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정원
서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책 소개글만 보고 시대물인가 해서 아주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서야 작가의 책이기에 읽고 싶어 구매한 책이다. 읽어보니 현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무술의 경지에 오른 한 가문의 수장인 주인공 답게 고전과 현대가 교묘하게 섞인 책이랄까.

 

중국의  사천, 첸 가문의 수장이 스물이 되면, 방계의 열 살된 여자아이들은 선을 보여야 했다. 후명 또한 열 살이 되었을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붉은 정원이 있는 곳에 발을 들였다. 다만 그 방 안에는 부모와 함께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여자 아이만 들어가야 한다. 또로롱 또로롱 우는 새 소리가 먼저 들렸던 후명은 새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고, 정원이 붉은 꽃이 가득 피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수장에게 선택된 여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그와 결혼을 해야 했다. 가문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현재의 한국, 프랑스 자수를 전공한 후명은 무척 조용한 성격이다.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선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그곳에 지윤찬이 있었다. 원래는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동생이 보기로 했지만, 바쁜 일정 탓에 작가인 윤찬이 가게 되었던 것. 말없이 앉아 있는 후명이지만, 윤찬은 그녀의 침묵이 싫지 않았다.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후명의 공방으로 찾아오게 된다. 후명의 공방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는 인이 그녀의 머리를 흩트리는 장면이 눈에 거슬린다. 인은 전보다 더 자주 후명에게 찾아오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정스럽게 대한다. 후명과 함께 일하는 서정은 윤찬과 잘해보라고 하고, 그 무엇에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세우지 않는 후명이 궁금해졌다.

 

첸 가문의 방계들은 모두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문의 도움을 받았던 후명은 어머니에게 그것을 거절하게 한다. 후명에게 첸 가문의 수장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스무 살에 단정원을 찾았던 후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첸운과의 기억을 봉인했던 것일까. 후명에게 다가오는 첸 공과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그를 향하는 마음은 접어지지 않는다. 슬프고 아릿한 눈빛을 띄게 된다.

 

나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밤은 여전히 길고, 나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126페이지)

 

 

 

 

문장들이 깔끔했다. 마치 후명의 성격처럼.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글의 묘미 때문에 작가의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 소설에서는 유달리 중국 고전 시가 자주 등장한다. 첸운과 담후명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 시들처럼 적절한 게 없었다.

 

첸운의 신물인 쯔요에게 선택된 후명. 운의 선택이 아닌 순전히 쯔요의 선택으로 단정원의 여주가 결정되었다. 가문의 방계에서는 아직 여주가 선택되지 않은 걸로 보고 가문의 딸들은 첸에게 선택받고 싶어한다. 후명의 창가에 놓아졌던 자기 새가 하나씩 금이 가 깨지고, 그 속에 들어있던 깃털은 쯔요에 의해 첸에게 전해진다. 봉인했던 그녀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는 시점이 된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들의 말투, 상황,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마 문장들 때문에 고전 소설을 보는 듯,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키스씬이나 애정씬은 좀더 들어있어도 되었을 것을. 이것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바람빠지는 한숨 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은 고전적인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의 재미와 로맨스를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살짝 밋밋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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