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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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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에 친해져서 몰려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서운한 게 생겨 헤어지기도 하는 관계. 함께 어울리면서도 생각하는 바가 달라 속마음을 덜 드러내는 관계에까지.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얽혀 살아가고 있다. 그냥 무심코 했던 말을 다른 이에게 전해 돌아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 속상해 할때도 있고. 그렇다고 그 사람을 멀리할 수도 없기에 난감한 경우가 있다. 어디 이뿐일까. 수많은 관계에서 정도를 지키기가 어렵다. 상대방에 나에게, 내가 상대방에게 한 행동 하나 때문에 오해가 쌓이기도 하는 것. 진심을 알리기도 힘들 뿐더러 오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도 힘든 법. 상대방이 하는 실수는 쉽게 보이고, 내가 하는 실수는 잘 보이지 않아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잘하고 있겠지 하는 자만심에 차 있었던 걸까. 사람 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내면의 수많은 불안의 세계와 어느 한 순간의 일로 관계의 변화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최정화의 소설집이었다. 열 편의 단편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과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아, 단편중에서 가장 놀라운 건 「틀니」라는 소설이었다. 언젠가 시댁에 갔을때 파란색 통에 넣어둔 틀니를 보고 놀랬고, 틀니가 빠진 시아버지를 보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요즘엔 인공치아, 즉 임플란트가 가격이 저렴해져 어르신들이 많이들 하시던데 예전엔 틀니를 많이 하셨다. 노인이 아닌 삼십대가 틀니를 했다면, 틀니를 한 본인은 얼마나 의기소침 해질까. 늘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남편이었다. 사고로 인해 임플란트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틀니를 했던 것인데, 남편을 편하게 하고자 집에 있을 때는 틀니를 빼라고 했던 아내의 말 한 마디가 잘못이었다. 잘생긴 남편, 모든 일에 완벽한 남편의 틀니를 뺀 모습은 충격이었다. 앞니가 없는 입술이 안에 말려들어갔을 것이다. 보기 흉했을 것이다. 이때 관계의 변화가 온 것이다. 남편에게 그렇게 잘했던 아내는 틀니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무시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함부로 얘기하고 남편과의 시간이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고작 틀니라는 것 하나 때문에.

 

  관계의 변화를 불러오는 또하나의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이다. 자신의 방 하나를 작가의 작업실로 내준 여자 주인공 미옥. 글을 쓰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던 작가는 오후의 산책을 즐겼을 뿐이다. 방 밖에다 내놓은 파지 속 소설을 읽기 시작한 미옥은 작가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관계의 변화가 생긴다. 마치 헤어졌다 만난 자매처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미옥을 외면하는 작가때문에 미옥은 고민에 빠졌고, 소설은 완성되어 작가가 떠났다. 아무 말없이 떠난 작가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낸것 같은데 연락이 없어 서운했다. 북콘서트 장에 종이칼을 들고 간 미옥은 과연 작가를 찌를 수 있을까? 아닐수도 있다고 말하는 미옥의 소심한 결정에 우리는 아쉬울 뿐이었다.  

 

 

   구두를 잃어버리는 꿈이 좋지 않다고 한다. 어디 구두 뿐일까. 지갑이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은 기분이 나쁘다. 구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깨끗하고 반짝이는 구두에서는 그 사람의 깔끔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고, 닳아진 구두에서는 그 사람의 경제력까지 짐작하게 된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면접을 보러 온 여자, 아이들과 남편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어느 새 가족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몇 달간의 가사도우미로 오게 될 여자를 바라보는  「구두」의 독백. 사람이 이렇게 강박적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강박이라는 것이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것을 말한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던 한 여자의 강박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란 책」에서도 강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인테리어 목적으로 산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묻는 책을 공부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하이데거를 공부하는 모임에 가입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제대로 이해가 되긴 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아프지 않았을까.

 

  처음 읽게 된 최정화의 소설은 꽤 매력적이었다. 막힘없이 읽혔을 뿐 아니라 느끼는 바도 컸다. 열린 결말로 인해 소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고, 자꾸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일들에 부딪히며 살아간다. 열 편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상황들에 처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어느 한가지에 꽂히면 그 곳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법이다. 불안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어느새 강박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들을 우리 또한 한두 번쯤 겪어보지 않았던가.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으로 인해 최정화라는 작가를 알 수 있어 좋다. 아마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궁금함에 늘 읽게 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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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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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의 노르웨이의 오슬로라. 우리나라의 1970년대도 무법지대였을텐데, 노르웨이의 1970년대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사람을 죽이고도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들. 유유히 시내를 활보하는 킬러들. 킬러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여자고 또한 보스의 아름다운 아내가 아닐까. 수많은 범죄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요 네스뵈의 1970년대를 추억하는 어느 킬러의 이야기는 당시의 오슬로의 시린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영하 20도가 넘는 오슬로의 거리. 희디흰 눈발이 휘날리는 도시에 피를 흘리는 남자 혹은 시체. 그것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어느 킬러의 고백이라고 해야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살인자가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애써 붙잡으려는 기록 혹은 독백을 담고 있었다.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김영하의 글에 반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 소설 『블러드 온 스노우』도 한 살인자의 기록 혹은 독백으로 표현되었다. 다만 요 네스뵈가 다른 이름으로 출간하려고 했던 '오슬로 1970년' 시리즈 첫번째 작품이다.

 

  그렇다. 킬러의 고백이다. 그의 이름은 올라브 요한센. 그의 보스가 제거해 달라는 사람을 제거하고 돈을 받는 킬러다. 보스가 또 한 건의 살인을 제의한다. 대상자는 보스의 아내였다. 보스인 다니엘의 집이 바라다보이는 호텔에 방을 얻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다. 당연히 그녀에게 반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일 오후 한 젊은 남자가 찾아오는 걸 발견했고, 그 남자를 죽였다. 그 남자를 죽인후 보스에게 보고하자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했다. 이에 올라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올라브도, 코리나도 목숨이 위험했다. 

 

 

 

  여타의 요 네스뵈의 소설보다 훨씬 짧은 소설이다. 700여페이지가 넘은 그의 소설을 읽다 겨우 200페이지 정도의 소설책을 보니 약간 실망스러울 정도로 짧은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요 네스뵈가 쓴 소설은 매력적이다. 어디선가 보았음직 하면서도 오슬로의 풍경이 새로운. 1970년대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소위 '추억 돋는' 범죄소설이라고 해도 좋았다. 여태 그가 풀어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이 아닌 새로운 시도의 추리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이 책은 범죄 소설이기도 하면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범죄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게 여자 아니던가. 소설 속 주인공 올라브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네 가지 중의 한가지가 사랑에 금방 빠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코리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여자가 분명해 보이더만, 그만 외모에 홀려 사랑에 빠지고 말다니. 보스인 다니엘에게 혹은 보스의 아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올라브에게까지 매달리지 않았는가. 

 

  미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12시간만에 완성한 소설이자 톰 요한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려고 했던 소설. 소설 속 올라브 요한센은 그가 필명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이름과도 같다는 사실. 그의 다음 이야기인 요한센의 두번째 고백인 『미드나잇 선』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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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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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책만 읽으며 살면 좋겠다.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 앞에서 머무르는 일마저 행복한 일상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의 일상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지.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이라는 부제가 있는 정여울의 신간 『공부할 권리』는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하는 일, 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 까지는 없다. 우리가 읽었던 책 중에서 우리 삶에 비추어 생각하면 된다. 책 속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무심코 읽어왔던 책 보다는 저자가 말하는 책 속의 책이 더 빛나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늘 환영받는 아이로 자란 사람들이 인생의 장애물 앞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고통에 대한 예방주사가 접종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저는 인생의 맷집을 키우고 고통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동화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26페이지)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 읽기』라는 책에 수록된 「신데렐라」를 소개하며 하는 말이다. 내게 주어진 숨은 운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운명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는 것을 말했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읽었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대한 글을 읽고는 내가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책을 읽었더라도 저자가 말하는 것의 새로운 시각을 가질수 있다는 점이다. 기억나지 않는 내용과 더불어 용기에 대한 자세를 배울수 있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분노와 복수심으로 창을 들었던 아킬레우스, 자신의 믿음과 사랑하는 것을 지키위해 앞으로 나아갔던 헥토르의 용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고독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독이 뿜어내는 소리를 좀 더 잘 들을 수 있다면요. 저는 고독한 순간에 제 마음속에 가장 절실한 에너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고독을 통해 더욱 빛나는 자기 안의 영감을 찾을 수 있다면 고독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겠지요. (100페이지)

 

  카뮈의 『이방인』을 여러번 읽었지만 아직도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던 정여울의 말이 인상적이다. 뫼르소가 느꼈던 고독, 그의 고독이 절절한 슬픔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못견뎌하는 사람이 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일이라는 것. 부디,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지 말고 즐기기를.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극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역시 가슴아픈 주제였다. 위안부를 사랑했던 일본의 군의관. 전쟁이 끝난후 일본도 조선도 아닌 먼 미국 땅에서 조선의 아이를 입양해 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일이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창래의  『척하는 삶』 즉 '제스처 라이프'는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귀향」과 현재 읽고 있는  『몽화』속 내용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픈 역사 속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켰던, 침략을 당했든 개인들은 아프고 상처일 수밖에 없는 일이므로. 

 

'평생 책만 읽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한 것은 오직 책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소박한 공간뿐.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고 그저 책 읽을 자유만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들과 화해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247페이지)

 

  책을 소개하는 에세이는 꽤 여러 편 읽었지만, 인문학적 접근은 오랜만에 읽는다. 책 속의 내용과 함께 철학적 사유를 하고 삶의 가치를 나타내는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저 책을 읽는 것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며 읽는 책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건넬 수 있고, 우리 내면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일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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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4-0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일로 들어온 한 광고가 한시간안에 천만원을 다쓸수있냐 ㅡ하는 물음을 보곤 픽 웃으며..아 물론 ㅡ무조건 가능하다 생각했어요..외출해 써야하는게 아니라면 앉아서도 바로 천만원 어치 책을 살 수있을것 같았거든요 ㅡ그이야길 딸아이와 하며 행복했었는데 ㅡㅎㅎㅎ책만 보고 살아도 될 것 같았는데 ㅡ어렵긴 하네요...한계가 오니...^^

Breeze 2016-04-08 11:38   좋아요 0 | URL
책을 천만원어치 한번에 살수 있을까요?
아마 가방같은거, 명품으로다가, 그런거 몇개 지르면
천만워, 뭐, 우습게 쓰겠지요. ㅋㅋ
 
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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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둘러보면 예쁜 아이들이 무척 많다.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요즘 아이들은 예쁜 것 같다. 예쁜 과일을 먹이고, 예쁜 생각을 많이 하는 엄마들 때문일까. 예쁘게 자라라는 엄마들의 염원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모가 서구식으로 변했기 때문인지도.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별상관없겠지만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편인데, 만약 엄마도 아이를 보기를 두려워할 정도로 못생겼다면. 혹은 못생겼다고 수근대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아이가 바로 자랄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데,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의 파반느』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남자의 관심과 감정을 믿을 수 없어 했던 여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었던 소설이었다. 성형이 발달된 요즘.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못생겼다면 성형 수술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제목처럼 소설 속 주인공 레베카는 못생긴 여자이다. 아름다운 엄마와 아빠 사이에 태어난 딸 레베카. 축복 받으며 태어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마땅할 아이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외면받는다. 엄마는 작고 어두운 방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나오지 않고, 그러한 엄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빠는 딸 레베카를 돌보지 않는다. 그나마 유모가 있어 그녀에게 사랑을 쏟는다. 갇혀 있다시피한 레베카는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아노를 친다.

 

  레베카가 피아노를 치는 일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자신이 피아노 치는 소리를 엄마가 들었으면 했고, 엄마의 관심을 받고싶었다. 자신의 존재가 여기 엄마 곁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연주하는 순간 표정을 지우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가락에 인생을 걸어야 했으므로. 

 

 

   외로운 레베카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알베르티나 선생님이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단 하나의 친구였던 루칠라, 데 렐리스 피아노 선생님, 데 렐리스 선생님의 엄마 데 렐리스 할머니와의 소중한 시간들이 레베카를 지켜주었다.

 

  만약 자신의 가족 중에 특별한 가족력이 있다면 장차 태어날 아이에 대한 염려가 많을 것이다.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누군가도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이 있었던 듯 한데, 그런 경우 수술하면 괜찮지 않았나 싶다. 물론 레베카의 경우는 장애를 가진 게 하나도 없었고, 단지 못생겼을 뿐이었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모든 사람이 수근거릴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는 않지만,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왕이면 예쁘게 태어나면 더 좋겠지만, 못생겼어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여러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고 본다. 레베카가 피아노로 자신감을 가졌듯, 우리도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고. 외롭지도 않다고. 자신의 인생일 뿐이라고 말하는 레베카의 말이 사뭇 다가온다. 상처나 고통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각자의 고통과 상처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레베카처럼.

 

난 불행하지 않아.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지. 나름 잘 지내. 그리고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  (중략)  외롭다고 할 수는 없지. 그냥 그게 내 인생일 뿐이야. (2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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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aj 2016-04-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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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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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보며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볕에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를 그려본다. 하얀 솜털처럼 보송보송은 털 사이로 나른하면서도 도도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암고양이 말이다.

 

  고양이에 대한 추억이라고는, 어렸을적 고양이를 싫어했던 여동생에게 고양이가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새끼쥐 몇마리를 여동생의 신발 속에 넣어두었던 일들이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해를 가하는 것을 보고, 고양이라는 동물은 참 영악하다고 느꼈던 기억밖에 없는데, 이와는 달리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신랑이 어렸을때 키웠던 고양이는 학교 앞까지 따라다녔고, 학교에서 돌아올때도 대문앞에서 기다렸다는 말을 들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고양이는 신랑이 키웠던 고양이처럼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어렸을 적의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에 대한 추억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함께 짧은 내용의 에세이를 펴냈으니 말이다.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가 햇살 쏟아지는 툇마루에서 낮잠을 잘때 그 옆에서 벌러덩 누워 뒹구는 걸 좋아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나는 고양이의 가르릉가르릉 소리가 무섭게 들리더만, 하루키는 그 소리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고양이의 가르릉거리는 소리마저 좋았나 보다. 고양이와의 특별한 시간들을 누렸고, 그 시간들을 추억하는 하루키의 글에서 언뜻 그리움을 엿보았다.

 

 

 

  고양이는 참으로 영특한 동물이란 사실이다. 하루키의 고양이도 전에 키우던 주인집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물론 여동생의 일 때문에도 그렇지만 말이다. 언젠가 길고양이가 자꾸 시골의 시부모님댁으로 찾아오자 먹이를 챙겨 주셨던듯 한데, 몇 번의 새끼를 낳았었나 보다. 어느 날은 한참 떨어진 곳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 고양이를 놓아두고 오셨나 보다. 그런데 한 달이 넘은 어느 날 그 고양이에 집을 찾아왔었다고 했다. 사람처럼 물어물어 찾아오지는 않았을텐데,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 왔을까. 지금은 시골집을 정리하고 도시인 우리집 부근으로 이사오셨는데, 그 고양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빈 집을 지키고 있을까? 주인이 어디갔나 하고 기다릴까? 문득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진다.

 

  하루키의 커다란 암고양이와 뒹구는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의 하루키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다. 짧고 그림이 가득한 어쩌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그림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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