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에 대하여 - 가치를 알아보는 눈
필리프 코스타마냐 지음, 김세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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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유홍준 교수의 미를 보는 눈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 『안목』을 보았다. 그림과 예술품을 보는 눈, 즉 안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 책이었다. 뛰어난 안목을 가진 미술 애호가들의 수집 활동과 대가들의 회고전 리뷰, 대규모 기획전에 대해 다루었다. 유홍준 교수의 『안목』이 일반인에게도 유용한 '그림을 보는 방법'을 말한 책이었다면 필리프 코스타마냐의 『안목에 대하여』는 미술품 감정을 보다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말한 책이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비교 뿐만 아니라 좀더 정밀적인 그림을 판별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 필리프 코스타마냐는 프랑스 아작시오 미술관 관장이며 세계적인 미술품 감정사이기도 하다. 그림을 바라보는 방법 뿐만 아니라 그림을 판별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위작품과 진품 임을 감정하는 것 또한 세밀한 관찰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했다. 확실한 진품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적외선을 사용하여 안료 뒤에 숨은 진짜 그림을 가려내기도 했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과 작품을 바라보는 전문가적인 시선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었다.

 

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직접 미술관에 찾아가 그림을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이 그림을 아는 일이라고도 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천경자 작가의 그림이 위작이냐 진품인가를 놓고 시끄러웠다. 이럴 때 필리프 코스타마냐 같은 저자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확실하게 감정해 줄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울러 위작을 바라볼 때 미술품 감정가의 눈에, 딱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육감이 온다고 한다. 저자 또한 위작을 볼 때마다 단박에 알아차린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의 낡은 표면이다. 낡고 오래된 느낌을 주려고 가마에 굽는데 이 과정에서 그물처럼 만들어지는 금을 보면 시간을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금과는 사뭇 다르며 신기할 정도로 균일하다. 이처럼 지나치게 균일한 금이 보이면 대번에 위작으로 의심하게 된다. (81페이지)

 

파란색 중에서도 유독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 색에 관해서 만큼은 과학 분석이 효용을 발휘한다. 프러시안 블루는 초록을 살짝 머금은 짙은 검푸른색 안료로, 18세기 초엽 베를린에서 두 명의 연금술사가 발견했다. (71페이지)

 

 

 

 

저자는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는데, 행방불명된 상태에 있었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는 브론치노의 그림이었다. 책 속에 그림이 삽입이 되어 있기도 한데,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브론치노는 이 그림을 눈앞에 시체를 두고 그렸다고 했다. 마치 도자기를 보는 듯한 매끈함이 있었다. 좋은 작품을 발견한다는 것은 미술계에서 커다란 입지를 다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발견된 작품은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 미술품 감정사들은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화가의 독특한 양식을 예민하게 감지함으로써 그런 작품들이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155페이지)

 

원본인지 복제본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결국 안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흔히 복제된 그림은 어딘가 원본과 다른 것이 느껴지는데, 명작들 속에 함께 있으면 그 또한 중요한 작품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167페이지)

 

미술품 감정에 대해 팀워크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술품 감정가는 재감정 또는 발견에 대한 소견을 발표하기에 앞서 동료들의 직관이 어떠한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제 삼자의 시각이 어떤지에 따라 설득력을 얻거나 수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미술품 감정사를 미술계의 탐정이라는 가정하에, 미술상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본격적인 탐정 활동이고, 숱한 졸작을 포함해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을 검토하는 것이 추적과 감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관에 있는 그림을 도판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책에 언급된대로 미술관 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터다. 전문가적인 지식은 없지만 그림을 들여다봄으로 인해 우리의 안목도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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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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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그렇게 역사 공부를 하고, 역사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란 걸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알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란 일본의 패망과 우리나라의 광복인데, 어떻게 이렇게 아픈 일들이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 눈과 귀를 닫고 온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에게 합천이란 해팔만대장경의 해인사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 몇 번 가봤지만, 이처럼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는 곳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운다는 것. 합천에 살던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많이 이주해갔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며 이 곳은 원폭 피해자들이 유달리 많은 곳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원폭 투하로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피해를 당했다. 한국인은 강제 징용과 이주 등으로 히로시마에 5만 명, 나가사키에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인 생존자 중 약 2만여 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다수는 원폭 후유증과 빈곤, 사회적 편견에 시달렸다고 한다. 저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해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합천 출생의 화자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곳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렸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화자는 마치 숙명처럼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는 것을, 아버지도 원폭 피해자였던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더불어 숨기듯 키우고 있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아이에 대한 것도. 마치 숙제를 하듯 이 책을 풀어나갔다.

 

소설은 중학교 국어교사인 정현재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찾아 그들의 증언을 듣는 과정이 한편의 이야기고, 다른 한편의 이야기는 그들의 증언으로 구성된 강분희 할머니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일제 강점기, 먹고 살기 힘들어 아이를 밴 아내와 함께 히로시마로 건너간 강순구. 그의 첫째 딸 강분희가 겪은 이야기였다. 열다섯 살의 분희. 공장에 다니며 자기 색시라고 늘 말하는 동철이 준 노란 손수건을 품고 다닌다.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려 대피소로 피난해 있다 나와 공장으로 향하던 중 원폭의 한복판에 있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일본의 진료소는 조선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가진 것을 다 잃은 분희네는 다시 합천으로 오게 되었다. 얼굴의 화상때문에 집밖에 나가지 않았던 그녀였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가족은 언제까지 분희를 껴안을 수 없어 홀아비한테 시집을 보냈다. 얼굴에 크게 흉이 져 있는 분희를 시어머니나 남편은 때리거나 구박을 일삼았다. 임신을 했으나 더군다나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다. 언젠가 뉴스에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원폭 피해자는 2세, 3세가 되어도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가 하면, 시력장애, 다운증후군 등의 증세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렇듯 원폭 피해자의 유전에 대한 두려움에 피복자와의 결혼을 꺼리고 결혼 했더라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 피해가 컸다. 소설 속에서 가장 듣기 꺼려진 말이 '병신'이 들어간 욕이었다. 피폭자가 어디 자기가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나. 그게 아님에도 경시하고 편견으로 대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강분희가 겪어 온 세상과 강분희의 딸 박인옥이 겪어 온 삶이 다르지 않았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사산아를 낳았거나 그게 어디 여자의 잘못인가. 그럼에도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며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는지 모르겠다. 장애 때문에 경제적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얼마나 피폐한 삶을 사는가. 마치 엄마의 삶을 그대로 사는 모녀의 삶은 지리멸렬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소설을 다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설에 거론되었던 인물인 김형률 씨의 기사(2002년 최초로 선천성면역글로불리결핍증을 앓던 그가 '원폭2세환우'의 존재를 알렸다)와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 듯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의 기사까지 살펴보았다. 내가 살펴본 기사는 2013년도분이었는데,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것을 보면 타인의 일이라 무관심한 우리 사회를 보는 기분이었다.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2016년 5월19일에 제정됐다고 한다. 특별법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 지원, 피해자 추모 기념사업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원폭 피해자 후손을 지원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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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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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의 신간 서적을 검색한다. 책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발견한게 작가정신에서 나온 소설 몇 권이었다.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살펴보고는 작가정신에서 새로운 소설 몇 권을 발간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십여 년 전에 나온 소설향 시리즈가 새롭게 특별판으로 발간된 것이었다. 소설향 시리즈는 20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로 시집 크기의 작은 사이즈에 가격도 시집 가격과 비슷한 팔천원 대다. 가방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녀도 부피감이 없어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좋은 책이다. 다만 함부로 다뤘다가는 찢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책은 소중하니까.

 

퇴근후 집에 들어가면서 항상 우편함을 살피고 들어가는데, 만약 우리 가족에게 온 우편물이 아니면 오배송함에 넣어두곤 한다. 하지만 다른 우편물들과 끼어 들어왔을 때는 생각이 나면 밖에 나갈때 우편함에 넣어두는데, 만일 손글씨로 된 편지가 왔다면 나도 모르게 읽게 될까. 아니, 모르고 개봉했다면, 그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몇 달 뒤에 편지를 보낸 소년의 엄마가 또 편지를 보냈다면 말이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던 소년이 형에게 보낸 편지였다. 형의 안부를 묻고,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기거한다는.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는 '나'는 '인형'과 함께 휴가를 받아 그 농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주소를 들고 아무리 찾아봐도,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올빼미 농장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룻밤을 묵고 다시 찾아보았다. 주소지를 샅샅이 뒤져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핑크색 대야 등이 들샘에 파묻힌 상태였다. 함께 간 인형은 그곳이 섬찟하다고 했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만 있었던 곳이었다.

 

소설 속 '나'는 작사가로 보인다. 프러덕션에서 계약금을 받고 신인 가수의 노래에 사용할 가사를 쓰는 작가다. 작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하려 애쓴다. 근데 이상한게 함께 살고 있는 인형 또한 그 가사를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사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인형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처음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과 인형과 대화할 때 대화에 사용하는 큰따옴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주변 인물이라고는 프러덕션의 김실장과 그의 친구 민, 작곡을 하는 여성스러운 손자가 그 인물이다. '나'가 민의 아파트에 찾아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도시의 숲을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 폐허가 된 아파트를 찾아 가 민은 사진을 찍는다.

 

이 장소에서 민이 하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무너져가는 아파트 건물이 죽은 올빼미 농장과 같다는 말이었다. 죽어가는 아파트, 이미 죽은 들샘이 있던 올빼미 농장. 그리고 재개발이 들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아파트 건물 스스로가 곰팡이를 피어올린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벽은 속삭인다』라는 책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건물 스스로 죽어간다니. 건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인형과 함께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찾아내는 일, 자장가의 가사 전체를 인형과 함께 기억해내고 그걸 신인가수 해이리에게 부르게 했다. 그 전에 몇 소절을 민에게 들려주었지만, 결국 추억을 가진 자만이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해냈을 뿐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회색빛 건물 아파트.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우리의 대부분도 여전히 아파트 숲에서 살아가고 거기에서 생을 다할 지도 모른다.

 

백민석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했더니, 몇 년전에 읽었던 그의 단편집 『혀끝의 남자』의 작가였다. 10년간의 절필 후에 첫 책이라고 했었고, 『죽은 올빼미 농장』은 절필 하기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 이 책 개정판이 작가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책일 것 같았다. 다른 소설향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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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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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의 모중석 스릴러 클럽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한다. 스릴러 중에서도 수작들이 많아 거의 챙겨보고 있는데, 이 책을 받아들고는 로리 로이라는 작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의문이 든 게 사실이다. 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데 작가를 모르니 다른 책들에서 살짝 밀려나기도 했다. 작가들도 사람과의 관계와 같아서 모르는 작가의 경우 주저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로리 로이의 작품이 그랬다. 하지만 읽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긴장하며 읽게 되었다. 오죽하면 책을 읽다가 잠을 잤는데, 꿈까지 꾸었을까.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 혹은 공포였다.

 

처음엔 책을 읽다가, 이 소설이 왜 스릴러인가 의심스러웠다. 전혀 스릴러 같지 않아서 말이다. 다 읽고나서도 스릴러가 맞는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불안감과 공포감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 형사가 주인공이 아닌, 그렇다고 살인범의 심리가 제대로 그려지지도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였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이 소설이 왜 스릴러인가.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바로 스릴러였음을 알게 되었다.  

 

1965년,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향하는 한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아서가 25년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곳, 벤트로드였다. 나에게 캔자스는 토네이도때문에 집이 통째로 날아간  『오즈의 마법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일까. 어두운 밤 아빠 아서와 엄마 실리어가 각자의 차량에 아이들을 싣고 오던 중 어떤 물체가 따라오는데 토네이도가 연상될 만큼 강한 바람이 시야를 가렸던 장면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누군가를 치었을 수도 있지만, 그저 텀블위드(회전초. 바람이 날려 굴러다니는 말라붙은 식물 따위의 덩어리)려니 했다. 캔자스로 돌아온 때부터 어쩐지 이 곳이 심상찮다. 무슨 일이 그들 가족에게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 아서는 2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서와 실리어 부부, 일레인과 대니얼, 에비네 가족을 반겨주는 사람은 리사 할머니와 레이 고모부, 루스 고모다. 여기에서 레이 고모부와 루스 고모는 이들 가족에게 특히 중요한 인물인데 그들은 반겨주는 모양새부터 어쩐지 불안감을 조성한다. 레이 고모부에게서는 술냄새가 나고 실리어를 바라보는 눈빛엔 어쩐지 엄마를 훑어보는 느낌이다. 엄마는 그 눈빛이 무척 싫었다. 살집이 없이 창백한 피부를 갖고 있는 루스 고모. 루스 고모는 불안해보이지만 가족들을 반기며 힘껏 안아주었다. 에비의 외모는 키가 작고 금발 머리를 가졌는데, 이 소설에서 에비의 외모는 큰 의미를 가진다. 죽은 이브 고모의 외모와 꼭 닮은 것도 있지만, 비슷한 외모의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서와 실리어 가족이 이사오고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실종된 줄리앤 로비슨을 레이 고모부가 죽였을 거라고 의심한 것이다. 이십여 년전에 이브 고모를 죽였을 거라고도 했다. 술을 마시는 레이 고모부. 불안에 떠는 루스 고모. 이브 고모는 누가 죽였는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의문이다. 아서도 이브 고모의 죽음과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텐데 쉽게 드러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로하여금 불안감만 조성한다. 그러던 와중에 레이 고모부가 루스 고모에게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아서는 루스 고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때 아서는 레이 고모부를 심하게 때렸는데, 가족들은 그가 나타날까봐 두렵다. 

 

1960년대의 여성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고, 마을의 신부마저 아내는 남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스 고모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아서와 루스 고모를 데려가려는 레이 고모부의 등장이 위태위태하다. 집안의 온갖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잠궜다. 혹시라도 레이 고모부가 들어올까봐 아서는 외출도 자제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루스 고모의 임신 사실이 드러났고, 가족들은 레이 고모부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려 든다. 어떻게든 루스 고모에게서 떼어놓고 싶기 때문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이동해왔기 때문일까. 대니얼과 에비에겐 친구가 없었다. 키가 작아 놀림받던 에비는 학교에서도 친구들 만들지 못했고, 죽은 이브 고모의 드레스를 입어보며 집안에서만 있었다. 친구가 없었던만큼 이브 고모에게 집착했다고 해야겠다. 편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곤 이브 고모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브 고모와 레이 고모부가 함께 직은 사진도 발견했고,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것부터가 불안했다. 레이 고모부의 시선이 에비에게 머무는 게 두려웠고, 엄마를 바라보는 레이 고모부의 시선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그가 살인범인 것일까. 혹시 이브 고모마저 죽게한 것일까. 임신한 사실을 안 레이 고모부가 루스 고모를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할 것인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인 누군가가 살인범이고, 이브 고모의 죽음의 진실까지 드러나긴 했다. 레이 고모부가 라이플을 들고 루스 고모를 찾으러왔던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내가 집안에 갇혀있는 듯 했고, 금방이라도 레이 고모부가 쳐들어올 것만 같았다.

 

작가가 왜 에드거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는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만큼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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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5-1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중석 시리즈 광팬인데 이 리뷰보니 굉장히 읽고싶어지네요 ^^

Breeze 2017-06-08 17:01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모중석 시리즈는 역시 믿고 볼만 하지요. ^^
 
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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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난 뒤 개츠비는 왜 위대한 개츠비인 것인가. 나 또한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후 든 의문이 그거였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더니, 곁에서 같은 질문을 건네 받고 한참 고민에 빠졌다.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개봉 당시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찾아 보았다. 한 권의 책과 동명 원작의 영화를 보는데 하루를 할애했다.

 

새움 출판사에서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자는 책의 뒷면에 오역 지적 역자 노트를 별도로 담았다. 전체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는 나는 큰 영향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오역이라고 칭할 만한 부분이 보이기는 한다. 번역자는 김욱동 번역본과 김영하 번역본을 비교하며 오역에 대해 지적했다. 나는 김영하 번역본을 먼저 읽고 이정서의 번역본을 나중에 읽었는데, 약간은 건조한 김영하의 번역본에 비해 이정서의 번역본이 더 감성적으로 다가왔음을 말하고 싶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개츠비. 그는 소위 찢어지게 가난했다. 가난한 그가 신분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한 부유한 사업가를 도우며 자신의 이름을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개츠비로 태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에게 명망있는 가문의 여성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인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제이 개츠비가 데이지를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분 상승의 꿈,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사랑. 하지만 전쟁은 개츠비를 데려갔고, 사랑에 목말라했던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했다. 조상 대대로 돈이 많은 톰 뷰캐넌과 결혼한 건 당연했다. 그런 데이지를 오랜 세월동안 사랑한 건 개츠비의 몫이었다.

 

책의 화자 닉 캐러웨이가 웨스트 에그로 이사와서 웨스트 에그보다 더 상류사회인 이스트 웨그에 사는 톰 뷰캐넌과 데이지를 방문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의 옆 집의 커다란 저택에서는 매일 파티가 이루어진다. 초대받지 않아도 마음대로 들어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 수 있는 곳이 개츠비의 저택이었다. 개츠비가 사람을 죽였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저 그의 부를 누리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허다했다. 처음으로 개츠비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닉 캐러웨이는 그곳에서 데이지의 저택에서 보았던 조던 베이커 양을 만났다. 그녀로부터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던 베이커 양의 이야기를 들은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가 왜 그곳에 집을 샀는지 이해가 되었다. 파티가 끝난 후 이스트 에그가 바라보이는 곳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던 장면을 기억했다. 초록색 불빛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몸짓의 의미를 말이다. 그 장소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기를, 자신에게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한 남자의 염원을 말이다.

 

그의 사랑을 이해했던 탓인가. 아마도 뉴욕에서 함께했던 톰의 술 파티를 목격해서 일까.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가 원했던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개츠비의 부탁으로 데이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던 닉 캐러웨이는 그녀가 올때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한아름의 꽃을 가져오는가 하면 잔디를 깎는다 부산을 떨었다. 안절부절 못했다고 하는게 옳을 정도였다.

 

 

 

소설 속에서나 영화속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이 하나 있다. 개츠비와 다시 만난 데이지가 개츠비의 부를 확인하고, 그의 방에 들어서서 셔츠를 집어 침대에 던지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153페이지) 이 얼마나 속물적인 발언인가. 이 한 마디에 데이지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부에 대한 욕망. 사랑도 한낱 부가 없으면 휴지조각처럼 흩어지고 말 것임을 보여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개츠비를 다시 만나 사랑해 겨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부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고, 그게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나 차갑게 돌아섰던가. 개츠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할 때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진 부를 마음껏 누렸던 사람들, 어느 누구하나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오로지 데이지 만을 바라보았던 개츠비에 대한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 또한 데이지였다. 돈에 약한, 돈때문에 사랑한다고 믿은. 과연 그녀에게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기나 했었을까.

 

그런 데이지임에도 끝까지 데이지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던 개츠비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자신의 야망마저 버릴 수 있었던 그였다. 그의 죽음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제는 온통 자신과 함께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그저 한 줌의 공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왜 고전을 읽는가. 작품이 쓰여진지 100년이 넘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 작품들에서 우리의 본모습을 발견함이 아닐까. 이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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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7-06-0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Breeze 2017-06-08 17: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