 느낀다.

 



드라마 속 영희를 보며 울었다는 글이 와 닿았다. 나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때, 영희와 영옥에게 이입되어 많이 울었다. 작가가 느끼는 마음은 달랐으리라. 그 감정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는데, 그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교묘하게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기억이 떠올라 큰소리로 엉엉 울게 되는. 그런 마음을 우리는 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읽는다는 건 우리에게도 그 진심이 전해진다. 공감하며 더 좋은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다가 작가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거실에게 공을 함부로 튕기던 아이> 글에서 아랫집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은 무엇인가요?’ 너무 궁금하다. 이 글이 작가님에게 가닿기를.



 

 

#이웃과시 #서효인 #아침달 ##책추천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한국시 ##시집 #산문 #산문집 #일상시화 #연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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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고작 계절 (<여름은 고작 계절> 윈터에디션)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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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고작계절 #김서해 #위즈덤하우스

 



감정이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 1학년, 시골에서 전학을 간 나는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쭈뼛거렸던 시간이 몇 달은 갔다. 화장실 갈 때, 점심 먹을 때 혼자서 다니면 외롭다 못해 괴롭다. 나중에야 친구들이 생겨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예민한 시기의 친구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일깨운 소설이었다. 더군다나 인종이 다르면 우리가 상상해왔던 것보다 그 이상이라는 걸 이렇게 소설에서 배운다.



 

IMF 여파로 이민을 결정했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낯선 나라에서 친구도 없고 영어가 서툰 제니는 있는 듯 없는 존재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시아인이라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놀리는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든 무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제니가 보인다. 이를 악물고 영어를 공부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한나가 학교로 왔다. 아이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는 한나를 보면서도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애써 감췄다. 한나는 아이들이 해나라고 부르자 자기 이름은 해나가 아닌 한나라고 말했다. 한나는 제니와는 다른, 의사 아빠, 학예사인 엄마를 두었다. 직장을 떠도는 아빠, 청소 일을 하는 엄마와 함께 남의 집 지하에 사는 제니와 다르게 한나는 경제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학교 아이들 틈에서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 그저 말이 통하지 않은 한나를 무시하고, 배척할 뿐이다.



 



제니와 한나가 생활하는 학교는 여러 인종이 모여 있다. 아시아인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학교에서 친구들 무리에 끼고 싶어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깝다. 같은 아시아인을 무시하고 백인 아이들 틈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그 마음은 누구라도 공감할 부분이었다. 자기를 놀리는 말을 하는데도 애써 미소를 짓고 있는 한나를 바라보는 제니는 웃지 말라고, 한 대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나의 모습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화자 제니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회고록이자 반성문이라 일컫는다. 15년 전, 호숫가에서 쓰러진 한나를 죽도록 패며 소설이 시작된다.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지난 삶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건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제니가 한나를 처음 만났던 시간으로 안내한다.



 

제니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한나는 제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통역해주길 바라고 어려운 과제를 도와주길 바란다. 이를 악물고 영어 공부를 했던 제니는 한나가 영어 실력이 더딘 게 못마땅하다.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언어가 통하는 게 기본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노력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한나의 말은 제니에게는 핑계처럼 들릴 뿐이다. 한나를 바라보는 제니의 눈길은 안타까움 혹은 한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한나를 멀리하면서도 애틋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후회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발악하듯 무리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과 친구를 지켜보는 애틋함이 공존할 것이다. 결말이야 다르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다가온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악몽처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찬란했던 지난 여름을 되새기는 것은 위무의 시간이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친구를 떠올리는 일을 추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통은 회한이 되어 제니를 감싼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천국은 언제나 밖에 있고, 집은 지옥이다. (9페이지)

 



여름은 고작 계절인데 한나는 그 안에서 많은 감상을 얻는 것 같았다. 나는 한나의 마지막 여름을 손에 쥐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중략)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고 상상했다. 한나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날씨를 떠올렸다. 그러자 모든 게 여름의 조각들로 보였다. (314페이지)



 

한 사람의 지난 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빨려가듯 들어가 두 소녀의 청소년 시절을 지켜보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인종차별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가. 아니다. 둘러보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우리 또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지 않은지. 가해자로 인식되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 소설이 왜 사랑받는지 알겠다. 아프면서 감동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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