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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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책을 그만 읽자고 생각은 하나 다시 또 집어드는 게 책 권하는 책이다. 수많은 책들의 홍수, 누군가는 일 년 가야 10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일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독과 정독의 차이는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다. 얼마전에 모 서점에서만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책을 발견했다. 같은 책이 어느 서점에서도 없는. 오로지 한군데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이었는데, 책 좀 좋아한다는 나도 그 책을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구입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았다. 최근의 출판계는 책 판매 저조로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들의 마음을 훔친다. 같은 책이라도 혹은 절판된 책을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전략이다. 혹시라도 한정판을 사지 못할까봐 애먼글먼하며 결국엔 구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말하는 절판본을 구하는 이야기에 나도 몰래 동감을 표시하며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나 또한 절판된 어느 책을 구하려 전국의 서점에 전화를 하고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었으니. 책을 구하려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절판본을 구해놓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니, 저자의 표현대로 천사가 따로 없다.

 

저자 박균호는 나에게 일반인과도 같았는데, 어떤 책들을 말할까 못내 궁금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인데, 상당히 위트 있는 글에 반하게 되었다. 일단 장서가로서 책을 대하는 마음에 깊이 공감을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저자처럼 그렇게 많은 장서를 구비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지난 추석 즈음에 영화에 나왔던 한 헌책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안동 여행이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 단양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많은 책들에 놀랐다. 보기 드문 많은 책들이 있는 곳이었다. 신랑은 일본의 고전문학 세트를 골랐고, 나도 책 몇 권을 골랐다. 지금은 절판된 만화책을 구하려 했으나 그곳에는 없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런 마음에 대한 동질감을 느꼈다.

 

 

책 권하는 책을 읽으며 읽고 싶은 책, 구입하고 싶은 책 목록을 작성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도 몇 권의 목록을 작성했다. 관심있었으나 미루고 있었던 책들이었다. 여섯 권의 목록을 작성했는데, 그 목록을 보자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뿌시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티벳 사자의 서』다. 김현의 작품이야 많은 독서가로부터 들었던 인물이나 아직 만나지 못했던 책이고,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관심을 두었던 책이고, 『티벳 사자의 서』는 이웃분이 읽고 있으시다고 해서 궁금했던 책이기도 하다. 책 권하는 아저씨 때문에 목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돈이 들어가겠지만 즐거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장서와 절판본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그런 경험 한두 번쯤 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뒷 부분으로 가면서는 저자의 일상이 그려졌다. 책의 재미를 위해 아내와 딸에 대해 말한 것 같은데, 이 또한 즐거웠다. 주로 냉전 중의 상황을 재미있게 그렸다. 그러면서  그 상황에 맞는 책을 소개했다. 일상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조화로웠다.  작가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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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2-0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제 책에 대해서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진도 참 예쁘게 찍어 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최근에 읽느 책 중에서 <스토너>라는 소설이 참 좋았어요. 꼭 일독을 권해드려요. 위트 있는 글을 좋아하신다면 <검사내전>도 권합니다. 키득 키득 웃게 되더라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Breeze 2018-02-01 11:10   좋아요 1 | URL
스토너 책 가지고 있는데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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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즉 간서치라 부르는 이덕무의 문장을 읽는다는 것에 책이 도착하기 전부터 설렜다. 50년을 사는 동안 이만오천 권의 책을 읽는 그는 그야말로 책만 보는 바보였다. 그를 빼놓고 책에 대해 논할 이가 없다. 그가 쓴 작품들을 전부터 읽고 싶었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에서 아름다운 문장들을 추려 이덕무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한정주가 간단한 해석과 자신의 생각들을 담았다. 책의 겉표지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라는 말을 새겨듣게 된다. 일상속의 일들을 드러낸 글이었다. 풀 한 포기, 하늘에 떠가는 구름, 벌레소리등.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깊게 바라보는 그의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

 

어디 사물들 뿐일까. 어린 아우가 하는 말을 예로들며 어린아이만이 가지는 예쁜 표현들을 말한다.

예전에 한 어린아이는 별을 보고 달 가루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말은 예쁘고 참신하다. 때 묻은 세속의 기운을 훌쩍 벗어났다. 속되고 썩은 무리가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198페이지) 우리도 어린아이들이 하는 표현에서 무릎을 치지 않는가. 이덕무 또한 어린아이에게서 천성과 지혜를 엿보았다.

 

나는 일찍이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란하게 해 독서에 크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17페이지) 한정주가 말하기를 조선 최고의 박물학자라고 했다. 이덕무의 독서와 지적편력이 얼마나 거대하고 방대했는지 아직도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말이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는다면 나는 마땅히 십 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고, 일 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것이다. 열흘에 한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한다면 오십 일 만에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수 있을 것이다. ((251페이지)

 

온몸으로 밀고 나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나 자신'을 쓴다는 것이고, '나의 삶'을 쓴다는 것이다. '나'의 온몸 구석구석에 꿈틀대고 있거나 가득 고여 있어서 내뱉거나 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말과 글을 쓴다는 것이다. "문장이란 골수에 스며들어야 좋다"는 이덕무의 말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300페이지)

 

책을 읽는 사람은 정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다음은 습득해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넓고 깊게 아는 것이다. (320페이지)

 

박학다식한 학자답게 독서에 대한 생각들이 유달리 많아 책을 읽는 자만이 가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날마다 일과로 책을 읽으면서 네 가지 유익한 점을 들었다. 굶주림을 잊고, 추위를 잊고, 근심과 걱정등 잡념이 사라지며, 기침병을 앓고 있을 때도 기운이 통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치게 된다고 했다. 

 

지금은 소리내어 읽지 않지만, 선조들은 소리내어 글을 읽었다. 글을 읽는 소리에 반해 어여쁜 처자는 남몰래 사랑에 빠지고, 선비가 공부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스토리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내용이 더 깊게 들어올까. 소리내어 읽는 것이 필사와 비슷하지 않을까도 싶다. 우리가 학교다닐적에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리듬을 타 외운 공식들이 지금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싶다. 

 

이덕무의 소품문은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솔직한 표현과 소소한 행복들을 담은 책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 달라지는 것 같다. 이덕무처럼 많은 책을 읽다보면 우리도 이처럼 아름다운 글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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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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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애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숨기려해도 드러내는 사람이 꽤 많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포커페이스는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자기 감정 표현하는데 혹은 숨기는데 자신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진짜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드러나고 말더라. 말소리도 떨리고, 손도 달달 떨리더라. 심지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더라. 평소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지없이 드러나는 걸 보고 마음을 숨기는 것보다는 제대로 표현해야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포현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삐진 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만약 뇌에 문제가 생겨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내 자식이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편도체(amygdala)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편도체가 아몬드 모양을 닮아 이름도 이처럼 부른다. 그렇다. 선윤재는 머리속의 아몬드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기쁨, 슬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윤재는 감정 표현을 엄마에게 주입식으로 배웠다. 다른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최대한 짧게 대응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엄마는 윤재가 아이들 틈에서 보통의 아이처럼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 윤재는 할머니로부터 예쁜 괴물이라 불렸는데, 괴물이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재가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은 사건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엄마와 할멈,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있었던 50대 아저씨 둘, 그리고 경찰 한 명, 마지막으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였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소년 선윤재였다. 윤재의 시선으로 그 날의 사건을, 윤재의 감정을 들여다 본다.

 

가장 행복했던 때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윤재네에게 일어났던 일들도 그런 것의 일환이었을까. 마치 불행이 행복을 시기하는 것처럼, 가장 행복하게 웃고 떠들었던 때, 마주 잡은 손, 햇살같은 미소를 지었던 그들에게 다가온 불행은 한 가족을 나락으로 빠뜨렸고, 감정이 없는 소년은 자신을 지켜주던 할멈과 엄마를 잃었다. 물론 엄마는 죽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에서 한 명의 부상자가 엄마였다.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고,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윤재가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엄마를 찾아가 엄마를 보고 조금 있다가 집으로 왔다. 그리고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은 자기의 눈앞에서 엄마와 할멈이 죽었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윤재를 다그쳤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고 윤재는 진짜 괴물을 만나게 된다. 윤 교수가 잊어버렸던 아이를 되찾았지만 사정이 있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대신 곤이라는 아이의 역할을 했던, 그 아이. 머릿속의 아몬드의 크기가 작아 무표정했던 윤재와는 달리 곤은 온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다. 누군가를 때렸던 것도, 자꾸 엇나가게 행동했던 것도 자신을 보아달라는 몸짓이었다는 걸 윤재는 알았다. 그래서 책방으로 곤이 찾아오는 걸 반겼는지도 몰랐다. 곤에게 유일하게 질문을 했던 아이가 윤재였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사람. 어떻게 살아왔는지 곤의 입장에서 물어봐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따스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관심을 받고싶었던 것인데, 어른들은 종종 알아채지 못한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느냐 보다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것만 원하는 것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가 한 괴물을 만나면서 조금씩 감정을 갖게 된 이야기이다. 곤과 윤재의 관계를 볼 때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만 한 사람 때문에 관계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에서 단 하나의 친구로 변하는 순간이다. 단 하나의 친구와 만나면서 진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곤과 윤재에게서 사람과의 관계를 배웠다. 누구에게 서운하다거나 말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서고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감정의 표현도 습득하는 것이리라. 아니다. 마음이 먼저 다가서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를 구해야겠다는 감정이 한 사람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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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정원
서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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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글만 보고 시대물인가 해서 아주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서야 작가의 책이기에 읽고 싶어 구매한 책이다. 읽어보니 현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무술의 경지에 오른 한 가문의 수장인 주인공 답게 고전과 현대가 교묘하게 섞인 책이랄까.

 

중국의  사천, 첸 가문의 수장이 스물이 되면, 방계의 열 살된 여자아이들은 선을 보여야 했다. 후명 또한 열 살이 되었을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붉은 정원이 있는 곳에 발을 들였다. 다만 그 방 안에는 부모와 함께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여자 아이만 들어가야 한다. 또로롱 또로롱 우는 새 소리가 먼저 들렸던 후명은 새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고, 정원이 붉은 꽃이 가득 피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수장에게 선택된 여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그와 결혼을 해야 했다. 가문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현재의 한국, 프랑스 자수를 전공한 후명은 무척 조용한 성격이다.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선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그곳에 지윤찬이 있었다. 원래는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동생이 보기로 했지만, 바쁜 일정 탓에 작가인 윤찬이 가게 되었던 것. 말없이 앉아 있는 후명이지만, 윤찬은 그녀의 침묵이 싫지 않았다.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후명의 공방으로 찾아오게 된다. 후명의 공방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는 인이 그녀의 머리를 흩트리는 장면이 눈에 거슬린다. 인은 전보다 더 자주 후명에게 찾아오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정스럽게 대한다. 후명과 함께 일하는 서정은 윤찬과 잘해보라고 하고, 그 무엇에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세우지 않는 후명이 궁금해졌다.

 

첸 가문의 방계들은 모두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문의 도움을 받았던 후명은 어머니에게 그것을 거절하게 한다. 후명에게 첸 가문의 수장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스무 살에 단정원을 찾았던 후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첸운과의 기억을 봉인했던 것일까. 후명에게 다가오는 첸 공과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그를 향하는 마음은 접어지지 않는다. 슬프고 아릿한 눈빛을 띄게 된다.

 

나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밤은 여전히 길고, 나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126페이지)

 

 

 

 

문장들이 깔끔했다. 마치 후명의 성격처럼.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글의 묘미 때문에 작가의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 소설에서는 유달리 중국 고전 시가 자주 등장한다. 첸운과 담후명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 시들처럼 적절한 게 없었다.

 

첸운의 신물인 쯔요에게 선택된 후명. 운의 선택이 아닌 순전히 쯔요의 선택으로 단정원의 여주가 결정되었다. 가문의 방계에서는 아직 여주가 선택되지 않은 걸로 보고 가문의 딸들은 첸에게 선택받고 싶어한다. 후명의 창가에 놓아졌던 자기 새가 하나씩 금이 가 깨지고, 그 속에 들어있던 깃털은 쯔요에 의해 첸에게 전해진다. 봉인했던 그녀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는 시점이 된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들의 말투, 상황,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마 문장들 때문에 고전 소설을 보는 듯,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키스씬이나 애정씬은 좀더 들어있어도 되었을 것을. 이것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바람빠지는 한숨 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은 고전적인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의 재미와 로맨스를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살짝 밋밋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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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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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술을 마실까.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작가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은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 아주 간단한 이유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해 마신다고 봐야 한다. 건배하고, 기분이 좋아지니 저절로 많이 웃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색했던 사람과 닫혔던 마음도 어느 정도 열린다고 봐야하지 않겠나.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 이처럼 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만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본인을 포함해 가족들까지 힘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가족중의 한 사람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했을 정도였다. 술이라면 질색을 할 만도 한데, 나도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과음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어떨 때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술을 왜 마시는 걸까.

 

이러한 질문을 건넨 작가가 있다. 영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올리비아 랭은 술을 사랑한 미국 현대문학 거장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했다. 작가에게 술이 미치는 영향, 알코올 의존증에 있으면서도 훌륭한 작품을 써냈던 작가들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의 어린시절, 어떠한 계기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지해 제대로 된 일상을 살 수 없었지만, 그러한 마음들을 작품속에 녹여낸 그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 이었던가, 『대성당』이었던가. 그 책을 읽을 때 작품속에서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꼭 작가의 이야기인것만 같아 검색해 본적이 있었는데, 그가 알코올 의존증이었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치료를 받던 중 쓴 글이었다는 것. 출판사 편집자가 대부분의 글을 과감하게 삭제해 출간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작가와 술』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내가 읽었던 책은 편집자가 과감하게 편집한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이 아닌 편집을 거치지 않은 책이었다.

 

레이먼드 카버 뿐만 아니라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또한 술을 사랑한 작가였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의 작가 테네시 윌리암스, 『팔코너』의 존 치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는 이들 작가들이 머물렀던 곳을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작가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말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면 뉴올리언스에서 머물렀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왜 술을 마시게 되었을까. 어떤 작가는 어린 시절을 망가뜨렸던 것으로 부모의 폭음과 자살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 매일 폭음을 하는 부모, 술을 마시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혹은 다른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술을 마신 부모를 피해 숨을 장소가 필요하다. 또한 술로 인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자식을 버리다시피 방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혹은 영화나 책 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끊임없이 부모와 다르게 살겠다고 알코올에서 도망을 쳐보지만 결국엔 알코올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쓴 문학계의 거장들이지만 그들도 부모 또는 배우자와의 불화, 자살 혹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 상황을 피해보고자 술을 마셨고, 알코올 의존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존 치버의 경우에는 어머니에 대한 부재와 애착이 알코올 중독을 부르지 않았나 싶다. 알코올을 끊기 위해 시설에도 들어가 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알코올 의존증을 이겨내고 훌륭한 작품을 써냈던 것. 더이상의 불행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 속에는 작가의 생각들이 투영된다. 그가 글을 쓰는 시기에 술을 마셨다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을 것이고, 자살을 생각했다면 끊임없이 자살을 하려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식이다. 그럼에도 그런 글을 썼던 건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가족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문학계의 거장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익한 작품을 읽었다.

 

알코올에 얽힌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문학계의 거장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알코올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술을 사랑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아야겠다.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혹은 영화로 보았던 『무기여 잘있거라』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그들이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감정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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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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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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