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을 입은 자들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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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옷을입은자들 #최석규 #문학수첩

 

선과 악을 규명할 수 있는가. 전에는 뚜렷하게 구분 지을 수 있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규범에 맞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선과 악 그 중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렇다. 전쟁 또한 과거의 역사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계속되는 걸 보면, 국가나 개인이나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최석규 작가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없다는 모호한 출발에서 시작된다. 매춘, 살인, 도박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조폭은 이제 지하 세계에서 나와 번듯한 업체로 둔갑하여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행동한다.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죽게 만든 조폭, 일명 면도칼에게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찾아와 귀방이라고 적힌 나무 조각을 주어 며칠이 지난 뒤 스스로 자해하고 죽은 사건이 벌어지며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기획 르포 미디어 스폿 앤 클릭의 이기우 기자는 한국의 조직범죄 단체에 관한 르포 기사를 쓴다. 칼리코파의 김종식(면도칼)의 죽음을 검은 옷을 입은 자들과의 연관성을 내세운 후배 양기자의 기획안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다크웹의 특별한 구역인 화이트 존은 강력 피해자들의 사연이 올라오는 곳이다. 화이트 존에 관련된 사건이 올라온 후 정확히 1년 안에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거다. 스스로 배를 가르고 죽었다는 가해자들은 검사 결과 약물 중독이 아니었다. 귀신이 그들을 죽였다는 설이었다. 다만 그들이 죽기 전, 검은 옷을 입은 자를 만났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르포 기자 이기우와 칼리코파의 김철규 회장, 그들의 두뇌 데이비드 권,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이끄는 묵가의 계를 이어받은 자들이 소설의 중심이다. 중국의 철학가 공자나 맹자, 노자, 장자 등을 읽었으나 겸애를 주장한 묵자는 읽어본 적이 없다. 소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묵자의 겸애를 따르는 자들이다. 묵가인은 가해자를 찾아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라는 말을 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단죄하는 역할을 했다.

 


이기우 기자는 검은 옷을 입은 자들과 칼리코파의 뒤를 좇고, 칼리코파의 데이비드 권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CCTV를 확인하여 그 장소에 있었던 자를 뒤쫓는다.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그는 집요하게 파헤쳐 면도칼을 찾아온 자의 정체와 묵가를 이끄는 이규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해자에게 귀방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다. 범죄소설인 동시에 심령소설인가 했다. 심령술을 부려 칼로 자해하고 죽은 거로 짐작했다. 그 사실은 나중에 드러나는데 과학에 문외한에 나에게 TI(Targeted Individuals)DEW(Directed Energy Weapon)는 낯설었다. 이게 과연 효과를 발휘하는가 의심스러웠다.

 


과거 연쇄살인 사건 르포 기사를 쓰던 이기우와 살인자 기요틴의 인터뷰에서 왜 사람을 죽였느냐는 질문에 죽어 마땅한 자들이니까요.’라고 대답한 부분이 있다.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말뿐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죽여서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란 게 존재할까, 의문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 또한 개인이 죽어 마땅한 자들을 죽여도 되는 권한이 있는가 질문을 건넨다. 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게 감옥에서 형량을 받는 것과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른다는 것 중 어떤 게 가능한가다. 우리의 가치관을 시험하는 거 같다.


 

다소 불편한 주제임에도 소설은 쉼 없이 읽힌다. 심지어 재미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한 감이 있다. 죄를 대가를 죽음으로써 단죄하는 게 옳은가, 과연 그 권한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여전히 머릿속을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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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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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루나파크일력 #루나 #홍인혜 #미디어창비

 


연말이 다가오면 사무실에서 사용할 탁상달력을 주문한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실려있는 달력을 고른다. 심사숙고해서 구입한 탁상달력은 나와 일 년을 함께 한다. 때로는 잊어버리지 않게 서평 마감일을 체크하고 업무적으로 필요한 메모로 울긋불긋하다. 오래전 누군가의 집이나 사무실 등을 가면 글자만 덩그렇게 있는 일력이 있었다. 얇은 종이로 된 일력을 한 장 한 장 찢어가며 사용했는데 그 한 장에 음력 날짜며 무슨 날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정보화의 시대,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그림 혹은 사진이 수록된 일력이 나오는 듯하다. 좋아하는 거로 골라 일 년을 함께 할 것이다.





루나파크의 루나(홍인혜) 작가는 매일매일 심력을 충전할 수 있는 일력을 펴냈다. 대충 그려낸 일력이 아니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양한 그림이 수록되어 내일을 맞이하는 자의 기분을 설레게 한다. 다음 장엔 어떤 그림이 수록되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력 충전을 위한 365개의 응원이 수록되었다. 하루를 맞이할 기분을 루나파크의 그림과 응원의 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쩐지 우울하다 싶으면 루나파크 달력을 보고 힘을 얻으면 된다. 방긋 웃고 있는 루나파크의 얼굴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듯하다.




 


스프링 제본으로 되어 있어 일 년을 사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한쪽 면엔 상반기가, 다른 쪽엔 하반기의 날짜가 우리를 맞이한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다. 어른도 아이도 다 같이 좋아할 만한 그림이다.

 


루나파크 미공개 일러스트 373개가 수록되어 있고, 7일 무사기원 부적 포토카드 7종까지 있다는 사실. 부적은 책갈피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그립감이 좋다. 박스 패키지로 되어 있어 좋은 사람에게 선물용으로도 최고다.

 


작가가 말했다. ‘일상을 지키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라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의 힘, 즉 심력이다. 마음의 힘이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한 달 반 남짓 남은 2024년을 알차게 보내고, 이제 2025년을 맞이해야 한다. 202511일 달력엔 나는 평생 성장캐!, 한 살 더 성장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2025년을 맞이해보자. 선물용으로 최적인 루나파크 일력을 심력충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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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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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수리보고서 #김금희 #창비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근래에 읽은 한국소설 중 가장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어떤 장소에 담긴 애정이 듬뿍 배어있는 작품으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에 대한 애정과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창경궁 관람할 때 온실을 못 봤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 책을 읽은 후 후회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를 그려보는데 상상과 실재하는 풍경은 얼마나 다를까. 소설의 머릿속에 부유하는 풍경들에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 가장 친근하게 여겨지는 게 바로 조선시대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드라마로도 제작, 방영되어 익숙하고 관련 서적들도 탐독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는 아픔의 역사이기에 늘 안타깝게 여겨진다. 역사적 장소인 창경궁의 대온실에 관련된 역사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강영두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창경궁의 대온실 수리보고서 쓰는 일을 임시직으로 맡게 되었다. 창경궁은 중학교 시절 서울 유학 당시 낙원하숙과 담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곳이기에 의미가 있던 장소다. 당시 하숙집 주인이었던 문자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던 리사의 기억이 아프게 남아 있었다. 창경궁과 대온실을 바라보며 어떤 이유로 졸업을 하지 않고 다시 석모도로 내려갔던 과거를 떠올렸다.



 

소설은 세 갈래의 형태의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대온실 수리 공사를 맡은 건축사사무소 직원들과 과거 원서동 하숙집 가족들 그리고 석모도의 친구 은혜와 은혜의 딸 산아가 주축이다. 영두는 일이 끝나면 석모도로 들어가 은혜가 만들어준 반찬으로 밥을 먹고 산아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어른스러운 산아의 의견에 따라 선택과 결정이 달라지기도 했다. 대온실을 설계했던 인물 원예학자 후쿠다 노보루를 탐색하는데, 역사의 인물을 그대로 가져온 줄 알았다. 대온실을 설계했던 인물의 이름을 바꿔 표현했고, 가상 인물이라는 것을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영두는 문자 할머니의 기억을 통해 지하 배양장에서 무엇이 나올지 궁금했다. 대온실 수리 과정에서 인간의 뼈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고, 공사를 주관하는 부서에서는 지하실을 덮을 것을 강요했지만, 낙원하숙의 마리코 할머니와 박목주(기노시타 쿄주)의 흔적을 찾고 싶어 포기하지 못했다.



 

창경궁은 아픔의 역사다. 유홍준 교수도 말했지만,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건립된 서양식 온실이다. 역사의 아픔이 묻어 있는 장소를 일본인 여성이 한국에서 과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조명함과 동시에 대온실이라는 건축물에 깃든 역사는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떠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면서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과격하지 않았고, 있어야 할 장소, 존재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었다.

 



마리코 할머니의 기록과 문자 할머니의 기억이 혼재하여 이 소설을 이끌어간다.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이 마주치며 대온실과 일제강점기의 역사, 역사적 장소에 깃든 이들의 영혼과 그에 대한 안부 인사인 것만 같다.

 

 

#대온실수리보고서 #김금희 #창비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일제강점기 #창경궁 #창덕궁 #대온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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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는 숲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승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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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뜨는숲 #아오야마미치코 #RHK

 

아오야마 미치코 씨의 소설을 꽤 읽었다. 내가 읽은 작품만 해도 네다섯 권이 된다. 흔히 볼 법한 풍경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것을 들은 사람은 음식이든, 언어든 책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다.


 

이사한 후 아침에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켜두고 출근 준비를 한다. 좋아하던 진행자가 그만둔 뒤로 다른 채널을 기웃거렸지만 좀처럼 적응할 수 없었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방랑자들은 좋아하는 채널 찾기에 시간이 걸린다. 주변에서 팟캐스트 듣는다는 분들이 있었는데 정기적으로 듣는 채널은 없었다. 만약 우연히 들은 팟캐스트에서 위로를 건네는 말을 듣는다면 업로드되는 시간을 기다려 들을 거 같다.

 


대나무 숲에서 들려드립니다. 다케토리 오키나입니다. 가구야 공주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33페이지)





 


라고 시작하는 달도 끝도 없는 이야기팟캐스트. 이것을 듣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위로받고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이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전직 간호사, 개그맨의 꿈을 접지 못하는 택배기사, 갑자기 결혼 소식을 알린 딸에 대하여 거리감을 느끼는 아버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립을 꿈꾸며 아르바이트하는 고등학생, 집 혹은 가족과의 거리감을 느끼는 액세서리 디자이너를 통해 달의 모양에 따라 변화하는 삶을 꿈꾸는, 그 마음을 전해주는 <달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근처에 살면서 자주 전화하는 시어머니나 자기 일에 대한 무관심한 남편이 서운했다. 그들은 말을 아꼈을 뿐이었다. 걱정이 되어 건넨 말에 상처를 받았던 거다. 배우를 한다며 외박하는 동생이 옆집 고양이를 임보하겠다고 했을 때 책임감이 없다고 나무랐으나 일을 그만두고 우울해 하는 누나가 고양이를 보호하며 힘을 얻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다. 그것을 무심코 알게 되는 그 순간, 팟캐스트 진행자가 있었다. 말이나 언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쯤 되면 팟캐스트 진행자가 누군지 궁금하다. 분명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연결 고리가 있을 터였다. ‘가구야 공주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로 시작하는 멘트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편 혹은 아들 등 가족과 친구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달은 예부터 상상의 별이라 일컬었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설부터, 해님과 달님 동화의 연관성까지 다양한 모양의 달처럼 우리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블루문이 뜨던 날, 옥상에 올라가 달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던 것처럼, 진행자가 말하는 달에 관한 이야기는 저절로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차 있는 보름달,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초승달. 특히 일직선을 이룬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어 보이지 않는 달을 가리키는 삭은 이 소설의 연결고리가 된다. 달은 각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인도한다. 마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처럼.

 


소설은 다정하다. 불편하거나 모호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손을 내미는 것 같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길 잃은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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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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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랜드 #더글라스케네디 #밝은세상 #FLYOVER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정작 자기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 빅 픽처. 한 남자가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 위하여 죽기로 결심하고 세운 완벽한 계획은 잠시라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으며 재미와 짜릿한 긴장감을 주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소설 또한 매력적이었다. 빅 픽처는 무명의 작가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려놓은 소설이기도 하다. 밝은세상 출판사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켈렉션을 한 권 한 권 추가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원더풀 랜드는 첩보소설이다. 우리가 보았던 첩보 영화 속으로 안내하는 듯 긴박감이 넘치고 짜릿하다. 세계의 모든 정세를 꿰뚫고 있는 미국의 체제가 불안하다고 여긴 적 있던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를 구축해놓았다. 트럼프의 시대가 가고 미국은 분열되었다. 민주주의를 앞세운 연방공화국과 예수의 제자처럼 12사도로 되어 모든 시민을 통제하는 공화국연맹으로 나뉜 세상에서 정보국 소속 요원인 샘 스텐글이 주인공이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다. 소설가가 구축해놓은 근미래의 분열된 국가는 오래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었던 독일 혹은 한국과 북한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한국과 북한이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은 허가에 의해 왕래했던 거로 알고 있다. 물론 감시가 심해 자유롭지 못했다.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의 중립지대가 있으며 이곳은 정보원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웃긴 건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신격화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게 공화국연맹은 신을 모독하거나 임신중절 수술을 할 경우 연맹에 의해 처벌받는다. 샘 스텐글의 정보원이었던 막심은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졌을 정도다. 발전을 거듭하던 세계가 어느 선을 넘어선 후에는 후퇴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감시체제에서의 자유로움이라면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보화된 연방공화국은 통신과 소통을 모두 생체 칩으로 한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연방공화국은 과거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국가감시 때문에 모든 게 노출되어 있다는 거다.

 


스텐글 요원은 상급자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공화국연맹의 케이틀린을 사살하라는 거다. 케이틀린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딸로 이복 자매였다. 샘 스텐글의 아버지는 죽을 때조차 여동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케이틀린 스텐글 또한 샘을 죽이려고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영화평론가 에드나라는 위장 신분으로 중립지대에 들어간 샘은 극장에서 필름 영화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극장 관계자 로레인에게 마음이 간다. 정보원 특성상 결혼한 사람이나 정기적인 연인이 있는 사람은 요원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개인적인 교류가 없었다. 술을 한 잔 하자고 다가오는 로레인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근하게 다가온 사람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작전이 너무 쉽게 간다고 여겼던 듯하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깨끗해서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추리소설 독자로서 의심이랄까.

 


소설 속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의 사회상을 너무도 상세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실재하는 나라처럼 여겨진다는 게 문제다. 작가들에 의해 창조된 세계는 언젠가의 미래상이다. 상상 속의 세계로만 치부하기에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소식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완벽하게 속이고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게 드러난 상태라면 그에 따른 결과는 뻔하다.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다. 첩보 소설의 경우 타겟을 제거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독자가 바라는 결말, 어쩌면 자매간의 우정을 기대했던 걸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 가볍게 희망을 부서뜨렸다.

 


완벽한 정보요원을 연기하기 위해 슬픔과 고통을 감췄다. 누구라도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래야 살아갈 것이므로.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린 분단된 미국은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좀 아깝다. 치밀한 분석과 계획하에 만들어낸 세계라 그렇다. 현재의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염려하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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