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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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상시리즈를 좋아했다. 수상작들을 거의 다 챙겨볼 정도였다. 오늘의 작가상이 없어져 아쉬웠었는데 10년 만에 공모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 첫해 수상작이면서 윤강은 작가의 데뷔작이다. 민음사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어 더 반가웠다.



 

넷플릭스에서 <대홍수>라는 영화를 보면서 지구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윤강은의 저편에서 이리가또한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한반도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생존과 기억의 오라토리오 같았다.



 

근미래의 지구는 대멸종으로 온통 흰 눈으로 가득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터전에서 생존하고 있다. 자원이 고갈된 한반도에서도 남해안 쪽에는 온실 마을이라고 하여 온실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길러 중부지역인 한강 구역이나 압록강 기지까지 물건을 보낸다. 열 마리 정도의 개가 끄는 개썰매를 이용하여 온실 마을에서 한강 구역으로, 압록강 기지로 보내는데 한번 다녀오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장소에서 추위밖에 없는 빙하에 가까운 날씨라고 보면 되겠다. 얼음벽을 세워도 살을 에는 추위에 맞서야 한다. 곡식과 육류 등 식량을 비롯한 물자를 생산하는 온실 마을과 달리 한강 구역은 철의 품질이 월등하다. 압록강 기지는 한반도를 지키는 군인들이 대륙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거주하고 있다.







 

문득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거대한 차단벽을 만들어 생활하고 약한 자들에게 핍박을 가했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생각났다. 지배자에 의해 활동의 제약을 받는 인간들.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의 집단에 가까워 보였다. 화합과 약속에 의해 유지되던 이들의 평화도 대륙군의 침략으로 와해되고 말았다. 내가 혹은 우리가 살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이방인들을 배척한다. 보편적인 역사에서 나타난 것과 같다. 우리의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타인(혹은 이방인)들을 죽이는 건 역사에서 비일비재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멸망을 앞둔 한반도에서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삶에 대한 의욕을 보여주는 인물 다섯 명이다. 기억의 파편을 안고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상처와 후회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이 오면 더 남쪽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도망쳐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를 찾아 움직인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서로가 가까워져야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못내 안타까워서다. 가까이 다가갈 듯 멀어지는 이들은 끝내 생존할 수 있을까. 미소 지으며 만날 수 있을까.

 



생명도감에서 지금은 사라진 동물과 식물의 씨앗을 보며 과거의 시간을 상상해본다.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라졌던 동물의 하울링 소리를 들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구의 멸망은 지금과는 다른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운송 수단으로 개썰매를 이용하고 하루면 갈 거리를 한 달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주문한 뒤에 하룻밤이면 배송 되는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과거로 회귀하는 미래를 상상하니 아찔할 뿐이다. 결국 지구는 멸망하고 다시 원시 시대가 되고 마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남아 다음 시대의 인간을 위해 자원을 보존하고 살리려 애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공존하던 각 구역의 사람들이 나만 살겠다고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것은 결국 파멸에 이를 뿐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은 사라진 것들을 되살릴 수 있다. 지금 이곳에 없더라도. (156페이지)



 

살을 에는 추위에 밖을 나서본 적이 있는가. 햇볕이 들지 않은 음지는 굉장히 차갑다. 하지만 햇볕이 비치는 쪽으로 다가서면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다르다. 그 따스함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눈 속의 씨앗이 조용히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있기를 바라게 되는 그 마음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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