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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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그렇게 역사 공부를 하고, 역사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란 걸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알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란 일본의 패망과 우리나라의 광복인데, 어떻게 이렇게 아픈 일들이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 눈과 귀를 닫고 온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에게 합천이란 해팔만대장경의 해인사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 몇 번 가봤지만, 이처럼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는 곳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운다는 것. 합천에 살던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많이 이주해갔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며 이 곳은 원폭 피해자들이 유달리 많은 곳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원폭 투하로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피해를 당했다. 한국인은 강제 징용과 이주 등으로 히로시마에 5만 명, 나가사키에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인 생존자 중 약 2만여 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다수는 원폭 후유증과 빈곤, 사회적 편견에 시달렸다고 한다. 저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해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합천 출생의 화자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곳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렸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화자는 마치 숙명처럼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는 것을, 아버지도 원폭 피해자였던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더불어 숨기듯 키우고 있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아이에 대한 것도. 마치 숙제를 하듯 이 책을 풀어나갔다.

 

소설은 중학교 국어교사인 정현재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찾아 그들의 증언을 듣는 과정이 한편의 이야기고, 다른 한편의 이야기는 그들의 증언으로 구성된 강분희 할머니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일제 강점기, 먹고 살기 힘들어 아이를 밴 아내와 함께 히로시마로 건너간 강순구. 그의 첫째 딸 강분희가 겪은 이야기였다. 열다섯 살의 분희. 공장에 다니며 자기 색시라고 늘 말하는 동철이 준 노란 손수건을 품고 다닌다.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려 대피소로 피난해 있다 나와 공장으로 향하던 중 원폭의 한복판에 있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일본의 진료소는 조선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가진 것을 다 잃은 분희네는 다시 합천으로 오게 되었다. 얼굴의 화상때문에 집밖에 나가지 않았던 그녀였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가족은 언제까지 분희를 껴안을 수 없어 홀아비한테 시집을 보냈다. 얼굴에 크게 흉이 져 있는 분희를 시어머니나 남편은 때리거나 구박을 일삼았다. 임신을 했으나 더군다나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다. 언젠가 뉴스에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원폭 피해자는 2세, 3세가 되어도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가 하면, 시력장애, 다운증후군 등의 증세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렇듯 원폭 피해자의 유전에 대한 두려움에 피복자와의 결혼을 꺼리고 결혼 했더라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 피해가 컸다. 소설 속에서 가장 듣기 꺼려진 말이 '병신'이 들어간 욕이었다. 피폭자가 어디 자기가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나. 그게 아님에도 경시하고 편견으로 대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강분희가 겪어 온 세상과 강분희의 딸 박인옥이 겪어 온 삶이 다르지 않았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사산아를 낳았거나 그게 어디 여자의 잘못인가. 그럼에도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며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는지 모르겠다. 장애 때문에 경제적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얼마나 피폐한 삶을 사는가. 마치 엄마의 삶을 그대로 사는 모녀의 삶은 지리멸렬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소설을 다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설에 거론되었던 인물인 김형률 씨의 기사(2002년 최초로 선천성면역글로불리결핍증을 앓던 그가 '원폭2세환우'의 존재를 알렸다)와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 듯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의 기사까지 살펴보았다. 내가 살펴본 기사는 2013년도분이었는데,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것을 보면 타인의 일이라 무관심한 우리 사회를 보는 기분이었다.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2016년 5월19일에 제정됐다고 한다. 특별법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 지원, 피해자 추모 기념사업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원폭 피해자 후손을 지원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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