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디슨 애비뉴를 떠났다! - 광고, 그 따뜻함을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기
김세영 지음 / 베가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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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앞에 앉아 있을때면 보는 게 예능 프로그램 한두 개와 여행 프로그램이다. 특히 EBS에서 하는 세계테마여행에 채널을 멈춘다. 특히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더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아마 이 프로그램에서 김세영 작가를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인상이 낯익은 걸 보면. 여행자들이 부럽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 일이든 여행이든 어딘가로 향한다는 자체가 부러운 것 같다.

 

여행하는 광고인 김세영의 에세이다. 여행 국가나 장소의 특이점,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자극하는 게 여행에세이인데, 김세영의 글에서는 그의 직업상 느낄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담았다. 광고인으로서 바라보는 세계, 그 나라의 특색, 편견으로 가득차있던 마음을 어느새 열 수 있는 글이었다고 해야겠다.

 

생각하기에 공산주의 국가도 광고를 하겠나, 제대로 이루어지겠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편견이라는 걸, 저자의 여행 기록에서 나타났다. 우리 삶에서 고민은 때로는 낯선 곳을 향하게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발상을 얻기도 한다. 생각지 못했던 경험이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광고라고 하면, 선진국 특히 자유주의 국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작가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책 속에 세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슬람 세계 즉 터키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중국, 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의 광고를 탐색했다. 그 나라의 유명한 광고인을 직접 만나 광고 이야기를 듣고 편견을 깨는 시간들의 기록이었다.

 

15초의 시간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게 광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명한 카피가 있다. 순간의 기록일텐데 카피 한 줄이 사람들의 눈을 혹은 귀를 사로잡는다. 최근 몇년 동안 라디오의 광고를 듣다보니 외울 정도가 되는데 TV의 광고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광고가 참 재미있게 느껴져 일부러 챙겨보기까지 한다. 광고인의 발상이 신선해서다.   

 

 

저는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요. 그런 큰 이야기들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요. 오히려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은 그런 크고 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정말 작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었어요. (252페이지)

 

크리에이티브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길 위에서,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죠. 그리고 모든 사회 영역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크리에이티브에요. 만일 단순히 멋진 TV광고를 만드는 일이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에요. (288페이지) 

 

 

 

작가는 책 중간중간에 '광고인의 노트'를 실어 광고인으로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담았다.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말하는 글이라고 해도 되겠다. 말미에 '광고인이 되는 길'이라는 글이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전공을 추천했다. 예전에 어떤 가수 한 명도 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굳이 자기가 되고 싶은 걸 전공하는 것 보다는 뭔가 다른 걸 공부해 보라는 말이었다. 김세영 작가 또한 '지나치게 실용화된 전공보다는 인문학을 전공할 것을 꼭 권하고 싶다'라고 했다. '깊이 있는 고민과 사람에 대한 성찰이 튼튼한 토양처럼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인문학적인 교양이란, 교양서적의 제목을 달달 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교양이란, 바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기술"을 말한다! (301페이지)

 

여행을 하면 시각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일은 분명 나의 삶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많은 것을 보고 겪는 다양한 경험이 삶의 질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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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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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참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 여겼다. 처음엔 잔소리꾼에, 깔끔쟁이에 보통 사람이 싫어할 말만 하고 다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빠지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주인공들이 했던 행동들이 타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더디 읽혔다고 보는게 옳다. 베어타운의 가족들의 이름, 아이들, 그들의 친구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는 쉴새 없이 읽히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다. 베어타운은 하키로 똘똘 뭉친 공동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키 선수이며 그들의 가족이며, 하키부가 소속된 위원회이며 혹은 하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1페이지)로 소설이 시작된다.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소설의 첫 장이 잊힐즈음 서서히 드러나는 게 이 소설의 백미다. 기타를 사랑하는 소녀 마야, 그 소녀의 단짝 아나,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 변호사인 엄마 미라가 있다.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는 자신의 스승 소네를 A팀 코치 자리에서 잘라야 한다. 그 자리를 청소년팀 코치인 다비드를 보내야 한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들었다. 다비드 또한 소네의 제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하키팀을 이끄는 코치나 단장, 사장, 이사회는 '이겼느냐'가 중요하다. 과정은 필요없다. 다비드가 청소년팀에게 하는 말도 '이겨라'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 이기는게 중요했다. 청소년팀을 승리로 이끌 선수는 케빈이다. 케빈을 전담 마크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아이가 케빈의 친구 벤이(벤야민)고.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날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하고, 아이들만의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를 모른척 허락해 주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술을 마시던 이들.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소년과 소녀. 열여덟 살의 소년이 열다섯 살의 소녀를 성폭행했다.

 

 

 

성폭행 당한 아이는 방에 틀어박히고, 가해자는 버젓이 운동을 계속한다. 성폭행 사건이 본격화되자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소녀를 탓한다. 좋아서 같이 자놓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승리와 한 아이의 고통을 놓고 보았을 때 무엇이 중요한가,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모른척 했던 부모의 심정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소녀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모른척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리라.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245페이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비난해도 한 아이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허리가 아픈 엄마의 편한 일자리와 5천 크로네의 큰 돈이 있었음에도 용기를 냈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비록 성폭행 가해자인 소년이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물론 소설의 첫 문장에서처럼 스스로 단죄를 가해 그가 영원히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도 있다. 한 마을의 공동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한 개인의 안위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를 비난하고 소년을 환호했다. 마을의 영웅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322페이지)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374페이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나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엿보았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집단과 개인의 차원에서 세세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건을 똑바로 보고 고통을 느끼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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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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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자연 친화적이 되어간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을 좋아하는데, 특히 남자들이 자연에 귀의하고 싶어한다. 우리집 남자를 포함해 주변의 많은 남자들이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이랄까. 자연속에 스며들어 사는 삶을 부러워하고 소망한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들은 목가적인 내용을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라고도 한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비채에서는 김성곤의 번역으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다. 의무감에서 시작한 독서가 어느 새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의 자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아주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라는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읽고나면 여운이 남는다. 이런 삶은 어떨까. 이런 작품의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라는.

 

우리는 이 소설에서 '빅서'라는 장소에 심취하게 된다. 남북전쟁시 남부연합의 소속이었던 곳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해본 빅서의 풍경은 장관이다. 절벽과 검은 바위, 파도치는 풍경이 꽤 인상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남부연합 소속의 장군이었던 리 장군의 후손이라는 리 멜론과의 만남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리 멜론의 자꾸 변해가는 치아 갯수와 도서관을 뒤져 오거스터스 리 장군의 이름을 찾았으니 명단에 없는 걸 보고 허무함에 빠졌던 감정들과 함께.

 

 

 

 

그동안 읽어왔던 작품들과 함께 이 작품 또한 목가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작가가 친구가 있었던 빅서에 한달 가량 머물렀던 그 경험들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전화기도, 전기도 없는 시골의 오두막. 있는 거라곤 엄청 많은 숫자의 개구리들 뿐이었다. 우연히 악어 두 마리를 들여와 연못가는 고요해 졌지만, 제시와 리는 배가 고팠다.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의 휘발유를 훔치려는 소년들을 잡아 총알이 없는 총으로 그들을 위협해 가진 돈을 다 털게 해 그 돈으로 여자를 사려고 했던 리 멜론이었다.

 

소설에서 엘리자베스가 나오는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이곳에 있을 때와는 달리 돈을 벌러 도시로 갈 때는 한껏 치장하고 일을 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그녀는 아름다웠고, 번 돈으로 빅서로 돌아와 아이들을 보살폈다. 제시에게는 일레인이라는 여자 친구가 생겼고, 빅서로 와 함께 지낸다. 돈이 엄청 많은 미친 남자와 리, 제시, 엘리자베스, 일레인이 머무는 빅서는 어쩐지 그들의 이상향과도 같다.

 

까마귀가 광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주위에 거미줄을 쳤다. 다른 동물들, 지, 딱정벌레, 토끼도 거미줄을 쳤다. 지금은 땅벌레처럼 길고 날씬해진 거미처럼, 무덤의 입구에서 기다리며.

 

지진에 부서진 운동장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은 16세 소년이, 군복을 입은 59세 된 노인 옆에, 교회처럼 장엄하고 완벽하게 죽은 채 땅에 누워 있었다. (163~164페이지)

 

다섯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남북 전쟁시 오거스터스 장군의 이야기가 다른 한편으로 전해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결말이 이어지며 수많은 결말들로 이루어지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열린 결말과 함께 소설은 막이 내린다. 어쩐지 빅서에서 머물렀던 오두막과 연못의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파도 치는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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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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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여행갔을때 맨먼저 검색해보는 게 그 도시의 맛집이 아닐까. 물론 그 지역의 '가볼만한 곳'도 곧잘 검색해 보지만 말이다. 맛집을 검색했을 때 어떤 식당의 홍보를 위해 쓴 사람의 글도 있기에 그다지 믿을 건 못된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보면 블로거들이 쓴 맛집이 진짜 맛집인 경우도 있더라. 만약 여행중인 지역에 지인이라도 있다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경우 말고 현지인들이 맛집으로 꼽는 장소를 찾게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에 가보았던 통영에서도 다찌집을 찾을 때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곳을 찾았고, 완도 여행시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곳을 방문했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경우도 있으니 여전히 검색하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쓴 작가가 실제 푸드 블로거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설이라 미식업계에 대해 상당히 직접적이다. 어떻게 별점이 매겨지는지 민낯을 알게 되었다. 물론 블로그에 책 리뷰를 쓰는 이들도 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존재하는 경우와 같지 않을까 싶다.

 

책 속의 주인공 티아는 뉴욕대 대학원생으로 음식학 석사 과정이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음식 작가를 꿈꾸었다. 그녀가 쓴 글 하나로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그녀의 글을 칭찬했던 헬렌 란스키의 밑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싶었다. 헬렌은 뉴욕타임스의 푸드 섹션 에디터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인턴이 되어 헬렌을 도우고 싶지만, 뜻하지 않게 미각을 잃은 마이클 잘츠의 푸드 고스트 라이터가 된다. 여기에서 마이클은 뉴욕타임스의 미식 칼럼니스트다. 마이클이 사례로 주는 명품 드레스, 백, 구두를 무시하지 못한다. 헬렌과 친분이 있는 마이클이 그녀의 인턴이 되도록 도와준다는 제안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미각을 잃은 음식 칼럼니스트가 고스트 라이터를 내세워 그녀가 쓴 음식평의 단어 하나까지 그대로 칼럼을 싣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음식 칼럼니스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을테고, 자신이 미각을 잃었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글이 신문에 그대로 나타나자 괜한 우쭐함까지 느끼는 티아가 점점 변해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잘생긴 셰프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사랑을 속삭이는데 반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티아에게는 이미 예일 시절부터 사귀었던 남자 친구 엘리엇이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여자들에게는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레스토랑의 서비스, 분위기를 무시하지 못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레스토랑, 셰프가 빼어난 미모의 남자라면 여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고, 음식을 접대하는 웨이터들조차 잘생겼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 때로는 좋은 레스토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타내 준달까.

 

 

 

이십대와 삼십대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칙릿이라 부른다. 『단지 뉴욕의 맛』은 칙릿 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티아가 음식을 주제로 한 글을 쓰기 때문에 푸드릿이라고 평하기도 한 것 같다. 

 

글 쓰는 건 항상 좋아했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보다 저는요, 뭔가 나만의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나로 정의하는 특별한 것 말이에요. (363페이지) 

 

별 갯수에 따라 식당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레스토랑은 어떻게든 별점을 많이 받고 싶다. 푸드 칼럼니스트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가 도착하는 즉시 관리에 들어간다. 직원들은 서비스를 극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원을 내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변장을 해도 금방 알아보지 않을까. 소설에서 마이클이 티아와 함께레스토랑 순례를 할때 변장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다른 사람처럼 꾸며도 그 사람 고유의 인상이 있지 않은가. 눈가리고 아웅, 식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재미있게 읽혀진다. 티아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취향의 엘리엇과는 어떻게 될까. 매력적으로 다가온 바쿠샨의 셰프 파스칼은 과연 티아를 사랑하는가. 그녀가 그토록 염원했던 헬렌의 인턴은 할 수 있을까. 궁금함에 계속 읽게 되는데, 작가의 첫소설이라 처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풋풋함이라고 해야할까. 전부터 그랬지만 맛집 블로거들의 글은 딱 반만 믿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훌륭한 맛이지만 나에게는 아니듯 음식 취향이란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맛집으로 유명한 어느 식당은 점심 시간에 번호표까지 빼고 줄을 서지만, 나에게는 질색인 경우처럼 말이다.

 

티아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지만 좀처럼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마침내 찾았다고 여기지만 이 또한 이용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진정한 '나만의 것'을 찾으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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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4-0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로 읽으셨군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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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고민하기에 너무도 버거울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어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친구들의 의견을 묻는다. 물론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도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테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하는데 친구들의 답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저렇게 생각하는 구나. 수많은 해답지 중에서 자신의 것을 선택하게 되는데, 결국엔 위안을 얻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싶은건지도.

 

 

작년 이맘때즘 읽은 에세이스트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위로를 기억한다. 짤막한 만화로 된 동물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일리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감동을 느꼈었다. 보노보노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른이 되면 인생을 좀더 쉽게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어른이라고 해도 삶이 녹록지 않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지 않을까.

 

 

아기 해달 보노보노와 그의 친구인 아기 다람쥐 포로리 그리고 까칠한 성격의 너부리가 주로 이 글을 이끌어간다. 고민 상담을 해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 방법을 찾아다니는데 우리가 생각지 못한 해답을 들을 수 있다. 예를들면 되고 싶은게 딱히 없는 사람이 취업을 해야하는데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찾으면 될까요, 라고 질문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삼은 일에 후회하며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좋은 사람인양 연기한다는 어떤 독자의 말에는,

 

 

너부리아빠 ; 난 말이다.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는 사람도 싫지만 남한테 노력파라는 등 성실하다는 둥 떠들어대는 사람이 더 싫어. 하지만 말야, 뭐가 제일 싫으냐면,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제일 좋다며 설치는 사람이야아아아!

(중략)

너부리아빠 ;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거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를 드러내야 해.

너부리 ; 그런게 가능할 기가 없잖아.

너부리아빠 ; 자기를 드러내는 건 좋아. 나를 미워하는 녀석들하고 더는 안 만나도 되니까. (30페이지)

 

 

이처럼 아주 간단한 해답지를 제시한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기 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아주 간단한 결정인데도 어렵게만 생각하는지 모른다. 쉽게 생각하면 그것처럼 쉬운 것도 없는 법인데 말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때문에 슬퍼서 어떻게 마음을 추스를지 도움을 달라고 하는 상담 내용을 보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까.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아주아주 슬픈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노보노 ; 슬픔에 익숙해지려면, 제대로 슬퍼해야만 해.

포로리 ; 응. 슬퍼하는 게 싫다고 뭔가를 하면서 그 기분을 달래거나 얼버무리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슬픔에 익숙해질 수 없어.

보노보노 ; 응응응. 하지만 슬퍼하는 건 힘들지.

포로리 ; 힘들어. 있잖아, 흰토끼 아저씨,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흰토끼 ; 아.

포로리 ; 뭔가 조언해줄 것 없을까요?

(중략)

흰토끼 ; 눈을 감고, 아빠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을 떠올려봐.  

 

 

수 많은 순간에 진정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내가 때로는 다를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진정한 나가 아닐까, 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걸 인정하면 된다. 인정하기 두려워하지만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한다.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행복임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지나고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행복한 순간 아니었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오늘의 우리도 우리의 시간은 소중한 것임을 자주자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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