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이하의것들 #조르주페렉 #녹색광선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그것이 여행이든 퇴직이든. 일상 이외의 것들을 그린다. 만약 기억하고 싶은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도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기억하고 싶은 장소를 기웃거리지만, 그저 장소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머뭇거리는 마음을 차마 안다고 하지 못하겠다. 익숙한 것은 금세 잊히고, 새로운 기억을 찾아 어디론가 헤매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왜 그렇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 하는 것인가. 결국엔 과거의 기억에 묻혀 살 것을.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은 순수하게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기에 구매했다. 한 남자가 거리에 서 있다. 태어나 자란 곳. 그러나 기억에는 없는 장소에 서서 그곳의 풍경을 담담하게 전한다. 빌랭 거리 1번지(태어난 곳)부터 24번지(어머니의 미용실이 있던 곳)를 거쳐 38번지까지, 매년 찾아가 그림 그리듯 설명하는 글에서 기억하지 못한 어떤 애틋함을 느낀다. 묘사가 길어질수록 낙후되고 사라진 곳이 많다. 도시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가는 장소를 매해 바라보며 어쩌면 작가는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리가 사라지고 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을 거라는 존재의 절망 같은 거.

 





보통 이하의 것들은 조르주 페렉의 실험 문학에 가깝다. 실험적인 장소들의 나열, 특히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의 나열은 일반 문학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해야겠다.



 

조르주 페렉의 실험 정신은 특별한 규칙을 세운 엽서 쓰기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받았을 법한 엽서의 내용을 어떤 규칙을 정해두고 쓴 글이다. 발신자가 각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엽서를 보낸다. 어떤 호텔에서, 수영으로 햇볕에 타거나, 캠핑을 하거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누워 있다며 천 번의 키스를 보낸다. 어떤 문장에서는 며칠에 돌아갈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행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받은 듯한 엽서들. 이 글을 보고 여행지에 있는 우리를 생각해본다. 짧게 전하는 여행지의 일상,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내는 키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언제 돌아가겠다는 만남의 기약. 멀리 여행을 떠나면 이와 같은 엽서를 보내도 괜찮겠다. 여행지의 풍경을 찍은 엽서 몇 장을 사서 간단하게 마음을 전해 글을 쓴다. 글쓴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질 풍경 그리고 안녕의 말들을.

 



우리는 베네토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어. 날씨가 정말 좋아. ,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지! 나는 햇볕에 탔어. 키스를 보내. (80페이지)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최고의 모범적 여행자였던 스탕달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다. : “어떤 나라를 여행하든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택해야 한다. 런던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한가로이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다.”(일기, 181789) (130페이지)

 



여행지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여행이다.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도시에서 돌아다닌다는 건 쉽지 않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 도시의 장소들을 세세하게 둘러보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아쉬운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아마 여행지에서 일 년쯤 머문다면 그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12년 동안 빌랭 거리를 묘사하고 회상하는 글을 기획했던 것과 비슷한 포맷으로 책상 위의 물건을 묘사한다. 아주 놀랍다.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게 글이 될 수도 있구나. 새로운 시도였다. 소설도 아닌, 에세이도 아닌. 일기도 아닌. 색다른 조합이었다. 글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스틸 라이프 / 스타일 리프>의 역자 노트를 보면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계열적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작은 모눈종이와 금속 만년필 하나에서 끝이 났는데 이 묘사는 계속될 거 같기도 하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늘 고민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페렉이 시도했던 다양한 글쓰기 방식에 적응되어 탐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보통이하의것들 #조르주페렉 #녹색광선 #해외문학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