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애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숨기려해도 드러내는 사람이 꽤 많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포커페이스는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자기 감정 표현하는데 혹은 숨기는데 자신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진짜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드러나고 말더라. 말소리도 떨리고, 손도 달달 떨리더라. 심지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더라. 평소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지없이 드러나는 걸 보고 마음을 숨기는 것보다는 제대로 표현해야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포현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삐진 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만약 뇌에 문제가 생겨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내 자식이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편도체(amygdala)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편도체가 아몬드 모양을 닮아 이름도 이처럼 부른다. 그렇다. 선윤재는 머리속의 아몬드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기쁨, 슬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윤재는 감정 표현을 엄마에게 주입식으로 배웠다. 다른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최대한 짧게 대응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엄마는 윤재가 아이들 틈에서 보통의 아이처럼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 윤재는 할머니로부터 예쁜 괴물이라 불렸는데, 괴물이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재가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은 사건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엄마와 할멈,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있었던 50대 아저씨 둘, 그리고 경찰 한 명, 마지막으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였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소년 선윤재였다. 윤재의 시선으로 그 날의 사건을, 윤재의 감정을 들여다 본다.

 

가장 행복했던 때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윤재네에게 일어났던 일들도 그런 것의 일환이었을까. 마치 불행이 행복을 시기하는 것처럼, 가장 행복하게 웃고 떠들었던 때, 마주 잡은 손, 햇살같은 미소를 지었던 그들에게 다가온 불행은 한 가족을 나락으로 빠뜨렸고, 감정이 없는 소년은 자신을 지켜주던 할멈과 엄마를 잃었다. 물론 엄마는 죽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에서 한 명의 부상자가 엄마였다.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고,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윤재가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엄마를 찾아가 엄마를 보고 조금 있다가 집으로 왔다. 그리고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은 자기의 눈앞에서 엄마와 할멈이 죽었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윤재를 다그쳤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고 윤재는 진짜 괴물을 만나게 된다. 윤 교수가 잊어버렸던 아이를 되찾았지만 사정이 있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대신 곤이라는 아이의 역할을 했던, 그 아이. 머릿속의 아몬드의 크기가 작아 무표정했던 윤재와는 달리 곤은 온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다. 누군가를 때렸던 것도, 자꾸 엇나가게 행동했던 것도 자신을 보아달라는 몸짓이었다는 걸 윤재는 알았다. 그래서 책방으로 곤이 찾아오는 걸 반겼는지도 몰랐다. 곤에게 유일하게 질문을 했던 아이가 윤재였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사람. 어떻게 살아왔는지 곤의 입장에서 물어봐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따스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관심을 받고싶었던 것인데, 어른들은 종종 알아채지 못한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느냐 보다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것만 원하는 것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가 한 괴물을 만나면서 조금씩 감정을 갖게 된 이야기이다. 곤과 윤재의 관계를 볼 때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만 한 사람 때문에 관계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에서 단 하나의 친구로 변하는 순간이다. 단 하나의 친구와 만나면서 진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곤과 윤재에게서 사람과의 관계를 배웠다. 누구에게 서운하다거나 말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서고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감정의 표현도 습득하는 것이리라. 아니다. 마음이 먼저 다가서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를 구해야겠다는 감정이 한 사람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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